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가섭필 하〔八家涉筆下〕

2022. 9. 20. 10:47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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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15 / 잡저(雜著)

팔가섭필 하〔八家涉筆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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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의 문장 6〔老蘇文六〕 곡비론

〈곡비론(嚳妃論)〉은 지론이 제법 발라 부녀자의 행실에 보탬이 되니, 노소(老蘇)의 문장 가운데 가장 순정하다. 유 유주(柳柳州 유종원)의 〈팔준도설(八駿圖說)〉 역시 이와 뜻이 같다. 유자(儒者)는 이러한 견식을 지녀서 비속함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나는 우리나라 김씨의 금궤설을 의심한 적이 있었으나 증거를 얻지 못했다. 근래 가락인(駕洛人) 김제학(金濟學)이 저술한 《신라세조왕본기(新羅世祖王本紀)》를 보니 힘써 금궤설의 허망함을 변증하였는데 근거가 상세하고 넓어서 매우 일리가 있었다. 나는 그 설을 대략 기록하여서 대아군자(大雅君子 덕과 재학을 갖춘 이)에게 질정하고자 한다. 이것을 본 사람은 지난 설이 얼마나 비루한지 거의 알게 될 것이다.

그 설은 이렇다. 신라 역사 992년간 모두 83인의 김씨 왕이 있었으니, 즉위한 임금은 38인이고 추존된 왕과 영토를 나누어 받은 왕이 45인이다. 신라가 망한 후 나뉘어서 명문 벌열로 현달한 자손 가문이 모두 68가이다. 전 왕조 및 본조가 모두 그 외손이고 우리나라 안에 억만의 인류가 있는데,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세조(世祖 김알지의 존호)를 조상으로 한다. 그러한즉 왕의 성덕(盛德)과 만복(萬福)이 유구하고 영원히 남아 천지처럼 오래 가고 일월처럼 빛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금궤설은 정상에서 벗어나 있고 근거할 것이 없다. 지금까지 1700여 년이 지났으나 허망함을 깨뜨리지 못한 것은 고증할 문헌이 없고 습속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풍속이 원래 기괴한 것을 좋아하고 믿는다. 금궤설은 석탈해(昔脫解 신라의 제4대 왕) 때 나온 것이 아니다. 진흥왕(眞興王 신라의 제24대 왕)에 이르러 대아찬(大阿飡) 거칠부(居漆夫)에게 처음 국사를 편찬하라 명하였다. 그러나 진흥왕 때 오로지 불교의 도만을 숭상하였고 거칠부의 학문은 제해(齊諧 기괴한 이야기) 쪽을 믿어서 “신인의 탄생은 평범한 사람과 다르니, 옛날에 제비 알을 삼키거나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는 기이함과 무지개가 흘러내리는 꿈을 꾸거나 번개가 치는 것을 보고 잉태하는 상서로움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이런 흰 닭이 울거나 금궤가 내려온 일이 반드시 없었다는 것을 어찌 알랴.”라고 하였다. 드디어 국사(國史)에 실어 명백하게 믿을 만한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김수로(金首露)의 금합(金盒) 역시 가공의 설에서 나온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지금까지 독실하게 믿어서, 모두 신라의 김씨는 금궤에서 나왔고 가락국의 김씨는 금합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 김씨가 금천씨(金天氏)에서 처음 나왔다는 것은 모른다.

옛날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의 난리를 평정하고 () 땅에 자여기(玆輿期)를 봉하여 소호(少昊)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21대를 전하여 목공(穆公) 때 초()나라에 병탄되었다. ()나라에 벼슬하는 자손이 있었는데, 태사교(太史)이다.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나라, 제나라, ()나라 사람 수만 명이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와 진한(辰韓)을 세웠는데, 진한이라는 것은 진한(秦韓)이니, 진의 유민이 한() 땅에 거주한다는 의미이다. 거 땅의 후손 가운데 주여(舟輿)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태사교의 현손이었다. 형제 8인이 진을 피해 동쪽으로 와 교남(嶠南 영남)의 성산(星山)에 거주하였는데, 지금의 칠곡부(漆谷府)이다. 스스로 팔거촌간(八莒村干)이라 불렀으니, 팔거라고 한 것은 거 땅의 8족이기 때문이다. 현손 사간대왕(斯干大王)에 이르러 스스로 금천씨의 후손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김씨 성을 쓰기 시작하였고 호칭을 고쳐 가야촌간(伽倻村干)이라 하였다. 가야라는 것은 진한의 속어로 거를 가리키는 말이다. 동방의 김씨는 여기에서 비롯되어, 가락왕 수로 형제, 대가야의 아고(阿古)ㆍ성산왕(星山王)ㆍ고소왕(古小王), 고령가야(古寧伽倻)의 아나왕(阿那王) 및 한기부(韓歧部)의 허루(許婁)ㆍ마제(摩帝) 두 왕과 계림의 세조(世祖) 알지까지 아홉 명의 왕이 이어서 일어났다. 전후로 시기는 같지 않아도 모두 다 사간의 현손이다.

