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4. 00:32ㆍ고대사
잡지명 | 개벽 제15호 |
발행일 | 1921년 09월 01일 |
기사제목 | 抑鬱한 朝鮮 氏族의 假托的 家乘 |
필자 | 局子街 朴埜 |
기사형태 | 논설 |
抑鬱한 朝鮮 氏族의 假托的 家乘
局子街 朴埜
一
「나폴레온」(Napoleon)의 軍畧主義는「삐쓰막」(Bismak)의 氏族主義를 喚起케 하야「쭈톤人種」으로 하야곰 統一强覇의 業을 이루게 하얏스며 그 影響은 다시 意大利로 하야곰 十一小邦을 合하야 墺支利의 譎計로도 어찌 할 餘地가 업게 하얏다. 此에 反하야 英, 美, 俄 等과 如함은 各其 異民族을 統合하얏슴에 不拘하고 오히려 現像을 維持하얏도다.
아-이제 進化的 世界狀態-日新又日新함에 딸아 氏族主義와 如함은 벌서 過度時代의 遺物로 되어 가것다. 그리하야 本題에 對한 나의 區區한 辯論은 實로 過度時代의 遺物인 氏族主義 그를 爲하야 呶呶함이 아니오 다만 已陳的 芻狗이나마 事實은 事實대로 알어야 하리라는 自覺下에서 하두 抑鬱하던 事實이니까 오즉 그를 爲하야 彼蒼에 呼訴하는 一例로 橫說竪說함에 不過하다.
아-우리 朝鮮 氏族의 各家乘을 閱하건대 朝鮮 氏族되기는 果然 抑鬱한 일이엇다. 朝鮮은 바로 不毛之地인 듯이 朴, 昔, 金, 高, 夫, 梁 등 姓의 一部分을 除外하면 朝鮮的 土産은 幾無하고 曰金 曰李로 某氏 某姓이 그 祖上은 다 멀리 中國으로서 東出朝鮮이라 하얏다. 또 거의, 나, 다 中國의 어느 太師로서 得罪하고 東出朝鮮이다. 殷太師 箕胥餘가 亡命하야 東出朝鮮이라니까 그 餘風으로 그럼인지 或은 그 國末에 難을 逃하야 멀리 東出朝鮮이라 하얏슴도 不無하다. 그리하야「끄레시얌(Glasbiyam)」法則 貨幣論과 가티 朝鮮 山河는, 저 亡命的 不充分한 人物들이 淵藪를 이루어 複本位를 占領하는 바람에 原始時代부터 有名한 神市氏의 子孫 東方的 特産인 大人君子들은 돌이어 驅逐的 海外輸出이 됨인지 이제 名姓의 家乘首編을 占領한 者들은 太半이 主人非로 매우 抑鬱하게 되엇다. 그러나 <86>그 子孫인 분들은 言必稱某太師公東出朝鮮後第幾世임을 자랑거리로 하야 朝鮮的 土姓인 그네는 돌이어 思하되 남들은 다 祖上이 大國人인데 하고는 自己의 그러치 못함을 大段한 不幸으로 아는 분도 잇다.
아-記者도 一般이, 다-不幸으로 아는 土姓인 朴으로 氏하얏다. 그러나 中國人의 直系는 못될 지언정 그 外孫임은 넉넉히 証明할만하다. 家乘을 據하건대 始祖인 赫居世는 神的 表現 即 倍達한 배式으로 降生한 듯한데 그 妣閼英은 漢의 公主로서 謫降하얏슴을 一種 神話的으로 거의 矛盾업시 記하얏다. 어찌 하얏던지 直系는 못되나마 單純한 土産的이 아닌 것만도 幸이 아닐가 아-그 그러할 것일가 어찌 그 그러할 것일가. 이것이 歷史上 事實이 許치 아니하는 바이며 原則上 公理가 認치 아니하는 바이다. 大抵 地球의 南北極과 가티 不毛之地가 아니것다. 原始的 生民이 不無하얏슬 것은 進化的 原則으로 宇宙定義임을 알 것이며 太白山(天山)을 中心으로 하고 桓(한울)이라는 樂世界를 開拓하얏던 神市氏의 生活은 歷史가 이를 証明한다.
二
아-우리는 歷史上 果然 原始的 生民이엇다. 또 原則上 斷乎 東方的 産物일지니라. 漢學者의 말과 가티 東은 生氣之方이라 五行으로는 木에 屬하고 四端으로는 仁에 屬하야 그 人이 仁하고 그 物이 始하얏다 함이 바이 無理한 말은 아니엇다. 이제 漢人이 神禹의 功蹟이라 하야 가장 信하는 山海經과 及其他可考의 書類로 叅照하야 보면 그 東方에 對한 推測은 넘우 迷信的 夢想的이며 그 吾族에 對한 稱道는 넘우 畏敬的 愛慕的이다. 山海經(大荒東經)東海의 外, 大荒의 中, 波谷山이란 別天地와 如한 곳에는 大人의 國, 大人의 市, 大人의 堂이엇는데 大人들이 그에 잇다 하얏다. 아-그 어찌 사람이랴. 비록 昆蟲微物까지도 다 神異한 것으로 記하얏다.(大荒北經) 大荒中, 不咸山엔 肅愼氏의 國이 잇서 그 大人들은 黍를 食하며 또 琴蟲이엇는데 그 首는 獸와 如하고 身은 蛇와 如하다 하얏다. 海外東經과 如함은 *丘의 北에 大人國이 잇스며 그 北에 君子國이 잇다 하야 곳 다만 事實的 觀察대로 그 大人임을 喩하되 大人國 사람들이 坐而削船한다 하니 그 軀榦의 碩大함과 또 그 技術上 造船術에 最長임을 알 것이며 그 君子임을 喩하되 君子國 사람들이 衣冠帶劒하고 好讓不爭한다 하니 그 儀表의 凜然함과 또 그 學術上 擊劒術도 可能임을 알 것이다. 그리하야 그 大人君子의 風이 잇슴과 가티 武士道上의 活躍的 精神과 雄飛的 氣像이 잇서 恒常 兩個 虎로 左右에 驅使한다 하며<87> 또 朝生夕死하는 薰華草도 잇슴을 云하얏다. 晉郭璞은 彼所謂 有名한 術數的 知識家가 아닌가. 그 述한 讚文은 東方이 氣仁하니 國有君子하야 薰華를 食하며 彫虎를 使하며 禮로써 서로 讓하며 理로써 서로 論한다고 推理的 引證的으로 그 地方的 風氣, 國家的 人物, 衛生的 狀態, 尙武的 精神, 交際的 儀容 平和的 氣像을 彷似하게 描寫하얏다. 漢東方朔은 彼所謂 有名한 經驗的 知識家가 아닌가. 그 著한 神異經은 東方人이 男은 縞帶玄冠하고 女는 錦衣綵裳하야 서로 恭하야 不犯하며 서로 譽하야 不毁하며 見人之患하고 死로써 相救하니 倉卒見하면 痴如愚如하나 其實은 善人이라고 具軆的 實際的으로 그 美한 制度, 正한 道德, 厚한 風俗을 充分하게 發揮하얏다. 彼考據家로 有名한 許愼의 說文과 如함은 그 夷字解에 夷는 東方人이니 從大從弓이라 하야 天大地大한데 오즉 東方人이 더불어 大함과 또 그 弓矢의 術 즉 武藝에 長함을 說明하얏스며 羌字解에 四方諸民族 가운대 오즉 東方人이 사람다움을 論하고 그 風俗이 仁하니 仁者-必得其壽故로 君子不死의 國이 잇슴을 証明하얏스며 그 鳳字解에 鳳은 神鳥인데 東方君子國에 出하야 四海의 外에 翶翔할새 崑侖을 過하야 砥柱에 飮하고 羽를 弱水에 濯하고 風穴에 宿하는데 天下安寧이 是鳥一見에 잇다 하얏다. 그리하야 孔子의 聖德으로도 오히려 鳳兮鳳兮何德之衰라는 評을 들으섯다. 아-果然 그러하다. 이제 黃海記異를 보면 黃帝氏-東方君子國으로부터 含來한 鳳圖를 拜受하야 文字를 創制하야 書契를 作成하얏다 하니이-中華萬歲의 文明事業은 總히 東方의 一神鳥-그 指針을 定하얏스며 運路를 開하얏나니 史記에 有鳳瑞故로 以鳥로 記官이라 함은 實로 이를 이름이엇다. 그리하야 東方的 産物은 비록 一禽一蟲과 一草一木일지라도 다 그 崇拜를 바닷더니라. 神禽은 彼의 百王을 敎하고 琴蟲은 能히 五音을 解하며 木槿(薰華)과 또 不老草는 다 千古著名한 神物이엇다. 秦皇漢武의 英雄으로도 或은 不老草를 먹으려고 或은 海上神仙을 마즈려고 方士도 보내며 祈天禱神도 하얏다. 方丈瀛洲는 滄海가 즈음처서 方士의 舟가 一去不復返하고 蓬萊仙子는 雲山이 寂寂하야 消息이 茫然하다. 마츰 그 所願을 未就하고 멀리 海上을 바라보면서 永世不歸의 客이 되엇스니 그네의 怨魂이야말로 千載如今에 滄海水上에서 舟子를 부로 지저 方士無情함과 神仙의 虛誕함을 꾸짓고 뉘우치면서 彷徨하지 아니할 것일가.
