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7. 21:14ㆍ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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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보선생집(成謹甫先生集) 제2권 / 명(銘)
팔준도명(八駿圖銘) 병인(幷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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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추위가 다 가고 나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오고, 거센 물살 아래에는 반드시 깊은 못이 있게 마련이듯이 치세와 난세가 서로 이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 고려(高麗)의 국운이 튼튼하지 못하여 천명이 이미 떠나니 상하가 모두 기강이 해이되어 이리와 같은 자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문신은 게으르고 무신은 방탕하여 전란이 끊이지 않으니, 무지한 백성들이 도탄에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천하의 주권을 잃어버리매 조계박압(操鷄搏鴨)의 큰 정치도 장차 없어질 판이고, 우(禹) 임금이 아니었으면 모두 물고기가 되었을 터인데 제세안민(濟世安民)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겠습니까.
오직 우리 태조 강헌 대왕(太祖康獻大王)께서 성인이 천 년에 한 번 태어나는 시기에 맞추었고 상성(上聖)의 자질까지 받으셨으니, 실로 하늘이 낳은 덕이요 신과 함께 모의하신 것입니다. 한번 크게 노하여 몹쓸 중(신돈(辛旽)을 가리킴)을 몰아내어 사직(社稷)은 빈터가 되지 않았으며, 만전(萬全)의 계획을 세워 홍건적(紅巾賊)을 섬멸하니 종묘는 예전 모습대로 되었습니다. 나하추(納哈出)를 내몰고 올라(兀剌)를 정벌한 때는 태산(泰山)으로 계란을 누르듯이 쉬웠고 지리산(智異山)에서 싸우고 운봉(雲峯)에서 승첩하였으니 거센 바람이 어찌 낙엽을 쓸기 어려웠겠습니까. 토동(兔洞)에 말 안장을 푸니 해로운 기운은 바다 밖으로 사라지고 압록강(鴨綠江)에서 말고삐를 돌리니 대의(大義)가 해와 별보다 빛났습니다. 수십 회를 출전하여 한 고조(漢高祖)처럼 발가락의 상처를 매만진 것이 몇 번이며, 천만 리를 달렸으니 촉 선주(蜀先主)같이 넓적다리의 살이 빠졌습니다. 남쪽을 치면 북쪽에서 빨리 와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였으며, 대국은 두려워하고 소국은 그 은택을 사모하여 가는 곳마다 서로 경하하니 정말 그 공훈(功勳)을 크게 이루었습니다.
오백 년 만에 성인(聖人)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칠덕(七德)이 이미 오백 년을 대신하였고, 삼천의 암말 중에 신물(神物)이 나온다고 하였는데 한결같은 마음이 삼천에 맞았더이다. 달리는 발굽은 법도에 맞고 완연히 부드러운 마음은 주인의 뜻에 순종하였더이다. 마음이 간절하여 진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니, 지혜가 익숙하여 잃었던 길을 도로 찾았더이다. 오늘의 곤액(困厄)은 노력으로 풀 수 있는 만큼, 내 채찍 가리키는 곳은 어디든 건너가도다. 생사(生死)를 의탁함이 가볍지 않아서 문무(文武)의 공이 더욱 드러났더이다. 수레 끄는 소리가 주(周)나라 원마(騵馬)와 맞먹을 만한데, 말이 크고 살진 모양이 어찌 노(魯)나라 수말에 뒤졌겠습니까. 태을(太乙)의 정기를 모았으니 하늘이 보배를 아끼지 않았던 것을 알겠고, 왕위에 때맞추어 오르니 무궁한 곤도(坤道)의 안정(安貞)에 부합하였습니다.
