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0. 20:22ㆍ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가정집 제14권 / 고시(古詩)
부여 회고(扶餘懷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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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가 수기(秀氣) 배태해 황하에 응하면서 / 靑丘孕秀應黃河
온왕이 동명의 가문에서 탄생하였나니 / 溫王生自東明家
부소산 아래로 옮겨 와 나라를 세울 적에 / 扶蘇山下徙立國
상서로운 기적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 奇祥異蹟何其多
인재들이 즐비하고 문물이 성대하여 / 衣冠濟濟文物盛
틈을 엿봐 신라까지 합치려고 하였는데 / 潛圖伺隙幷新羅
못난 자손들이 덕을 제대로 잇지 못해 / 在後孱孫不嗣德
고대광실 아로새기며 사치를 일삼았네 / 雕墻峻宇紛奢華
하루아침에 견고한 성이 허망하게 무너지자 / 一旦金城如解瓦
천척 푸른 바위에 낙화의 이름이 붙었나니 / 千尺翠岩名落花
공후의 동산에는 농부가 씨 뿌려 밭을 갈고 / 野人耕種公侯園
깨어진 비석 곁에는 구리 낙타가 파묻혔어라 / 殘碑側畔埋銅駝
내 와서 고적 찾다 문득 흘리는 눈물이여 / 我來訪古輒拭淚
옛일은 어부와 초동의 노래 속에 들었는데 / 古事盡入漁樵歌
천 년의 서기(瑞氣)는 땅을 씻은 듯 없어지고 / 千年佳氣掃地盡
조룡대 아래 강물만 혼자서 출렁이는구나 / 釣龍臺下江自波
간이집 제6권 / 정축행록(丁丑行錄)
평산(平山) 길가에서 차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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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뚫고 산길을 벗어나니 다시 여울 / 穿雲路盡復鳴灘
일정은 빠듯해도 괜히 흥이 동하는걸 / 縱是嚴程興亦漫
한낮의 목마름은 옥류수로 해갈하고 / 午渴初開玉溜水
저녁나절 술에 취해 취병산을 헤매노라 / 晩醺全失翠屛山
삼도좌의 문장이야 굳이 필요 없다마는 / 文章不必三都左
일항안의 도학을 어떡하면 따라갈꼬 / 道學難幾一巷顔
장부가 평소 품은 사방을 경영할 뜻 / 幸有平生四方志
올해에는 말에 올라 반쯤은 이루려나 / 今年半擬在征鞍
[주-D001] 삼도좌(三都左) :
〈삼도부(三都賦)〉를 지은 진(晉)나라 좌사(左思)를 가리킨다. 사람들이 다투어 그 작품을 베끼려고 했기 때문에 낙양(洛陽)의 지가(紙價)가 폭등했다고 한다.
[주-D002] 일항안(一巷顔) :
누항(陋巷)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긴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을 가리킨다. 《논어》 옹야(雍也)에 “우리 안회는 어질기도 하도다.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으로 누항에 사는 어려운 생활을 사람들은 견뎌 내지를 못하는데, 우리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참으로 어질도다, 우리 안회여.”라고 칭찬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翠屛山
本文
在京兆昌平縣西北。下出泉。九穴。瀦爲九龍池。⦿在直隸萬全縣西舊縣治北三里。兩峽高聳。望之如屏。宋嘉定四年。蒙古敗金將胡沙虎於此。⦿在山東棲霞縣。産金。已開。⦿在山西渾源縣南七里。秀麗如畫屛。即山海經之高氏山。高千餘丈。周十里。滱水所自出。爲直隸大清河之正源。⦿在山西朔縣西南七十里。一名西山。詳見西山條。⦿在江西寧都縣東二里。一名巽峯山。山勢蜿蜒。界梅江而止。⦿在陝西栒邑縣治南。縣城踞其上。亦名豳山。俗名掛榜山。又謂之南岡。⦿在甘肅隴西縣南四十二里。五峯錯列。西秦乞伏國仁襲鮮卑三部於此。⦿在四川富順縣東隔水一里。壁立如屛。正對學宮。如掛榜形。故一名掛榜山。翠屏天榜。爲縣中十景之一。明萬曆中知縣孫杰於石壁題刻天然圖畫額。⦿在四川宜賓縣治西。與師來山相連。山色四時常青。故名。舊有翠屛書院。尋移建城内。改爲眞覺寺。後復設敷文書院。清咸豐九年秋李短答踞山五十餘日。燒殺甚多。⦿在四川達縣南一里。形如屛。上有眞武廟。亦名眞武山。元稹爲司馬時。建戛雲亭於其上。下瞰江流。周覽城邑。⦿在雲南會澤縣東南一里。層戀聳翠。環峙如屛。上有九峯九箐九龍靈泉。山嶂如璧。又名靈璧山。其東麓別名玉獸山。
간이집 제6권 / 신사행록(辛巳行錄)
삼하(三河)에서 첩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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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을 풀어 주겠다는 황은이 예전에 내렸건만 / 皇恩久已釋寃氛
사신의 직분 아직도 다하지 못해 부끄럽네 / 使事猶羞未盡分
돈도 다 떨어졌으니 노숙을 달갑게 여길 수밖에 / 橐裏無金甘露宿
허리에 찬 칼빛만이 밤 하늘 별자리 비치누나 / 腰間有劍動星文
경사(京師)로 점점 향하는 길 산과 물도 아름답고 / 京圻漸向山河美
도로도 이젠 꽤나 많이 번잡한 저자로 뚫려 있네 / 道路多穿市肆喧
사명(使命)을 함께 받은 우리 형제의 의리가 있지 않소 / 受命同存兄弟義
내일 아침 낙양(洛陽)에 들면 기운처럼도 보이리다 / 明朝入洛似機雲
[주-D001] 원한을 …… 부끄럽네 :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宣祖) 때까지 2백 년 간 명(明)나라에 잘못 기록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는 이른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일과 관련하여, 명나라에서 《대명회전(大明會典)》을 중찬(重撰)할 때 조선측의 주장을 수록해 주겠다고 이미 약속을 하였는데, 이 일로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아직도 수정된 조선 관계 기록의 등본을 입수하여 확인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주-D002] 허리에 …… 비치누나 :
풍성(豐城) 땅에 묻힌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밤마다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발산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주-D003] 기운(機雲) :
진(晉)나라의 저명한 문학가인 육기(陸機)와 육운(陸雲) 형제를 말한다. 그들이 함께 낙양(洛陽)에 들어가서 사공(司空)으로 있던 장화(張華)를 찾아가자, 장화가 한 번 보고는 기특하게 여겨 명사(名士)로 대접하면서 제공(諸公)에게 천거했던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58 吳書 陸遜傳》
간이집 제6권 / 신사행록(辛巳行錄)
산해관(山海關)에서 관해정(觀海亭)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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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쫓겨 달아나고 바다는 와서 할퀴는 듯 / 山如畔走海來攖
전쟁을 제어하기 알맞은 험한 요새로세 / 阨塞端宜制戰爭
옛날의 위적이 들리나니 진제의 섬들이요 / 偉蹟昔聞秦帝島
지금 누대에 오르나니 위공의 성이로다 / 雄觀今上魏公城
성낸 바다 흰 물결 바람이 불면 일어서고 / 潮頭素浪風吹立
하늘 끝의 비린 구름 태양에 가로걸쳐 있네 / 天末腥雲日帶橫
곡강에서 노닐면 병도 나을 수 있다는데 / 且道曲江堪已疾
가슴속에 울뚝불뚝 맺히는 근심이 또 있으랴 / 胸中寧復滯崢嶸
위공(魏公) 서달(徐達)이 실로 관성(關城)을 창건했다 한다.
