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은 상아나 뿔로 만든 호패를, 상민은 나무로 만든 호패를 찼습니다
2022. 11. 30. 21:48ㆍ대륙조선 일반
호패
조선 시대 사람들도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증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바로‘호패’라는 것입니다.
1413년 태종은 전국에 호패법을 실시합니다. 나라의 인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신분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 군사를 모으거나 나라의 큰 공사를 할 때 일할 장정들을 쉽고 빠르게 모으기 위해서였습니다. 호패법에 따라 왕실과 조정의 관리에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16세이상의 모든 남자는 호패를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주민등록증은 다 똑같이 생겼지만, 조선 시대의 호패는 신분에 따라 달랐습니다. 양반은 상아나 뿔로 만든 호패를, 상민은 나무로 만든 호패를 찼습니다. 또 호패에는 이름과 태어난 년도, 관직, 신분 등이 새겨져 있었는데, 노비의 경우에는 얼굴 빛깔,키, 수염의 있고 없음까지 자세히 기록해야 했습니다.
> 승정원일기 > 인조 > 인조 3년 을축 > 8월 5일 > 최종정보
인조 3년 을축(1625) 8월 5일(신사) 흐림
03-08-05[05] 호패에 사용할 상아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호조의 계
[DCI]ITKC_ST_P0_A03_08A_05A_00060_2009_005_XML DCI복사 URL복사
조익이 호조의 말로 아뢰기를,
“호패에 사용할 상아(象牙)와 흑각(黑角)이 매우 많아야 합니다. 흑각은 본조에서 마땅히 마련하겠지만 상아는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마련하기가 매우 어려워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 이하 원문 빠짐 -
'대륙조선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 봄에 광동(廣東)과 향강(香岡) 지방에 유룡(遊龍)이 있었는데 (1) | 2022.12.12 |
---|---|
고려인들은 인중을 사람이라고 한다.. (0) | 2022.12.02 |
고려 일식(日食) 132회와 혜성이 지나가거나 떨어진 것은 대부분 《송사(宋史)》, 《원사(元史)》와 부합한다. (0) | 2022.11.30 |
《조선부(朝鮮賦)》에는 “아버지[父]를 아필(阿必)이라 하고, 어머니[母]를 액미(額嬭)라 한다.” 하였고 (1) | 2022.11.28 |
지붕 없는 단교(單轎)를 어깨에 메고 가는 행차 (0) | 2022.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