활과 화살을 활집에 거둬들이고 신음하는 소리를 노래로 변하게 하였으며, 산과 물길로 남만(南蠻)까지 통하고 북쪽 풍속에 관대(冠帶)를 쓰게 하였습니다. 만세의 선정(善政)을 열었으니 하늘의 아름다움이 진실로 오늘에 이르렀고, 삼한(三韓)을 안정시켜 근심을 없애니 백성들이 자족하여 그것이 임금의 덕인 것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록 뛰어난 무덕(武德)으로 사방을 정벌한 위엄이기도 하나, 발빠른 명마들이 잘 달려 준 효과를 얻은 것이기도 합니다. 미물이라 하여 어찌 무지하다고만 하겠습니까. 아마도 시기를 기다린 듯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주상 전하께서 하늘을 본받으신 총명함으로 선조의 유업을 계승하여 크게 드러내시고서 중대하고 어려운 일을 몸소 겪으면서 후손을 계도하여 어긋남이 없게 할 것을 생각하시며, 왕위에 올라 예법을 시행함에 대를 이을 것을 생각하여 잊지 못하셨습니다. 우러러 국가의 기반을 다지던 노고를 생각함에 매번 갱장(羹墻)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제왕(帝王)이 흥기할 수 있는 운세라 할지라도 그 공은 홀로 성공시키기 어려운 일이어서 사람들의 협력이 있고 나서야 일을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대려(帶礪)의 맹세가 이미 깊었고 개유(蓋帷)의 은혜도 융성하였습니다. 여러 공신은 이미 운대(雲臺)에 화상(畫像)을 그렸으나 팔준(八駿)은 아직도 소릉(昭陵)에 진열한 것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윤음(綸音)을 내리어 그림을 그리게 하여, 호두(虎頭 진(晉)나라 화가 고개지(顧愷之)의 자(字))와 같은 화가가 윗도리를 벗어젖히고 그리기 시작하니 용마들이 몰려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줄줄 붉은 땀을 흘리니 전장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완연하고 화살이 흰 살에 박혔으니 격렬하게 전쟁을 치른 모습이 늠름하였습니다. 손놀림에 따라 죽은 말의 골격이 다시 살아났고, 눈여겨보면 통치하기 어려움을 경계한 것이니, 여러 자손들이 한가한 때에 이 〈팔준도〉를 보고서 부귀를 말 위에서 얻은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겹방석 위에 앉게 되면 바람에 빗질하고 비에 목욕하던 시절을 상상하고, 여덟 가지 진미(珍味)를 대하면 콩죽과 보리밥 먹던 때를 생각하여 반우(盤盂)에 새긴 잠명(箴銘)에 견주어 보고 산수(山水)를 그린 그림으로 바꾸어 보지 않는다면, 대동(大東)의 〈팔준도〉 한 폭이 마땅히 《시경(詩經)》의 〈빈풍(豳風)〉 칠월편(七月篇)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임을 알겠으니, 아, 아름답습니다. 날아든 새가 수레채에 멈춘 일도 있고, 돌출한 쥐 때문에 수레를 망친 일도 있더이다.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서왕모(西王母)를 맞았을 때에 수레바퀴 자국은 온 누리에 가득하였고, 한(漢)나라가 이사성(貳師城)을 포위하였을 때 군량을 실은 나는 듯한 수레가 국경 밖에 이른 적도 있었습니다. 말이 많다고 믿었던 진(晉)나라도 위험을 면할 수 없었으며, 말이 4000필 되는 제(齊)나라 경공(景公)도 덕이 있다는 칭송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혹은 외물(外物)에 뜻을 빼앗겨 덕에 누를 끼쳤고 혹은 백성을 괴롭혀서 나라를 병들게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제왕(帝王)의 법을 폐기하여 뒷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아, 당(唐)나라에 충성하고 수(隋)나라에 아첨한 것은 사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등용하면 호랑이처럼 위용이 있고 등용하지 않으면 쥐처럼 숨는 사물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겠습니까. 