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2. 11:22ㆍ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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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관전서 제53권
이목구심서 6(耳目口心書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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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선종(宣宗) 8년에 진봉사(進奉使) 이자(李資) 등이 송 나라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황제께서 우리나라에 좋은 서적이 많음을 들으시고 관반(館伴 사신을 접대하는 관원)에게 명하여 구할 도서의 목록을 써 주게 하고 말하시기를 ‘권질(卷帙)이 부족한 것은 반드시 베껴서 보내라.’ 하셨습니다.”
하였는데, 서목(書目)은 다음과 같다.
《백편상서(百篇尙書)》ㆍ순상(荀爽)의《주주역(注周易)》10권,《경방역(京房易)》10권, 정강성(鄭康成)의《주주역(注周易)》9권, 육적(陸績)의《주주역(注周易)》14권, 우번(虞翻)의《주주역(注周易)》9권,《동관한기(東觀漢記)》1백 20권, 사승(謝承)의 《후한서(後漢書)》1백 30권,《한시(韓詩)》22권, 업준(業遵)의《주모시(注毛詩)》20권, 여침(呂忱)의《자림(字林)》7권,《고옥편(古玉篇)》30권,《괄지지(括地志)》5백 권,《여지지(輿地志)》30권,《신서(新序)》3권,《설원(說苑)》20권, 유향(劉向)의《칠록(七錄)》20권, 유흠(劉歆)의《칠략(七略)》7권, 왕방경(王方慶)의《원정초목소(園亭草木疏)》27권,《고금록험방(古今錄驗方)》50권,《장중경방(張仲景方)》15권,《원백창화시(元白唱和詩)》1권,《심사방(深師方)》,《황제침경(黃帝鍼經)》9권,《구허경(九墟經)》9권,《소품방(小品方)》12권,《도은거효험방(陶隱居效驗方)》6권,《시자(尸子)》20권,《회남자(淮南子)》21권, 공손나(公孫羅)의《문선주(文選注)》,《수경(水經)》40권, 양호(羊祜)의《주노자(注老子)》2권, 나십(羅什)의《주노자(注老子)》2권, 종회(鍾會)의《주노자(注老子)》2권, 완효서(阮孝緖)의《칠록(七錄)》, 손성(孫盛)의《진양추(晉陽秋)》,《삼자(三子)》3권, 손성의《위씨춘추(魏氏春秋)》20권, 간보(干寶)의《진기(晉紀)》22권,《십륙국춘추(十六國春秋)》1백 2권, 위담(魏澹)의《후위서(後魏書)》1백 권, 어환(魚豢)의《위략(魏略)》, 유번(劉璠)의《양전(梁典)》30권, 오균(吳均)의《제춘추(齊春秋)》30권, 원행충(元行冲)의《위전(魏典)》60권, 심손(沈孫)의《제기(齊紀)》20권, 《양웅집(揚雄集)》5권, 《반고집(班固集)》14권, 《최인집(崔駰集)》10권, 《급총기년(汲塚紀年)》 14권, 《사령운집(謝靈運集)》 20권, 《안연년집(顔延年集)》41권, 《삼교주영(三敎珠英)》1천 권, 공관(孔逭)의《문원(文苑)》1백 권,《유문(類文)》1백 권, 《문관사림(文館詞林)》1천 권, 중장통(仲長統)의《창언(昌言)》, 두서(杜恕)의《체론(體論)》,《제갈량집(諸葛亮集)》24권, 