2022. 10. 14. 10:43ㆍ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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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4년 무신(1728) 3월 10일(경신) 맑음
04-03-10[20] 재해를 입은 영남(嶺南) 고을의 상황과 현재의 폐단을 혁파할 방도를 진달하고, 새로 제수받은 직임에 나아갈 수 없으므로 체차해 줄 것을 청하는 부교리 박문수의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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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리 박문수가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은 보잘것없는데도 외람되게 성상의 간택을 입었습니다. 삼가 명을 받들고서 지난해 10월 말에 성상께 하직하고 동짓달 초에 비로소 고개를 넘었습니다. 영남의 주현(州縣)은 그 수가 71곳인데 재해를 입은 고을이 열에 둘입니다. 반드시 먼저 재해를 입은 고을을 둘러본 뒤에야 얼마나 재해를 심하게 입었는지 알 수 있고, 얼마나 재해를 심하게 입었는지 안 뒤에야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는가를 헤아릴 수 있으며,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는가를 헤아린 뒤에야 또한 진곡(賑穀)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건대, 71개 고을은 그 거리가 3000리나 되는 먼 길이니 만약 다 돌아보고자 한다면 진휼(賑恤)을 설행하기 전에 혹 시일이 부족할 염려가 있을까 하여 신은 신속히 움직여 이곳저곳을 잠깐씩 들르며 내려갔습니다. 바람과 가뭄으로 인한 재해는 경계가 인접하였더라도 같지 않기 때문에 초실읍(稍實邑)이 간혹 그 사이에 섞여 있습니다. 지나갈 때 만약 버리고 들르지 않으면 폐막(弊瘼)을 아뢰려던 고을 수령은 만나 보지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려던 백성들은 실망했다고 탄식할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각 고을을 두루 다니며 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영남은 장부와 문서의 번다함이 팔도의 으뜸으로 큰 주(州)와 작은 현(縣)을 막론하고 백성들의 하소연이 지극히 많습니다. 한낮에 도착하면 저녁나절에야 겨우 끝나고 저녁나절에 고을로 들어서면 불을 밝힌 뒤에도 끝나기 어려우며, 비로소 수령과 고을의 일에 대해 대략 의논할 때면 벌써 닭이 웁니다. 그대로 행장을 바삐 꾸려 앞길로 향하면 마주 대했던 수령들의 면면을 생각해 봐도 흐릿한데 하물며 고을의 폐단과 백성들의 병통을 어찌 자세히 알 겨를이 있겠습니까.
영남의 지형은 따로 하나의 구역을 이룹니다. 산이 북쪽으로부터 와서 봉화(奉化)와 순흥(順興)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태백산(太白山)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남쪽으로 달려가면 첫 번째가 죽령(竹嶺)이 되고 두 번째가 조령(鳥嶺)이 되고 세 번째가 추풍령(秋風嶺)이 되며, 그 아래 가야산(伽倻山)과 지리산(智異山)이 나란히 우뚝하고 바다로 이어지는데 그 안에 군과 현이 별과 바둑알처럼 빼곡히 펼쳐 있습니다. 남해(南海)에서 영해(寧海)까지 길은 1000여 리로 해읍(海邑) 21곳이 펼쳐 있으며, 진주(晉州)에서 의성(義城)까지 길은 500여 리로 야읍(野邑) 24곳이 펼쳐 있으며, 단성(丹城)에서 영양(英陽)까지 길은 900여 리로 산읍(山邑) 26곳이 펼쳐 있습니다. 만약 그 지방을 옛날의 이른바 열국(列國)에 비교해 본다면 비록 제(齊)나라나 초(楚)나라 보다는 작지만 한(韓)나라나 위(魏)나라보다는 이곳이 큽니다. 더군다나 또 산에 동(銅)과 철(鐵)이 있고 바다에 물고기와 소금이 나서 그 이로움이 무궁하니 이것이 신라가 나라를 열어 1000년 동안 유지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르러 유현(儒賢)이 배출되어 육예(六藝)를 가르치고 오륜을 밝히니 근검절약하는 풍속이 여리(閭里)에 행해지고 독송하는 소리가 향학과 서당에서 들렸습니다. 토양이 비옥하여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의 즐거움을 많이 누렸으며 습속이 순박하여 위를 향한 정성이 있었습니다. 임진년(1592)과 계사년(1593)에 왜적의 난리가 있자 충신과 의사가 초야에서 앞다투어 일어나 국가가 그에 힘입은 일 또한 이미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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