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공주 집터 1천 8백 26칸..

2022. 9. 6. 10:39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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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보감 43 / 숙종조 3

6(경신, 1680)

 

평안도 관찰사 유상운(柳尙運)이 폐사군(廢四郡)에 대해 말하면서,

“동서는 황해도보다 길고 남북은 조금 부족한데 버려두기는 아까운 곳입니다.”

○ 주강에 나아갔을 때 지사(知事) 민유중(閔維重)이 아뢰기를,

“지금 인빈(仁嬪) 사당을 기공하려고 하는데 공주(公主) 제택까지 또 짓기로 하면 호조(戶曹)의 재력이 바닥날 것이라서 일을 다 끝내기가 어려울 것이니 공주의 제택은 가을에 가서 짓도록 하는 것이 서로 편리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금년이 운세가 좋은 해라고 해서 지으려는 것인데, 금년 내로 꼭 완공까지 할 것이야 뭐 있겠는가. 그냥 터나 닦고 공사 기초만 해두라.”

했다. 유중이 아뢰기를,

“궁가(宮家) 규모가 옛날에는 일정한 제도가 있었지만 이번 공주 제택은 우선 터를 넓게 잡고 높고 사치스럽게 지으려고 하고 있어 물자도 힘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폐단도 많을 수밖에 없어 결국 원성은 나라로 돌아오고 말 것입니다. 상께서 우애의 길이 제택을 호화롭게 짓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각별한 관심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하였다.

○ 7월. 호조가 아뢰기를,

“명안공주(明安公主) 집터가 될 곳을 본조 낭관(郞官)을 보내 재보게 했더니 여러 집들을 통합한 것이 1천 8백 26칸이나 되었습니다. 선왕조에서는 공주들 제택 터를 모두 1천 6백 칸으로 정했었는데, 지금 잰 것은 종전 규례에 비해 2백 26칸이나 더 넓은 것입니다. 그것을 적당히 재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선왕조에서 정해놓은 칸수대로 하라고 명했다.

시열이 아뢰기를,

“신이 식견은 없으나 《춘추(春秋)》에 의거하자면 임금이 덕 닦는 것을 재이를 멎게 하는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비록 해묵은 말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어느 특정 재이를 멎게 할 생각만 하면 그것은 원대한 뜻이 아닙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백리 길을 가는 자가 90리를 절반으로 생각하면 목적지를 다 갈 수 있다고 하였듯이 지금 무슨 특정 재이 하나를 멎게 하고서 그것으로 만족해 버린다면 그것은 신민들이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상께서 비록 다른 문제를 물으시더라도 사무적인 것은 신이 아는 바 아니므로 학문상 만약 의심되는 곳이 있어 물어주시면 신이 아는 데까지는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경전(經傳) 속의 무슨 말들이 의심나던가요?”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전은 심오하여 의심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므로 후일 조용히 입시했을 때 논란하기로 하겠다.”

했다. 시열이 아뢰기를,

“《중용》ㆍ《대학》을 이미 읽으셨다고 했는데 그 중에서는 신독(愼獨)이 가장 절실한 공부일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과 마주 있을 때는 성상 마음에 잡념도 없고 몸가짐도 장중 엄숙하시지만 급기야 대내에 들어가 사사로이 계실 때나 환관 궁첩들이 모시고 있을 때도 신하들을 마주하고 있을 때와 똑같으신지요? 만약 겉과 속이 여일하지 못하다면 비록 날마다 경연에 납시더라도 역시 형식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용》에도, 막현호은(莫見乎隱)이라고 했고, 정자(程子) 역시, 강관(講官)을 자주 접견하고, 기질(氣質)을 함양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 비록 아무렇게나 처신해도 좋을 사사로이 있는 때라고 하더라도 어찌 감히 잠시나마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인가.”

했다. 시열이 아뢰기를,

“조종(祖宗)이 터 닦으신 대업과 민생들 잘살고 못살고가 모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순(堯舜)도 그 밖에 다른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신은 이제 죽어도 눈을 감겠습니다. 그리고 또 신료들 접견 때 대신들은 앉아서 말하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진(秦) 나라 이후로 임금과 신하 사이가 너무 엄격하여 정의가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신의 스승이었던 김장생(金長生)이 인종께 고하기를, ‘옛날에는 신료들이 임금 앞에서 부복하는 예가 없었습니다. 바라건대 옛날 의식대로 하소서.’ 하여, 인종께서는 윤허를 하셨는데 당시 대신들이 황공해서 감히 그 제도를 못 고쳤기 때문에 장생도 혼자서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물러나 한탄한 일이 있었습니다. 신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임금ㆍ신하 사이도 반드시 얼굴부터 익어야지만 할말을 다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얼마나 좋겠는가.”