三
아-우리는 다만 어찌 그들에게 崇拜만 바닷슬 뿐이랴.<88> 或은 彼를 造生하기도 하고 或은 彼를 敎化하기도 하고 또 能히 征服하기도 하얏다. 漢劉安의 著한 淮南子 墜形訓과 山海經에 雜出한 바로 叅照하야 보면 帝俊(帝嚳高辛氏)과 帝顓(顓頊高陽氏)은 分明한 東夷人이다. 此에 准하야 그 子孫인 唐堯虞舜도 摠히 그러할 것이니 孟子曰 舜은 東夷之人이라 함이 어찌 無根據非事實로 否認할 말슴이랴. 또 어찌 俊, 顓, 堯, 舜뿐이랴. 이제 漢族 全部는 다 黃帝子孫임을 冒稱하것다. 史記 黃帝本紀를 據하건대 黃帝-出自崑崙하야 師兵으로써 營衛하고 中原의 北方에 入하얏다 하얏나니 當時 中原은 有苗氏의 領地-라. 그 君長인 蚩尤-軒轅氏의 率衆以來함이 主權領土의 侵略임을 怒하야 遂히 鹿의 野에 震天動地의 一大 氏族戰爭을 開始하기에 至하얏다. 그리하야 結局, 蚩尤-戰死함에 미처 中原山河는 軒轅氏의 所有로 되어 客反爲主의 一現像을 演成하얏다. 自是厥後로 唐虞의 世에 至하기까지 九黎亂德이라거니 三苗不服이라거니 하야 武畧으로 强制的 命令도 시켜 보앗스며 文德으로 感化的 手段도 부려 보앗다. 이는 一朝에 異民族의 侵畧으로 父母國을 亡하고 돌이어 驅逐을 밧는 苗族의 主權領土的 奮鬪이니 强力의 下에 오히려 決心이 鞏固하야 限死코 不服함이엇다. 이로써 보면 崑崙의 外로부터 中原에 入한 軒轅의 무리-또 어찌 東夷人이 아님을 알 것일가. 史記와 가티 黃帝子孫인 虞舜이 東夷人임은 孟軻氏의 말슴이 千古鐵案이엇다. 孔子-書를 著함에 斷自唐虞하얏슴으로 漢族은 대개 黃帝氏로 造生之祖임을 信하고 唐堯虞舜氏로 敎化之主임을 信하것다. 大抵 孔子와 如함은 大同主義를 爲하야 그 一生을 犧牲한지라. 그 知我罪我의 絶對自信으로 述作한 一部春秋는 오즉 文野로써 褒貶을 主張하얏고 氏族主義와 如함은 頗히 不知함과 如하니 世界를 一家로 하고 中國을 一人으로 하야 家天下人萬國的 大共和主義下에서 어찌 東夷人 中國族의 小區別이 그 心目中에 잇섯스랴. 그리하야 大連小連은 東夷人이라. 孔子-그 君子임을 稱하고 伯夷叔齊는 東夷人이라. 孟子-그 淸聖임을 論하야 다 足히 彼의 百世師-되엇다. 易繫辭에 曰帝-出乎震이라고 東亞大震方인 白山黑水의 間에 理想的 天堂과 如한 事實的 天國이엇던 桓族의 原始的 活躍雄飛는 實로 可驚可畏하며 可敬可愛하도다. 天河(松花江)의 流를 딸아 東北進한 者는 鮮卑, 蒙古로 이름하기도 하고 天山(白頭山)의 脉을 딸아 東南下한 者는 新羅, 高麗로 나타나기도 하며 西北으로 崑崙을 踰하기도 하며 西南으로 滄海를 渡하기도 하얏다. 이제 歐人은 漢族으로 出自蒙古라 하나니 그는 崑崙을 踰하야 北方에 侵入한 軒轅의 무리를 誤解함이 아닌가. 저 墨西哥의<89> 人種은 西伯利로부터 遠徙入美하얏나니 西伯利는 古鮮卑氏의 原住地라. 이와 가티 桓人의 原始時代에 在한 連路開拓은 實로 世界的이오 局部的이 아니다. 더욱 漢土에 對한 經畧은 大陸을 連하야 航海의 苦가 업슴으로 가장 그 第一步를 試하얏던 것이엇다. 그리하야 彼 春秋戰國 時에 至하기까지 能히 列國의 間에 雄峙하야 聯盟의 列에 一椅子를 不失하고 奄, 牟, 介, 萊, 莒, 蒲姑 等 同族으로 더불어 自家顔色을 不變하야 自立的 精神을 磨勵한 者는 곳 徐族인데 그들은 벌서 殷末周初부터 淮垈의 間을 根據하고 國家的 活動을 始作하야 周家 八百年 동안의 君臣上下로 寧日이 無케 하얏스며 또 그 滿夷猾夏의 滄桑大變이라고 怨痛을 부르게 하던 遼, 金, 愛親氏의 大陸的 經略은 그 武士道上의 男兒的 行動이, 다 足히 一時를 靡然케 하얏다. 그러나 그들은 漸次 歲序의 遷易함을 딸아 돌이어 彼의 學術的 方面으로 精神上 催眠을 바다서 畢竟은 漢族化하야 東方的 自家面目은 바이 업서지고 可憐한 投托的 黃帝子孫이 되고 말엇다.
四
아-이것이 우리 朝鮮 氏族을 그르친 原因이다. 아-이것이 우리 朝鮮 氏族의 史乘을 그르침이다. 아 아 이것이 우리 朝鮮 氏族의 온갓 것을 모다 그르침이다. 黃帝氏에게 圖書를 含授한 東方産인 神鳳은 이제 그 惡結果를 生하얏다. 大抵 우리 朝鮮 氏族의 漢文化 輸入은 아마 殷太師箕胥餘의 歸化 以前인 듯한데 伊來 數千年 동안에 文學的 모든 方面으로 知識交換上 美點은 不無하다. 可謂하겟지만 全軆 氏族의 精神上 駸駸然하게 그 酷催眠에 걸리어서 損害가 利益보다 反比例임은 事實上 隱諱치 못할 抑鬱한 處地이엇다. 아-이제 우리 氏族은 甚至 言語까지도 漢文字의 代表的 名詞를 除外하면 純國語的 通用은 거의 不能이다. 全氏族 團軆의 代表的 名詞인 國號로부터 個人의 氏名과 及 其他 事物 등 名詞까지 모다 漢字로 譯用한 結果, 朝鮮的 活用名詞는 全部 撤銷忘却되고 漢式으로 一變하야 마치 遼, 元, 金, 淸人의 漢譯한 複式氏名이 漸次 純用漢式이 됨과 가티 그 姓을 姜이라 하면 炎帝後 그 姓을 陳이라 하면 舜帝後 그 姓을 劉-라 하면 漢後로 假托하야 百家의 姓이다. 그 帝王公侯 及其他 榮貴者의 後가 아님이 업시 훌륭하게 幻父易祖하야 個人은 子孫의 道로 彼에 孝하고 國家는 臣妾의 禮로 彼에 忠하기에까지 이르럿다. 이는 勿論 積來한 末弊이지만 摠히 高麗 以後의 事-다. 專制的 儒敎의 實行은 全軆 氏族의 心理發達을 制限하야 그 이른바 以小事大는 天經地義로 解하고 用夏變夷는 鬼訓神誥로 信야<90> 尊中華攘夷狄은 春秋的 大義라는 問題下에서 聖宋大明을 爲하야 胡元蠻淸을 斥하노라고 敢히 幾多의 犧牲도 貢獻하얏스며 反히 幾多의 蹂躪도 招致하야 歷史上 江漢을 傾하야 濯하고 秋陽을 借하야 曝할지라도 能히 沒痕跡의 快를 엇지 못할 絶對의 羞恥를 自作하얏다. 孟子-曰 無恥之恥一면 無恥矣라 하얏거늘 所謂 文人學者輩들은 有恥不恥하야 尙今 書札往覆에까지도 오히려 崇禎年月을 書하고는 大明遺民으로 自處하야 純坤的 世界에 一線陽脉이 自己身上에 잇슴을 自負하면서 易曰 其亡其亡이라가 係于苞桑이니까 陽無可盡이지 하고서는 아모 때라도 中原에 大明이 回復하여야 한다는 最後宣言을 發하것다. 그리하야 그들은 意外의 狂風만 불어도 中原의 兵聲인가 空間의 隕石만 보아도 大明의 先候인가 하야 混沌的 世界에 醉生夢死的 殘喘을 扶維하면서도 오리려 大道의 要나 깨다른 듯이 高臥淸風하야 自謂 羲皇上世人이라는 等 句로 心理上 慰安을 어더 時日을 消遺함은 실로 幾百年 積幣의 餘毒이오 一朝一夕의 故-아니엇다.
五
아-原始時代에 在하야서도 오히려 한울로 自處하야 거의 世界人種之母가 되는 神市氏의 後로서 그 世遠人亡함에 미처 大人君子의 東方的 氣像을 全喪하고 投托的 沒軆面의 畜生化할 줄을 誰知하얏스리오. 아아 이제 또 漢族 中에서 滿蒙回藏族의 投托的 假漢을 除外하고 보라. 實로 幾多眞漢을 發見할 수 업슬 것이엇다. 다만 五季史誌에 傳한 것으로만 畧하야 볼지라도 諸胡-拓拔과 如함은 長孫氏로 乙旃은 叔孫氏로 素黎는 黎氏로 獨孤는 劉氏로 步六孤는 陸氏로 勿忸于는 于氏로 拔列은 梁氏로 叱羅는 羅氏로 疏屬車焜은 車氏로 胡古口引은 候氏로 若口引은 寇氏로 俟力伐은 鮑氏로 貿葛은 葛氏로 賀拔은 何氏로 吐伏廬는 廬氏로 出大汗은 韓氏로 叱呂는 呂氏로 是樓는 高氏로 唱石蘭은 石氏로 候莫陳은 陳氏로 丘林은 林氏로 庫狄은 狄氏로 破多羅는 潘氏로 獨孤渾은 杜氏로 改하야 마치 曹操-閹人의 養子로 曹參의 後임을 假托하며 李世民이 匈奴의 後로 李陵에게 假托함과 가티 漢式的 投托法을 襲用하얏나니 이로써 追想하면 五帝三王의 遙遙華胄임을 자랑하는 그네야 더욱 抑鬱치 아니할가. 저만 사람이고는 다 戎이 아니면 狄이오 匈奴가 아니면 冒頓이라고 貶稱하던 漢族 그네야말로 이제 匈奴冒頓의 雜亂치 아니한 者-幾希하도다. 그러나 그네는 古來부터 許多한 螟蛉的 假養으로 成家한 분네니까 또는 自尊的 特性이 잇는 분네니까 黃河流域과 崑崙山麓의 全軆貓額大에 不過한 것으로써도 바로 宇宙 全部인 듯이 天地中間인 듯이 言必稱 中原이 如何하거니 天下가 如何하거니 또는 四海之內라거니 하야 敵에게 公主를 嫁하야 和親을 乞하고서도 必曰 四夷賓服이라 하며 寶幣를 與하야 好誼를 求하고서도 必曰蠻夷來王이라 하야 오히려 能히 今日의 現像을 維持하얏거니와 彼滿蒙回藏族과 如함은 그 投托的 生活이 어찌 可哀치 아니한가. 假使滿蒙回藏族의 漢氏에 投托한 者로 그 어떠한 自覺下에서 各自의 家乘을 考査하야 본다 하면 實로 同余의 感이 업지 못할 것이엇다.
