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京師)에 가서 주문(奏聞)함을 입어, 떠나간 뒤에 42일을 머물러 6월 초3일에 이르렀는데,

2023. 6. 21. 15:53북경 추정

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 6월 23일 癸卯 2번째기사 1397년 명 홍무(洪武) 30년

시의에 적합하지 않아 예불을 받지 않겠다는 황제의 뜻을 전하는 명 예부의 서신

국역

원문

.원본 보기

유운(柳雲)이 요동(遼東)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신이 공경하여 차견(差遣)을 입어 사은(謝恩)으로 진헌하는 예물을 싸 가지고 마필(馬匹)을 압령하여 4월 21일에 요동(遼東)에 이르렀사온데, 도사(都司)가 관원을 차견하여 경사(京師)에 가서 주문(奏聞)함을 입어, 떠나간 뒤에 42일을 머물러 6월 초3일에 이르렀는데, 흠차(欽差)한 행인(行人) 유귀지(劉貴篪)가 성지(聖旨)를 흠뢰(欽賚)하여 가지고 요동에 와서 신 등을 대하여 개독(開讀)하고, 인하여 선유(宣諭)를 흠전(欽傳)하고 진헌하는 예물과 마필을 모두 수(數)대로 점고하고 교부하여 돌려보내고, 아울러 예부 좌시랑(禮部左侍郞) 장병(張炳)의 서신 한 통을 신에게 주었습니다. 신이 흠의(欽依)하여 영수하여 왔습니다."

그 서신에는 이러하였다.

"근자에 요 좌사(遼左使)가 와서 말하기를, ‘조선 국왕이 사람을 보내어 사례(謝禮)하러 경상(境上)에 왔습니다.’ 하였소. 본부(本部)에서 즉시 지존(至尊)께 아뢰니, 분부하시기를, ‘조선국은 산으로 한계하고 바다로 격하여서 풍속을 다르게 하늘이 만들고 땅이 베풀어 놓았으니, 본래 동이(東夷)의 나라이다. 그러나 중국과 서로 가깝고 왕노릇 하는 자가 도가 있어 인국(隣國)과 친목하고 화호(和好)를 닦아 예로 왕래를 숭상하니, 시의(時宜)에 적합하게 맞추어 이르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지금 와서 사례를 행한다고 청하니 알 수 없지만, 중국이 무슨 은의(恩意)를 조선에 미쳤기에 사례를 행하였는가? 하물며 시절이 아니니 예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만일 생민을 시정과 초야에서 편안히 하게 하려면 반드시 사자를 자주 수고로이 왕복하게 할 것이 아니라, 조용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려 변경의 흔단을 내지 말라.’ 하셨소. 구구한 제가 지존의 뜻으로 왕에게 회답하는 것이니, 왕은 도모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3책 11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07면

·        【분류】

외교-명(明)


柳雲回自遼東, 啓曰: "臣敬蒙差遣, 齎領謝恩進獻禮物馬匹, 四月二十一日, 到遼東, 蒙都司差官赴京奏聞去後, 住經四十二日。 至六月初三日, 欽差行人劉貴篪欽齎聖旨, 前來遼東, 對臣等開讀, 仍欽傳宣諭, 將進獻禮物馬匹, 盡行點數, 交付回還, 竝將到禮部左侍郞張炳書信一紙付臣, 臣欽依收領來了。" 其書曰:

爾者, 遼左使至, 言及朝鮮國王遣人致謝禮至境上, 本部卽時奏至尊, 有云: "朝鮮之國, 限山隔海, 風殊俗異, 天造地設, 本東夷之國。 然與中國相邇, 王者有道, 修睦隣之好, 禮尙往來, 撙節時宜而至, 是其當也。 今來云稱行謝禮, 未知中國以何恩意, 及於朝鮮, 致行謝禮? 況非時節, 禮不可納。 若欲妥生民於市野, 不必頻勞使者, 往復艱辛, 以靜治國, 毋生邊釁。" 區區以至尊之至意答王, 王其圖之。

 