했다. 시열이 아뢰기를,

“듣기에 상께서 전고에 없이 총명하시다고 밖에서 소문과 칭송이 자자합니다. 성인 자질의 기본이 총명인 것은 물론이지만 만약 자기 스스로 총명을 믿고, 날 따를 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서경》에도, 총명을 내세워 옛 법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하였지만 나도 그 점 깊이 생각할 것이다.”

했다. 시열이 또 농사 흉작에 대해 자기가 겪은 바를 말하면서 특별히 참작할 것을 청하자, 상이 묘당으로 하여금 더욱 심한 곳을 구별하여 모든 역(役)을 견감하라고 명했다.

○ 옥당관을 소대했는데 영중추부사 송시열도 함께 들어갔다. 상이 임영(林泳)을 명해 태극도설(太極圖說)을 강의하라고 하자, 시열이 그 뜻을 풀이하기를,

“태극(太極)은 바로 음양(陰陽)의 본체(本體)인 것으로 그것이 동했을 때 양이고, 정지해 있으면 음인 것입니다. 《중용》맨 첫머리에서는,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고 했는데, 여기서는 태극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하늘보다 한 단계 위를 말한 것입니다. 소강절(邵康節)이 말하기를, ‘하늘과 땅의 입장에서 만물(萬物)을 보면 만물 그 자체가 만물이 되지만 도(道)의 입장에서 만물이라는 것을 보면 하늘 땅까지도 역시 만물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했는데 그게 바로 이 태극도설과 일치하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무극(無極)이요 태극이다.’ 라는 말은 이치[理]만을 지칭한 것으로 이치라는 것이야말로 소리도 냄새도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실 하늘이 하는 일이라는 게 원래 소리도 냄새도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기실은 조화의 중심축이자 이 세상 모든 물건의 뿌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무극이요 태극이라고 한 것이지 태극 이외에 무극이라는 것이 또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했다. 임영이 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太極動而生陽]”라는 구절을 강하자, 시열이 아뢰기를,

“그것은 동(動)과 정(靜)이 상호 유기적이라는 묘리를 말한 것입니다. 동과 정이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천명의 유행인 것이며 그 천명은 바로《중용》에서 말하고 있는 천명인 것입니다. 동이 끝나면 정, 정이 끝나면 다시 동, 이렇게 해서 동과 정이 상호 유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 바로 천명이 계속 유행하고 있는 원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동은 양으로, 정은 음으로, 이렇게 해서 음양이 분리되고 양의(兩儀)가 각기 제자리를 지킨다고 했는데, 이는 그 한계만은 일정하여 서로 자리바꿈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태극이 본연(本然)의 묘리라면 동과 정은 그것을 근간으로 해서 작용하는 것을 말한 것으로 ‘일음일양(一陰一陽) 그 자체가 도(道)이다.’ 한 것도 바로 그래서 한 말이며, 음이 되게 만들고 양이 되게 만든 것은 바로 태극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이 배태되도록 만드는 것은 양이고 만물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음이며, 봄ㆍ여름은 양이 되고 가을ㆍ겨울은 음이 되며, 형체가 없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체가 있는 것은 형(形)이라고 하는데 태극은 이상 어디에고 다 있다는 것입니다. 양이 변화를 일으키면 음과 합하게 되는데, 음양이 변화하여 합치게 되면 거기에서 수ㆍ화ㆍ금ㆍ목ㆍ토(水火金木土)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수는 음이 왕성하기 때문에 바른편에 위치하고, 화는 양이 왕성하기 때문에 왼편에 위치하며, 목은 양이면서 여리기 때문에 화 다음에 위치하고, 금은 음으로서 여리기 때문에 수 다음에 위치하며, 토는 조화로운 기운을 가졌기 때문에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氣)로 말을 하면 다섯이 되지만 계절로 말을 하면 넷밖에 안 되고 토는 이상 어디에고 다 통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목은 봄을, 화는 여름, 금은 가을, 수는 겨울을 말하며 토는 4계절 어디에고 붙어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했다. 임영이 또,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다.[五行一陰陽]라는 구절을 강하자, 시열이 아뢰기를,

“처음에는 음양ㆍ오행 순으로 말했다가 여기서부터는 또 차근차근 순서를 바꾸어 말한 것은 그 이유가 오행이 갖추어져 있으면 그것만으로 얼마든지 조화를 이루고 발육시킬 수가 있지만 그러나 그 뿌리를 찾자면 역시 모두가 무극이라는 묘리 속에서 나온 것들이며 또 어느 물건이든지 그 물건 속에는 각기 그 이치가 다 따로따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행은 그 생성과정에서 제각기 자기 기질에 따라 부여받은 바가 같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성질이 각기 따로따로다.[各一其性]’ 한 것입니다.”

