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3. 21:31ㆍ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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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0년 갑인(1734) 4월 9일(갑인) 맑음
10-04-09[24] 희정당에서 약방이 입진하는 자리에 도제조 서명균 등이 입시하여 상이 넘어진 일, 제사 지내는 신하들의 해이한 태도, 밀창군 이직을 처리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호조는 본래 은화가 나올 곳이 없어서 여러 도에서 약간 거둔 은점세(銀店稅)를 가지고 보충하는 밑천으로 삼았는데, 들으니 덕원(德源)과 안변(安邊)의 경계에 은맥(銀脈)이 매우 성한 은혈(銀穴)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임 판서 때부터 연이어 사람을 보내어 은점을 설치하고자 하였는데, 본관과 감영이 일절 막아 은점을 열게 허가하지 않고서 지금까지도 버티고 있습니다. 지금 근방의 백성들이 간혹 개인적으로 채굴하여 가는 모습이 없지 않은데 본조에서 보낸 사람은 시종 막았다고 합니다. 산택(山澤)의 보화는 본래 국가가 관장하는 것인데, 간악한 백성들로 하여금 함부로 채굴하게 내버려 둡니다. 본조가 은점을 설치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해당 도에서는 반드시 민폐라고 말합니다만 신이 외방(外方)에 있을 적에 보니, 도리어 간혹 유익함은 있었지만 폐단은 없었고, 게다가 영문(營門)에서 사사로이 스스로 은점을 설치하는 것은 민폐라고 우려한 적이 없었으니 이 또한 공언(公言)이 아닌 듯합니다. 지금은 경상 비용(經常費用)이 시급한데 이미 은맥이 성함을 알았으니, 어찌 은점을 설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도에 신칙하여 막지 말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은점을 설치하는 것은 끝내 폐단이 있으니, 《선묘보감(宣廟寶鑑)》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는데 허락하지 않았다. 낭청을 보내더라도 은맥이 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전 판서 김동필(金東弼)이 낭청을 보내어 보게 하였으며, 전 판서 김재로(金在魯)도 사람을 보내어 보게 하였고, 신 또한 사람을 보내어 보게 하였는데, 은맥이 매우 성대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자, 서명균이 아뢰기를,
“은이 고갈되면 은점의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도적이 되니, 사람들이 모두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광부를 모집하여 들이는 것은 중국과 다릅니다. 신이 호조 판서를 맡았을 때 은혈이 있는 곳을 말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기내(畿內)는 일절 허락하지 않았고 지방은 산원(算員)을 정하여 보내어 자세히 살피고서 허락하기도 하였습니다. 덕원의 은혈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문천(文川)과 고원(高原)은 이미 은점을 설치하였으므로 원래 처음 시작하는 일이 아니니 채굴하게 하는 것이 무방할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기에도 있는가?”
하니, 서명균이 아뢰기를,
“수락산(水落山)에 은이 있다 하고, 풍덕(豐德) 등지에도 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은점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국가와 백성들에게 유익한가?”
하니, 송인명이 아뢰기를,
“호조에서 거두는 것이, 은산(殷山)은 한 달에 100여 냥(兩)이고 고원은 한 달에 40여 냥이니, 거두는 것이 적은 듯하지만 1년을 합쳐서 계산해 보면 매우 적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일로 말해 보면, 은산 백성들의 경우 부유한 자가 많으니 은점을 설치하는 것이 또한 어찌 모두 민폐가 되겠습니까. 명(明)나라는 은광(銀礦)이 나라를 망하게 한 근본이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그 경우와 다를 것입니다. 신이 도신(道臣)으로 있을 때에도 막은 적이 있었는데 덕원에서는 거주하는 백성들이 함께 함부로 채굴한다고 하니, 이는 잘못입니다.”
하였다. 상이 한참 있다가 이르기를,
“길에서 듣고 말한 것은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먼저 낭관을 보내어 그곳을 적간(摘奸)한 뒤에 설치하라.”
하였다. - 거조를 내었다. - 서명균이 아뢰기를,
“자산(慈山)에 금이 있는데 거주하는 백성들이 채굴하여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고, 송인명이 아뢰기를,
“신이 평안 감사로 있을 때 6, 7냥을 얻었는데 창고에 두고 왔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보물도 우리나라에서 많이 생산된다. 우리나라 역사서를 보면, 항상 중원(中原)에 금과 은을 공물로 바쳤다. 은과 인삼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데 청나라 사람에게 바치고 우리나라는 사용하지 못한다. 들으니, 청나라에서 사용하는 것은 모두 우리나라의 천은(天銀)이라고 한다.”
하였다. 송인명이 아뢰기를,
“청나라 사람들은 모두 칠성은(七星銀)을 사용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호조에서 거둔 것이 천은인가? 광은(廣銀)이라 하는 것도 천은인가?”
하자, 송인명이 아뢰기를,
“품질은 천은인데 이름은 현은(玄銀), 황은(黃銀)이라 일컫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납을 섞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심이 간악하지만 은을 잘 주조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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