[주-D001] 옛날의 …… 섬들이요 :
진(秦)나라 말기에 제왕(齊王)으로 일컫던 전횡(田橫)이 부하 5백여 인과 함께 섬 속으로 피해 들어갔는데, 전횡이 한 고조(漢高祖)의 부름을 받고 낙양(洛陽)으로 가다가 30리를 남겨 두고 자결을 하자, 이 소식을 들은 섬 안의 5백여 인 역시 모두 자살하여 그 뒤를 따랐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94 田橫列傳》
[주-D002] 서달(徐達) :
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명(明)나라 제일의 개국 공신이 되었으며, 위국공(魏國公)의 봉호를 받았다.
간이집 제6권 / 난후록(亂後錄)
황화방(皇華坊)의 회화첩(會話帖)에 차운하다. 3수(三首) ○ 한경홍(韓景洪)과 차복원(車復元)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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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마루는 바람이 없어도 서늘서늘 / 堂靜無風也自凉
세상일에는 서툴러도 술잔만은 넘실넘실 / 淺於人事得深觴
붓으로 펼친 진을 보소 천 명의 적군을 쓸어낼 듯 / 縱觀筆陣千軍掃
저 문장은 어떠하오 만장의 광염(光焰)을 토해낼 듯 / 還有詞華萬丈長
낙양에서 통곡했던 가의(賈誼)를 누가 믿었던가 / 痛哭洛陽誰信賈
강좌에서 청담을 논한 왕연(王衍)에 못할 것도 없네 / 淸談江左未嫌王
오늘 밤엔 아마도 문성의 별빛이 동요하며 / 惟應此夕文星動
도성 서쪽 이 자리로 제일 먼저 향하리라 / 最向城西一聚場
처량해지는 이 마음을 조금 풀어 볼까 하고 / 爲少心頭一味涼
멋진 벗님들 불러다가 술자리를 마련했소 / 招要勝友置壺觴
마음만은 아양 떠는 춘운도 너끈할 듯한데 / 高情羨似春雲媚
늘그막에 긴긴 여름 그냥 보내기 부끄러워 / 老境羞將夏日長
물고기에 뜻 있으면 낚시가 어찌 곧았을까 / 久覺伸針非釣道
능수능란한 명의(名醫)를 아무도 몰라주는구나 / 誰知縮手有醫王
자리 파하자 흐르는 눈물 이상하게 보지 마오 / 酒闌莫怪翻揮涕
몇 년 동안 성읍이 전쟁터로 변했나니 / 城邑年來是戰場
난리 겪어 서글프고 처량한 도성 거리에서 / 神京亂後足非涼
지금 객끼리 술잔 드니 이런 축복이 또 있겠소 / 上瑞如今共客觴
골목길에 수레 자국 적은 게 부끄러우리요 / 門巷肯羞車輟少
두우를 쏘는 보검의 빛 모두 다 알아볼걸 / 斗牛應識劍光長
시문의 재질은 귀선의 이와 상대할 만하고 / 詩才論敵鬼仙李
붓 잡는 법은 대소의 왕을 절충해서 취했어라 / 筆法折衷大小王
이런 자리에서나 한바탕 웃고 즐겨야지 / 玆事只堪供一謔
노부는 이제 명장에는 겁이 나서 못 가겠소 / 老夫方自怯名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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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암집 제1권 / 시(詩)
3월 9일, 도성을 나와 강촌(江村)에 묵으며 절구 한 수를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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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안에서 겨울과 봄을 지내노라니 / 洛陽城裏過冬春
나도 모르게 세상 티끌 사람을 더럽히누나 / 不覺囂塵已汚人
홀연 강촌에 이르러 베개에 기대 누우니 / 忽到江村欹枕臥
호수와 산의 맑은 흥취가 일시에 새로워라 / 湖山淸興一時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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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암집 제1권 / 시(詩)
강촌에서 비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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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안의 나그네는 고향이 그리워서 / 洛陽城裏客思歸
등잔 아래 맑은 시름이 아련히 꿈에 드누나 / 燈下淸愁入夢依
멀리서 생각노니 옛 동산엔 봄이 저물어 / 遙想故園春已晩
비가 내린 뒤에 고사리 순이 한창 살지겠지 / 雨餘薇蕨正應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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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6] 성주(成周) :
낙양(洛陽)을 이름. 《서경》 낙고(洛誥) 편에 “召公旣相宅 周公往營成周”라고 보임.
계곡선생집 제3권 / 잡저(雜著) 76수
인평대군의 새 저택에 대한 상량문[麟坪大君新第上樑文] 이하는 속고(續稿)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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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周) 나라 문왕(文王)이 성스러움에 경사가 저절로 후손에까지 이르렀고, 위(衛) 나라 공자(公子) 형(荊)은 검소하게 생활하여 공자(孔子)의 칭찬을 받았는데, 이는 경전(經傳)에 기록된 바로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이치라 하겠다.