하고, 이어 차근차근 풀이하기를,

“대체로 무극(無極)과 이오(二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는 합치면 원래 한 덩어리인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묘합(妙合)이라고 한 것이고, 진(眞)은 이(理)를, 정(精)은 기(氣)를 가지고 말한 것이며, 무망(無妄)이라는 것은 공허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용》에서 말한 불이(不貳)ㆍ불잡(不雜)이라는 것이 그것 아니겠는가.”

했다. 시열이 아뢰기를,

“성(性)은 주(主)가 되고 음양과 오행은 경위(經緯)가 되는데 경(經)은 남북을 말하고, 위(緯)는 동서를 말합니다. 즉 음양의 교감으로 인하여 만물이 화생하는데 양이면서 건장한 것이 남자로 되므로 그는 아버지 격인 것이고, 음이면서 순한 것이 여자로 되므로 그는 어머니 격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물건은 다 각기 암수가 있기 마련이고 심지어 푸나무도 다 암수가 있습니다. 삼[麻]으로 말하면 꽃이 피는 것이 수컷이고 열매가 맺는 것은 암컷이며 대나무 역시 암수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 성(性) 이외의 물건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동시에 성은 없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남녀를 비롯 세상 만물이 각기 태극 하나씩 갖고 있다는 것이며 옛말에, ‘만물은 통틀어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 한 것도 바로 그를 두고 한 말인 것입니다.”

했다. 임영이 또 오직 사람만은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남을 얻었다[惟人也得其秀] 한 구절을 강하자, 시열이 또 풀이하기를,

“사람이나 다른 물건이나 태어날 때는 모두가 태극의 이치로 태어나지마는 그 중에서 사람만은 가장 빼어남을 얻어 태어나기 때문에 마음도 가장 신령한 것입니다. 오성(五性)이란 바로 인ㆍ의ㆍ예ㆍ지ㆍ신(仁義禮智信)을 말하고, 형(形)이란 바로 귀ㆍ눈ㆍ입ㆍ코를 말하는데, 입은 먹으려고 하고 눈은 아름다운 색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오성이 느낌을 받아 움직이게 되고 그리하여 거기에서 선악(善惡)이 나타나게 되며 선악이 나타남으로 해서 일만 가지 사단이 야기되는 것입니다. 이때 만약 욕심이 작용하고 감정이 이성을 이겨 이해(利害)의 늪에 빠지게 되면 인극(人極)이 무너지고 새ㆍ짐승과 별 차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했다. 임영이 또, 성인주정(聖人主靜)이라는 구절을 강하자 시열이 아뢰기를,

“사람은 이오(二五)의 빼어난 기운을 받고 태어나게 되는데 성인은 또 빼어난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기운을 받은 자입니다. 따라서 정(靜)이라는 것은 성(誠)을 되찾은 것이며 성(性)의 진품인 것입니다. 마음이 반드시 아무런 동요없이 잠잠해야지만 갖가지로 변화하는 사물에 알맞게 대응하여 온 천하가 일정한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성인이 중ㆍ정ㆍ인ㆍ의(中正仁義)의 길을 가면서 반드시 정(靜)을 위주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중앙 핵심에 자리를 잡아 천지도 일월(日月)도 사시(四時)도, 귀신까지도 그 범주를 이탈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니, 임영이 아뢰기를,

“정(正)과 의(義)는 정(靜) 쪽을 말한 것이고, 중(中)과 인(仁)은 동(動) 쪽을 말한 것으로 사람이 마음의 안정을 잃으면 뿌리가 흔들리기 때문에 동할 때면 반드시 정을 말한 것입니다.”

