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龍山)이틀 밤낮이면 경도(京都)에 도달할 수 있다.

2022. 9. 17. 11:21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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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부 망해루기(南陽府望海樓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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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李穡)

 

남양부(南陽府)는 삼국 시대에는 당성(唐城)이라고 이름하였다. 본조(本朝 고려)에 들어와서 중세 이후로는 익주(益州)로 되었다. 이 고을의 홍씨(洪氏)는 태조가 처음 일어날 때부터 익대공(翼戴功)이 있었으니, 휘(諱)가 은열(殷悅)이라고 하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다. 대대로 거족을 이루었으니, 강도(江都)의 말기에 이르러 남양군(南陽君)이 권신을 베어 죽이고, 정권을 왕실로 도로 돌렸으며 문예부주(文睿府主)를 낳아 양조(兩朝)의 태후가 되었으므로 이 고을을 부(府)로 승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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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흥정기(秋興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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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인(李崇仁)

 

용산(龍山)은 본래부터 산수(山水)를 즐길 수 있는 경치가 있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또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五穀)이 잘 자란다. 강에는 배가 운행하고 육지에는 수레가 통행하여 이틀 밤낮이면 경도(京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 별장을 마련하는 귀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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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정 (喜雨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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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계량(卞季良)

 

세상에서 용산(龍山) 입석리(立石里)에 호수와 산을 즐길 만한 곳이 있다고 일컫는데, 도성(都城)에서 겨우 두어 마장 거리이며 효령군(孝寧君)이 별장을 두었다. 그 뒷편에 언덕이 있는데 둥그스름하고 꿈틀꿈틀하는 듯한 것이 용이 서린 것 같다. 후에 그 언덕 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휴식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