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洛河)는 얼음이 얼면 한달 동안 건널 수 있는 것이 5일도 못됩니다.

2022. 10. 26. 18:41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영조 30년 갑술(1754) 11월 28일(계묘)

30-11-28[05] 금위 대장 구선행이 임진의 형편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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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위 대장 구선행(具善行)이 임진(臨津)에 가서 살피고 돌아와 형편을 아뢰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산성(山城)이라고 일컫기에는 작을 것이다.”
하자, 구선행이 말하기를,
“보(堡)를 만들어야 마땅한데, 임진의 좌우에 돈대(墩臺)를 설치하고 의병(疑兵)을 조금 설치하면 급할 때에 염려가 없겠습니다. 낙하(洛河)는 봄ㆍ여름ㆍ가을 세 철에 다 험준한 나루가 되지만, 얼음이 얼면 한 달 동안 건널 수 있는 것이 5일도 못됩니다. 동파(東坡) 근처는 더욱 저습(低濕)한 땅이어서 발을 딛기 어려운데, 얕은 여울인 곳은 중류(中流)에 돌부리가 들쭉날쭉하므로, 여름에도 걷기가 어려우니, 말은 더욱 건널 수 없습니다. 신이 물가를 따라 장산(長山)에 이르러 형편을 두루 살펴보았더니, 참으로 서로(西路)의 요충(要衝)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이제 토성(土城)을 쌓고 별장(別將)을 두면 좋을 듯한데, 파주(坡州) 사람들은 다 이 곳에 고을을 옮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청석동(靑石洞)을 지나면 지킬 만한 곳이 이 곳뿐이다.”
하였다. 이어서 별장을 두고 돈대와 홍예석문(虹霓石門)을 설치하라고 명하고, 총융사 홍봉한(洪鳳漢)으로 하여금 경략(經略)하게 하였다. 홍봉한이 윤태연(尹泰淵)을 우선 별장으로 차출하여 장공(將功)으로 속죄(贖罪)할 수 있도록 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르고, 또 장산에도 임진의 예에 따라 별장을 두라고 명하였다.
【원전】 43 집 550 면
【분류】 군사(軍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지학(地學)

영조 8년 임자(1732) 윤5월 28일(계축) 아침에는 맑고 저녁에는 흐림

08-윤05-28[14] 시민당에서 우의정 서명균을 인견하는 자리에 좌부승지 서명구 등이 입시하여 궁가의 폐단을 혁파하는 문제, 기우제를 설행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서명균이 아뢰기를,

“해택(海澤 간석지)은 호조의 소관인데 지금은 모두 궁가(宮家)에 소속되어 호조에서는 거의 거둘 것이 없습니다. 갈대가 나는 곳까지도 모두 궁가의 소유물이 되어 그 피해가 점점 확대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지난해에 건지산(乾止山)을 절수받는 일이 막힌 대신 풍덕(豐德), 장단(長湍) 근처의 사복시 소속이던 낙하(洛河)의 둔전(屯田)을 내주었는데, 그곳에서 납부하는 것이 사복시에 납부하던 때보다 배나 되지만 해당 궁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 안 되고 궁차 무리의 주머니만 채울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평지에 있는 전답이 그러하다면 궁벽한 산골의 경우에는 따라서 알 만합니다. 금천(金川)과 송도(松都) 사이에 큰 산이 하나 있어 가까이 사는 백성들이 땔감을 전부 이 산에 의지하고 있는데, 지금은 어의궁(於義宮)의 시장(柴場)이 되어 풀 한 포기도 감히 범하지 못합니다. 이는 모두 궁가의 소득으로는 아주 적은데 그마저도 모두 차인(差人)이 착복하고 마는 터라 백성들로 하여금 나라를 원망하게만 할 뿐입니다. 신이 감히 하루아침에 모두 혁파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성상께 이런 폐단을 다 아시게 하고자 합니다.
 