인평대군(麟坪大君)은 타고난 자질이 특출하고 금옥(金玉)과 같은 정기(精氣)를 몸에 간직하였는데, 그 인후(仁厚)한 성품으로 말한다면 어찌 꼭 일각(一角 기린(麒麟))에게 양보해야만 하겠는가. 그 빛나도록 존귀한 자태야말로 다생(多生)에 걸쳐 복의 씨앗을 뿌린 결과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아보(阿保 유모(乳母))의 손에 맡겨져 있을 때부터 부왕(父王)의 가르침을 듬뿍 받았는데, 더구나 지금 주저(朱邸 서울에 있는 공후(公侯)의 저택)를 하사받음에 어찌 좋은 집을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집터를 물색하며 거북이에 물어보니 바로 저 낙산(駱山) 언덕을 점지하였다. 내[川]가 반으로 나뉘어 두 갈래로 흐르는 이곳이야말로 평소 낙양(洛陽) 동촌(東村)의 승지(勝地)로 일컬어져 온 곳으로서 거리가 또한 금어(禁籞 비원(祕苑)을 말함)와 가까워 멀리 천극(天極) 북신(北辰 북극성)의 존엄한 처소를 우러러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기공식을 마치고 나서 곧바로 공인(工人)들이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다시금 듣건대 노위(魯衛)처럼 사뭇 가깝다 하니 당체(棠棣)의 아름다운 정의(情宜)를 더욱 알 수 있겠다. 누각 세우고 연못 팔 필요 없이 높은 덴 높게 하고 낮은 덴 낮게 하며, 오직 대[竹]가 들어차듯 아래를 굳게 하고 소나무 무성하듯 위를 치밀히 손질하여 비 새고 바람 불 염려만 없게 했다. 그리고 위엔 왕골 기직, 아래는 대자리 깔아 종 치는 소리 듣고 모여들 와 식사하게 하였다.
차공(次公)이 조심하며 몸을 단속한 것이야말로 잠규(箴規)라 할 것이요, 장로(長老)가 ‘으리으리하다.’고 한마디 함으로써 선송(善頌)과 선도(善禱)가 다 같이 이루어졌다 하겠다. 이에 나름대로 옛사람들이 진술했던 뜻을 사모하여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을 기려 볼까 한다.
여보게들 들보 동쪽에 떡 하나 던지게나 / 兒郞偉抛梁東
낙타봉 그늘이 집에까지 들어오네 / 駞駱峯陰入戶中
앞으로 이름난 동산 주인 맞게 되었으니 / 從此名園還有主
대나무며 꽃잎새에 봄바람 불겠구려 / 一區花竹更春風
여보게들 들보 남쪽에 떡 하나 던지게나 / 兒郞偉抛梁南
비온 뒤 남산의 빛 마냥 더 푸르르네 / 雨後終南色勝藍
운무(雲霧) 끝없이 눈 아래 펼쳐지니 / 無限雲煙供眼底
버선 신고 신발 신고 산 오를 일 뭐 있겠나 / 不煩鞋襪强登探
여보게들 들보 서쪽에 떡 하나 던지게나 / 兒郞偉抛梁西
멋진 집 오르락내리락 가지런히 보인다네 / 華屋參差望裡齊
형과 아우 이웃하여 사는 것 알겠느니 / 知是弟兄聯棟宇
상체(常棣)의 시 그 누가 그런 제목 붙였던고 / 棣花詩什爲誰題
여보게들 들보 북쪽에 떡 하나 던지게나 / 兒郞爲抛梁北
밤이면 난간 마루 북극성 보인다네 / 夜夜憑闌瞻紫極
상제님 앉으신 자리 분간하기 어려우나 / 淸都帝座逈難分
상서로운 오색 구름 찬연히 빛난다오 / 唯見祥雲騰五色
여보게들 들보 위에 떡 하나 던지게나 / 兒郞偉抛梁上
지붕 너머 푸른 뫼 그림처럼 둘러 있네 / 屋上靑山如畫障
창문에 발일랑 드리우지 마오시라 / 軒窓不許下朱簾
맑은 바람 불어와 안부를 물을 테니 / 爲愛晴嵐來獻狀
여보게들 들보 아래 떡 하나 던지게나 / 兒郞偉抛梁下
제비며 참새며 큰 집 좋다 들고 나네 / 燕雀紛紛喜大廈
달 누각 바람 누대 이 아니 좋을손가 / 月榭風臺豈不佳
방 안에 향로 하나 적요하기 그지없네 / 薰爐一室偏瀟灑
삼가 바라노니 들보를 올린 뒤에 집안과 나라 환락을 같이하고 몸과 마음 다 같이 편안해지시기를. 동쪽과 서쪽으로 마주 향해 서 있는 집, 하늘 위의 삼신(參辰)을 비웃는 듯 보이는데, 형님은 질나발 아우는 피리 불며 인간 세상 깊은 낙 모두 다 누리시라. 양궁(兩宮)의 은총 듬뿍 받아 백 년의 복록 향유하고 후손에 이르도록 아름다운 명성 떨치시라.
[주-D001] 노위(魯衛)처럼 …… 있겠다 :
형제가 이웃에 살면서 우애있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노(魯) 나라는 주공(周公)의 봉국(封國)이고 위(衛) 나라는 강숙(康叔)의 봉국인데, 주공과 강숙은 형제간으로서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노와 위의 정사는 형제간이다.”라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으며, 당체(棠棣)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으로써 형제간의 화락한 정을 읊은 것이다.
[주-D002] 차공(次公)이 …… 단속한 것 :
술을 경계하는 것이다. 차공은 한(漢) 나라 개관요(蓋寬饒)의 자(字)이다. 개관요가 술자리에서 “나에게 술을 많이 따르지 말라. 나는 주광(酒狂)이다.”고 한 것을 이른다. 《漢書 蓋寬饒傳》
[주-D003] 장로(長老)가 …… 하겠다 :
춘추 시대 진(晉) 나라 헌문자(獻文子)의 집을 보고 장로(長老)가 으리으리하다고 하면서 은근히 비난하자 문자가 삼가는 태도로 답변을 하면서 재배(再拜)하고 머리를 조아렸는데, 이를 두고 군자가 장로에 대해 선송(善頌)했다고 하고 문자의 말에 대해서 선도(善禱)했다고 평하였다. 《禮記 檀弓下》
[주-D004] 삼신(參辰) :
서남방의 삼성(參星)과 동방의 상성(商星)을 말하는데, 동서(東西)로 등지고 서서 동시에 보이지를 않기 때문에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는 것이나 형제가 화목하지 못한 경우를 의미한다.