아-記者-本題에 대한 區區한 辯論은 그 本意가 劈頭에 先述함과 如하거니와 漢氏를 爲하야는 英, 美, 俄 等과 가티 氏族主義와 如함은 沉黙을 지킴이 可하다 하노라.<91>
<86-91>
동광 제7호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잡지명 | 동광 제7호 |
발행일 | |
기사제목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
필자 | 權悳奎 |
기사형태 | 논설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權悳奎
조선사람은 점잔흔 사람이다. 그러함으로 君子라는 이름이 잇다. 착한 사람이다. 그러함으로 善人이란 일컬음이 잇다. 착하되 얼마나 착하던고 하니 늘 恭遜히 굴허안저 서로 닥들이는 일이 업스며 늘 기리어 일컷는 일은 잇스되 서로 휘뿌리어 欠談하는 일은 업섯다. 늘 조심하며 늘 빙글에 웃어서 얼른 보기에 어리석게 보이엇다. 이만콤 착하고 점잔흔 사람인 까닭에 물러가 직히는 일은 잇스되 나아가 빼앗는 일은 업섯다. 그러함으로 나라에 利가 되리만한 큰 사건이 잇스되 제 마음에 털끗만치 부끄럼이 잇서도 거짓말한 법이 업섯다. 이것이 조션 사람의 心性이다.
이러한 조선사람이매 남(支那人)들이 너이는 오랑캐니라 하고 이름을 지어도 속으론 어떠햇던지 거트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엿고 너이들이 우리에게 한번도 지지안흔 일이 업다. 꼬박꼬박 졋느니라 하여도 따로안자 코ㅅ방귀 뀌는 말이 잇나 하엿다. 그리다가 겻고 트는 바람에 한 번 념겨박이고 『滅朝鮮 置四郡』이란 文字도 쓰이고 『合韓國 稱朝鮮』이란 句節도 박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記事 이상의 엄청난 恥辱도 當한 것이요 歷史以外의 긔막히는 기록도 소유한 것이다. 이러한 조선사람이며 그야말로 生後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업슬뿐 아니라 남의 거짓까지 밋게 되엇다. 조션사람은 글ㅅ자나 하는 것이 돌이어 탈이어서 漢書籍 끄트머리를 한울가티 밋고 日學者 주둥이를 어미가티 딸아서 거짓말할 줄 모르던 저의 祖上의 遺訓이 돌이어 거짓이 되고 엇그제까지 지키던 美風善俗을 훌부심하여 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야 目前에 보는 것이다. 조션놈의 내 말이기로서니 엇지 못할 거짓말이라고 하랴.
江華에 居巢里가 잇스니 이것을 范增의 시골이라 하고 海州에 孤竹郡 古趾가 잇스니 이것을 夷齊의 나라라 하며 洪州의 田橫島를 가리처 橫이 일쯕이 여긔에 멈을럿다 하고 泰安의 賈誼島를 가리처 誼가 압서 이에 귀양살이 하엿다 한다. 이것은 다 무식한 사람의 일업시 지어낸 말이어니와 薛仁貴에게 淵蓋蘇文이가 小人을 개 바쳣다는 말이 정말이 되겟느냐. 蘇定方이가 金庾信 아페 굴어업디어 발발 떨던 것이 거짓말이 되겟느냐. 神功皇后의 征韓하엿다는 野說을 미드며 儒禮尼師今의 白馬塚 事實을 부인해야 可하랴. 어찌하여 조션이 自來로 남에게 부속되지 안흔 적이 업다는 것은 캐는 양반들이 支那史가 말끔 異民族이 들어가 漢民族을 統治한 역사인 것은 문제삼지 안는고. 이것이 오직 조선 사람의 하는 것이요 조션 사람의 붓끗이요 말머리다.
日本은 別問題로 하고 東洋에 잇서 支那는 果然 큰 나라요 역사잇는 나라다. 그러나 그 역사 첫머리를 펼 적에 과연 남부끄럽지 안흘만한 始祖가 잇느냐 하면 참으로 어더낼 수가 업다. 그러나 조선 역사는 어떠하냐 첨으로부터 天降을<91> 밋는 고상한 이상을 가진 족속으로 天, 神, 人 삼위일체인 檀君을 밧들엇다. 그리하여 역대의 建國帝王이 내가 檀君이로라 하지 안흐면 檀君의 아들이로라고라도 하엿다. 檀君을 아무리 부인하여 말살하려하는 패라도 夫餘의 존재는 인정치 안흘 수 업슬 것이요. 扶餘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면 解慕漱, 解夫婁, 高朱蒙이 모도 檀君 혹 檀君子라 한 文句를 塗削하지 못할찌니 이런 문제는 문제될 까닭도 업는 것이다.
대체 조션민족은 상고로부터 썩 文化하엿다. 武의 방면으로 보더라도 支那族이 아직 黃河沿岸에 엉겨붓기 전에 조션 민족은 벌서 鳥列河(遼水) 이쪽으로부터 西으로 渤海 西北岸을 거처 다시 黃河, 泰山 以南으로 大江 以北 支那 內地로 몰려들엇다. 이때는 定히 斷自唐堯라 하는 堯의 시대엿다. 조션 사람은 太古로부터 동양 사람으로 天下의 大本이라하는 농업을 힘썻다. 그리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條目에도 主穀이 첫째이엇다. 곡식을 主張함으로 농작에 大關되는 天候를 엿보지 안흘 수 업섯다. 그리하여 天文에 대단히 능하엿다. 그럼으로 堯라는 님검도 天文을 夷人에게 물은 痕跡이 잇다. 조선 사람은 과연 그 이전 알기 쉽게 그때부터 미리 天候를 보아 年歲의 豊險을 료량하도록 天文學에 長하엿다. 그 뿐 아니라 政治의 어려움을 夷人에게 뭇게 되엇다. 그야말로 舜이란 사람은 東夷 곳 조선사람으로 堯의 請에 塵하여 그 政事를 껴들게 되엇다. 舜이란 사람도 天下를 두려는 상각이 귀를 씻으리만큼 淸白하지는 못하엿다. 마침내 堯를 廢하고 그 자리를 앗게 되엇다. 堯가 舜에게 가첫다는 이야기가 이러한 소식을 傳함이다. 舜이 東夷 곳 조선사람인 것은 先儒들의 말이 一致한 바이어니와 舜이란 그 稱號조차 과연 朝鮮的이다. 조선에는 自來 무궁화가 만핫다. 그리하여 槿域이라고까지 일컷는다. 꼿을 보고 누가 조타아니하더냐. 이 무궁화가 支那사람의 눈에까지 곱게 보엿다. 그리하여 누구를 사랑하여 그 얼굴을 아름답다 일컬을데에 반듯이 무궁화에 比하엿다. 詩에 『顔如舜華』라 한 것이 이것이다. 舜의 根木字義는 무궁화다. 그러한데 舜은 누구로부터 그 讚美를 어덧슬가. 혹 그 가정으로부터 어덧슬가. 혹 백성에게로부턊� 어덧슬가. 申景濬은 이에 대하여 그 아버지에게로부터 어든 것이다 하엿다. 그 大意는 瞽叟가 아무리 頑惡하기로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안핫스랴. 그 후첩에게 빠저서 구박한 때가 잇슬 뿐이다. 舜이 어렷슬 때에 그 사랑이 기펏슬찌니 사랑이 기프면 아름답게 녀기기를 꼿처럼 하엿슬 것이다. 그러하매 舜이란 그 이름은 남에게서 어든 것이 아니라 瞽叟의 준 바라 하엿다. 그도 그럴는지 모르거니와 나는 이러케도 생각이 된다. 舜은 槿域의 사람으로 그 사람이 아름다운 법까지 무궁화꼿 갓다한 것이라 한다.
조선 사람은 과연 上古에 잇서 일쯕이 文化하엿다. 支那사람이 아직 투구가 무엇인지 갑옷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에 조션사람은 벌서 甲胃를 맨들엇다. 果下馬를 타고 大弓을 둘러메고 단겨 騎射에 長함으로 일컬음을 밧는 사람, 조션사람이 제일 먼저 甲胃를 발명하엿다. 涿鹿의 野에서 黃帝軒轅씨에게 靑天霹靂을 나리던 蚩尤의 사실이 이것이다. 孤竹과 靑邱가 한가지 조선의 일부로 蚩尤는 靑邱의 覇王이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지처 들어갈 때에 말굽에 이는 티끌이 과연 천지를 가리엇다. 이때<92> 漢人의 웃으운 활 굼뜬 팔매질로야 甲胃 騎馬한 靑邱의 士卒이 꼼작이나 할 것이냐. 그러함으로 支那사람들은 蚩尤를 가리처 銅頭 鐵身이라 또는 입으로 능히 안개를 핀다고 까지 하게 되엇다. 黃帝가 指南車를 맨들어 蚩尤를 破하엿다는 것은 漢族 自家의 蔽欠으로 쓴 말답지 안흔 말이다.
