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5. 20:56ㆍ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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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환봉사 / 올리려던 16조의 상소[擬上十六條疏]
사졸의 선발[士卒之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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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들으니, 중국은 사방에 성이 바둑돌처럼 널리고 별같이 흩어져 있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나 능히 굳게 보장되어 염려 없이 만세에 전할 수 있는 것은 천하의 백성을 혼합하여 사대부 외에는 농공(農工)이 아니면 군인이고, 그 농공이 생산한 것은 거의 군사를 양성하는 데에 쓰이기 때문입니다.
삼한(三韓)이 정립(鼎立)했을 때에는 각자 서로 침벌(侵伐)했을 뿐 아니라 일본(日本)과 말갈(靺鞨)이 번갈아 침입하여 해마다 전망(戰亡)한 사졸(士卒)이 걸핏하면 만 명에 가까웠으되, 거의 죽어가다가 다시 일어난 것은 노비(奴婢)의 법이 세상에 널리 퍼지지 않아 온 땅의 백성들이 모두 상(上)께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고려 이후에는 삼한을 통합하였으니 마땅히 군사가 많고 힘이 강해서 어디를 가나 이기지 못함이 없어야 할 것인데도 움직이면 문득 패하여 마침내 떨치지 못한 것은, 실로 노비가 점점 많아지고 승도(僧徒)가 날로 늘어나 상께 쓰여짐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선에 와서는 군역(軍役)이 가장 괴로워 백성들이 이겨 낼 수 없으므로 아들을 가진 사람은 중 되기를 허락하지 않으면 천비(賤婢)에게 장가 보내며, 딸을 둔 사람은 천노(賤奴)에게 시집보내고 값을 받아 일족(一族)의 침해를 면하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내수사(內需司)의 종의 경우는 국가에서 특별히 그 호(戶)를 보호하게 되므로 잔약한 백성들이 더욱 거기에 소속되기를 다툽니다. 지금 살 만한 땅의 전답이 개간되지 않은 것이 아니요 호수가 증가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새로 개간한 밭과 새로 세워진 집을 보면 모두 양반이나 사노(私奴)와 내노(內奴)의 전호(田戶)이고 양인(良人)의 전호는 날로 줄어들어 정군(正軍)의 수가 20만도 못 된다고 하니, 비록 호솔(戶率)을 모두 계산하더라도 40만이 못 될 것입니다.
아! 이 수십 만이라는 것이 모두 정병(精兵)이라 하더라도, 가령 전조(前朝)의 말에 왜선(倭船)이 하삼도(下三道)와 경기ㆍ황해에 운집(雲集)하고, 몽고의 홍건적(紅巾賊)이 양계(兩界)에서 봉기(蜂起)하듯 한다면 이 20만으로는 능히 분담하여 방어하지 못할 것이 명백합니다. 더구나 20만 가운데에 실로 쓸 만한 사람은 천 명도 못 되지 않습니까? 아 ! 편안한 나머지 사단과 재앙이 곁에서 생기는 것인데, 변란을 제어할 준비가 허술하고 약함이 이와 같으니, 전하께서 만일 만기(萬機)의 여가에 생각이 종사(宗社) 만세의 대책에 미치신다면, 비록 중하기가 몸에 관계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응당 아까울 것이 없으실 것입니다. 더구나 중함이 몸에 비할 바가 아니지 않습니까? 연전에 비록 노비가 너무 많다는 의논이 있었으나 각기 사정에 끌려 그 근본을 캐지 못하고 말았으니, 신은 참으로 절통하고 애석하게 여깁니다.
중국의 제도는 비록 경상(卿相)일지라도 감히 사인(私人) 수십 명을 두지 못하는데, 우리나라는 천얼(賤孽)의 무리라도 혹은 사노(私奴)를 100명씩이나 둔 자가 있으며, 훈귀(勳貴)의 집에는 천 명도 넘는 수가 있으나, 국세(國勢)가 고단하고 약함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국가를 위해서 충성을 바칠 생각을 하지 아니합니다. 지금 만일 성상께서 먼저 종 두는 것을 제한하시어 내수사의 노비를 각각 천 명씩만 남기시고 그 건장한 자는 뽑아서 군정(軍丁)에 보충하시며, 공경(公卿) 이하는 차례로 한계를 정해서 힘 있는 자를 가려 보병(步兵)으로 정하시고, 전토(田土)가 있으되 몸이 고단한 자는 솔정(率丁)으로 정하셔서, 사람은 누구나 다섯 식구가 된 연후라야 보[保役]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사노가 된 사람은 전토를 가진 자가 적기 때문이다. 10년은 양성하시고 10년은 가르치신다면 20년 뒤에는 100만의 정병(精兵)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신의 계책처럼 하시고, 또 현량한 순무(巡撫)를 선택하시어 장래에 장수 될 사람을 두루 가르쳐 안정을 기하게 하신다면 중도(中道 나라의 중심부)의 군인이 멀리 수자리 서는 고통이 점차 제거되고 남변(南邊)과 북새(北塞) 또한 영구히 염려 없을 것을 보장하게 될 것인데, 어찌 왜인(倭人)이나 야인(野人)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예부터 이르기를, “인(仁)한 사람은 적이 없다.”고 하였는데, 인(仁)을 하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지극히 공정하고 사(私)가 없으면 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士卒之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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