고전번역서 > 계곡집 > 계곡선생집 제25권 > 오언 고시 > 최종정보
계곡선생집 제25권 / 오언 고시(五言古詩) 162수
창랑자가 옛날 은거했던 가평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다시 앞의 운을 써서 부쳐 보내다[聞滄浪子歸嘉平舊隱 復用前韻寄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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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람 불어와 날씨는 차가운데 / 陰風吹朔氣
왜가리 목청 뽑아 길게 우누나 / 鸛鶖鳴聲長
세상과 도대체 뜻이 걸맞잖아 / 君子意不適
서둘러 서울 빠져 나갈 생각이렷다 / 驅馬出洛陽
슬프다 오희가 부르는 친구 / 惻愴五噫歌
꼬불꼬불 험한 길 고생 좀 하겠구나 / 輪囷九回腸
고위 관직 한 번 미끌어지면 / 朱丹恐一跌
간난신고 맛 볼 것은 감수해야지 / 酸苦甘所嘗
조용한 물가에 낚싯줄 드리우고 / 垂綸寂寞濵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나무나 한 그루 심어 보게 / 種樹無何鄕
늘 소지하던 약 봉지는 물론이요 / 藥裹向來有
서책들도 싸가지고 가야 하겠지 / 書笈亦携將
이 기회에 한 번 친구에게 물어보세 / 寄語問吾友
시골에서 살 계책 이미 정해졌으렷다 / 歸田計已良
[주-D001] 가평(嘉平) :
가평(加平)의 옛 이름이다.
[주-D002] 왜가리 …… 우누나 :
비가 올 것 같은 분위기를 묘사한 것으로 길 떠나는 고달픔을 암암리에 의미하고 있다. 장차 비가 오려 하면 물을 좋아하는 왜가리가 좋아서 운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詩經 豳風 東山》
[주-D003] 오희가(五噫歌) :
후한(後漢) 때 맑은 지조의 소유자 양홍(梁鴻)이 경사(京師)를 지나가며 다섯 번 탄식했던 시를 말하는데, 건축 공사에 시달리는 백성의 고달픔을 비통하게 읊고 있다. 《後漢書 梁鴻傳》
[주-D004] 무하유지향 …… 심어 보게 :
무하유지향은 아무것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적막한 세계로 장자(莊子)가 설한 이상향(理想鄕)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그대가 큰 나무를 갖고서 아무 쓸모가 없다고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나무를 무하유지향의 광막한 벌판에 심어 두고서 하릴없이 그 곁을 서성이거나 그 밑에 누워서 소요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고전번역서 > 계곡집 > 계곡선생집 제33권 > 칠언 절구 > 최종정보
계곡선생집 제33권 / 칠언 절구(七言絶句) 2백 91수(首)
목빙 현상이 매우 기이하기에 괜히 흥에 겨워 한 수의 절구를 읊어 보다[木氷甚奇 漫吟一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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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꿰고 서리는 마름질 옅고 또 진한 색 / 綴雨裁霜淡復濃
겨울날 조물의 솜씨 한껏 보여 주는구나 / 天公作意侈玄冬
낙양 땅 하고 많은 유명한 정원 속에 / 洛陽多少名園裡
기수의 구슬 영롱하게 천 겹 만 겹 비취리라 / 琪樹玲瓏一萬重
[주-D001] 목빙(木冰) :
추운 날씨에 비, 눈, 서리 등이 나무에 엉겨붙어 결빙하면서 빚어내는 각종 모양들을 말한다.
[주-D002] 기수(琪樹) :
구슬을 드리우고 있다는 선경(仙境)의 옥수(玉樹)이다.
고전번역서 > 계곡집 > 계곡선생집 제33권 > 육언 > 최종정보
계곡선생집 제33권 / 육언(六言) 10수(首)
규정(閨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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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이 높은 누각 미려(美麗)한 격자(格子) 창문 / 高樓綺疏縹緲
노가의 젊은 부인 규방(閨房)인 줄 알겠도다 / 少婦知是盧家
장안엔 삼 년 가을 내내 다듬잇소리 / 漢苑三秋砧杵
요하의 전쟁터엔 모래 바람 자욱하리 / 遼河百戰風沙
옥저처럼 흐르는 이별의 눈물 / 別淚橫垂玉筯
분 화장도 다 지워진 핼쓱한 얼굴 / 殘粧落盡鉛華
독수공방(獨守空房) 주렴(珠簾) 위엔 달빛만 가득한데 / 獨閉空簾月色
하늘 끝 낭군 모습 꿈에라도 보일런지 / 難憑魂夢天涯
[주-C001] 육언(六言) :
구(句)마다 6자(字)로 이루어진 고체시(古體詩)로, 동방삭(東方朔)이 이미 육언시를 지었다 하나 전하지 않고, 현존하는 것으로는 한(漢) 나라 말기 공융(孔融)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 군더더기가 없이 직설적으로 박실(朴實)하게 표현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다지 유행되지는 않았다.