했다. 시열이 또 그 다음을 풀이하면서 아뢰기를,

“여기서는 성인(聖人)ㆍ군자(君子)ㆍ소인(小人), 이 3자를 들어 차례로 말한 것입니다. 군자는 태극과 일치하려고 노력하고 소인은 태극을 이탈하며, 군자는 항상 경(敬) 속에 있고 소인은 무지망작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길흉(吉凶)의 반응이 그렇게 동떨어지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일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이탈하는 것인가는 전자는 경(敬)이고 후자는 사(肆)인 것뿐입니다. 따라서 경을 하면 욕심이 적어지고 이치에 눈이 뜨여 결국은 정허동직(靜虛動直)의 경지에까지 갈 수 있고 성인까지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했다. 임영이 또 입천지도(立天之道)의 구절을 강하자, 시열이 아뢰기를,

“하늘ㆍ땅ㆍ사람 이 삼재(三才)가 각기 체용(體用)의 구별이 있으나 그러나 기실은 하나의 태극인 것입니다. 음과 양, 강과 유, 인과 의가 바로 물건의 시(始)와 종(終)인데 그 시를 소급하여 태어나는 이치를 알게 되면 그 종에 가서 왜 죽는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천지간 조화의 원동력으로서 고금을 통하여 작용하고 있는 것이며 말로 표현 못할 묘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이 아무리 포괄적이라고 해도 역시 그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양정(兩程 정호(程顥), 정이(程頤))이 주염계(周濂溪)에게 도(道)를 물었을 때 염계가 직접 이 그림을 그려서 주었는데 그후 양정은 그 그림을 분명하게 남에게 내보인 사실이 끝내 없어 주자(朱子)는,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어서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정자 문인들 중에는 그것을 전수받을 만한 자가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전수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했다. 홍만용(洪萬容)이 아뢰기를,

“태극도(太極圖)와 서명(西銘)이 성학십도(聖學十圖) 속에 다 있으니 옥당관으로 하여금 병풍을 만들어 올리게 하여 수시로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자, 상이 그대로 따랐다.

시열이 아뢰기를,

“어제 성상 체후가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오늘 눈이 뿌리고 바람끝도 조금 차가워 전각에 너무 오래 계시면 옥체에 해로울 염려가 있으니 서명(西銘)은 후일 강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하루 내내 강론을 해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 서명도 마저 강하도록 하라.”

하여, 임영이 서명을 또 강하게 되었는데, 시열이 또 뜻풀이를 하기를,

“서명의 주된 뜻은 인(仁)입니다. 그리고 장횡거(張橫渠)가 지은 것인데 횡거가 자기 학당 두 들창에다 왼편에다는 ‘폄우(砭愚)’라고 쓰고 바른편에다는 ‘증완(證頑)’이라고 썼다는 것입니다. 이에 이천(伊川)이, 그렇게 명명하면 논쟁의 소지가 될 염려가 있으니 동명(東銘)ㆍ서명(西銘)으로 고치라고 했다는 것이고, 동명은 그 내용이나 기상이 어딘가 다소 미진한 점이 있어 위아래로 통하고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뜻을 가지고 있는 서명과는 다르기 때문에 정문(程門)에서는 오로지 서명만을 학자들에게 가르치고 동명은 언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하늘은 양(陽)이므로 아버지 격이고, 땅은 음(陰)이므로 어머니 격인데, 사람이 하늘에서 기운을 타고 땅에서 모형을 받아 아주 작은 몸이지만 천지와 혼합하여 손색이 없이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아들 격이라는 것이지요. 주자(朱子)는 이르기를, ‘자식이 태어날 때 비록 부모 기운을 받아 태어나지만 천지의 기운을 더 많이 받고 태어나는 것이다. 순(舜)이 성인인 것도 고수(瞽瞍) 기운보다는 천지의 기운을 더 많이 받고 태어났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천지(天地)라고 하지 않고 건곤(乾坤)이라고 한 것은 천지는 그 형체를 두고 한 말이고, 건곤은 그 성정(性情)을 두고 한 말로서 사람에게는 성정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다.’ 했습니다.