왕희지(王羲之)의《소학편(小學篇)》1권, 주처(周處)의《풍토기(風土紀)》1권, 장읍(張揖)의 《광아(廣雅)》4권,《관현지(管絃志)》4권, 왕상(王祥)이 지은《음악지(音樂志)》, 채옹(蔡邕)의《월령장구(月令章句)》12권, 신도방(信都芳)이 지은《악서(樂書)》9권,《고금악록(古今樂錄)》13권,《공양묵수(公羊墨守)》15권,《곡량폐질(穀梁廢疾)》3권,《효경유소주(孝經劉邵注)》1권,《효경위소주(孝經韋昭注)》1권,《정지(鄭志)》9권,《이아도찬(爾雅圖贊)》2권,《삼창(三蒼)》3권,《비창(埤蒼)》3권, 위굉(衛宏)의 《궁서(宮書)》1권,《통속문(通俗文)》2권,《범장편(凡將篇)》1권,《재석편(在昔篇)》1권,《비룡편(飛龍篇)》1권,《성황편(聖皇篇)》1권《권학편(勸學篇)》1권,《진중흥서(晉中興書)》80권,《고사고(古史考)》25권,《복후고금주(伏侯古今注)》8권,《삼보황도(三輔黃圖)》1권,《한관해고(漢官解詁)》3권, 《삼보결록(三輔決錄)》7권,《익도기구전(益都耆舊傳)》14권,《양양기구전(襄陽耆舊傳)》5권, 혜강(嵇康)의《고사전(高士傳)》3권,《현안춘추(玄晏春秋)》3권, 간보(干寶)의《수신기(搜神記)》30권,《위명신주(魏名臣奏)》31권,《한명신주(漢名臣奏)》29권,《금서칠지(今書七志)》10권,《세본(世本)》4권,《신자(申子)》2권,《수소자(隨巢子)》1권,《호비자(胡非子)》1권, 하승천(何承天)의《성원(性苑)》ㆍ《고사염씨족지(高士廉氏族志)》1백 권,《십삼주지(十三州志)》14권,《고려풍속기(高麗風俗記)》1권,《고려지(高麗志)》7권,《자사자(子思子)》8권,《공손니자(公孫尼子)》1권,《신자(愼子)》10권,《조씨신서(晁氏新書)》3권,《풍속통의(風俗通義)》30권,《범승지서(氾勝之書)》3권,《영헌도(靈憲圖)》1권,《대연력(大衍曆)》,《병서접요(兵書接要)》7권,《사마법(司馬法)》,《한도(漢圖)》1권,《동군약록(桐君藥錄)》2권,《황제대소(黃帝大素)》3권,《명의별록(名醫別錄)》3권,《조식집(曹植集)》30권,《사마상여집(司馬相如集)》2권, 환담(桓譚)의《신론(新論)》10권,《유곤집(劉琨集)》15권,《노심집(盧諶集)》21권,《산공계사(山公啓事)》3권,《서집(書集)》80권, 응거(應璩)의《백일시(百一詩)》8권,《고금시원영화집(古今詩苑英華集)》20권,《집림(集林)》20권,《계연자(計然子)》15권.
이때는 송 철종(宋哲宗) 원우(元祐) 6년(신미)이다.
………….
청(淸) 나라 선비 우통(尤侗)의 자는 전성(展成)이고 호는 회암(悔庵)인데 장주(長洲) 사람이다. 외국 죽지사(外國竹枝詞) 백여 편을 만들어서 각각 그 나라의 풍속을 말하고 또 각주(脚注)를 달았다. 시험삼아 조선(朝鮮)을 읊은 것을 본다면 모두 네 수(首)인데, 풍문(風聞)을 거두어 모은 것으로 잘못된 것이 많다. 이제 모두 여기에 기록한다. 중국에서 최근의 것이 이와 같으니, 그 나머지 시대가 먼 것은 미루어 알 수 있다. 그 첫째에,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낮추었으니 / 高句麗降下句麗
조선이라는 옛이름만 못해 / 未若朝鮮古號宜
천리 되는 왕경에 갖가지 놀이 벌이니 / 千里王京陳百戲
한성에서 아직도 한궁의 의식 보겠네 / 漢城猶見漢宮儀
했고, 주(注)에,
“고조선(古朝鮮)은 고구려에 합병되었다. 수(隋) 나라가 정벌했으나 복종하지 않았으므로 낮추어서 하구려라고 했다. 홍무(洪武 명 태조의 연호) 연간에 공물(貢物)을 바치고 조서(詔書)를 받들었으므로 다시 조선이라고 했다.”