후대의 왕이 이 그림을 보시고 황조(皇朝)를 법으로 삼아 계승할 것을 생각하시고 몇몇 임금을 경계 삼아 날마다 이것을 생각하신다면 실로 우리 조선 만대의 복이 될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선조(先祖)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지극한 효도이며, 후세(後世)에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크나큰 교훈이다.” 하였으며, 또 “훌륭한 점이 있는데도 알지 못하면 현명하지 못한 것이며, 알면서도 후세에 전하지 않으면 어질지 못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선조를 공경함으로 존중하시고 은혜를 미물에까지 미치셨으며, 일컫던 바를 아름답게 여기시고 또 행한 일을 아름답게 생각하여 오늘날 사모하는 회포를 담아 가없는 아름다움에 또 한없는 근심을 후손들이 지켜 갈 법규로 삼으시니, 효도와 공경이 아울러 융성하고 현명하심과 인자하심이 두루 갖추어지셨습니다. 가송(歌頌)을 지을 때가 바로 이때인데, 찬양하는 말씀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신은 기예(技藝)가 마치 검(黔) 땅의 나귀와 같이 짧고 학문은 ‘노(魯)’ 자와 ‘어(魚)’ 자를 구별할 수 없사오니, 연대(燕臺)에서 현명한 사람을 구하는데 천 리를 달릴 재주가 못 되는 것이 부끄럽고, 한(漢)나라 금마문(金馬門)에서 조서를 기다리다가 잘못하여 일고(一顧)의 가치를 더하였습니다. 어리석고 둔하여 비록 멀리 이를 자격은 없으나 보잘것없는 재주나마 그 능력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물며 성스러운 공을 널리 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직분이니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다하여 성상의 효성을 기술하고 준마의 덕을 만분의 일이라도 노래하여 크나큰 아름다움을 미래에 전파하려 합니다.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명(銘)을 올립니다.
횡운골이여 길 잘 들고 건장하고 / 橫雲鶻閑且佶
피땀은 만리에 골격은 천금이라 / 萬里血千金骨
달릴 때의 빠른 모습 바람 같다고나 할까 / 驟度略彴若滅沒
네 발굽을 높이 들어도 헛디딤이 없어라 / 超攄四足無一蹶
우리 태조께서 즐풍목우(櫛風沐雨)로 고생하실 때에 / 我祖辛勤沐以櫛
위험한 고비를 몇 번이나 같이 넘겼더냐 / 乘危幾時同倉卒
우리 기반을 다져 오늘이 있게 한 공은 / 基我丕丕有今日
횡운골의 공로가 가장 크도다 / 橫雲鶻功第一
유린청이여 체구가 봉우리마냥 우뚝하니 / 游麟靑體峯生
땅과 같이 묵직하고 동과 같이 영민하여라 / 地之類銅之英
진진한 어진 성품 성명의 상서가 되고 / 振振之仁瑞聖明
나이가 들수록 기예도 노련미가 넘치네 / 齒歷延長藝老成
사방의 간악한 무리들 제압하여 나라가 편안하니 / 四踣艱頑邦以寧
이십일 년 그 영기가 빛이 나도다 / 二十一祀耀厥靈
죽어서도 돌구유 있어 웅대한 이름 전하니 / 死有石槽留雄名
유린청의 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 游麟靑德焉稱
추풍오여 호국에서 들여왔거늘 / 追風烏來自胡
나라의 보배로 천하에 둘도 없어라 / 域中寶天下無
소리 타고 해를 좇아 허공에 둥실 오르니 / 乘聲逐日騰半虛
단번에 임금님 은총을 받고 말았네 / 一見持荷乾心紆
험난을 겪으면서 난을 구제하기를 사람과 함께 하니 / 入險濟難與人俱