 

내가 신미년에 파주(坡州)의 별장에 있었는데, 하루는 나의 백형(伯兄 성임(成任))이 어머니를 모시고 진암(珍巖)에 올라갔었다. 바위는 임진강[洛河]을 베개로 삼고 그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데, 그 위에는 백여 명이나 앉을 만하였다. 서쪽은 해문(海門)에 닿아 있고, 북쪽은 송도(松都)와 더불어 서로 마주보아 송악산, 관악산, 성거산(聖居山) 등 여러 산이 마치 지척에 있는 것 같고, 풍경은 잠령(蠶領)보다도 좋았다. 이때 해가 기울어지면서 문득 비가 몰려오고, 무지개가 바위 위에 있는 조그마한 우물에서 강 속으로 들어가니, 빛이 비치는 곳마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노랗게 되고, 비릿한 기(氣)가 있어 사람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으니 참으로 천지의 부기(浮氣)이니, 옛 사람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 백형은 시를 짓기를,

출렁이는 강물은 아득히 허공과 같고 / 江波渺渺水如空
둥둥 뜬 고깃배는 하나하나가 다 같구나 / 泛泛漁舟箇箇同
저물녘 바람 불고 무지개 비 지나더니 / 日暮顚風虹雨過
늦은 무지개가 때마침 떠올라 강동을 끊는구나 / 晩虹時起斷崗東
하였다. 

 고전번역서 > 동국여지지 > 동국여지지 제2권 > 경기 > 최종정보

석벽협(石壁峽) 부 동쪽 25리에 있다. 단수(湍水)의 양쪽 언덕은 푸른데, 협곡의 절벽이 우뚝 솟아 있다. 상류에서 적성(積城)과 연천(漣川)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런 모습이다. 물이 그 가운데를 흐르는데, 마치 물이 흐르는 해자(垓子)의 모습이다. 속칭 장단석벽(長湍石壁)이라고 한다. 허목(許穆)의 〈주행기(舟行記)〉에 “임진나루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강의 언덕이 마치 석벽(石壁)이 서 있는 듯하다. 골짜기 입구에 들어서면 강의 벽이 더욱 높고 가파르며 물은 더욱 푸르고 깨끗하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곳이다. ○ 고려 이제현(李齊賢)의 시에,
강물에 꽂힌 석벽이 솟아 있고 / 揷水雲根聳
허공을 가르는 푸른 벽이 펼쳐 있네 / 橫空黛壁開
물고기와 용이 물결 일으키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 魚龍吹浪轉隅隈
푸른빛은 백 리나 이어졌네 / 百里綠徘佪
하였다. 또 다른 시에,
앙상한 절벽은 천년을 서 있고 / 瘦骨千年立
푸른 뿌리는 백 리에 서려 있네 / 蒼根百里盤
푸른 물결 사이로 가로세로 뻗었으니 / 橫張側展綠波間
일대가 옥을 머금은 험한 절벽이구나 / 一帶玉孱顔
하였다.

임진강 적벽지구 

임진강 적벽은 ▲문산읍 임진리 ▲파평면 율곡리 ▲진동면 동파리 ▲파평면 금파·장파, 적성면 장좌리 ▲적성면 자장리, 주월리, 가월리, 율포·어유지리 등 8개 구간 18㎞에 걸쳐 있다.

UNESCO世界文化遺産探訪(연천)
합수머리꼭지길 ~한반도통일미래센타 ~남계대교~동이대교~임진교~환주

도상거리 : 20.7km
소요 시간 : 5시간 29분
휴식 식사 : 42분 포함

 

숙종 즉위년 갑인(1674) 11월 23일(임오)
“임진강(臨津江)에 적벽(赤壁)이 있어서 상하(上下) 30리 사이는 참으로 천험(天險)입니다. 그 아래 낙하(洛河) 10리 지점에 약간 얼음이 어는 곳이 있고, 낙하의 아래는 바로 큰 바다입니다. 적벽 이상은 대로가 서너 곳에 지나지 않으니, 강원 감사로 하여금 호서(湖西) 충주(忠州)의 군사를 첨가하여 막게 하고, 낙하의 얼음이 어는 곳에는 충청 병사(忠淸兵使)로 하여금 장단 부사(長湍府使)와 함께 하면, 적병은 감히 임진강 이동(以東)의 땅을 넘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영조 30년 갑술(1754)11월 18일(계사)
30-11-18[01] 총융사 홍봉한이 임진의 형편을 아뢰다
총융사 홍봉한(洪鳳漢)이 명을 받고 가서 임진(臨津)의 형편을 살폈는데, 이때에 이르러 돌아와 아뢰기를,
“임진부터 위로 3, 40리는 다 4, 5장(丈)의 적벽(赤壁)이고, 아래도 또한 사방이 막혀서 염려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마는, 내소정(來蘇亭) 근처에 얕은 여울이 있어 옛 장릉(長陵)으로 통하는 길에 막힌 데가 없으므로 이곳이 허술합니다. 내소정의 얕은 여울부터 장산(長山)까지 모두 7리가 되는 곳에 토성(土城)을 쌓아 막고, 인하여 방수 별장(防戍別將)을 두거나 파주(坡州)의 읍치(邑治)를 옮겨 설치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임진 좌우의 석벽(石壁) 사이에 홍예 석문(虹霓石門)을 설치하는 것도 국위(國威)를 견고하게 하는 방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금위 대장 구선행(具善行)에게 명하여 다시 가서 살피게 하였다

