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4. 15:03ㆍ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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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당필기 제6권
속빈과 압라와 올적개는 어디인가〔速頻押蘭兀的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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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공양왕 4년(1392) 3월 경자일 기사이다. 알타리[斡都里]와 오랑캐[兀良哈]의 여러 추장에게 모두 만호(萬戶), 천호(千戶), 백호(百戶) 등의 관직을 차등 있게 제수하고 또 미곡, 의복, 마필을 하사하니, 추장들이 감읍하여 모두 내지로 옮겨 번병이 되었다. 또 여러 부락에 방문(榜文)으로 다음과 같이 유시하였다.
“홍무 24년(1391) 7월 이필(李必) 등을 보내어 방문을 가지고 여진 지역인 두만(豆萬) 등지로 나아가서 초유(招諭)하자, 당년의 알타리와 오랑캐의 만호, 천호 두목 등이 바로 귀부하여 상사(賞賜)와 벼슬을 나누어 받은 뒤에 모두 각자 본업을 회복하였다. 현재 속빈(速頻), 실적멱(失的覓), 몽골(蒙骨), 개양(改陽), 실련(實憐), 팔린(八隣), 안돈(安頓), 압란(押蘭), 희랄올(喜剌兀), 올리인(兀里因), 고리한(古里罕), 노별(魯別), 올적개(兀的改) 등의 지역은 원래 우리나라 공험진 경내와 연계된 곳이라서 진작 초유를 했는데도 지금까지 귀부하지 않고 있으니 이치상 순조롭지 못하다. 이 때문에 다시 이필 등을 차견하여 방문을 가지고 가서 초유하게 한 것이다. 방문이 도착하는 날에 각각 와서 귀부하면 상과 벼슬 및 모든 원하는 것을 일체 앞서 귀부했던 알타리와 오랑캐의 전례와 같이 할 것이다.”
살펴보건대 두만(豆萬)을 지금은 두만(豆滿)이라고 적는데 《청일통지(淸一統志)》에서는 토문(土門)이라고 쓰고 있다. 속빈은 《요사》 〈지리지〉에서 솔빈(率賓)이라고 칭하는 곳이다. 압란은 《금사》 〈지리지〉에서 말한 갈란(曷嬾)이다. 올적개라는 것은 호리개(胡里改)인 듯하다. 송나라 두 황제가 여기로 옮겨졌으니 지금의 회령(會寧) 등의 지역이다.
[주-D001] 공험진(公嶮鎭) :
지금의 함경도에 있는 마운령과 마천령 사이 내지 함흥시 대덕리산성ㆍ상대리산성에 위치하였다고 추정된다. 공험진은 고려 시대 윤관이 여진족을 무찌르고 개척한 9성 중 가장 북쪽에 위치했다. 윤관은 공험진의 선춘령에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를 세웠다고 하고, 《세종실록》 〈지리지〉의 〈경원도호부〉에 세종이 김종서에게 이 비석을 찾아볼 것을 명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당시에도 공험진 이남은 조선의 지역이고 그 이북은 중국 영토라는 개념이 있었던 듯하다.
[주-D002] 속빈(速頻) :
김정희의 《완당전집》 권6 〈권수찬 돈인 이재의 허천기적 시권의 뒤에 제하다[題權修撰彝齋虛川紀蹟詩卷後]〉에 속빈에 대한 고증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고구려 때는 졸본이고, 당나라 때에는 안동도호부로 예속되었다가 발해에 들어가 솔빈부(率賓府)가 되었다. 요ㆍ금 이래로는 속빈, 휼품(恤品), 소빈(蘇濱)이라 불렀는데 이는 다 어음(語音)이 바뀐 것으로 실제 졸본과 같은 곳이다.”
[주-D003] 압란(押蘭) :
합라(合懶) 또는 압라(押懶), 야라(耶懶), 갈라(曷懶)라고도 한다. 현재 함흥 이북 지역이다. 이 당시에 육진 지역을 모두 여진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합라와 휼품 지역은 고려가 비록 수복하기는 하였으나 예전의 여진 부락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귀부하지 않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므로 초유하고자 한 것이다.
[주-D004] 올적개(兀的改) :
오사국(烏舍國)의 수도였던 오사성(烏舍城)을 말한다. 오사는 시대에 따라 올야, 옥야(屋惹), 온열(溫熱), 올적개(兀的改), 오저개(烏底改)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다. 그 위치도 명확하지 않아서 발해의 수도였던 홀한성(忽汗城), 또는 부여부(扶餘府)에서 가까운 곳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이와 달리 러시아 연해주의 하바롭스크에 비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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