신무를 도와 온 누리를 맑게 했도다 / 贊揚神武淸坤隅
소릉 백제의 공적 같다고 하겠으니 / 昭陵白帝功爲徒
추풍오의 생전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도다 / 追風烏生應圖
발전자여 용이런가 말이런가 / 發電赭龍耶馬
기예와 그 무용 짝할 자가 적도다 / 藝之武匹也寡
그림자 돌아보며 머리 저어 한번 우니 / 顧影長鳴脰一騀
기북의 수많은 말들 재주 모두 아래로다 / 冀北萬匹材盡下
빠른 걸음 법에 맞아 조금도 어김없으니 / 馳驟合矩無偏頗
채찍 하나 지휘로 사직을 안정시켰도다 / 一鞭攸指定稷社
우리나라 억만년에 길이 편안할지니 / 大東億載長帖妥
발전자는 아, 씩씩한 말이로다 / 發電赭吁駉者
용등자여 천마의 새끼런가 / 龍騰紫天馬子
번개 같은 눈동자에 통 같은 귀로다 / 散電精揷筩耳
달 가운데 영기 받고 황하 기운 모아서 / 稟靈月窟河聚氣
우리에게 진룡을 선사하니 변화가 귀신 같네 / 貺我眞龍化若鬼
오래도록 전장에서 생사를 의탁하여 / 久矣臨陣托生死
가로놓인 진흙 땅도 마음이 태연토다 / 容與一迣泥淖地
공로는 적로마가 단수를 뛰어넘은 것과 같으니 / 功符的盧躍檀水
용등자는 만년토록 빛나리라 / 龍騰紫光萬祀
응상백이여 힘만 일컫지 않노라 / 凝霜白匪稱力
크기도 하려니와 굳세고도 순하도다 / 大有顒剛且淑
압록강은 넘실넘실 기슭은 천 길인데 / 鴨水湯湯岸千尺
깃 단 살 날아갈 때 붉은 활이 번쩍인다 / 白羽晣晣彤弓赫
밤을 비추는 광경이 휘영청 밝은데 / 照夜光景輝相燭
나부끼는 정의의 깃발 발굽을 따라가네 / 央央義旆隨踠足
한번 회군으로 삼한의 백성들 뼈에 살을 붙여 주니 / 一回三韓骨而肉
응상백이여 싫어함이 없도다 / 凝霜白而無斁
사자황이여 끝없이 달렸으니 / 獅子黃行無疆
승상은 현명하고 장군은 강하였네 / 丞相明將軍强
하늘이 기운을 모아 상서를 내려 주니 / 天一翕聚呈厥祥
용마가 바다에서 머리 불쑥 내밀었네 / 龍媒闖然海之央
두류산 바위마다 도적의 기세가 등등한데 / 頭流巖巖賊氣張
한번 뛰어 떨친 무공 칼빛 따라 번쩍였네 / 一超奮武隨劍光
산만큼 베어 바친 수급을 앉아서 보다가 / 坐見獻級如崇岡
사자황의 장한 점을 생각하노라 / 獅子黃思所臧
유현표여 울음소리 범과 같구나 / 維玄豹闞以虓
오랫동안 대적할 자 없었으니 누구와 겨룰까 / 久無敵誰與校
방성의 정기 모여 잠저에 비치더니 / 房星摛精潛邸耀
준마를 잉태하여 발 빠른 말을 낳았네 / 胚胎逸蹄殊踸踔
토동에 안장 풀고 위대한 공을 세우니 / 解鞍兔洞輸奇效
섬오랑캐의 배들이 돌아가지 못했네 / 島夷百艘無回櫂
단청으로 그린 화상 늠름도 하다 / 畫上丹靑凜惟肖
유현표의 날랜 그 모습이 / 維玄豹之蹻蹻
[주-D001] 조계박압(操鷄搏鴨) :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흥한다는 뜻이다. 저잣거리에서 이인(異人)이 고경(古鏡)을 팔고 있기에 당(唐)나라 상인 왕창근(王昌瑾)이 구입해서 보니 그 거울에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에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잡는다.〔先操雞後搏鴨〕”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먼저 계림을 장악한 뒤에 영토를 압록강까지 넓힌다는 뜻으로, 고려의 왕건이 신라를 멸하고 새 왕조를 세우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사략(朝鮮史略)》 권4와 《어정전당시(御定全唐詩)》 권875 〈고려경문(高麗鏡文)〉에 이 내용이 실려 있다.
[주-D002] 한 고조(漢高祖)처럼 …… 번이며 :
유방이 적군의 화살을 가슴에 맞고도 “오랑캐가 나의 발가락을 맞혔다.”라고 하여 군사들을 안심시켰던 일을 인용함으로써, 전투에 직접 출전하여 수많은 상처를 입은 것을 묘사한 말이다.
[주-D003] 촉 선주(蜀先主)같이 …… 빠졌습니다 :
비육지탄(脾肉之歎)이란 고사를 배경 삼아 한 말로, 수만 리를 말을 타고 달리다 보니, 허벅지의 살이 다 빠졌다는 표현이다.
