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남에선 예로부터 선현을 기억했지

2022. 9. 19. 18:21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고전번역서 > 운양집 > 운양집 제2 >  > 최종정보

운양집 제2 / ()○북산집(北山集) 계유년(1873, 고종10)에서 정해년(1887, 고종24)까지이다.

소산 이 영공 응진 의 〈신거〉에 차운하다 30 〔次素山李令公 應辰 新居 三十首 계유년(1873) 여름, 나는 양근(楊根)에서 한성 북산 아래 육상궁(毓祥宮) 옆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때 소산(素山) 어른 역시 풍계(楓溪)로 이사했는데 〈신거잡절삼십수(新居雜絶三十首)〉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운에 의거해서 화답했다.

[DCI]ITKC_BT_0650A_0060_020_0010_2014_001_XML DCI복사 URL복사

강호 십 년에 해오라기 꿈은 비고 / 十載江湖鷺夢空
지난날의 뜻은 상봉에 부끄럽네 / 向來志事愧桑蓬
어찌하여 만년에 기려객 되어 / 如何晩作騎驢客
아계의 낚시하는 노인을 그르쳤는가 / 誤了
溪一釣翁

 

여윈 뼈는 본디 절 방에 적합해서 / 瘦骨元宜丈室容
문사는 없어도 세 해 나기에 족하네 / 更無文史足三冬
오래된 벼루 하나와 너덜한 글 몇 장을 / 一方古硯殘書葉
몸에 잘 간직하며 열 겹으로 보호하네 / 
隨身護十重

 

가는 곳마다 푸른 산이 북창과 마주하니 / 隨處靑山對北窓
이사 온 후론 전혀 쟁변할 일 없네 / 移來全不費擡扛
문 앞으로 난 한 줄기 양구의 길 / 門前一線羊裘徑
굽은 골목 서쪽으로 통해 작은 다리를 건너네 / 曲巷西通渡小杠

 

어린 여종 장에 가면 번번이 늦게 돌아오는데 / 小鬟赴市每回遲
떠들썩한 싸전 어전에서 배를 불리네 / 米鬨魚喧謾朶

밤이건 낮이건 산골 부엌엔 채소만 사들이니 / 日夕山惟買菜
선생이 장검을 퉁긴들 또 무엇 하리오 / 先生彈鋏亦何爲

 

높고 낮은 뭇별들 자미궁에 가깝고 / 列曜參差近紫微
영롱한 붉은 그물에 오색구름 높이 나네 / 玲瓏朱網
雲飛
소슬한 띳집이 궐 담장 옆에 있으니 / 蕭然茅屋依墻住
종남산의 욕심 없어졌다 그 누가 말할까 / 誰信終南已息機

집이 경복궁(景福宮) 서쪽 담장 백 궁()의 땅에 있다.

 

숲과 샘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 없어 / 林泉無處不宜渠
무속헌 옆에 작은 오두막 지었네 / 無俗軒傍置小廬
여기서 선인들 시를 주고받았으니 / 爲是先人酬唱地
아직도 옛날 이웃 석실이 그대로네 / 依然石室舊隣居

선조(先祖) 문정공(文貞公 김육(金堉))이 평구(平邱)에 있을 때 석실(石室) 김청음(金淸陰) 선생과 함께 어울려 노니면서 《석실수창집(石室唱酬集)》을 남겼다. 지금 우리 집은 무속헌 옆에 있는데, 이곳이 바로 청음의 고택이다.

 

한가한 거처 가꾸는 일 즐겁기도 해라 / 閒居經濟儘堪娛
부추 자르고 파 쪼개고 가지도 접붙이네 / 剪韭披葱嫁洛蘇
성 안에는 때 이른 매화비 내리는데 / 城裏梅霪時節早
옥수수는 익어서 알알이 명주구슬 / 玉高梁熟顆明珠

 

가지런히 배추와 아욱 자란 한 이랑의 밭 / 整頓菘葵一稜畦
아주까리 붉은 여뀌 담장과 나란하네 / 蓖麻紅蓼與墻齊
아이들도 시골 정취 기뻐하나니 / 兒童也喜鄕園趣
신풍에 풀어 놓은 개와 닭과 꼭 닮았네 / 恰似新豊放犬鷄

 