사람이 동물중에서 제일 자랑거리라 하는 글ㅅ자도 조선 사람이 제일 먼저 맨들엇다. 伏犧氏가 조선 사람이라는 말 가튼 것은 미들 수 업는 것이어니와 支那의 蒼頡이라는 사람은 黃帝때 사람이다. 새의 발자취를 본떠서 漢字를 맨들엇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긔에도 조선과 關係가 잇다. 抱朴子에 『黃帝가 靑邱에 와서 風山에서 紫府先生에게 三皇內文을 어더갓다』 하엿다. 三皇內文은 萬神의 이름을 적은 神敎에 當한 冊子이다. 靑邱는 물론 朝鮮을 가리침이요 風山이라함은 風夷의 山이란 말일찌니 風夷는 곳 扶餘의 異稱이나 대개 東方의 黃人 곳 조션을 가리친 것이다. 黃帝가 그 臣下로 하여금 文字를 맨들릴새 반듯이 어대에던지 參考함이 잇슬 터인데 자기보다 文化가 먼저 열린 朝鮮에 와서 問質할 것이 依例이라 그 설명을 보아 三皇內文이 분명히 神敎의 冊이요 그 어든 대가 분명히 조선인즉 그때에 조선의 文字가 잇슨 것이 사실이라. 그러하면 蒼頡이 造字에 三皇內文을 참고 혹 依倣한 것이다. 黃帝의 時代는 원악 不可信의 時代로 處理되는 것이매 이 시대에 잇는 蒼頡의 造字까지 부인한대면 그것은 별문제어니와 만일 그것을 시인한대면 가튼 시대에 잇는 조선사실 또는 그 적힌대가 抱朴子라 하여 구대 내버릴 것은 업슬까한다. 그는 그러하거니와 여긔에 딸아 생각되는 한가지는 漢字의 原始가 象形인데 조선의 이때에 쓰던 문자가 어떠한 것일까이다. 國家가 애초에 형성되지 안핫다 하면 모르거니와 형성되엇다 하면 반듯이 記事하는 文字는 잇서야 할 것이니 잇스면 그때에 잇서 지금 가장 진보되엇다는 音標文字가 생겻슬 수는 업는 것이요. 상형이나 또는 그 비슷한 무엇이 잇섯슬 터인데 地境이 連接하고 世記가 伯仲하는 朝支의 間에 반듯이 서로 비슷한 文字 또는 가튼 문자를 썻슬 것이라 漢字가 이제 支那 고유의 것으로 傳하는 것은 사실이나 나는 이것을 지나인 獨創의 것으로 생각하고 십지 아니하며 朝鮮도 이때 上古에 잇는 상형문자를 쓰되 支那의 그것과 가튼 것을 썻스며 그것이 原始는조선인의 창안으로 그 利를 共享하다가 後世에 支那人의 所有로 歸한 것이리라 한다. 이 論은 내 생각한 바 -잇고 이보다 더 참고한 바- 잇스나 아직 이만한 假想으로 두고 확실한 議論은 다른 때를 기다리려한다.
딸아 의논하려하는 바는 支那文化의 소유자가 支那人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체 조선과 支那가 地理-상접하여 人文이 混融되기 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업거니와 上古에 잇서 支那가 조선보다 文明이 뒤진 것은 사실인대다가 이민족과 전쟁과 박해가 때로 이어서 舜, 禹, 周公의 開敎한 공로도 날로 덜리는 한 쪽에 건국 이후 일쯕 한 번 파괴를 입지 아니한 扶餘 곳 조선의 文化는 꼿이 날로 한송이 씩 피어 열매가 날마다 한 개씩 여므는데 조선 학자의 行旅가 그 쪽으로 늘고 조션민족의 遷移가 刻刻으로 勢를 加하여 仙敎의 敎訓이 河北에 더 피고 太一의 學風이 淮岱에 퍼지며 小連, 大連의 德行이 孔子의 思慕하는 目標가 되고 淮夷, 徐夷의 尙神하는 풍속이 屈原의 嘆咏하는 문장으로 化하엿다. 더구나 孔子는 夷人<93> 文化의 移植地인 泰山 麓地에 生하여 그들의 문화에 만히 接觸浸染하엿슴으로 그들의 생활, 俗尙, 思想을 비교연구하여 민족개조의 박휘를 돌릴새 修身, 齊家의 쪽으로 하엿다. 綱常을 거스르고 殺戮을 例로 하는 (그때 형편) 자기의 족속을 구해낼 도리를 오직 이것으로써 한 것이다. 그리하여 윤리의 방면으로는 三綱, 五倫을 主하여 修身으로부터 始하고 經濟의 방면으로는 齊家로부터 治國, 平天下에 말을 그첫다. 이와가티 종교의 五戒를 본떠서 자기의 倫理觀을 세고 그 중의 臨戰勿退의 武의 思想을 平天下로 柔化한 것 갓다. 또 한편으로 老子 가튼 이는 東으로부터 들이오는 조선 仙敎의 淸高한 道理를 엿보아 精思細究한 결과 無爲 無化의 거룩한 생각을 뽑아 냇는지도 모른다. 아무러커나 上古에 仙道의 思想이 조선으로부터 支那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매 아주 터문이 업는 것이라고는 생각 안키를 바란다. 孔子슝� 道學이 집대성이라는 것 가티 支那의 思想, 文化가 동방 제민족의 思想, 文化를 摠集大成한 것도 사실이 아니냐. 먼저 扶餘가 거꿀어지고 이어 句麗가 어퍼진 후에 우리의 傳家寶籙이 無知한 外人의 손에 녹아저 업서지고 뒤를 이어 高興 李文眞이 나지 아니하매 우리의 思想이고 文化고를 다시 엿볼 길이 맛혓다 만일 우리의 그것이 완전히 남앗다 하면 지금의 支那것이라고 하는 支那의 그것이 얼마나 빗이 덜리엇슬는지도 모른다. 保晩齋의 이른바 『조션이 中華보다 낫고도 못한 것은 文籍이 업는 까닭이요. 中華가 조선만 못하고도 나은 것은 文籍이 잇슴으로 낫다』 한 것이 과연 올흔 말이라 한다.
지금에 조션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純直한 사람의 일러오는 傳說을 가버이 너길 수 업고 또한 조션의 기록보다는 그 시대를 노코 設想을 아니할 수가 업다. 지금의 우리가 參考한다는 조션의 기록이 우리의 손으로 된 것이 하나가 잇는가 모도 우리를 더퍼 누르려하는 賊의 쓴 바가 아닌가. 賊이 가르되 『네가 오랑캐라』 햇서도 그대로 벗긴 것이요. 賊이 가르되 『네가 우리의 종이니라』햇서도 그대로 적어 온 것이 아니냐. 三國史記나 東國通鑑이 賊인 支那사람의 붓끗으로 된 그것을 다만 년대를 차자 정성스럽게 들이낀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이들의 冊中의 按說이라는 것은 賊의 이야기를 무슨 戒訓처럼 녀기는 지나에 대하여 奴隷思想을 가진 조선 사람의 賊의 설명을 탄복하여 마지안는 按說이 아닌가 내 말하되 『조선은 아직 歷史가 업는 나라이라』 한다. 歷史는 따로히 잇다. 그러나 歷史冊은 업다. 다만 歷史의 자료가 잇슬 뿐이다. 이제 말한 바와 가티 이 역사의 자료가 모도 賊의 적어논 바이다. 어떤 때는 남의 적은 역사가 한 편 짝을 가리고 적은 그 민족의 그 역사보다 정확한 구절도 업는 바는 아니나 제 민족이 적은 그것이 업고 남이 적은 그것만이 잇는 그 역사를 가지고야 어찌 정확 여부를 말하랴. 그러나 外人이 적은 우리 역사자료에나마 페지 페지 꼿다운 사실이 들어나는 것을 보면 그 반면에 어떠한 훌륭한 사실이 잠재햇던 것을 짐작하겟다. 조선 역사에는 原事實을 차자 적을 사이도 업섯스매 거짓말할 나위는 根本부터 업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역사가가 나기를 바라며 또한 그것을 밋는 생각으로 이 되지 안흔 말을 抄하는 것이다.
五戒
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94>
<91-94>
天佑俠(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 24~25권) > 山林と河流
山林と河流
山林と河流
路は次第に棉圃に入り、來れり、棉圃漸く盡れば、竹林來る、竹林隱るれば松丘顯はれ、
乾坤益益翠色の加はるを見る、顧ふに慶尙道七十二州の中、靑山白雲、色彩相反映し
て風光を明媚にし、以て人目を慰むるの所は、東南に於て通度寺の棲鷲山林あり、西
北に於て鳥嶺秋風嶺、一帶の好松林あり、之を除くの外僅かに晉州附近の稍稍鬱蒼
たる綠林あるを見るのみ、其他は、皆是れ赭山禿峰、唯野草牧草の到處に繁茂するに
過ぎず。去ればこそ朝鮮の揚子江とも稱すバき此道の洛東江も、其流域百里に垂
んたるに拘らず、近年歲を逐ふて土砂溢流し、漸次河底を高め來り、今は河口より四
五十里の上流洛東津まで、滿水の節、辛ふじて舟運の便を得るに過ぎず、更に小滊船
の如きに至つては、河口を遡ぼる三四里以上に往來する能はざる現況なり、畢竟是
れ山林培植、の大事を等閑に附せるに依る、朝鮮扶植を唱ふるもの、宜く先づ此經國
根底の策に留意せざるべからず
잡지명 | 개벽 제15호 |
발행일 | 1921년 09월 01일 |
기사제목 | 抑鬱한 朝鮮 氏族의 假托的 家乘 |
필자 | 局子街 朴埜 |
기사형태 | 논설 |
抑鬱한 朝鮮 氏族의 假托的 家乘
局子街 朴埜
一
「나폴레온」(Napoleon)의 軍畧主義는「삐쓰막」(Bismak)의 氏族主義를 喚起케 하야「쭈톤人種」으로 하야곰 統一强覇의 業을 이루게 하얏스며 그 影響은 다시 意大利로 하야곰 十一小邦을 合하야 墺支利의 譎計로도 어찌 할 餘地가 업게 하얏다. 此에 反하야 英, 美, 俄 等과 如함은 各其 異民族을 統合하얏슴에 不拘하고 오히려 現像을 維持하얏도다.
