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 고구려 정벌 참여하였다가 전사하다

2022. 9. 5. 21:03고대사

권 제47 열전 제7 > 설계두(薛罽頭) >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다()

· 태종의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다

· 때 마침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가 고구려를 친히 정벌하였으므로註 066, 스스로 천거하여 좌무위(左武衛) 과의(果毅)가 되었다. 요동(遼東)에 이르러 고구려인과 주필산(駐蹕山)註 067 아래에서 싸웠는데, [적진] 깊숙이 들어가 민첩하게 싸우다가 죽으니 공(功)이 일등이었다.

 

 

· 註 066

· 문황제는 당 태종의 시호를 약칭한 말이다. 당나라 태종이 645년(보장왕 4년, 貞觀 19년)에 고구려를 침입한 것을 말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86~787쪽).

· 註 067

· 당 태종이 보장왕 4년(645)에 친히 고구려 침략 때에 머물렀던 산이다. 당 태종이 요동성을 함락시킨 후 안시성(安市城)을 공략하려 할 때 원군으로 왔던 고연수(高延壽)·고혜진(高惠眞) 군대를 안시성 동남 8리의 산에서 공략하여 대승을 거두고 그들의 항복을 받았는데, 이때에 태종이 머무른 산을 주필산이라고 칭하였다.(《삼국사기》 권21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조)(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787쪽).

· 卷第四十七 列傳 第七 > 薛罽頭 > 당 태종의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다()

· 태종의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다

· 㑹大校勘 021宗文皇帝親征髙句麗, 自薦爲左武校勘 022衛果毅. 至遼東, 與麗人戰駐蹕山下, 深入疾闘而死, 功一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