천 그루 아름드리가 서재에 그늘 드리우고 / 千章佳木蔭書齋
빗속에 풀 덮인 섬돌 찾아오는 이조차 없네 / 雨裏無人草上階
장막 젖히면 명사 있다고 말하지 마오 / 莫道披帷名士在
삭막한 곳 소슬 바람엔 회포조차 없다오 / 索居蕭颯不成懷

 

수풀 우거진 동산이 백 궁도 더 되겠네 / 林園得百弓恢
푸른빛이 저 멀리 경무대까지 이어졌구나 / 葱蒨迤連景武臺
저물녘 꾀꼬리 소리 맑고도 고우니 / 向晩鶯歌淸宛轉
새 악보를 훔쳐 뒤뜰로 가져와야겠네 / 應偸新譜後庭來

 

문회지당은 바로 어제일 같은데 / 文會池堂似隔晨
적막한 몇 년 세월에 평상 가득 먼지만 쌓였네 / 寥寥幾歲一牀塵
기문 감상하고 뜻 풀면 남은 생 만족이라 / 賞奇析義餘生足
한 마을엔 지금도 평소 뜻 지닌 이 많다네 / 同閈今多素志人

문회지당(文會池堂)은 봉서(鳳棲) 유 선생(兪先生)의 옛집이다. 직하(稷下)에 있는데,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후 당()이 폐해진 지 이미 오래이다. 선생의 문하에서 좇아 노닐던 사람들이 지금도 같은 마을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느릿느릿 구리 징 불타는 구름 위에 걸렸고 / 冉冉銅鉦掛火雲
대낮 되자 낮은 처마엔 타는 듯한 열기 / 矮簷當晝熱如焚
때맞춰 쏟아진 소나기에 답답한 가슴 씻기니 / 霎時驟雨煩襟滌
지붕 샌다고 어찌 정 광문을 슬퍼하랴 / 屋漏何傷鄭廣文

 

도화원 입구가 선원에 접해있어 / 桃花洞口接仙源
봄이면 꽃잎 떨어져 흔적을 남기네 / 萬點春來落水痕
성대엔 본디 세상 피하는 객 없으니 / 聖代元無逃世客
그저 보통의 꽃 파는 마을일 뿐 / 尋常
作賣花村

나의 집 뒤에 도화동(桃花洞)이 있는데, 거주민들은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다.

 

키 큰 버드나무 매미 소리에 여름도 춥고 / 高柳蟬聲夏亦寒
바람을 이야기하고 이슬을 읊자니 석양이 지네 / 談風吟露夕陽欄
온 성 가득 메운 검은 먼지 속에 / 滿城滾滾緇塵裏
이곳만은 초연히 깨끗한 땅 차지했네 / 地位超然占淨乾

 

제관은 본디 청아하고 한가로운 자리라 / 祠官本是職淸閒
떠남과 머묾에 대한 근심은 신경 쓰지 않네 / 去住猶愁不自關
관단을 빌려왔으나 구유에 콩대가 없어서 / 
段借來無棧豆
서늘한 틈을 타 풀꽃 사이에 짐짓 풀어놓았네 / 乘凉權放菜花間

나는 이때 경모궁령(景慕宮令)으로 있었다.

 

소년들 본떠 어깨 젖히고 가슴 치켜드니 / 肩反胷範少年
여남에선 예로부터 선현을 기억했지 / 汝南自古記先賢
전형은 비록 멀어졌으나 풍류는 남아 / 典型雖邈風流在
거문고 소리 글 소리집집마다 잠자지 않네 / 絃誦家家夜未眠

야사에 이르기를, 농암(農巖)과 삼연(三淵) 두 선생은 매번 문을 나설 때마다 어깨를 젖히고 가슴을 치켜들었는데, 장동(壯洞)의 인사들이 그것을 많이 본떴다고 하였다. 지금 마을에 글 읽는 소리가 많은 것은 선현들의 유풍(遺風)이다.

 

시편에다 마구 속요를 섞어놓고 / 謾與詩篇混俗謠
붉은 주묵에 푸른 점 찍어 표제를 시험하네 / 硯朱點碧試題標
꿈속에서 때때로 지당구를 얻었기에 / 夢中時得池塘句
시를 지을 때면 먼저 자수교를 찾아가네 / 韻事先尋慈壽橋

종형(從兄)인 학해(學海)가 가끔 자수교에 머물렀다.