아-이제 進化的 世界狀態-日新又日新함에 딸아 氏族主義와 如함은 벌서 過度時代의 遺物로 되어 가것다. 그리하야 本題에 對한 나의 區區한 辯論은 實로 過度時代의 遺物인 氏族主義 그를 爲하야 呶呶함이 아니오 다만 已陳的 芻狗이나마 事實은 事實대로 알어야 하리라는 自覺下에서 하두 抑鬱하던 事實이니까 오즉 그를 爲하야 彼蒼에 呼訴하는 一例로 橫說竪說함에 不過하다.
아-우리 朝鮮 氏族의 各家乘을 閱하건대 朝鮮 氏族되기는 果然 抑鬱한 일이엇다. 朝鮮은 바로 不毛之地인 듯이 朴, 昔, 金, 高, 夫, 梁 등 姓의 一部分을 除外하면 朝鮮的 土産은 幾無하고 曰金 曰李로 某氏 某姓이 그 祖上은 다 멀리 中國으로서 東出朝鮮이라 하얏다. 또 거의, 나, 다 中國의 어느 太師로서 得罪하고 東出朝鮮이다. 殷太師 箕胥餘가 亡命하야 東出朝鮮이라니까 그 餘風으로 그럼인지 或은 그 國末에 難을 逃하야 멀리 東出朝鮮이라 하얏슴도 不無하다. 그리하야「끄레시얌(Glasbiyam)」法則 貨幣論과 가티 朝鮮 山河는, 저 亡命的 不充分한 人物들이 淵藪를 이루어 複本位를 占領하는 바람에 原始時代부터 有名한 神市氏의 子孫 東方的 特産인 大人君子들은 돌이어 驅逐的 海外輸出이 됨인지 이제 名姓의 家乘首編을 占領한 者들은 太半이 主人非로 매우 抑鬱하게 되엇다. 그러나 <86>그 子孫인 분들은 言必稱某太師公東出朝鮮後第幾世임을 자랑거리로 하야 朝鮮的 土姓인 그네는 돌이어 思하되 남들은 다 祖上이 大國人인데 하고는 自己의 그러치 못함을 大段한 不幸으로 아는 분도 잇다.
아-記者도 一般이, 다-不幸으로 아는 土姓인 朴으로 氏하얏다. 그러나 中國人의 直系는 못될 지언정 그 外孫임은 넉넉히 証明할만하다. 家乘을 據하건대 始祖인 赫居世는 神的 表現 即 倍達한 배式으로 降生한 듯한데 그 妣閼英은 漢의 公主로서 謫降하얏슴을 一種 神話的으로 거의 矛盾업시 記하얏다. 어찌 하얏던지 直系는 못되나마 單純한 土産的이 아닌 것만도 幸이 아닐가 아-그 그러할 것일가 어찌 그 그러할 것일가. 이것이 歷史上 事實이 許치 아니하는 바이며 原則上 公理가 認치 아니하는 바이다. 大抵 地球의 南北極과 가티 不毛之地가 아니것다. 原始的 生民이 不無하얏슬 것은 進化的 原則으로 宇宙定義임을 알 것이며 太白山(天山)을 中心으로 하고 桓(한울)이라는 樂世界를 開拓하얏던 神市氏의 生活은 歷史가 이를 証明한다.
二
아-우리는 歷史上 果然 原始的 生民이엇다. 또 原則上 斷乎 東方的 産物일지니라. 漢學者의 말과 가티 東은 生氣之方이라 五行으로는 木에 屬하고 四端으로는 仁에 屬하야 그 人이 仁하고 그 物이 始하얏다 함이 바이 無理한 말은 아니엇다. 이제 漢人이 神禹의 功蹟이라 하야 가장 信하는 山海經과 及其他可考의 書類로 叅照하야 보면 그 東方에 對한 推測은 넘우 迷信的 夢想的이며 그 吾族에 對한 稱道는 넘우 畏敬的 愛慕的이다. 山海經(大荒東經)東海의 外, 大荒의 中, 波谷山이란 別天地와 如한 곳에는 大人의 國, 大人의 市, 大人의 堂이엇는데 大人들이 그에 잇다 하얏다. 아-그 어찌 사람이랴. 비록 昆蟲微物까지도 다 神異한 것으로 記하얏다.(大荒北經) 大荒中, 不咸山엔 肅愼氏의 國이 잇서 그 大人들은 黍를 食하며 또 琴蟲이엇는데 그 首는 獸와 如하고 身은 蛇와 如하다 하얏다. 海外東經과 如함은 *丘의 北에 大人國이 잇스며 그 北에 君子國이 잇다 하야 곳 다만 事實的 觀察대로 그 大人임을 喩하되 大人國 사람들이 坐而削船한다 하니 그 軀榦의 碩大함과 또 그 技術上 造船術에 最長임을 알 것이며 그 君子임을 喩하되 君子國 사람들이 衣冠帶劒하고 好讓不爭한다 하니 그 儀表의 凜然함과 또 그 學術上 擊劒術도 可能임을 알 것이다. 그리하야 그 大人君子의 風이 잇슴과 가티 武士道上의 活躍的 精神과 雄飛的 氣像이 잇서 恒常 兩個 虎로 左右에 驅使한다 하며<87> 또 朝生夕死하는 薰華草도 잇슴을 云하얏다. 晉郭璞은 彼所謂 有名한 術數的 知識家가 아닌가. 그 述한 讚文은 東方이 氣仁하니 國有君子하야 薰華를 食하며 彫虎를 使하며 禮로써 서로 讓하며 理로써 서로 論한다고 推理的 引證的으로 그 地方的 風氣, 國家的 人物, 衛生的 狀態, 尙武的 精神, 交際的 儀容 平和的 氣像을 彷似하게 描寫하얏다. 漢東方朔은 彼所謂 有名한 經驗的 知識家가 아닌가. 그 著한 神異經은 東方人이 男은 縞帶玄冠하고 女는 錦衣綵裳하야 서로 恭하야 不犯하며 서로 譽하야 不毁하며 見人之患하고 死로써 相救하니 倉卒見하면 痴如愚如하나 其實은 善人이라고 具軆的 實際的으로 그 美한 制度, 正한 道德, 厚한 風俗을 充分하게 發揮하얏다. 彼考據家로 有名한 許愼의 說文과 如함은 그 夷字解에 夷는 東方人이니 從大從弓이라 하야 天大地大한데 오즉 東方人이 더불어 大함과 또 그 弓矢의 術 즉 武藝에 長함을 說明하얏스며 羌字解에 四方諸民族 가운대 오즉 東方人이 사람다움을 論하고 그 風俗이 仁하니 仁者-必得其壽故로 君子不死의 國이 잇슴을 証明하얏스며 그 鳳字解에 鳳은 神鳥인데 東方君子國에 出하야 四海의 外에 翶翔할새 崑侖을 過하야 砥柱에 飮하고 羽를 弱水에 濯하고 風穴에 宿하는데 天下安寧이 是鳥一見에 잇다 하얏다. 그리하야 孔子의 聖德으로도 오히려 鳳兮鳳兮何德之衰라는 評을 들으섯다. 아-果然 그러하다. 이제 黃海記異를 보면 黃帝氏-東方君子國으로부터 含來한 鳳圖를 拜受하야 文字를 創制하야 書契를 作成하얏다 하니이-中華萬歲의 文明事業은 總히 東方의 一神鳥-그 指針을 定하얏스며 運路를 開하얏나니 史記에 有鳳瑞故로 以鳥로 記官이라 함은 實로 이를 이름이엇다. 그리하야 東方的 産物은 비록 一禽一蟲과 一草一木일지라도 다 그 崇拜를 바닷더니라. 神禽은 彼의 百王을 敎하고 琴蟲은 能히 五音을 解하며 木槿(薰華)과 또 不老草는 다 千古著名한 神物이엇다. 秦皇漢武의 英雄으로도 或은 不老草를 먹으려고 或은 海上神仙을 마즈려고 方士도 보내며 祈天禱神도 하얏다. 方丈瀛洲는 滄海가 즈음처서 方士의 舟가 一去不復返하고 蓬萊仙子는 雲山이 寂寂하야 消息이 茫然하다. 마츰 그 所願을 未就하고 멀리 海上을 바라보면서 永世不歸의 客이 되엇스니 그네의 怨魂이야말로 千載如今에 滄海水上에서 舟子를 부로 지저 方士無情함과 神仙의 虛誕함을 꾸짓고 뉘우치면서 彷徨하지 아니할 것일가.
