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차지한 땅이 중국보다 넓었는가?”

2022. 9. 14. 00:27고대사

승정원일기 > 인조 > 인조 7년 기사 > 8월 7일

고구려가 차지한 땅이 중국보다 넓었는가?” 하니, 홍서봉이 - 3, 4자 원문 빠짐 - 땅이 넓었던 것 같습니다. 삼차하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 여순구(旅順口)인데 - 5, 6자 원문 빠짐 - 성(城)이 그 경내에 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하고, 남이공이 아뢰기를, “안시성(安市城) - 3, 4자 원문 빠짐 -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양만춘(楊萬春)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 3, 4자 원문 빠짐 -” 하였다. 홍서봉이 아뢰기를, “고구려가 요동(遼東) 지방을 소유하여 삼국(三國) 가운데 - 3, 4자 원문 빠짐 - 수(隨)나라와 당(唐)나라가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 땅은 평원이 광활하여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지형이 이와 같기 때문에 씩씩하고 호방한 사람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고구려의 역사에서 연개소문(淵蓋蘇文)이라고 일컫는 자는 비록 찬역(簒逆)한 도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수가 없는 효웅(梟雄)입니다.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군신(群臣)들과 당세의 웅걸(雄傑)을 논하였는데연개소문이 7인 가운데에 끼었으니, 그 인물이 어떠한지 상상이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연개소문의 재주는 조조(曹操)에 뒤지지 않을 듯하다. 지금 노적(奴賊)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 모두 - 1자 원문 빠짐 - 의 땅인가?” 하자, 홍서봉이 아뢰기를, “삼차하 이동이 모두 저들 차지가 되었는데 이 지역은 모두 고구려가 소유했던 땅입니다.” 하고, - 2자 원문 빠짐 - “우리나라의 문헌이 중국만 못하여 안시성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고 그 성주(城主)가 누구인지는 더더욱 알 수가 없습니다. 서책이 잔결되어 기록이 전해지지 못한 까닭에 당시 성을 지켰던 자로 하여금 - 3, 4자 원문 빠짐 - 일국의 충의롭고 호걸스런 영웅의 이름이 민멸되어 전하지 않으니, 그 통탄스러움을 - 3, 4자 원문 빠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