[주-D001] 노가(盧家) :
부유한 집을 뜻한다. 낙양(洛陽)의 여인 막수(莫愁)가 부자인 노씨 집에 시집갔다는 내용의 고악부(古樂府)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2] 옥저(玉筯) :
마치 옥 젓가락 모양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魏) 나라 문제(文帝)의 왕후인 견후(甄后)의 얼굴이 희었는데, 그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면 마치 옥저(玉筯)와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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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64권 / 기(記)
신라 가야산 해인사 결계장기(新羅迦耶山海印寺結界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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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
듣기로, 대일산(大一山) 석씨(釋氏)는 귀중한 말을 인용하여 불교도에게 경계하기를, “대지가 생성하고, 유지하는 것과 같이 경계하여라.” 하였으니, 대개 마음과 업을 발하라는 뜻이다. 대경(大經)에 이르기를, “이 세상에 있을 때나 이 세상을 떠나서나 모든 선근(善根)을 지은 자들 모두 가장 좋은 것인 시라(尸羅)의 땅에 의지하라.” 하였다. 그런즉 땅의 이름이 서로 들어맞아야 하늘의 말씀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라의 명칭을 시라라 한 것은 실로 바라제(波羅提)가 법을 일으킨 곳이어서이며, 산을 가야(迦耶)라 한 것은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곳과 같아서이다. 하물며 경내는 이실(二室)보다 훌륭하며 산봉우리는 오대산보다 높이 솟았다. 엄연히 이곳은 높은 지역으로 기이하며 맑고 시원하면서도 수려한 곳이다. 문에 해인(海印)이라고 써 붙였으니, 구름은 정의를 보호하는 용처럼 뭉게뭉게 일어나고, 깊은 산신령을 기대었으니, 바람은 계율을 지키는 범처럼 무섭도다. 좋은 경지에서 불법을 일으키었으나 자리 잡은 것은 겨우 1백년에 불과하였다. 다만 절터가 워낙 험하기 때문에 창건한 것이 규모가 작았다. 다시 짓자는 여론에 따라 나라에서 확장할 것을 허락하였다. 드디어 건녕(乾寧) 4년 가을, 90일 동안 참선한 끝에 땅을 넓히고 사찰 건축하기를 기다렸다. 땅의 신이 마음으로 정성을 드리며 하늘의 신도 눈으로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물며 산중에 있는 좋은 경지가 정말 해외(海外)의 복 받는 도장이 될 것임에랴. 그러나 부처님의 사원을 세우기는 쉬우나 도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만일 마음에는 있으나 거두어들이지 않는다면 날개가 없이 날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몸이란 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산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으며, 계(戒)를 지키는 것은 달빛이 바다에 비치는 것과는 달라서 이지러지면 반드시 둥글어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지금 불법은 장차 쇠퇴하려 하며 마귀의 군대는 다투어 일어난다. 볼수록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염려되는 것은 연기가 짙다가 불이 타오르는 것이다. 도가(道家)의 교훈에 이르기를, “편안하여야 유지하기가 쉽다.” 하였고 유가(儒家)의 글에 이르기를, “조심하지 않는 것을 사나운 것이라 이른다.” 하였다. 제약(制約)하는 것이 오직 사람이 행할 도리이니, 노력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지역의 4면을 구획하여 모두 책정하기를 다음과 같이한다. 진실로 이른바 3층의 집을 짓고 4층의 누(樓)를 올리는 것이다. 좋을시고, 이야말로 산이 높아서 쳐다보기가 쉬운 곳이니, 바라건대 엎어진 물을 거두기 어려운 사정은 없으리로다. 곧 이 지역은 금강석처럼 단단하며 우뚝히 솟은 옥 같은 사찰이로다. 위엄이 세속을 억누르니 유(庾)씨의 티끌이 곧 끊어질 것이요, 덕이 요물(妖物)을 이겨내니, 장각(張角)의 안개가 침노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음을 깨끗이 한 것을 재(齋)라 하며, 걱정을 방지하는 것을 계(戒)라 한다. 유교에서도 이렇게 말하는데, 불교에선들 어찌 쓸데없이 넘기리요. 잡귀가 방해함을 피하려 하면 노력하여 신(神)의 보호를 구하라. 때는 당(唐)의 건녕(乾寧) 5년 정월이다.
[주-D001] 이실(二室) :
중국 숭산(崇山)에 있는 태실(太室)과 소실(少室) 두 산을 가리킨다.
[주-D002] 유(庾)씨의 티끌 :
유씨는 유량(庾亮)을 가리킨다. 유량은 권세가 대단하여 왕의 권력보다도 셀 정도였다. 어느 날 바람이 불자 왕이 부채로 먼지를 날리며 말하기를, “유량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히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그의 권세가 위협적인 것을 꺼려서 한 말이다. 이 이후로 유진(庾塵)이라 하면 권세가 대단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D003] 장각(張角) :
후한(後漢) 때 거록(鉅鹿) 사람으로 황건적의 우두머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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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정 제1권 / 출성(出城) ○ 계해년(1803, 순조 3) 10월
30일(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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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림. 중화(中和) 50리를 가서 생양관(生陽館)에서 점심을 먹고, 평양(平壤) 50리를 가서 대동관(大同館)에 묵었다. 파발 편에 가서를 올렸다.
생양관을 늦게 떠남[生陽館晚發]
중화(中和)는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계이다. 이 관에서 역마를 바꾼다.
땅은 멀어 삼천리 / 地遠三千里
먼 길 가는 말 곧장 북쪽으로 달린다 / 征驂直北驅
관기는 들어가기 재촉하는데 / 官娥催進滔
해 떨어져 앞길이 시름겹다 / 日落愁前途
재송정의 긴 수풀[栽松長林]
일행이 대동강을 채 못 가서 긴 숲이 깊고 길이 구불구불한데, 10리 사이에 강물 빛이 은연히 나타나곤 해서 곧장 앞으로 나가 강을 건널 것 같으면서도 또 가고 또 가게 되어 자꾸자꾸 그 속으로 들어가 수풀 길이 우회해 있는 것을 모르게 된다.
재송정 서쪽 10리에 / 松亭西十里
수풀 길 우회해 있다 / 林路轉紆廻
멀리 성벽 둘러 있고 / 遠堞周遭在
물 맑은 강은 은은히 비쳐온다 / 澄江隱映來
바람이 일어나니 메마른 대나무 같고 / 風生如瘐竹
서리가 덮이니 성긴 매화 완연하다 / 霜薄宛踈梅
채찍을 휘두르매 자던 새 요란한데 / 拂策喧栖雀
석양에 말 걸음 급해지누나 / 斜陽馬步催
대동관(大同館)
강에 당도하니 날이 저물어 불을 켜들고 배가 가는데, 배의 크기는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배 위에다 모정(茅亭)을 꾸며 붉은 칠을 하고서 현판을 써 달았는데, 왼쪽은 것은 ‘능라범가(綾羅泛舸)’, 오른쪽 것은 ‘벽한부사(碧漢浮槎)’로서 10여 명의 장정이 뱃줄을 끌어 건너간다. 옛날에 일컫는 물에 뜬 저택[浮家泛宅]이라는 것이 이것인가? 대동문(大同門)으로 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읍호루(挹灝樓)’라고 현판을 달았고, 서쪽으로 초연대(超然臺)를 바라보니 푸득푸득 날아가려는 듯하였다.