三
아-우리는 다만 어찌 그들에게 崇拜만 바닷슬 뿐이랴.<88> 或은 彼를 造生하기도 하고 或은 彼를 敎化하기도 하고 또 能히 征服하기도 하얏다. 漢劉安의 著한 淮南子 墜形訓과 山海經에 雜出한 바로 叅照하야 보면 帝俊(帝嚳高辛氏)과 帝顓(顓頊高陽氏)은 分明한 東夷人이다. 此에 准하야 그 子孫인 唐堯虞舜도 摠히 그러할 것이니 孟子曰 舜은 東夷之人이라 함이 어찌 無根據非事實로 否認할 말슴이랴. 또 어찌 俊, 顓, 堯, 舜뿐이랴. 이제 漢族 全部는 다 黃帝子孫임을 冒稱하것다. 史記 黃帝本紀를 據하건대 黃帝-出自崑崙하야 師兵으로써 營衛하고 中原의 北方에 入하얏다 하얏나니 當時 中原은 有苗氏의 領地-라. 그 君長인 蚩尤-軒轅氏의 率衆以來함이 主權領土의 侵略임을 怒하야 遂히 鹿의 野에 震天動地의 一大 氏族戰爭을 開始하기에 至하얏다. 그리하야 結局, 蚩尤-戰死함에 미처 中原山河는 軒轅氏의 所有로 되어 客反爲主의 一現像을 演成하얏다. 自是厥後로 唐虞의 世에 至하기까지 九黎亂德이라거니 三苗不服이라거니 하야 武畧으로 强制的 命令도 시켜 보앗스며 文德으로 感化的 手段도 부려 보앗다. 이는 一朝에 異民族의 侵畧으로 父母國을 亡하고 돌이어 驅逐을 밧는 苗族의 主權領土的 奮鬪이니 强力의 下에 오히려 決心이 鞏固하야 限死코 不服함이엇다. 이로써 보면 崑崙의 外로부터 中原에 入한 軒轅의 무리-또 어찌 東夷人이 아님을 알 것일가. 史記와 가티 黃帝子孫인 虞舜이 東夷人임은 孟軻氏의 말슴이 千古鐵案이엇다. 孔子-書를 著함에 斷自唐虞하얏슴으로 漢族은 대개 黃帝氏로 造生之祖임을 信하고 唐堯虞舜氏로 敎化之主임을 信하것다. 大抵 孔子와 如함은 大同主義를 爲하야 그 一生을 犧牲한지라. 그 知我罪我의 絶對自信으로 述作한 一部春秋는 오즉 文野로써 褒貶을 主張하얏고 氏族主義와 如함은 頗히 不知함과 如하니 世界를 一家로 하고 中國을 一人으로 하야 家天下人萬國的 大共和主義下에서 어찌 東夷人 中國族의 小區別이 그 心目中에 잇섯스랴. 그리하야 大連小連은 東夷人이라. 孔子-그 君子임을 稱하고 伯夷叔齊는 東夷人이라. 孟子-그 淸聖임을 論하야 다 足히 彼의 百世師-되엇다. 易繫辭에 曰帝-出乎震이라고 東亞大震方인 白山黑水의 間에 理想的 天堂과 如한 事實的 天國이엇던 桓族의 原始的 活躍雄飛는 實로 可驚可畏하며 可敬可愛하도다. 天河(松花江)의 流를 딸아 東北進한 者는 鮮卑, 蒙古로 이름하기도 하고 天山(白頭山)의 脉을 딸아 東南下한 者는 新羅, 高麗로 나타나기도 하며 西北으로 崑崙을 踰하기도 하며 西南으로 滄海를 渡하기도 하얏다. 이제 歐人은 漢族으로 出自蒙古라 하나니 그는 崑崙을 踰하야 北方에 侵入한 軒轅의 무리를 誤解함이 아닌가. 저 墨西哥의<89> 人種은 西伯利로부터 遠徙入美하얏나니 西伯利는 古鮮卑氏의 原住地라. 이와 가티 桓人의 原始時代에 在한 連路開拓은 實로 世界的이오 局部的이 아니다. 더욱 漢土에 對한 經畧은 大陸을 連하야 航海의 苦가 업슴으로 가장 그 第一步를 試하얏던 것이엇다. 그리하야 彼 春秋戰國 時에 至하기까지 能히 列國의 間에 雄峙하야 聯盟의 列에 一椅子를 不失하고 奄, 牟, 介, 萊, 莒, 蒲姑 等 同族으로 더불어 自家顔色을 不變하야 自立的 精神을 磨勵한 者는 곳 徐族인데 그들은 벌서 殷末周初부터 淮垈의 間을 根據하고 國家的 活動을 始作하야 周家 八百年 동안의 君臣上下로 寧日이 無케 하얏스며 또 그 滿夷猾夏의 滄桑大變이라고 怨痛을 부르게 하던 遼, 金, 愛親氏의 大陸的 經略은 그 武士道上의 男兒的 行動이, 다 足히 一時를 靡然케 하얏다. 그러나 그들은 漸次 歲序의 遷易함을 딸아 돌이어 彼의 學術的 方面으로 精神上 催眠을 바다서 畢竟은 漢族化하야 東方的 自家面目은 바이 업서지고 可憐한 投托的 黃帝子孫이 되고 말엇다.
四
아-이것이 우리 朝鮮 氏族을 그르친 原因이다. 아-이것이 우리 朝鮮 氏族의 史乘을 그르침이다. 아 아 이것이 우리 朝鮮 氏族의 온갓 것을 모다 그르침이다. 黃帝氏에게 圖書를 含授한 東方産인 神鳳은 이제 그 惡結果를 生하얏다. 大抵 우리 朝鮮 氏族의 漢文化 輸入은 아마 殷太師箕胥餘의 歸化 以前인 듯한데 伊來 數千年 동안에 文學的 모든 方面으로 知識交換上 美點은 不無하다. 可謂하겟지만 全軆 氏族의 精神上 駸駸然하게 그 酷催眠에 걸리어서 損害가 利益보다 反比例임은 事實上 隱諱치 못할 抑鬱한 處地이엇다. 아-이제 우리 氏族은 甚至 言語까지도 漢文字의 代表的 名詞를 除外하면 純國語的 通用은 거의 不能이다. 全氏族 團軆의 代表的 名詞인 國號로부터 個人의 氏名과 及 其他 事物 등 名詞까지 모다 漢字로 譯用한 結果, 朝鮮的 活用名詞는 全部 撤銷忘却되고 漢式으로 一變하야 마치 遼, 元, 金, 淸人의 漢譯한 複式氏名이 漸次 純用漢式이 됨과 가티 그 姓을 姜이라 하면 炎帝後 그 姓을 陳이라 하면 舜帝後 그 姓을 劉-라 하면 漢後로 假托하야 百家의 姓이다. 그 帝王公侯 及其他 榮貴者의 後가 아님이 업시 훌륭하게 幻父易祖하야 個人은 子孫의 道로 彼에 孝하고 國家는 臣妾의 禮로 彼에 忠하기에까지 이르럿다. 이는 勿論 積來한 末弊이지만 摠히 高麗 以後의 事-다. 專制的 儒敎의 實行은 全軆 氏族의 心理發達을 制限하야 그 이른바 以小事大는 天經地義로 解하고 用夏變夷는 鬼訓神誥로 信야<90> 尊中華攘夷狄은 春秋的 大義라는 問題下에서 聖宋大明을 爲하야 胡元蠻淸을 斥하노라고 敢히 幾多의 犧牲도 貢獻하얏스며 反히 幾多의 蹂躪도 招致하야 歷史上 江漢을 傾하야 濯하고 秋陽을 借하야 曝할지라도 能히 沒痕跡의 快를 엇지 못할 絶對의 羞恥를 自作하얏다. 孟子-曰 無恥之恥一면 無恥矣라 하얏거늘 所謂 文人學者輩들은 有恥不恥하야 尙今 書札往覆에까지도 오히려 崇禎年月을 書하고는 大明遺民으로 自處하야 純坤的 世界에 一線陽脉이 自己身上에 잇슴을 自負하면서 易曰 其亡其亡이라가 係于苞桑이니까 陽無可盡이지 하고서는 아모 때라도 中原에 大明이 回復하여야 한다는 最後宣言을 發하것다. 그리하야 그들은 意外의 狂風만 불어도 中原의 兵聲인가 空間의 隕石만 보아도 大明의 先候인가 하야 混沌的 世界에 醉生夢死的 殘喘을 扶維하면서도 오리려 大道의 要나 깨다른 듯이 高臥淸風하야 自謂 羲皇上世人이라는 等 句로 心理上 慰安을 어더 時日을 消遺함은 실로 幾百年 積幣의 餘毒이오 一朝一夕의 故-아니엇다.
五
아-原始時代에 在하야서도 오히려 한울로 自處하야 거의 世界人種之母가 되는 神市氏의 後로서 그 世遠人亡함에 미처 大人君子의 東方的 氣像을 全喪하고 投托的 沒軆面의 畜生化할 줄을 誰知하얏스리오. 아아 이제 또 漢族 中에서 滿蒙回藏族의 投托的 假漢을 除外하고 보라. 實로 幾多眞漢을 發見할 수 업슬 것이엇다. 다만 五季史誌에 傳한 것으로만 畧하야 볼지라도 諸胡-拓拔과 如함은 長孫氏로 乙旃은 叔孫氏로 素黎는 黎氏로 獨孤는 劉氏로 步六孤는 陸氏로 勿忸于는 于氏로 拔列은 梁氏로 叱羅는 羅氏로 疏屬車焜은 車氏로 胡古口引은 候氏로 若口引은 寇氏로 俟力伐은 鮑氏로 貿葛은 葛氏로 賀拔은 何氏로 吐伏廬는 廬氏로 出大汗은 韓氏로 叱呂는 呂氏로 是樓는 高氏로 唱石蘭은 石氏로 候莫陳은 陳氏로 丘林은 林氏로 庫狄은 狄氏로 破多羅는 潘氏로 獨孤渾은 杜氏로 改하야 마치 曹操-閹人의 養子로 曹參의 後임을 假托하며 李世民이 匈奴의 後로 李陵에게 假托함과 가티 漢式的 投托法을 襲用하얏나니 이로써 追想하면 五帝三王의 遙遙華胄임을 자랑하는 그네야 더욱 抑鬱치 아니할가. 저만 사람이고는 다 戎이 아니면 狄이오 匈奴가 아니면 冒頓이라고 貶稱하던 漢族 그네야말로 이제 匈奴冒頓의 雜亂치 아니한 者-幾希하도다. 그러나 그네는 古來부터 許多한 螟蛉的 假養으로 成家한 분네니까 또는 自尊的 特性이 잇는 분네니까 黃河流域과 崑崙山麓의 全軆貓額大에 不過한 것으로써도 바로 宇宙 全部인 듯이 天地中間인 듯이 言必稱 中原이 如何하거니 天下가 如何하거니 또는 四海之內라거니 하야 敵에게 公主를 嫁하야 和親을 乞하고서도 必曰 四夷賓服이라 하며 寶幣를 與하야 好誼를 求하고서도 必曰蠻夷來王이라 하야 오히려 能히 今日의 現像을 維持하얏거니와 彼滿蒙回藏族과 如함은 그 投托的 生活이 어찌 可哀치 아니한가. 假使滿蒙回藏族의 漢氏에 投托한 者로 그 어떠한 自覺下에서 各自의 家乘을 考査하야 본다 하면 實로 同余의 感이 업지 못할 것이엇다.
