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8. 07:52ㆍ이성계의 명조선
유방집(遺芳集) 독립운동가 82인의 열전 / 열전 2
최익현전〔崔益鉉〕
[DCI]ITKC_BT_1543A_0010_030_0010_2020_001_XML DCI복사 URL복사
공의 이름은 익현(益鉉, 1833~1906)이고, 자는 찬겸(贊謙)이며, 호는 면암(勉庵)이다. 포천(抱川) 사람이며, 아버지는 최대(崔岱)이다. 공은 을묘년(1855, 철종6)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에 나아간 이후로 세 번 간언을 올려 두 번 귀양을 갔는데, 명예와 절의가 더욱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국가의 원로이자 유림의 태두(泰斗)라 일컬었으며, 문도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
우리나라는 고려 이래로 강토가 날로 줄어들었으나 나라의 세 가지 보배는 우리가 스스로 주인이 되었다. 정병(精兵)은 백만이 넘었고 재화는 창고에 넘쳤으며, 백성은 풍요롭고 인구는 늘어났다. 옛날 고구려 때에는 서쪽으로 수(隋)나라와 당(唐)나라의 웅걸(雄傑)을 꺾어 버렸고,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북쪽으로 원 세조(元世祖)를 꺾어 버렸으니 여덟 번이나 군사를 일으켰는데도 이에 대항하였다. 우리 조선이 개국하고서는 왜구가 자주 침범하였으나 그들은 번번이 패하여 한번 무너진 뒤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고, 임진년의 일은 밖으로 명나라 군대의 도움을 받았으나 안으로 거국적인 용맹을 결집하여 끝내 노량(露梁)에서 원수를 섬멸하였다.
이를 통해 살펴볼 때에, 우리나라가 비록 작지만 인민들이 국가를 지키려는 용기는 참으로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최근 문치(文治)를 펼친 끝에 백성들의 기상이 시들어 진작되지 못하고 또 대세를 통찰하지 못하였는데, 세상의 형세를 통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큰 변혁이 목전에 닥쳐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반드시 죽을 형세임을 안다면 살 방도가 그 안에 있을 것이지만, 반드시 죽을 이치를 알지 못하고 구차히 살기만을 요행히 바라기 때문에 끝내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반드시 죽을 형세가 이미 이와 같으니, 혹시라도 살 방도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오직 각자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각자 마음을 굳게 먹고서 자신보다 나라를 더 사랑하고, 죽음보다 남의 하인 되는 것을 더 싫어하여 만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거의 죽을 지경에서 살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성계의 명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조는 왕원수(王元帥) 주원장 이하 백여 명의 목을 베어 왕께 바쳤다. (1) | 2022.10.22 |
---|---|
홍라산 순제가 우리 고황제에게 나라를 양보했다지 (0) | 2022.10.19 |
천자께서 갸륵히 여겨 특히 봉호내리시니 / 帝嘉匡復特勞賜 (0) | 2022.10.12 |
고가노(高家奴)가 군사 4만을 이끌고 강계(江界)에 와서 투항하였다. (1) | 2022.10.11 |
일찍이 폐하를 탈탈(脫脫)의 군중에서 뵈었습니다.” (0) | 202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