[주-D004] 칠덕(七德) :
무공(武功)에는 일곱 가지 덕행(德行)이 있는데, 금포(禁暴), 즙병(戢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豐財)이다. 《春秋左氏傳 宣公12年》
[주-D005] 갱장(羹墻) :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요(堯) 임금이 별세한 후에 순(舜) 임금이 삼 년 동안 앙모(仰慕)하니, 앉아 있을 때에는 담〔墻〕에서 요 임금이 보이고 밥을 먹을 때면 국〔羹〕에 요 임금의 얼굴이 비쳤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로 이 말은 부모를 사모하거나 훌륭한 분을 경모하는 말로 쓰였다.
[주-D006] 대려(帶礪)의 맹세 :
태산이 달아서 숫돌만 하고 황하가 줄어서 띠만큼 작아질 때까지 영구히 변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말한다.
[주-D007] 개유(蓋帷)의 은혜 :
공신이 타는 수레에 휘장을 덮도록 하는 특별한 우대를 뜻한다.
[주-D008] 운대(雲臺) :
후한(後漢) 시대에 낙양(洛陽) 남쪽에 있던 대각(臺閣)의 이름이다. 명제(明帝) 당시에 그동안 공적이 탁월한 28명의 장수들의 모습을 초상으로 그려서 이곳에 모셔 두고 그들의 공적을 기렸다 한다. 《後漢書 卷22 朱祐列傳》
[주-D009] 소릉(昭陵)에 진열한 것 :
소릉은 당(唐)나라 태종(太宗)의 무덤인데, 그 앞에 태종이 창업할 당시에 탔던 여섯 필의 준마가 부조(浮雕)되어 있다.
[주-D010] 반우(盤盂)에 새긴 잠명(箴銘) :
반우는 물건을 담는 그릇이며, 잠명은 경계하는 글이다. 고대에는 이 그릇에다 글을 새기거나 공을 기록하기도 하고 간혹 경계하는 글을 새겨서 스스로 경계를 삼는 데 이용하였다. 이를테면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반명(盤銘)과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大學章句 傳2章》
[주-D011] 빈풍(豳風) 칠월편(七月篇) :
〈빈풍〉은, 주공(周公)이 총재(冢宰)가 되어 섭정(攝政)을 하면서 후직(后稷)과 공류(公劉)의 교화를 한 편의 시로 엮어 성왕(成王)을 경계하고 〈빈풍〉이라고 하였는데, 후세 사람들이 주공이 지은 시와 주공을 위하여 지은 시를 여기에 붙여 한 편으로 만든 것이다. 칠월편은, 성왕이 농사에 대한 어려움을 모를까 봐서 후직과 공류의 교화를 서술하여 교육 차원에서 아침저녁으로 악관을 시켜 외우게 하였던 주공의 작품으로 8장 88구에 달한다.