아-記者-本題에 대한 區區한 辯論은 그 本意가 劈頭에 先述함과 如하거니와 漢氏를 爲하야는 英, 美, 俄 等과 가티 氏族主義와 如함은 沉黙을 지킴이 可하다 하노라.<91>
<86-91>
동광 제7호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잡지명 | 동광 제7호 |
발행일 | |
기사제목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
필자 | 權悳奎 |
기사형태 | 논설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權悳奎
조선사람은 점잔흔 사람이다. 그러함으로 君子라는 이름이 잇다. 착한 사람이다. 그러함으로 善人이란 일컬음이 잇다. 착하되 얼마나 착하던고 하니 늘 恭遜히 굴허안저 서로 닥들이는 일이 업스며 늘 기리어 일컷는 일은 잇스되 서로 휘뿌리어 欠談하는 일은 업섯다. 늘 조심하며 늘 빙글에 웃어서 얼른 보기에 어리석게 보이엇다. 이만콤 착하고 점잔흔 사람인 까닭에 물러가 직히는 일은 잇스되 나아가 빼앗는 일은 업섯다. 그러함으로 나라에 利가 되리만한 큰 사건이 잇스되 제 마음에 털끗만치 부끄럼이 잇서도 거짓말한 법이 업섯다. 이것이 조션 사람의 心性이다.
이러한 조선사람이매 남(支那人)들이 너이는 오랑캐니라 하고 이름을 지어도 속으론 어떠햇던지 거트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엿고 너이들이 우리에게 한번도 지지안흔 일이 업다. 꼬박꼬박 졋느니라 하여도 따로안자 코ㅅ방귀 뀌는 말이 잇나 하엿다. 그리다가 겻고 트는 바람에 한 번 념겨박이고 『滅朝鮮 置四郡』이란 文字도 쓰이고 『合韓國 稱朝鮮』이란 句節도 박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記事 이상의 엄청난 恥辱도 當한 것이요 歷史以外의 긔막히는 기록도 소유한 것이다. 이러한 조선사람이며 그야말로 生後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업슬뿐 아니라 남의 거짓까지 밋게 되엇다. 조션사람은 글ㅅ자나 하는 것이 돌이어 탈이어서 漢書籍 끄트머리를 한울가티 밋고 日學者 주둥이를 어미가티 딸아서 거짓말할 줄 모르던 저의 祖上의 遺訓이 돌이어 거짓이 되고 엇그제까지 지키던 美風善俗을 훌부심하여 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야 目前에 보는 것이다. 조션놈의 내 말이기로서니 엇지 못할 거짓말이라고 하랴.
江華에 居巢里가 잇스니 이것을 范增의 시골이라 하고 海州에 孤竹郡 古趾가 잇스니 이것을 夷齊의 나라라 하며 洪州의 田橫島를 가리처 橫이 일쯕이 여긔에 멈을럿다 하고 泰安의 賈誼島를 가리처 誼가 압서 이에 귀양살이 하엿다 한다. 이것은 다 무식한 사람의 일업시 지어낸 말이어니와 薛仁貴에게 淵蓋蘇文이가 小人을 개 바쳣다는 말이 정말이 되겟느냐. 蘇定方이가 金庾信 아페 굴어업디어 발발 떨던 것이 거짓말이 되겟느냐. 神功皇后의 征韓하엿다는 野說을 미드며 儒禮尼師今의 白馬塚 事實을 부인해야 可하랴. 어찌하여 조션이 自來로 남에게 부속되지 안흔 적이 업다는 것은 캐는 양반들이 支那史가 말끔 異民族이 들어가 漢民族을 統治한 역사인 것은 문제삼지 안는고. 이것이 오직 조선 사람의 하는 것이요 조션 사람의 붓끗이요 말머리다.
日本은 別問題로 하고 東洋에 잇서 支那는 果然 큰 나라요 역사잇는 나라다. 그러나 그 역사 첫머리를 펼 적에 과연 남부끄럽지 안흘만한 始祖가 잇느냐 하면 참으로 어더낼 수가 업다. 그러나 조선 역사는 어떠하냐 첨으로부터 天降을<91> 밋는 고상한 이상을 가진 족속으로 天, 神, 人 삼위일체인 檀君을 밧들엇다. 그리하여 역대의 建國帝王이 내가 檀君이로라 하지 안흐면 檀君의 아들이로라고라도 하엿다. 檀君을 아무리 부인하여 말살하려하는 패라도 夫餘의 존재는 인정치 안흘 수 업슬 것이요. 扶餘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면 解慕漱, 解夫婁, 高朱蒙이 모도 檀君 혹 檀君子라 한 文句를 塗削하지 못할찌니 이런 문제는 문제될 까닭도 업는 것이다.
대체 조션민족은 상고로부터 썩 文化하엿다. 武의 방면으로 보더라도 支那族이 아직 黃河沿岸에 엉겨붓기 전에 조션 민족은 벌서 鳥列河(遼水) 이쪽으로부터 西으로 渤海 西北岸을 거처 다시 黃河, 泰山 以南으로 大江 以北 支那 內地로 몰려들엇다. 이때는 定히 斷自唐堯라 하는 堯의 시대엿다. 조션 사람은 太古로부터 동양 사람으로 天下의 大本이라하는 농업을 힘썻다. 그리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條目에도 主穀이 첫째이엇다. 곡식을 主張함으로 농작에 大關되는 天候를 엿보지 안흘 수 업섯다. 그리하여 天文에 대단히 능하엿다. 그럼으로 堯라는 님검도 天文을 夷人에게 물은 痕跡이 잇다. 조선 사람은 과연 그 이전 알기 쉽게 그때부터 미리 天候를 보아 年歲의 豊險을 료량하도록 天文學에 長하엿다. 그 뿐 아니라 政治의 어려움을 夷人에게 뭇게 되엇다. 그야말로 舜이란 사람은 東夷 곳 조선사람으로 堯의 請에 塵하여 그 政事를 껴들게 되엇다. 舜이란 사람도 天下를 두려는 상각이 귀를 씻으리만큼 淸白하지는 못하엿다. 마침내 堯를 廢하고 그 자리를 앗게 되엇다. 堯가 舜에게 가첫다는 이야기가 이러한 소식을 傳함이다. 舜이 東夷 곳 조선사람인 것은 先儒들의 말이 一致한 바이어니와 舜이란 그 稱號조차 과연 朝鮮的이다. 조선에는 自來 무궁화가 만핫다. 그리하여 槿域이라고까지 일컷는다. 꼿을 보고 누가 조타아니하더냐. 이 무궁화가 支那사람의 눈에까지 곱게 보엿다. 그리하여 누구를 사랑하여 그 얼굴을 아름답다 일컬을데에 반듯이 무궁화에 比하엿다. 詩에 『顔如舜華』라 한 것이 이것이다. 舜의 根木字義는 무궁화다. 그러한데 舜은 누구로부터 그 讚美를 어덧슬가. 혹 그 가정으로부터 어덧슬가. 혹 백성에게로부턊� 어덧슬가. 申景濬은 이에 대하여 그 아버지에게로부터 어든 것이다 하엿다. 그 大意는 瞽叟가 아무리 頑惡하기로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안핫스랴. 그 후첩에게 빠저서 구박한 때가 잇슬 뿐이다. 舜이 어렷슬 때에 그 사랑이 기펏슬찌니 사랑이 기프면 아름답게 녀기기를 꼿처럼 하엿슬 것이다. 그러하매 舜이란 그 이름은 남에게서 어든 것이 아니라 瞽叟의 준 바라 하엿다. 그도 그럴는지 모르거니와 나는 이러케도 생각이 된다. 舜은 槿域의 사람으로 그 사람이 아름다운 법까지 무궁화꼿 갓다한 것이라 한다.
조선 사람은 과연 上古에 잇서 일쯕이 文化하엿다. 支那사람이 아직 투구가 무엇인지 갑옷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에 조션사람은 벌서 甲胃를 맨들엇다. 果下馬를 타고 大弓을 둘러메고 단겨 騎射에 長함으로 일컬음을 밧는 사람, 조션사람이 제일 먼저 甲胃를 발명하엿다. 涿鹿의 野에서 黃帝軒轅씨에게 靑天霹靂을 나리던 蚩尤의 사실이 이것이다. 孤竹과 靑邱가 한가지 조선의 일부로 蚩尤는 靑邱의 覇王이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지처 들어갈 때에 말굽에 이는 티끌이 과연 천지를 가리엇다. 이때<92> 漢人의 웃으운 활 굼뜬 팔매질로야 甲胃 騎馬한 靑邱의 士卒이 꼼작이나 할 것이냐. 그러함으로 支那사람들은 蚩尤를 가리처 銅頭 鐵身이라 또는 입으로 능히 안개를 핀다고 까지 하게 되엇다. 黃帝가 指南車를 맨들어 蚩尤를 破하엿다는 것은 漢族 自家의 蔽欠으로 쓴 말답지 안흔 말이다.