천지의 기운이 공간에 충만해 있는데 사람이나 물건의 육체는 그것을 원료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오기체(吾其體)라고 한 것이고, 건(乾)은 건장한 것이요 곤(坤)은 유순한 것이기 때문에, 오기성(吾其性)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색(塞)이라는 글자는 《맹자(孟子)》 호연장(浩然章) 내의, ‘천지 사이에 충만하다.[塞乎天地間]’에서 온 말로서 곧 기(氣)를 말함이요, 수(帥)라는 글자는 역시 《맹자》의, ‘뜻은 기운의 장수이다.[志氣之帥]’ 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곧 이(理)를 말한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백성들은 다 나와 탯줄을 함께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천지의 기운을 함께 받았기 때문에 동포(同胞)라고 한 것인데 동포란 바로 동생(同生)이라는 뜻으로 내가 남 보기를 모두 나의 형제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물건들은 치우친 형기(形氣)를 얻었으므로 비록 나와 유(類)는 틀리지만 그 육체와 천성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따져 보면 역시 그것들도 뿌리는 천지인 면에서는 똑같기 때문에 오여(吾與)라고 한 것인데 그 말은 내가 그것들을 나의 또래처럼 여긴다는 말입니다. 대체로 물건과 내가 비록 친소(親疏)의 차이는 있지마는 기운은 같은 기운을 타고나서 그것들도 당연히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친한 이를 친히 하고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그리고 물건들을 사랑한다.’ 하는 말이 바로 그러한 뜻인 것입니다.”

했고, 임영은 아뢰기를,

“물건이 나와 같은 유는 아니지만 역시 천지의 기운을 함께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또래처럼 여겨야 할 것이고 그리하여 감정이 있는 물건이거나 없는 물건이거나 간에 각기 안식처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게 해야지만 천지와 동참하여 화육(化育)의 일을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했다. 시열이 또 그 다음을 순서적으로 풀이하기를,

“천하 사람들이 모두 천지의 자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일개 가정을 예로 들면 천지는 바로 부모인 것이고, 임금은 부모의 맏아들이며, 대신(大臣)들은 맏아들 집의 가상(家相)인데 가상이란 지금 시속에서 말하는 사음(舍音)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聖人)은 형제 중에서 부모와 덕이 같은 자이고, 현자(賢者)는 형제 중에서 또래들보다는 약간 준수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륭(疲癃) 전련(顚連)이야말로 우리 형제 중에서 호소할 곳 없는 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라면 대신을 대우하고 백성 대하기를 항상 골육(骨肉)처럼 형제처럼 해야지만 되는 것입니다.”

했다. 임영이 또 ‘우시보지(于時保之)’의 구절을 강하자, 시열이 아뢰기를,

“임금이 늘 하늘에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자식이 부모를 무서워하는 그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이하는 모두가 자식으로서 어버이께 효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하늘을 어기는 자를 패덕(悖德)이라고 했는데 패덕이란 바로 《효경(孝經)》에서 말한, ‘자기 어버이는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는 자’ 그 자인 것입니다.”

하고, 이어 차근차근 그 다음을 풀이하기를,

“숭백자(崇伯子)의 고양(顧養), 영고숙(穎考叔)의 석류(錫類), 순(舜)의 저예(底豫), 신생(申生)의 대팽(待烹), 증자(曾子)의 귀전(歸全), 백기(伯奇)의 순령(順令) 등등은 모두가 어버이를 섬기면서 효성을 다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인용하여 하늘 섬기는 도리를 밝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천지가 왜 부모인가를 설명한 것이며, 따라서 하늘 섬기기를 어버이 섬기듯 해야 한다고 한 것도 바로 그래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순(存順)ㆍ몰령(沒寧)으로 끝맺음을 했는데, 그 말은 효자(孝子)ㆍ인인(仁人)이 어버이 섬기고 하늘 섬김에 있어 살아서는 어버이 뜻을 거스르지 않고 하늘의 이치를 어기지 않으며, 죽었을 때 어버이에 대해서나 하늘에 대해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로서 이른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괜찮다고 하는 뜻이고 또, ‘내가 올바르게 죽으면 그뿐이다.’ 라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집을 짓고 이름을 순녕(順寧)이라고 지어 걸었는데, 주자 역시 그 뜻을 취한 것이며, 기해년 국상 때 고 상신(相臣) 정태화(鄭太和)가 당시 영의정으로서 능호(陵號)를 정할 때 영(寧) 자를 쓰자고 했던 것도, 또 주(周)의 무왕(武王)을 영왕(寧王)이라고 했던 것도 모두 그 뜻이었던 것입니다.”

[-D001] 폐사군(廢四郡) :

우예(虞倪)ㆍ무창(茂昌)ㆍ자성(慈城)ㆍ여연(閭延)을 말함. 이 4개 군은 세종 때 개척한 것이었는데, 단종 3년에 우예ㆍ무창ㆍ여연 3개 군을 폐하고, 세조 5년에 자성군마저 폐하여 이후 폐사군으로 불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