 

뱁새는 나뭇가지 위 둥지에 만족하니 / 自足一枝巢
가슴속 두 마음의 싸움을 털어버리네 / 擺落胷中兩戰交
몹시도 어리석은 집사람 때문에 늘 괴로운데 / 常苦家人痴騃甚
또 쌀 가지고 가 점치며 좋은 점괘를 바라네 / 更將米卜祝佳爻

《영표록(嶺表錄)》에 “닭 점, 쌀 점, 소뼈 점 등의 풍속이 있다.”라고 했다. 우리 동국의 무녀 또한 쌀로 점을 친다.

 

한 가지 일도 못 이룬 채 반백이 되었으니 / 百事無成到二毛
우를 들고 제나라 문 찾은들 무슨 소용이리 / 齊門何用客竽操
근자에는 꽃 키우는 기벽까지 생겼으니 / 近來却有澆花癖
끙끙대며 물동이 드는 수고도 달게 여기네 / 搰搰猶甘抱甕勞

 

육상궁의 우물로 중병이 나았으니 / 毓祥宮井已沉
제호를 들이붓듯, 많아도 싫지 않네 / 灌似醍醐不厭多
벗이 준 송국 차를 맛보았더니 / 聊試故人松茗麴
일곱 잔을 마심에 몽환의 경지에 이르렀네 / 傾來七椀到無何

서경당(徐絅堂)이 송향국차(松香麴茶) 1()를 주면서, 더위를 씻어내고 갈증을 멈추게 한다고 했다.

 

반 이랑에 심은 무가 일찍 싹이 나왔기에 / 半畦蘆菔早生芽
뽑아다가 먼저 술파는 집에 나눠주네 / 挑取先分賣酒家
이상도 해라 번풍이 절기를 재촉하여 / 却怪番風催序急
가지 사이로 다시 사과꽃이 보이네 / 枝間再見月臨花

 

비온 후 새로 뜬 달이 장막을 훤히 비추니 / 雨餘新月鑒帷煌
반쪽 벽 무너진 담이라 빛 받아들이기 딱 좋네 / 半壁頹垣恰受光
연꽃과 마름만 뜰에 가득한데 인적은 드물고 / 荇藻滿庭人跡少
관사의 가을 소리는 띳집 안에 숨어있네 / 秋聲館裏隱茅堂

 

첨 찾아온 객들이라 얼굴마다 낯설지만 / 客子新來面面生
북산은 여전히 풍류와 정 넉넉하네 / 北山猶自
風情
돌 형님과 우물 아우여 너무 탓하지 마오 / 石兄井弟休相怪
양주 땅을 걷어가는 것 아니라면 / 除是楊州捲地行

 

큰길에 종소리 파하자 시장 등불 훤해지고 / 九衢鍾罷市燈熒
드문드문 은하수에 별들 몇 점 보이네 / 寥落天河見數星
찍찍 울어대는 벌레소리 어디서 나는지 / 喞喞蟲聲何處起
가을소식 미리 가져다 간곡히 알려주네 / 預將秋信報丁寧

 

단비와 햇볕이 좋은 징조와 어우러지니 / 時雨時暘協庶徵
요 임금 시절 좋은 때 풍년이 거듭 이어지네 / 堯年幸際屢豊承
시정 아이들은 농가의 고통을 몰라 / 市兒不識田家苦
길거리 노래 대충 배워 곳곳에서 불러대네 / 謾學衢謠處處興

 

구구한 기장과 벼 기러기의 도모 비웃지만 / 粱稻區區笑鴈謀
신천옹은 본래 근심이 없다네 / 信天翁也本無愁
상자 속에 마침 잡힐 만한 조복이 있기에 / 篋中合有朝衣典
이웃 주막에 술 익었냐고 물어보네 / 爲問隣壚酒熟不

 

우뚝 선 벽오동 그림자 길이만 천 길 / 翠梧特立影千尋
소슬한 담 머리엔 반 무의 녹음 드리웠네 / 蕭灑墻頭半畝陰
늙어가며 품은 것은 오직 금 생각뿐 / 老去全含琴意思
시원한 비바람에 용의 신음 내네 / 泠然風雨作龍吟

 

세심대 아래 판교의 남쪽 / 洗心臺下板橋南
오색 그림 청계에 작은 암자 하나 있네 / 罨畫淸溪一小庵
그 속에 장엄한 시불이 있어 / 箇裏莊嚴詩佛在
향 사르고 공손히 소산에게 참배하네 / 瓣香敬爲素山參

 