먼 하늘 해 빠지고 흩어진 구름 많은데 / 長天日薄散雲多
채색 배 오가나 물결은 안 일어난다 / 彩舫東西水不波
시월에 사신의 배 푸른 은하수에 뜨니 / 十月孤槎浮碧漢
대동문 밖엔 호들기 소리 모여드누나 / 大同門外集淸笳
객관에서 밤에 사람들에게 응수함[館夜酬人]
중영(中營)의 서관(西館)에 들었다. 그때 홍숙의(洪叔宜)의 객인 이아(貳衙) 김척 문재(金戚文哉)가 상영(上營)에 머물러 있었는데 난로를 가지고 찾아왔다. 김자시(金子始) 역시 모여와 마셨다.
서쪽 변경 바람이 차서 껴입을 갖옷 손질하고 / 西塞風寒理襲裘
남아로 각각 장년의 유람을 마련했다 / 男兒各辦壯年游
낙양성 가을 날에 작별을 했었는데 / 洛城秋日曾相別
천 리 밖 패수 가의 누각에서 다시 만났다 / 千里重逢浿上樓
[주-B001] 계산기정 :
계산은 계구(薊丘)의 별칭으로 곧 연경(燕京)을 이르는 말로 쓴 것이다. 따라서 계산기정은 연행록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씌어진 것이다.
[주-C001] 계해년(癸亥年) :
순조(純祖) 3년(1803)으로, 《순조실록(純祖實錄)》 동년 10월 임오일 조(條)에 “동지정사(冬至正使) 민태혁(閔台爀), 부사(副使) 권선(權襈), 서장관(書狀官) 서장보(徐長輔)를 소견(召見)하니, 사폐(辭陛)하였다.”라는 말이 보인다.
[주-D001] 읍호루(挹灝樓) :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대동문루(大同門樓)를, 관찰사로 왔던 안윤덕(安潤德)이 읍호루로 개명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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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23권 / 경사문(經史門)
적벽전(赤壁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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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사실은, 역사를 짓는 자가 붓끝으로 낮추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는 데 따라 가끔 진상을 잃는 것이 많았다. 거록(鉅鹿) 전쟁 같은 것은, 항우(項羽)같이 힘센 자의 앞에 부딪친 자는 부서지지 않은 이가 없었을 듯한데, 나중에 와서 맞붙어 싸운 것을 보면 모두 그렇게 되지 않았다.
또 적벽전(赤壁戰) 같은 것도 만 사람의 눈을 속이기 어려울 듯한데, 조조(曹操)가 손권(孫權)에게 준 편지에, “나는 병이 생겨서 선박을 불태우고 스스로 물러서겠다.” 하였으니, 근세의 《연의(演義)》 같은 따위는 제쳐놓고 논하지 않더라도 양사씨(良史氏) 역시 전해들은 것만을 붓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다 실적이라 할 수 없다. 진실로 그런 말과 같다면 저가 비록 억지로 말하고 싶어했더라도 어찌 이와 같은 당돌한 말을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역사를 읽는 자로서는 자세히 알아야 할 것이다.
[주-D001] 적벽전(赤壁戰) :
적벽 싸움. 후한(後漢) 때 조조(曹操)와 손권(孫權)이 싸움을 벌여 조조의 군사가 패망하였음.
[주-D002] 거록(鉅鹿) :
지명. 항우(項羽)가 秦(진) 나라 장감(章邯)의 군사를 격파한 곳.
[주-D003] 연의(演義) :
《삼국지연의(三國誌演義)》의 약칭. 명(明) 나라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일종의 소설. 촉한(蜀漢)ㆍ오(吳)ㆍ위(魏) 삼국의 사실을 기록한 사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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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24권 / 경사문(經史門)
공민묘(恭愍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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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恭愍王)은 원(元) 나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에게 장가들었다. 나중에 공주가 죽었을 때 빈전(殯殿)을 설치하고 국장(國葬)으로 장사지냈다. 능(陵)을 만들 때도 불재(佛齋)를 베풀었는데 도감(都監)을 네 명이나 내었고 열 세 고을에는 모두 판사(判事)와 별감(別監)을 설치하여 상사(喪事)를 돕도록 하였다.
모든 기관에 영을 내려 전물(奠物)을 베풀도록 하고 풍성하게 장만한 자와 깨끗이 만든 자에게는 상까지 주었다. 뭇 중[衆僧]을 시켜 염불을 하면서 혼여(魂輿)로 따르도록 하고, 빈전에서 절문 앞에 이르기까지 펄펄 나부끼는 깃발이 하늘을 가렸으며, 또는 비단으로 불우(佛宇)를 덮어 씌우기까지 하였는데 장사 때에 이르러서는 극도로 사치한 제도가 말할 수 없이 굉장하였다.
나중에는 또 영전(影殿)을 세우는데 백관으로 하여금 품계에 따라 역부(役夫)를 내어 나무와 돌을 운반하게 하였는데 수백 사람이 나무 하나를 잡아당겨도 능히 움직일 수 없는 정도였고, 취두산(鷲頭山)처럼 꾸미는 데는 황금 6백 냥과 백금 8백 냥이 들었는데, 그 비용이 이렇게 많았는데도 또 자기의 수릉(壽陵)까지 공주의 능 옆에 만들었다.
이러므로 부고(府庫)가 고갈되고 백성이 살아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고려가 망한 것은 대개 여기에서 연유되었다.”라고 한다. 지금까지 고려의 모든 능이 남아 있는데 그 중 공민왕의 한 능만이 제도가 제일 큰데 고금에 이런 능은 일찍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모두 공민왕이 공주를 위하고 또 자신을 위해서 친히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 애석한 것은 그때 어진 공경(公卿)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일찍이 위징(魏徵)이 헌릉(獻陵)에 대해 간하던 것처럼 이야기한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옛날 주 목왕(周穆王)이 성희(盛姬)를 장사지내고 송 문제(宋文帝)가 은숙비(殷淑妃)를 장사지낼 때 거록(鉅鹿)에서 끼친 냄새라고 일컬었는데 지금도 그런 나쁜 짓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그 영전을 세울 때에 주춧돌의 크기가 집채와 같아서 치여 죽은 자를 셀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원 나라가 망하자 토목공사는 더욱 일어났다. 왕(王)은 원 나라 대목인 원세(元世)를 제주(濟州)로부터 불러들이자 원세 등이 와서 재상(宰相)에게 이르기를, “원 황제(元皇帝)께서 토목공사를 좋아하다가 민심을 잃게 되므로 사해(四海)를 보전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짐작하고 우리 무리를 탐라(耽羅 제주(濟州)의 구호)로 보내 궁실(宮室)을 만들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는 피난하려고 한 계획이었는데 우리들 일이 끝나기도 전에 원 나라가 멸망되었습니다. 원 나라는 그렇게 큰 천하로서도 백성을 괴롭히다가 멸망되었는데, 고려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제공(諸公)은 이 말씀을 왕께 여쭈옵소서.”라고 하였으나 재상은 감히 상주하지 못했다. 저 조정에 가득히 있는 벼슬아치들은 도리어 비천하게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들에게도 미치지 못하고 종묘와 사직이 무너지는 것을 앉아 기다리기만 하였으니, 탄식할 일이다.
