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0. 23:20ㆍ이성계의 명조선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별책 4 94권 『韓民』(중문판) > 『韓民』 > 『韓民』 제1기 제2호
제목 | 『韓民』 제1기 제2호 |
『韓民』 제1기 제2호
.....그러나 李成桂에 의해 왜구들은 한국에서 쫓겨나고, 이성계는 그 공으로 왕으로 추대되었다.
명나라를 막아내고 왜구를 무찔러 커다란 공훈을 세운 崔瑩 장군은 목을 베어버렸다.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 논사류 1 / 논사(論史) - 한국
삼한(三韓)의 시말(始末)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35)
삼한(三韓)이란 우리나라의 삼남(三南 충청 남북도ㆍ전라 남북도ㆍ경상 남북도)의 옛 호칭인데, 요동(遼東)도 삼한이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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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22권 / 경사문(經史門)
북연(北燕) 모용운(慕容雲)은 또 성이 고씨(高氏)라고도 하였다. 동사(東史)에, “그의 아버지 고화(高和)는 본래 고려의 지속(支屬)으로서 스스로 고양씨(高陽氏)의 후예(後裔)라고 했다.” 하였다.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 17년(407)에 사신을 보내 종족(宗族)이라는 내용을 이야기했고, 운(雲)도 역시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답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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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연행록 제2권 / 무오년(1798, 정조 22) 12월[7일-22일]
마을 북편에 절이 있으니, 이름은 해비사라. 금(金) 나라 해서가 지은 것이요, 명 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중수(重修)하였으며, 법당(法堂)을 ‘사대천신전(四大天神殿)’이라 하고, 뜰에 비(碑)가 하나 있으니, 비를 지은 사람의 성명은 손방이요, 비에 기록하여 말하되,
‘이는 본래 삼한(三韓) 지방이라.’
하였으니, 삼한은 곧 기자조선(箕子朝鮮) 말년에 나라가 셋으로 나뉘어 마한(馬韓)과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이라 칭하니, 이것이 삼한(三韓)이라. 여기서 압록강(鴨綠江)이 1500리 되니, 그때 조선의 북원(北原)이 넓었음을 알러라.
승정원일기 > 인조 > 인조 14년 병자 > 9월 13일 > 최종정보
《동강기사(東江記事)》를 봉입(捧入)하였는데 그 가운데 동쪽으로 조선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삼한을 바라본다는 말이 있으니, 이로 보건대 요동(遼東)과 광녕(廣寧) 지역을 삼한이라 칭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였습니다. 중조(中朝) 사람들이 이미 요동과 광녕 지역을 삼한이라고 하였으니
승정원일기 > 인조 > 인조 14년 병자 > 9월 16일 > 최종정보
인조 14년 병자(1636) 9월 16일(정사) 맑음
제나라 군사를 이기고 나서는 - 원문 빠짐 - 황지(黃池)에서 동맹을 맺어 뜻하는 바를 다 이루었지만 월나라 군대는 이미 오나라에 쳐들어왔습니다. - 원문 빠짐 - 오늘날 노적(奴賊)이 삼한(三韓)을 다 차지하여 - 원문 빠짐 - 오합지졸은 - 원문 빠짐 - 원래 많지 않고 또 땅이 넓으면 군사가 분산되어 - 원문 빠짐 - 세력이 비등하니 자기들끼리 서로 싸워 - 원문 빠짐 - 다시 금소석(金召石)과 백양골(白羊骨) 등 여러 추장을 얻어 - 원문 빠짐 - 두 진영(鎭營)의 병마(兵馬)를 기회를 틈타 공격하여 - 원문 빠짐 - 마치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내 서리가 내리는 것과 같게 될 것입니다. -
선조실록 36권, 선조 26년 3월 20일 乙亥 7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유황상과 원황이 조선 정부에 중국군의 상황과 진군에 대해 보낸 자문
지금 평양을 이기고 황주를 되찾고 개성을 무찌르고 벽제에서 싸우고 함경도에서 몰아내기를 마치 바람이 옅은 안개를 쫓고 불이 마른 풀을 태우듯이 하여 삼한 백제(三韓百濟)가 이미 태평을 되찾고 창도 황성(蒼島黃城)이 옛터를 회복하였으며, 앞뒤로 벤 왜적의 머리가 2천여 급이고 말과 병기 갑옷과 안장 따위의 노획물이 그 수를 셀 수 없는 등, 두 달이 채 못 되어 큰 승리를 거둔 것이 네 번입니다.
조선왕조실록 > 광해군일기 > 광해군 12년 경신 > 11월 21일 > 최종정보
광해군 12년 경신(1620) 11월 21일(갑오)
12-11-21[02] 황제의 조선 국왕에 대한 칙유
오랑캐가 후퇴를 하면 혹 그들의 태만한 틈을 노리기도 하고 혹은 돌아가는 부대를 요격도 하여 노루처럼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하라. 공격과 수비를 때에 따라 하고 기병[奇]도 쓰고 정(正)도 쓰고 하여 사나운 오랑캐들을 섬멸함으로써 국치(國恥)를 깨끗이 씻으라. 그리하여 삼한(三韓)을 편안케 만들고 백제(百濟)를 다시 편안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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