숲 개구리 꽥꽥 울며 비를 먼저 점치고 / 林蛙閣閣雨先占
바람 불려 할 때면 소나무가 수염을 터네 / 風欲來時松拂

삽시간에 희뿌옇게 변한 남산의 나무들 / 片刻空濛南嶽樹
개울 북쪽을 넘어가면 이내 그치네 / 拖過溪北不同沾

 

대아의 봄 모습 소호와 함지 연주하고 / 大雅春容奏頀咸
신맛과 짠맛 적당한 국의 간 맞춤 다시 보네 / 和羹又見適酸

몇 번을 자세히 음미함에 뺨에서 향기 나니 / 數回細嚼香生頰
마른 창자의 허기를 구하기에 충분하네 / 充得枯
可救饞

[-D001] 육상궁(毓祥宮) :

서울 종로구 궁정동 1-1에 위치한 사적 149호이다. 조선 시대 영조의 생모인 숙빈(淑嬪) 최씨(崔氏)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725(영조1) 영조가 즉위하면서 생모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었는데, 지을 당시에는 숙빈묘라 이름 하였다. 1744년에 육상묘로 고쳤으며, 1753년에는 육상궁으로 승격하였다.

[-D002] 상봉(桑蓬) :

상호봉시(桑弧蓬矢)를 말한다. 뽕나무 활과 쑥대화살을 뜻하며, 남아가 출생하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로 천지 사방에 쏘아서 남아가 마땅히 사방에 뜻을 두어야 함을 상징했다. 남아의 큰 뜻을 말한다.

[-D003] 기려객(騎驢客) :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나귀를 타고 골똘히 시를 읊다가 경조윤(京兆尹)의 행차와 부딪힌 적이 있다. 이후 기려객은 시인을 의미하게 되었다.

[-D004] 절 방 :

원문의 ‘장실(丈室)’은 방장실(方丈室)의 준말로 절의 방을 가리킨다.

[-D005] 세 해 :

원문의 ‘삼동(三冬)’은 세 번의 겨울이라는 뜻으로 곧 3년 세월을 말한다. 《한서(漢書)》 권62 〈동방삭전(東方朔傳)〉에 “나이 열셋에 글을 배웠는데, 삼동의 문사에 쓰기에 족하다.〔年十三學書 三冬文史足用〕”라는 말이 있는데, 왕선겸(王先謙)의 보주(補注)에 “살펴보니, 삼동은 삼년이다. 삼촌ㆍ삼추라 하는 것과 같다.〔三冬謂三年 猶言三春三秋耳〕”라고 했다.

[-D006] 북창(北窓) :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북창삼우(北窓三友)로 시()ㆍ금()ㆍ주()를 들었는데, 이로써 북창은 은자(隱者)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D007] 양구(羊裘) :

()나라 양중(羊仲)과 구중(裘仲)을 말한다. 《초학기(初學記)》에서 한()나라 조기(趙岐)의 《삼보결록(三輔決錄)》을 인용하여 “장후(蔣詡)의 자는 원경(元卿)이고, 집에 삼경(三逕)이 있는데, 오직 양중과 구중하고만 노닐었다. 이중(二仲)은 모두 청렴으로 추대되었으나 명예를 피했다.”라고 했다. 나중에 이중은 은거하며 청렴하게 지내는 사대부를 지칭하게 되었다.

[-D008] 배를 불리네 :

원문의 ‘타이()’는 《주역》 〈이괘(顥卦)〉의 “초구는 너의 신령한 거북이를 버리고 나를 보고서 턱을 벌리니, 흉하다.〔初九舍尔靈龜 觀我 凶〕”에서 나온 말로 입에 음식을 가득 넣고 먹는 모양이다.

[-D009] 장검을 퉁긴들 :

전국 시대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 풍훤(馮諼)이 자신에 대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칼을 두들기며 물고기 반찬, 수레, 집이 없다고 노래하였는데, 맹상군이 보고를 듣고 그의 바람을 다 들어주었다고 한다.

[-D010] 자미궁(紫微宮) :

임금의 궁전을 말한다.

[-D011] 종남산의 욕심 :

종남산(終南山)은 은자들이 많기로 유명한데, 은자들이 고명을 얻어 조정에 초청되는 일이 잦자 벼슬길에 나아가는 수단으로 종남산에 일부러 은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D012] () :

길이의 단위이다. 1궁은 6자 혹은 8자 정도였다고 한다.