사람이 동물중에서 제일 자랑거리라 하는 글ㅅ자도 조선 사람이 제일 먼저 맨들엇다. 伏犧氏가 조선 사람이라는 말 가튼 것은 미들 수 업는 것이어니와 支那의 蒼頡이라는 사람은 黃帝때 사람이다. 새의 발자취를 본떠서 漢字를 맨들엇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긔에도 조선과 關係가 잇다. 抱朴子에 『黃帝가 靑邱에 와서 風山에서 紫府先生에게 三皇內文을 어더갓다』 하엿다. 三皇內文은 萬神의 이름을 적은 神敎에 當한 冊子이다. 靑邱는 물론 朝鮮을 가리침이요 風山이라함은 風夷의 山이란 말일찌니 風夷는 곳 扶餘의 異稱이나 대개 東方의 黃人 곳 조션을 가리친 것이다. 黃帝가 그 臣下로 하여금 文字를 맨들릴새 반듯이 어대에던지 參考함이 잇슬 터인데 자기보다 文化가 먼저 열린 朝鮮에 와서 問質할 것이 依例이라 그 설명을 보아 三皇內文이 분명히 神敎의 冊이요 그 어든 대가 분명히 조선인즉 그때에 조선의 文字가 잇슨 것이 사실이라. 그러하면 蒼頡이 造字에 三皇內文을 참고 혹 依倣한 것이다. 黃帝의 時代는 원악 不可信의 時代로 處理되는 것이매 이 시대에 잇는 蒼頡의 造字까지 부인한대면 그것은 별문제어니와 만일 그것을 시인한대면 가튼 시대에 잇는 조선사실 또는 그 적힌대가 抱朴子라 하여 구대 내버릴 것은 업슬까한다. 그는 그러하거니와 여긔에 딸아 생각되는 한가지는 漢字의 原始가 象形인데 조선의 이때에 쓰던 문자가 어떠한 것일까이다. 國家가 애초에 형성되지 안핫다 하면 모르거니와 형성되엇다 하면 반듯이 記事하는 文字는 잇서야 할 것이니 잇스면 그때에 잇서 지금 가장 진보되엇다는 音標文字가 생겻슬 수는 업는 것이요. 상형이나 또는 그 비슷한 무엇이 잇섯슬 터인데 地境이 連接하고 世記가 伯仲하는 朝支의 間에 반듯이 서로 비슷한 文字 또는 가튼 문자를 썻슬 것이라 漢字가 이제 支那 고유의 것으로 傳하는 것은 사실이나 나는 이것을 지나인 獨創의 것으로 생각하고 십지 아니하며 朝鮮도 이때 上古에 잇는 상형문자를 쓰되 支那의 그것과 가튼 것을 썻스며 그것이 原始는조선인의 창안으로 그 利를 共享하다가 後世에 支那人의 所有로 歸한 것이리라 한다. 이 論은 내 생각한 바 -잇고 이보다 더 참고한 바- 잇스나 아직 이만한 假想으로 두고 확실한 議論은 다른 때를 기다리려한다.
딸아 의논하려하는 바는 支那文化의 소유자가 支那人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체 조선과 支那가 地理-상접하여 人文이 混融되기 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업거니와 上古에 잇서 支那가 조선보다 文明이 뒤진 것은 사실인대다가 이민족과 전쟁과 박해가 때로 이어서 舜, 禹, 周公의 開敎한 공로도 날로 덜리는 한 쪽에 건국 이후 일쯕 한 번 파괴를 입지 아니한 扶餘 곳 조선의 文化는 꼿이 날로 한송이 씩 피어 열매가 날마다 한 개씩 여므는데 조선 학자의 行旅가 그 쪽으로 늘고 조션민족의 遷移가 刻刻으로 勢를 加하여 仙敎의 敎訓이 河北에 더 피고 太一의 學風이 淮岱에 퍼지며 小連, 大連의 德行이 孔子의 思慕하는 目標가 되고 淮夷, 徐夷의 尙神하는 풍속이 屈原의 嘆咏하는 문장으로 化하엿다. 더구나 孔子는 夷人<93> 文化의 移植地인 泰山 麓地에 生하여 그들의 문화에 만히 接觸浸染하엿슴으로 그들의 생활, 俗尙, 思想을 비교연구하여 민족개조의 박휘를 돌릴새 修身, 齊家의 쪽으로 하엿다. 綱常을 거스르고 殺戮을 例로 하는 (그때 형편) 자기의 족속을 구해낼 도리를 오직 이것으로써 한 것이다. 그리하여 윤리의 방면으로는 三綱, 五倫을 主하여 修身으로부터 始하고 經濟의 방면으로는 齊家로부터 治國, 平天下에 말을 그첫다. 이와가티 종교의 五戒를 본떠서 자기의 倫理觀을 세고 그 중의 臨戰勿退의 武의 思想을 平天下로 柔化한 것 갓다. 또 한편으로 老子 가튼 이는 東으로부터 들이오는 조선 仙敎의 淸高한 道理를 엿보아 精思細究한 결과 無爲 無化의 거룩한 생각을 뽑아 냇는지도 모른다. 아무러커나 上古에 仙道의 思想이 조선으로부터 支那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매 아주 터문이 업는 것이라고는 생각 안키를 바란다. 孔子슝� 道學이 집대성이라는 것 가티 支那의 思想, 文化가 동방 제민족의 思想, 文化를 摠集大成한 것도 사실이 아니냐. 먼저 扶餘가 거꿀어지고 이어 句麗가 어퍼진 후에 우리의 傳家寶籙이 無知한 外人의 손에 녹아저 업서지고 뒤를 이어 高興 李文眞이 나지 아니하매 우리의 思想이고 文化고를 다시 엿볼 길이 맛혓다 만일 우리의 그것이 완전히 남앗다 하면 지금의 支那것이라고 하는 支那의 그것이 얼마나 빗이 덜리엇슬는지도 모른다. 保晩齋의 이른바 『조션이 中華보다 낫고도 못한 것은 文籍이 업는 까닭이요. 中華가 조선만 못하고도 나은 것은 文籍이 잇슴으로 낫다』 한 것이 과연 올흔 말이라 한다.
지금에 조션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純直한 사람의 일러오는 傳說을 가버이 너길 수 업고 또한 조션의 기록보다는 그 시대를 노코 設想을 아니할 수가 업다. 지금의 우리가 參考한다는 조션의 기록이 우리의 손으로 된 것이 하나가 잇는가 모도 우리를 더퍼 누르려하는 賊의 쓴 바가 아닌가. 賊이 가르되 『네가 오랑캐라』 햇서도 그대로 벗긴 것이요. 賊이 가르되 『네가 우리의 종이니라』햇서도 그대로 적어 온 것이 아니냐. 三國史記나 東國通鑑이 賊인 支那사람의 붓끗으로 된 그것을 다만 년대를 차자 정성스럽게 들이낀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이들의 冊中의 按說이라는 것은 賊의 이야기를 무슨 戒訓처럼 녀기는 지나에 대하여 奴隷思想을 가진 조선 사람의 賊의 설명을 탄복하여 마지안는 按說이 아닌가 내 말하되 『조선은 아직 歷史가 업는 나라이라』 한다. 歷史는 따로히 잇다. 그러나 歷史冊은 업다. 다만 歷史의 자료가 잇슬 뿐이다. 이제 말한 바와 가티 이 역사의 자료가 모도 賊의 적어논 바이다. 어떤 때는 남의 적은 역사가 한 편 짝을 가리고 적은 그 민족의 그 역사보다 정확한 구절도 업는 바는 아니나 제 민족이 적은 그것이 업고 남이 적은 그것만이 잇는 그 역사를 가지고야 어찌 정확 여부를 말하랴. 그러나 外人이 적은 우리 역사자료에나마 페지 페지 꼿다운 사실이 들어나는 것을 보면 그 반면에 어떠한 훌륭한 사실이 잠재햇던 것을 짐작하겟다. 조선 역사에는 原事實을 차자 적을 사이도 업섯스매 거짓말할 나위는 根本부터 업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역사가가 나기를 바라며 또한 그것을 밋는 생각으로 이 되지 안흔 말을 抄하는 것이다.
五戒
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94>
<91-94>
天佑俠(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 24~25권) > 山林と河流
山林と河流
山林と河流
路は次第に棉圃に入り、來れり、棉圃漸く盡れば、竹林來る、竹林隱るれば松丘顯はれ、
乾坤益益翠色の加はるを見る、顧ふに慶尙道七十二州の中、靑山白雲、色彩相反映し
て風光を明媚にし、以て人目を慰むるの所は、東南に於て通度寺の棲鷲山林あり、西
北に於て鳥嶺秋風嶺、一帶の好松林あり、之を除くの外僅かに晉州附近の稍稍鬱蒼
たる綠林あるを見るのみ、其他は、皆是れ赭山禿峰、唯野草牧草の到處に繁茂するに
過ぎず。去ればこそ朝鮮の揚子江とも稱すバき此道の洛東江も、其流域百里に垂
んたるに拘らず、近年歲を逐ふて土砂溢流し、漸次河底を高め來り、今は河口より四
五十里の上流洛東津まで、滿水の節、辛ふじて舟運の便を得るに過ぎず、更に小滊船
の如きに至つては、河口を遡ぼる三四里以上に往來する能はざる現況なり、畢竟是
れ山林培植、の大事を等閑に附せるに依る、朝鮮扶植を唱ふるもの、宜く先づ此經國
根底の策に留意せざるべから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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