태조실록 12권, 태조 6년 12월 28일 丙午 1번째기사 1397년 명 홍무(洪武) 30년

표·전문의 계본을 쓴 예조 전서 조서를 보내며 중국 예부 상서에게 회답한 글

국역

원문

.원본 보기

임금이 최호(崔浩)가 싸 가지고 온 글에 의하여 통사(通事) 곽해룡(郭海龍)을 보내어 계본(啓本)을 쓴 사람 예조 전서(禮曹典書) 조서(曺庶)를 관송(管送)하여 경사(京師)에 이르게 하고, 인하여 예부 상서(禮部尙書) 정기(鄭沂)에게 회답하였다.

"타각부(打角夫) 최호(崔浩)가 경사에서 돌아오는 편에 유서(諭書)를 받들어 받아 두세 번 읽었으니 놀랍고 황공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홍무(洪武) 25년부터 나라를 관장(管掌)한 이래, 무릇 천추절(千秋節)을 만나면 다만 예전의 자양(字樣)에 의하였는데, 성은(聖恩)을 입어 작은 나라를 보전하여 지켰으니, 위를 공경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겠습니까? 저번에 수재(秀才)가 표전(表箋)을 지은 것의 차오(差誤)로 인하여 지금까지 항상 황공하고 근심하옵는데, 어찌 하루라도 생각에 잊었겠습니까마는, 이번의 계본도 자양(字樣)이 차오되었으니, 이것이 첫째는 내가 어리석고 졸한 까닭이요, 둘째는 소방(小邦) 사람의 언어(言語)·자음(字音)이 중국과 같지 않고, 또 조정 문자(文字)의 체식(體式)과 회피하는 자양을 알지 못하여 이런 차오를 가져온 것이니, 하정(下情)에 부끄럽고 두려운 것을 어찌 이루 말하겠습니까? 삼가 통사 곽해룡을 시켜 계본을 쓴 사람 조서(曺庶)를 관송하여 경사(京師)에 가게 하오나, 다시 후래의 문서가 또 차오를 이룰까 두려우니, 엎드려 바라건대, 불쌍히 생각하여 주문(奏聞)하여 응당 회피하여야 할 자양을 소방(小邦)에 나누어 주시어 영구히 준수하게 하소서. 또 3년에 한 차례씩 조공하라고 유시하셨으나, 생각하옵건대, 소방(小邦)은 중국으로 가기에 멀지 않으니, 만일 다른 해외 번방(藩邦)에 비교하여 3년에 한 번 조공한다면 신자(臣子) 된 마음에 스스로 편안할 수 없으니, 다시 바라옵건대, 긍찰(矜察)하여 아울러 아뢰어 전과 같이 하정(賀正)·성절(聖節)·천추(千秋) 때마다 조공하도록 허락하여 주시면 대단히 다행하겠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1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113면

·        【분류】

외교-명(明)


○丙午/上以崔浩齎來書, 遣通事郭海龍, 管送寫啓本人禮曹典書曺庶赴京, 仍復書于禮部尙書鄭沂曰:

打角夫崔浩回自京師奉承書諭, 讀之再三, 驚惶無措。 自洪武二十五年管國以來, 凡遇千秋節, 只依舊時字樣, 欽蒙聖恩, 保守小國, 敬上之心, 不敢小怠。 先此, 爲因秀才, 做表箋差了, 到如今常常惶恐憂慮, 何嘗一日暫忘于懷! 今啓本又差字樣, 此乃一是某愚拙, 二是小邦人言語字音, 與中國不同, 又不知朝廷文字體式及回避字樣, 致此差謬。 下情慙懼, 何可勝言! 謹差通事郭海龍, 管送寫啓本人曺庶赴京。 復恐後來文書又致差誤, 伏乞矜照聞奏, 將應合回避字樣, 頒與小邦, 俾永遵守。 幷諭三年一次朝貢, 竊念小邦, 去中國不遠, 若比他海外藩邦, 三年一次朝貢, 在臣子之心, 不敢自安。 更乞矜察幷聞, 許令依舊賀正聖節千秋, 一年三次朝貢, 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