[-D013] 김청음(金淸陰) :

김상헌(金尙憲, 1570~1652)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ㆍ석실산인(石室山人)ㆍ서간노인(西磵老人),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병자ㆍ정묘호란 때 척화대신으로 이름이 높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 석실마을은 그 집안의 세거지로서 그의 묘소가 있다.

[-D014] 가지 :

원문의 ‘낙소(洛蘇)’는 낙소(落蘇)라고도 하는데, 가지의 별칭이다.

[-D015] 매화비 :

원문의 ‘매음(梅霪)’은 매실이 익을 무렵에 내리는 장맛비를 말한다.

[주-D016] 신풍(新豊) :

섬서성(陝西省) 임동현(臨潼縣) 서북에 있었던 현 이름이다. 한 고조(漢高祖)가 관중(關中)에 도읍을 정한 후 그 부친이 장안(長安)에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자, 고향 풍읍(豊邑)의 형태로 여읍(驪邑)을 개축하고 풍읍의 백성을 이주시켜서 살게 하고 신풍이라고 불렀다.

[-D017] 경무대(景武臺) :

군사를 훈련하던 곳이다. 경복궁 옆에 있었다.

[-D018] 기문 …… 풀면 :

도연명(陶淵明)의 〈이거(移居)〉시에 “빼어난 문장을 함께 기쁘게 감상하고, 의문 나는 뜻을 서로 분석하네.〔奇文共欣賞 疑義相與析〕”라고 했다. 빼어난 글을 감상하고 의문을 함께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D019] 봉서(鳳棲) 유 선생(兪先生) :

유신환(兪莘煥, 1801~1859)으로,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경형(景衡), 호는 봉서(鳳棲)이다. 주자학자로서 윤병정(尹秉鼎)ㆍ서응순(徐應淳)ㆍ김윤식(金允植)ㆍ윤치조(尹致祖)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학문적으로는 이기신화론(理氣神化論)을 주장하였다.

[-D020] 구리 징 :

태양을 상징한다.

[-D021] 정 광문(鄭廣文) :

당나라 정건(鄭虔, 685~764)으로, 자는 약재(若齋)이다. 하남(河南) 영양(滎陽) 영택(滎澤) 사람이다. 광문관(廣文館) 박사를 지냈다. 두보(杜甫)는 〈취시가(醉時歌)〉를 지어 정건의 가난과 불운을 읊었는데, 시는 “제공들 득의하여 대성에 오를 제, 광문 선생은 홀로 한직에 머물렀네. 저택에선 어지러이 산해진미에 물릴 제, 광문 선생은 밥조차 부족하였네.〔諸公衮衮登臺省 廣文先生官獨冷 甲第纷纷厭梁肉 廣文先生飯不足〕”로 시작한다.

[-D022] 관단() :

원래는 말이 느릿느릿 걷는 모양을 가리키는데, 더 나아가 말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D023] 경모궁령(景慕宮令) :

경모궁은 사도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창덕궁 안에 있었으나, 1839(헌종5)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주-D024] 여남(汝南) :

하남성 여남현이다. ()나라 사람 주배(周裴)는 일찍이 《여남선현전(汝南先賢傳)》을 지어 여남 출신 현자들의 일화를 기록한 바 있다.

[-D025] 농암(農巖) :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호이다.

[-D026] 삼연(三淵) :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호이다.

[-D027] 꿈속에서 …… 얻었기에 :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서 《사씨가록(謝氏家錄)》을 인용하여 이르길, “사영운은 사혜련을 마주할 때마다 좋은 시구를 얻었다. 후에 영가의 서당(西堂)에서 시를 지었는데, 종일토록 완성하지 못하다가 문득 꿈에서 혜련을 보고 곧 ‘연못가에 봄풀 자라나고〔池塘生春草〕’라는 구절을 지었다. 그래서 항상 말하기를 ‘이 말은 신의 도움으로 얻은 것이지 내가 지은 말이 아니다.’〔康樂每對惠連 輒得佳語 後在永嘉西堂 霞詩竟日不就 寤寐間忽見惠連 卽成‘池塘生春草 故嘗云 此語有神助 非吾語也〕”라고 했다.

[-D028] 자수교(慈壽橋) :

자수궁교(慈壽宮橋)를 말한다. 서울 효자동에 있었던 다리 이름이다.