[주-D001] 공민묘(恭愍墓) :
고려 제31대의 임금. 이름은 왕전(王顓).
[주-D002] 취두산(鷲頭山) :
인도(印度) 왕사성(王舍城) 동북쪽에 있는 산. 석가(釋迦)가 《법화경 (法華經)》을 설법했다는 곳.
[주-D003] 헌릉(獻陵) :
당 고조(唐高祖)의 능호. 이 말은 《당서(唐書)》 태종기(太宗紀)에 보임.
[주-D004] 주 목왕(周穆王) :
주(周) 나라 제5대의 임금. 이름은 만(滿).
[주-D005] 송 문제(宋文帝) :
남북조(南北朝) 시대 송 나라 임금 유의륭(劉義隆)의 시호.
[주-D006] 거록(鉅鹿) :
거교(鉅橋)와 녹대(鹿臺). 상(商) 나라 끝 임금 주(紂)가 그의 애첩 달기(姐己)와 놀던 곳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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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대전 제148권 / 발(跋)
이 충무공(李忠武公)의 한산 절구(閑山絶句)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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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을이 저무니 / 海國秋光暮
찬서리 내리고 기러기 떼 높이 나네 / 霜寒鴈陣高
시름으로 잠 못 이루는 밤에 / 憂心輾轉夜
으스름달만 활과 칼을 비추누나 / 殘月照弓刀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움직이고 / 誓海魚龍動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아네 / 盟山草木知
나는 매양 악무목(岳武穆)이 장자암(張紫巖 송 나라 장준(張浚))에게 보낸 시를 읽을 적마다 무릎을 치면서 세 번 되풀이하여 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는 그의 충의웅용(忠毅雄勇)이야 진실로 말할 나위도 없지만 문사(文詞)에까지 그처럼 기이(奇異)하고 참신하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이 충무공의 한산 절구를 보니, 천년 이후에도 서로 부합되었다 하겠다. 내가 일찍이 노량비(露梁碑)의 글을 써서 공의 위대한 사적을 대충 기록하였는데, 효종대왕께서 듣고 급히 초본(草本)을 올리게 하여 읽으시고는, 한 문제(漢文帝)의 거록(鉅鹿)을 그리던 뜻이 있으셨다. 지금 공의 현손(玄孫) 홍의(弘毅)가 이 작품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이기에 내가 한 번 읊고 세 번 감탄하면서 능히 손에서 떼지 못하였다. 이어 위연(喟然)히 탄식하기를 ‘효종 임금이 직접 이것을 보셨다면 반드시 더욱 포장(褒奬)하실 것은 물론, 사랑하심이 그 지붕의 까마귀에까지 미쳤을 것이다. 지금 홍의가 권귀(權貴)에게 아부하지 않다가 벼슬을 잃고 실의(失意)에 빠져 있는데, 사람들은 그가 충의(忠義)의 집안 자손임을 알지 못한다. 아, 능히 이를 집정자(執政者)에게 고하는 자가 없을까.’ 하였다.
숭정 기원 후 53년 경신년(1680, 숙종6) 12월 일에 은진 송시열은 쓴다.
[주-D001] 한 문제(漢文帝)의 …… 그리던 뜻 :
문제가 낭중서장(郞中署長) 풍당(馮唐)에게 “이전에 누가 말하기를 ‘옛날 조(趙)의 현장(賢將) 이제(李齊)가 거록(鉅鹿 지명(地名))에서 싸웠다.’ 하기에 지금도 내가 식사할 적마다 그 당시의 거록을 못 잊어 한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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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집 제6권 / 인(引)
이 제독(李提督)을 전송하며 지은 시 병인(幷引) 을미년(1595, 선조28) 12월 7일에 임금의 명에 따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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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가 호랑이 같은 신하를 명하니 / 帝命虎臣
군대를 출동하여 정벌에 나섰도다 / 出師征之
그 누구를 정벌하는가 / 其征伊何
훼복을 입은 오랑캐였도다 / 卉服于夷
그때 훼복을 입은 것들이 / 惟時卉服
우리 조선에 독을 풀어 어지럽혔도다 / 毒亂我鮮
해골이 나뒹굴도록 횡포를 부렸으니 / 暴骨以逞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도다 / 不畏于天
이에 황제가 매우 노하니 / 帝用赫怒
우리 군신을 민망하게 여긴 것이었도다 / 愍我君臣
멸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니 / 興滅繼絶
소국을 사랑하는 인애였도다 / 字小爲仁
황제가 십만의 군대를 동원하니 / 王師十萬
번개와 우레가 친 것 같았도다 / 如霆如雷
벽력이 몰아치듯 밀어붙이니 / 薄言震疊
산을 향하면 산이 꺾이었도다 / 指山山摧
유성처럼 신속하게 평양을 압박하니 / 星壓箕都
적병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도다 / 賊棄城走
단 한 번 싸워서 승리를 거두니 / 一戰而勝
삼경이 우리의 소유가 되었도다 / 三京我有