했으니, 이는 중간에 고려(高麗)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 둘째에,
넓은 소매와 긴 옷자락에다 절풍건 쓰고 / 長衫廣袖折風巾
붓으로 종이 위에 한자를 쓰네 / 硾紙狼毫漢字眞
세가로서 나라 전함이 오랬음을 자서했으니 / 自序世家傳國遠
상서 편 안의 구주를 전수한 사람일세 / 尙書篇內九疇人
했다. 이백(李白)의 시에도,
금화로 꾸민 절풍건이다 / 金花折風巾
했는데, 이는 곧 갓(笠子)이다. 그 갓의 양테가 평직(平直)하게 생겨서 바람을 가를 수 있다. 그럼 신라 때에는 금화(金花 금으로 만든 꽃장식)로 갓을 장식했던 것일까. 그 셋째에,
양화도 나루터에 살구꽃이 붉고 / 楊花渡口杏花紅
팔도의 노래 동쪽 나라 풍속을 실었네 / 八道歌謠東國風
가장 생각나는 것은 비경 같은 여도사 / 最憶飛瓊女道士
상량문 지어서 일찍이 광한궁에 이르렀네 / 上樑曾到廣寒宮
했으며, 주에,
“그 나라에 8도(道)가 있고 양화도는 한강(漢江) 가에 있으며, 규수 허경번(許景樊)은 뒤에 여도사가 되었는데 일찍이 광한궁 백옥루(白玉樓)의 상량문을 지었다.”
했다. 그러나 별안간 살구꽃이 붉다는 말은 어찌 두서(頭緖) 없는 것이 아니랴. 그리고 팔도 가요(八道歌謠)의 문구는 너무 무미(無味)하고 양화도는 한강의 중간에 위치하여 몇 굽이가 되므로 그냥 강가라 할 수 없으며, 난설헌(蘭雪軒) 허씨(許氏)를 허경번이라 한 것은 매우 옳지 않고 그가 여도사가 되었다는 말도 전여성(田汝成)의《광여기(廣輿記)》에 나오는 말을 따른 것이다.《광여기》에,
“허씨의 남편 김성립(金誠立)이 왜란(倭亂)에 순절(殉節)하자 허씨가 여도사가 되었다.”
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근거 없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이 같은 말을 만들어내서 중국 사람을 속인 것일까. 그리고 중국의 기록에서 허난설헌과 허경번을 두 사람으로 나누고 있으니 더욱 가소롭다. 부인이 글에 능하고 재주가 많은 때문에 이 같은 욕이 미치는가. 매우 개탄(慨嘆)할 만하다. 그 넷째에,
여덟 살 난 어린이 이름은 황창 / 八歲小兒號黃昌
칼춤으로 능히 백제 임금 베었네 / 舞劍能誅百濟王
다시 가배의 회소곡 불러 / 更唱嘉俳會蘇曲
아침부터 길쌈하여 벌써 광주리에 찼다오 / 朝來蠶績已盈筐
했는데, 주에,
“신라의 황창(黃昌)이 여덟 살에 그 임금을 위하여 백제로 가서 저자에서 칼춤을 추자, 왕이 곧 궁 안으로 불러들여서 춤추게 했는데 이를 틈타서 찔러 죽였다.”
했다.
동문선 제104권 / 치어(致語)
서경 대화궁 연회의 치어[西京大花宮大宴致語]
주 나라는 비록 오랬으나 명은 오직 새롭도다 / 周邦雖舊命惟新
건원의 구를 씀은 뭇 용이 합함이요 / 乾元用九群龍合
이(离 역괘 이름으로 해를 상징함)가 비쳐 하늘 가운데 당함은 사방의 나라가 조회 옴이옵니다 / 蒞照當中四國賓
제소에서 이미 광대한 음악을 듣고 놀랐사온대 / 帝所已驚聞廣樂
녹명연회 악장을 읊으시어 뭇 신하에게 연회를 베푸시네 / 鹿鳴還賦宴群臣
태평함을 부노들이 다투어 하례하오니 / 大平父老爭相賀
오색 구름 가운데 북신임금을 바라보네 / 五色雲中望北宸
이미 수운의 모임을 여시옵고 / 旣啓需雲之會
음악이 조화롭게 계속하여 들리오니 / 純而又繹
순 임금의 음악 화함을 듣고자 하옵니다 / 欲聞韶奏之和
위로 임금에게 받들어 올리려고 / 上奉宸嚴
공사악공 각사가 곡을 합주하옵니다 / 工師合曲
서도 군신 연회의 치어[西都君臣大宴致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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