이 때문에 삼국의 옛 기록에 “신라는 본디 소호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성이 김이다.”라고 하였다. 신라 박사 설인선(薛因宣)이 쓴 김유신(金庾信)의 비문에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의 후손이자 소호씨의 후예이며 그 시조인 수로는 신라와 동성이다.”라고 하였다. 신라 박거물(朴居勿)이 짓고 요극일(姚克一)이 쓴 글에 “신라의 조상은 본래 소호씨의 후예이다. 중국으로부터 와서 비롯된 바를 잊지 않았기 때문에 성을 김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신라본기(新羅本紀)》 서문에 역시 “신라인은 스스로 소호씨의 후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성을 김이라 하였다.”라고 하였고 또 “삼국의 선조는 아마도 모두 옛 성인의 후예인가? 어찌 그리 오랫동안 나라를 향유했던가?”라고 하였다. 고려 최해(崔瀣)가 지은 〈수령옹주묘지(壽寧翁主墓誌)〉에 “김씨의 선조는 중국으로부터 왔고 금천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김을 성으로 삼았다. 삼랑사(三郞寺) 비문에 역시 금천씨의 후예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살펴보면, 여러 사람들의 기록에 각기 원용한 증거가 책에 나열되어 있으니 문헌이 부족하다 말할 수 있으랴. 거칠부가 역사를 편찬한 후 금궤설이 거짓에 근거하여 실제로 바뀌어서 온 세상의 눈을 멀게 하였다. 그러나 삼랑이 절을 세운 일은 거칠부의 역사 편찬 후이나 비문에 쓴 글에 특별히 금천만을 말하고 금궤는 말하지 않았으니 거칠부 역사서가 거짓되고 허망하다는 것은 변별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달을 수 있다. - 또 금궤의 분변이 있으나 매우 갖추어져 있고 장황하여 다 기록하지 않는다. -

근세 《충주김씨궁원록(忠州金氏竆源錄)》에 세계를 기록한 것은 더욱 상세하여 시원하게 밝혀준다. 그 설은 이렇다. 위로 소전(少典) - 나라 이름이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임금 이름으로 잘못되어 있다. - ㆍ유웅(有熊) - 역시 나라 이름이다. 소전의 아들이다. - 으로부터 황제ㆍ소호ㆍ구망(苟芒) - 소호의 둘째 아들이다 - ㆍ대업(大業) - 소호의 손자 고요(皐陶)이다 - ㆍ대비(大費) - 고요의 아들 백익(伯益)이다 - ㆍ대렴(大廉)을 거쳐 조속씨(鳥俗氏)의 맹희(孟戱)ㆍ중연(中衍)에 이른다. 중연의 후손에 자여기가 있다. - 중연의 현손으로, 성은 영(嬴) 또는 기(己)이다. - 주 무왕 원년 기묘(己卯)에 처음 거 땅에 봉해져 소호를 제사 지냈다. - 자작(子爵)이다. 지금의 밀주(密州)이다. - 12대를 지나 서기공(庶其公)에 이르렀으니 《춘추》가 시작된 때이다. 목공 때 초나라에 멸망했고 - 역대는 24대, 햇수는 631년이다. - 자손이 나라 이름으로 성을 삼았다. 거교(莒敫)라는 자가 용감하고 힘이 세다고 소문이 났는데 제나라 태사교의 현손이고, 거주여 때 형제 8인이 비로소 동쪽으로 왔다. 그 손자 사간에 이르러 비로소 조상을 따라서 김을 성으로 삼았다. 후손은 나뉘어 가락, 가야, 신라의 시조가 되었다.