소호당시집 1 / ()○정축고(丁丑稿)

임진석벽가〔臨津石壁歌〕

임진강 물 비단같이 밝은데 / 臨津江水明如綺
석벽이 백 리 남짓 둘렀네 / 繚以石壁百餘里
양 쪽엔 들쭉날쭉 서로 다투는 듯하니 / 兩邊犬牙相鬪爭
기이한 변화는 어느 때 그칠까 / 奇譎變化何時已
강물 노래하는 소리 허공에 들고 / 江謳水調聲入空
물총새 맑은 강물 속에 날았다 잠수하네 / 翠曾飛沒明鏡中
뱃사공과 어부는 볼 것 없고 / 舟人漁子看不足
시 짓는 객과 늙은이 시가 좋지 않네 / 詞客騷翁吟未工
임단의 부사 문채가 성대하니 / 臨湍使君盛文采
관직 낮지만 유독 강산에 의지하네 / 官卑獨賴江山在
삼 년 동안 정치 이루었으나 아직 돌아가지 못해 / 三年政成猶未歸
홀연히 가을바람에 먼 바다 생각하였네 / 忽遇秋風思遠海
사령(使令)편에 편지 보내 나를 초대하기에 / 健步走書招我來
배에 오르니 의기가 긴 돛대 능가하네 / 登舟意氣凌長

하늘가 나무 끝엔 우계의 집이요 / 天際樹出牛溪宅
안개 속 음악 소리 울리는 곳 강평의 누대일세 / 烟中樂動康平臺

강평(康平) 바로 이율곡(李栗谷) 선조 강평공(康平公)이다.

바람 고요하고 물결 잠잠하니 가다가 그치고 / 風恬浪靜行且歇
골짜기 깊어 벼랑이 얽혔으니 보였다 안보였다 / 峽深崖纏出復沒
좌우로 노 저으며 풍광을 찾고 / 
搜風
눈과 마음으로 감상하며 알뜰히 보려 하네 / 目謀心賞爭毫髮
갑자기 한바탕 소나기 지나가니 / 忽然一陣白雨橫
쏴하게 사방에 갈대 소리 생겨나네 / 颼颼散作菰蒲聲
아마도 하늘이 사람의 마음 알아 / 無乃天公識人意
일부러 한 번 강산을 씻어 맑게 한 것인가 / 故敎一洗江山淸
뱃노래 한 가락에 밝은 달 떠오를 제 / 漁歌一聲明月出
검은 구름 푸르게 변하고 바람은 소슬하네 / 黑雲化碧風蕭瑟
점점이 반짝이던 별들 은하수에 빠져들고 / 紅星點點沒銀河
넘실거리는 강물에 교실이 비치네 / 積水溶溶鑑蛟室
달이 강 가운데 이르러 한참 서성이는데 / 月到江心大彷徨
서성이며 떠나지 않으니 즐거움 끝이 없네 / 彷徨不去歡未央
십주와 삼도 다시 어디인가 / 十洲三島復何處
아득히 푸른 연무만 보겠네 / 但見烟霧蒼茫茫
인생이 이와 같이 참으로 뜻을 얻으면 / 人生如此眞得意
어찌 공명 때문에 스스로 초췌하랴 / 安用功名自憔悴
또 역옹의 팔경시 읊고 / 且咏櫟翁八景詩

역옹(櫟翁) 이익재(李益齋) 별칭이다. 팔경시 중에 〈장단석벽(長湍石壁)〉이 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모랫가에서 신 장군을 조문하지 말라 / 沙邊莫吊申家帥

선조(宣祖) 임진년(1592) 신할() 일본군과 임진(臨津)에서 싸우다 패하여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