위풍이 미치는 곳마다 / 威聲所曁
초목도 모두 병사가 되었도다 / 草木皆兵
나라가 없다가 있게 되었으니 / 有國無之
일월이 다시 밝았도다 / 日月重明
그 누가 준 은혜인가 / 伊誰之賜
신성한 천자였도다 / 天子神聖
그 누가 주관하였는가 / 誰其尸之
굳건한 제독이었도다 / 提督執競
천자의 무예를 / 天子之武
오직 제독이 가지었고 / 惟提督是將
천자의 위엄을 / 天子之威
오직 제독이 선양하였도다 / 惟提督是揚
적병을 토벌하여 망한 나라를 존속해 주니 / 耆昧存亡
대업을 달성하였도다 / 以務烈所
고위에 앉아서 분란을 해소하니 / 保大解紛
천자의 군대가 준 것이었도다 / 於鑠厥與
좋은 것 중에 가장 좋으니 / 善之善者
진짜 선비는 대적할 자가 없도다 / 眞儒無敵
가득 찬 것을 유지하고 기울어진 것을 붙잡아 주니 / 持盈定傾
무용이 먼 곳에 있지 않도다 / 武不遠宅
옛날에 남중은 / 昔有南仲
한 달에 세 번 승전하였으나 / 一月三捷
이번에 우리 제독은 / 今我提督
위엄을 보이지 않아도 놀랐도다 / 不威而讋
옛날에 소공은 / 昔有召公
날마다 국토를 백 리씩 개척하였지만 / 日辟百里
지금 우리 제독은 / 今我提督
육지를 다 점령하고 바다까지 이르렀도다 / 盡地而水
용맹스러운 제독은 / 赳赳提督
천자의 발톱과 어금니로다 / 天子爪牙
흉노가 멸망하지 않았으니 / 凶奴未滅
어찌 가정을 꾸릴 수 있겠는가 / 何以爲家
씩씩한 제독은 / 桓桓提督
천자의 방패와 성이로다 / 天子干城
귀순하지 않은 나라를 관리하니 / 幹不庭方
사방으로 출정하였도다 / 四出濯征
부월(斧鉞)을 가지고 서쪽을 정벌하니 / 仗鉞西討
하란에 구름이 한 점도 없도다 / 賀蘭無雲
이어서 동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오니 / 彌節東兵
해동에 요기가 없어졌도다 / 鰈海無氛
어느 하나 아름다운 업적 아닌 것이 없으니 / 莫非嘉績
황제의 마음에 흡족하였도다 / 克厭帝心
임금의 정벌을 내세우니 / 且旌君伐
덕음이 널리 펼치어졌도다 / 式暢德音
굳세고 굳센 제독은 / 矯矯提督
강한의 영기를 타고났도다 / 江漢載英
적군의 살을 씹어 먹고 적군의 살가죽을 깔고 앉으니 / 食肉寢皮
제일 먼저 알려졌도다 / 惟厥先鳴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을 급병처럼 여기니 / 急病讓夷
의리가 뚜렷하였고 / 義乎朅朅
환난을 제거하고 해결하니 / 排患釋難
용맹이 씩씩했도다 / 勇乎仡仡
성대하게 고풍이 있으니 / 蔚有古風
천하의 으뜸이었도다 / 天下之首
장수의 가문에 장수가 나오니 / 將門出將
오직 영원 땅에만 있는 일이도다 / 惟寧遠有
부자간의 미덕을 / 父子之懿
오직 이공(李公)이 빛냈도다 / 惟公緝煕
난형난제의 가운데 / 兄弟之難
오직 이공이 백미였도다 / 惟公白眉
그 공로와 업적이 / 之庸之烈
태상(太常)에 기록되고 종정(鐘鼎)에 새겨졌도다 / 于常于鼎
이번의 큰 공로는 / 今玆雋功
눈 깜짝할 사이에 세운 결정적인 것이었도다 / 一覕肯綮
정말로 이공의 힘을 입으니 / 繄公是賴
동국의 사직이 망하지 않았도다 / 東社不屋
우 임금 덕분에 물고기가 되지 않았으니 / 微禹其魚
우리는 해골이 되었다가 살이 붙었도다 / 我骨於肉
모기 떼를 몰아내니 / 蚊蝱之敺
이처럼 깨졌도다 / 爰破其蝨
그 전공을 이어서 발전하니 / 敷時繹思
사방에 먼 곳이 없었도다 / 無遠四截
바야흐로 마음먹은 대로 되니 / 方將見可
바닷가에서 말에게 물을 먹이게 되었도다 / 飮馬海波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 戎事未畢
하늘이 결국 어떻게 할 것인가 / 天竟如何
군사를 머무르게 할 수 없으니 / 師不可宿
황제가 돌아오라고 하였도다 / 帝曰來歸
영윤이 수레를 되돌리니 / 令尹反轅
네 필의 말이 끝없이 달렸도다 / 四牡騑騑
옛날에 이공이 오실 적에는 / 昔公來思
눈발이 내리는 겨울이었는데 / 玄冥掌雪
지금 공이 떠나실 때는 / 今公去矣
가을철이 되었도다 / 白帝按節
풍백이 길을 열고 / 風伯戒道
우사가 먼지를 청소했도다 / 雨師淸塵
산야를 뚫고 지나가니 / 歕山欱野
병기가 바야흐로 신비했도다 / 有鉥方神
선봉이 머리를 드러내니 / 前驅首路
백기가 펄럭이도다 / 白旆央央
산악이 진압되고 바닷물이 동하니 / 岳鎭海運
군대의 행군이 엄숙했도다 / 肅肅戎行
이공이 금대로 돌아갔으나 / 公歸金臺
이름은 계해에 남았도다 / 名留桂海
천 년토록 찬란히 빛나니 / 舃奕千載
바로 이러하였기 때문이도다 / 是所以乃
놀란 고래가 피를 흘리지 않으니 / 駭鯨不血
칼날에 노기가 남았도다 / 劍有餘怒
활과 화살을 싸 놓으니 / 載櫜弓矢
전쟁을 중지시키는 것이 무용이도다 / 止戈爲武
천자께서 매우 명철하니 / 明明天子
은덕이 널리 베풀어졌도다 / 恩普德洋
천지간 구주(九州)에 / 幬載九有
동방이 안정되었도다 / 帶安東荒
용맹스러운 제독은 / 洸洸提督
성문이 영예롭고 모습이 아름답도다 / 令聞令儀
어진 임금에게 명을 받으니 / 受命于仁
군대를 이끌고 어려움을 구해 주었도다 / 急難于師
아 성스러운 황제의 그 무용은 / 於皇聖武
성실하고도 심원하였도다 / 克塞克淵
오직 이공이 떠받드니 / 曰惟公載
금석에 새길 만하도다 / 可勒可鐫
명성이 찬란하게 빛나니 / 聲名光輝
사관의 붓이 있도다 / 太史有筆
홍비준저에 이르니 / 鴻飛遵渚
나의 노래가 격렬해졌도다 / 我歌激烈
덕암이 꺾이지 않고 / 德巖不摧
패수가 동쪽으로 흐르니 / 浿水東流
서로가 마모되어 없어지도록 / 共相磨滅
총애가 드높을 것이도다 / 卓哉寵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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