[-D029] 뱁새는 …… 만족하니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뱁새〔鷦〕는 깊은 숲에 둥지를 트는데 한 가지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D030] 영표록(嶺表錄) :

《영표록이(嶺表錄異)》를 말한다. 모두 3권으로 되어있다. 당나라 유순(劉恂)이 편찬했으며, 당나라 영남도의 물산()ㆍ민정(民情) 등 다양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D031] 우를 …… 소용이리 :

당나라 문인 한유(韓愈)의 〈답진상서(答陳商書)〉에 벼슬을 구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제나라 왕은 우를 좋아했는데, 그 나라에서 벼슬하겠다는 사람이 슬을 들고가 왕의 문 앞에 3년을 서 있었으나 들어가지 못했다.〔齊王好竽 有求仕于齊者 操瑟而往 立王之門 三年不得入〕” 여기서는 이미 나이 먹고 이룬 일이 없어 이제 와 우를 들고 제나라 문을 찾아가도 아무 소용없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D032] 일곱 …… 이르렀네 :

당나라 노동(盧仝)의 〈주필사맹간의기신다(走筆謝孟諫議寄新茶)〉시에 “일곱 번째 잔은 마실 수 없으니, 오직 겨드랑이 사이에서 맑은 바람이 이는 것 같은 느낌만 든다.〔七椀喫不得也 唯覺兩腋習習淸風生〕”라고 하였으니, 이미 선령(仙靈)과 통한다는 것이다. ‘무하(無何)’는 ‘무하유지향’의 줄임말로 아무것도 없는 땅, 텅 빈 몽환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D033] 서경당(徐絅堂) :

서응순(徐應淳, 1824~1880)을 말한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여심(汝心), 호는 경당으로 달성부원군 종제(宗悌)의 후손이다. 유신환(兪莘煥)의 문하에서 심기택(沈琦澤)ㆍ민태호(閔台鎬)ㆍ김윤식(金允植)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1870(고종7) 음보(蔭補)로 선공감 감역(繕工監監役)ㆍ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ㆍ영춘 현감(永春縣監)을 역임하고, 간성 군수(杆城郡守)로 부임하여 임지에서 죽었다. 이이(李珥)를 숭모하여 학행을 닦았고 경서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대학》과 《중용》에 주력하였다.

[-D034] 번풍(番風) :

24번의 화신풍(花信風) 중 제1번의 화신풍인 소한(小寒) 때의 매화(梅花)의 바람을 말한다.

[-D035] 사과꽃 :

원문의 ‘월림화(月臨花)’는 임금화(林檎花)라고도 하는데 능금, 즉 사과꽃을 말한다.

[-D036] 양주 …… 것 :

당나라 노동(盧仝)의 〈객사정(客謝井)〉에 “양주의 악독한 백성들, 내가 땅 껍데기 걷어갈까 의심한다네.〔楊州惡百姓 疑我捲地皮〕”라는 말이 나온다.

[-D037] 구구한 …… 비웃지만 :

두보의 시 〈동제공등자은사탑(同諸公登慈恩寺塔)〉 마지막 구에, “태양 좇아 나는 기러기를 보시오, 각각 벼와 기장 위해 도모하고 있다오.〔君看隨陽雁 各有稻粱〕”라는 말이 나온다.

[-D038] 신천옹(信天翁) :

바다 새의 일종으로, 알바트로스를 말한다.

[-D039] 용의 신음 :

소리가 큰 것을 비유한다. 오동나무가 늙어서 금()이 되고 싶은 생각을 지니고 금의 소리를 낸다는 의미이다.

[-D040] 세심대(洗心臺) :

서울 인왕산 계곡에 있었던 대 이름이다.

[-D041] 청계(淸溪) :

인왕산 백운동(白雲洞) 아래에 있는 개울 이름이다. 청풍계 청하동(淸霞洞)에서 고개 너머에 김상용(金尙容)의 별장 선원고택(仙源古宅)이 있었다. 또 그의 아들 김창업(金昌業)이 살던 옥류동(玉流洞)이 있었다.

[-D042] 소호(韶濩)와 함지(咸池) :

소호는 탕()의 음악, 함지는 요()의 음악이라고 한다.

[-D043] 국의 간 맞춤 :

원문은 ‘화갱(和羹)’으로 정치를 다스림을 말한다. 《서경》 〈열명(說明)〉에 “국에 간을 맞추려면, 소금과 매실식초로 해야 한다.〔若作和羹 爾惟鹽梅〕”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