[주-D012] 날아든 …… 있고 :
원문의 형(衡)은 수레의 명에 앞에 가로놓인 나무 즉, 수레채를 말한다. 이선(李善)이 《일주서(逸周書)》를 인용하여 주(注)를 내기를 “주 목왕(周穆王)이 사냥을 나갔을 때 비둘기를 닮은 검은 새 한 마리가 수레채에 날아 앉자, 마부가 채찍으로 쳐서 죽였는데 말이 놀라는 바람에 수레가 넘어져 목왕이 왼쪽 다리를 다친 일이 있다.” 하였다. 《文選 卷14 赭白馬賦》
[주-D013] 돌출한 …… 있더이다 :
원문의 ‘서(鼠)’ 자는 전거(典據)에 ‘시(豕)’로 되어 있으나, 대의에는 관계가 없으므로 바로잡지 않았다. 왕자 오기(於期)가 처음 수레를 몰고 나갈 때에 돼지 한 마리가 도랑에 엎드려 있었는데, 고삐를 가지런히 하여 채찍을 가하자, 그 돼지가 도랑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말이 놀라서 수레가 부서진 일이 있었다. 그 후 이 ‘출시패어(出豕敗御)’란 말은 예기치 않았던 갑작스러운 일로 실패하게 된 것을 비유한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韓非子 卷14 外儲說右下》
[주-D014] 주(周)나라 …… 때 :
주나라 목왕이 여덟 필의 준마와 마부 조보(造父)를 얻어 천하를 두루 유람하다가 곤륜산(崑崙山)의 요지(瑤池)에서 신선 서왕모를 만나 즐거워서 돌아갈 줄을 몰랐다고 한다. 《史略 卷1》
[주-D015] 이사성(貳師城) :
한나라 당시 서역(西域) 대완국(大宛國)의 지명으로, 이곳에서 양마(良馬)가 산출되었다. 《사기(史記)》 권123 〈대완열전〉에 “이사성에 좋은 말이 나는데 감추어 두고 한나라 사신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주-D016] 등용하면 …… 숨는 :
인정을 받아 중용될 때에는 그 위엄이 마치 호랑이와 같다가 쓰이지 않게 되면 움츠리고 있는 것이 마치 쥐와 같다는 말로, 동방삭(東方朔)이 지은 〈답객난(答客難)〉이란 글에 “등용하면 호랑이가 되고 등용하지 않으면 쥐가 된다.〔用之則爲虎 不用則爲鼠〕”라고 하였다. 《文選 卷45 設論》
[주-D017] 기예(技藝)가 …… 짧고 :
검 땅의 나귀는 당(唐)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라는 글에 나오는 우화(寓話)를 예로 든 것이다. 그 글에 “검 땅에 나귀가 없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이 배에 나귀 한 마리를 싣고 갔으나 별로 쓸모가 없어서 산에 풀어 주었다. 호랑이는 처음에 이 나귀를 신기하게 여겼고 울음소리가 대단하여 멀리 도망가기까지 하였다. 그 뒤 호랑이가 집요하게 접근을 하자, 나귀는 화가 나서 뒷발질을 하였다. 호랑이는 그제서야 나귀의 재능이 울음소리를 내는 것과 뒷발질을 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 자리에서 잡아먹고 말았다.” 하였다. 이 고사는 주로 별 볼 일 없는 재능을 가진 자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한다.
[주-D018] 연대(燕臺)에서 …… 부끄럽고 :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부국강병을 도모하려고 현자를 초빙할 때 곽외(郭隗) 선생을 찾아가 묻자 그가 답하기를 “옛날 어떤 임금이 천 금(金)으로 천리마를 구하려고 했는데 3년이 되어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연인(涓人)이 자기가 구하겠다고 하여 석 달 만에 죽은 천리마를 오백 금에 구해 왔습니다. 왕이 화를 내자 그가 하는 말이 ‘죽은 것도 오백 금에 구했으니 하물며 산 것은 오죽하겠습니까. 곧 천리마가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1년도 못 되어 세 마리나 구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현자를 초빙하려고 하신다면 저부터 등용하십시오. 그러면 현자들이 천 리를 멀다 않고 찾아올 것입니다.” 하여 마침내 소왕이 곽외를 위하여 집을 짓고 스승으로 섬겼다. 《戰國策 燕策1》
[주-D019] 한(漢)나라 …… 더하였습니다 :
한나라 때 선발된 선비들이 금마문에서 천자의 발탁하는 명을 기다렸다는 고사와 말의 상을 잘 보는 백락(伯樂)이 한번 돌아보면 말의 가격이 열 배나 올라갔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는 부족한 자신의 처지에 반하여 왕의 지우(知遇)를 만났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주-D020] 소릉(昭陵) 백제(白帝) :
소릉은 당 태종의 능호이고 백제는 당 태종이 타던 말의 이름으로 원명은 백제오(白蹄烏)이다.
[주-D021] 적로마(的盧馬)가 …… 것 :
적로마는 유비가 타던 명마이며, 단계(檀溪)는 유비가 유표(劉表)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적로마를 타고 건너가서 목숨을 건졌던 물 이름이다. 《三國志 卷33 蜀書 先主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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