또 《춘추좌씨전》, 《사기》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섬(剡), 거(筥)는 성이 영(嬴)이기 때문에 백익이 소호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다. 거는 간혹 성을 기(己)라고 칭하기 때문에 고요가 구망에서 나온 것을 안다. 소전씨의 딸이 염제(炎帝)를 낳았고 아들은 유웅이 되었다. 유웅이 황제를 낳았고 황제 역시 인황(人皇)이라 일컬었다. 그러므로 소전씨의 선조가 옛날 인황에서 나왔음을 안다. 인황은 바로 구주(九州)의 기주(冀州)를 맡은 자이다. 이것이 《궁원록》이 지어진 까닭이다.”

우리나라 김씨가 금천씨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에 분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고 역력히 상고할 수 있다. 어찌 다시 거칠부의 지괴(志怪)에 빠져 와전된 오랑캐의 옛 얘기를 답습하랴. 그러한즉 거 땅 사람이 동쪽으로 온 것은 거주여 때 처음이고 우리나라 종족에 김씨가 있게 된 것은 사간 때 시작되었고 천 년 군자의 나라가 일변하여 소중화(小中華)의 기틀이 된 것은 세조로부터 비롯되었다. 만일 조상에게 보답한다면 거주여와 사간 역시 세조와 나란히 추존되어야 한다. 그러나 신라 때 거나라 사람까지 추존하지 않은 것은 남의 나라를 이어받은 초창기라서 예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찬은 대략 이렇다.

 

창해에는 근원이 있고 / 滄海有源
뭇 산은 곤륜이 조상이네 / 衆山祖崑
성신이 없었다면 / 不有聖神
누가 우리를 계몽했으랴 / 孰啓我人
오직 왕이 성을 얻었으니 / 惟王得姓
멀리 금천 씨에서 나왔네 / 遠出金天
금은 토에서 생겨나니 / 金生於土
토의 덕은 황제 헌원씨네 / 土德黃軒
소전과 유웅은 / 少典有熊
인황에서 비롯되었네 / 肇自人皇
인황은 구주의 하나를 맡으니 / 人皇九一
이 기주 지방을 거느렸네 / 長此冀方
고요가 있고 백익이 있었으니 / 
曰益
순 임금 우 임금이 이에 일어났네 / 舜禹是擧
그 다음에는 자여기가 있어 / 降在玆輿
주나라 때 거 땅에 봉해졌네 / 周封于莒
스무 세대를 전해 / 二十傳世
육백 년이 지나 / 六百歷年
뱀 같은 초나라가 나라를 먹어치우고 / 楚蛇食國
범 같은 진나라가 백성을 때리니 / 秦虎歐民
거주여가 동쪽으로 와 / 舟輿東來
성산에 집터를 살폈네 / 胥宇星山
혁혁한 사간이 / 奕奕斯干
비로소 첫 조상을 찾았으니 / 始尋初祖
거 땅의 여덟 종족은 본관이 같고 / 八莒同貫
여섯 가야 족보가 이어졌네 / 六伽聯譜

천성이 돈독한 현손은 / 篤生玄孫
실로 우리의 왕이시네 / 實惟我王
이에 탄생하고 이에 기르시니 / 載誕載育
바로 아버지요 바로 어머니이시네 / 乃爺乃孃
무성한 저 시림이여 / 
彼始林
엄연히 태어난 바위가 있네 / 有儼胎石
헌원씨의 후예는 / 軒昊之後
석씨에게 길러졌으니 / 實育于昔
석탈해 왕이 아들이라 하고 /
 昔王曰子
아름다운 이름을 비로소 내렸네 / 嘉名肇錫
어질고 지혜로우니 / 克仁克智
군왕이 되기에 마땅했네 / 宜君宜王
태보공이 혜택을 베풀어 / 太輔施澤
백성의 마음 얻어 길이 이어지네 / 得民久長

 

나는 동방의 김씨가 금천씨에서 나왔다고 들은 지 오래되었으나 우선은 확증을 보지 못했다. 이 논의를 보게 되니 매우 신빙성이 있었다. 해외의 오랑캐 성 하나를 가지고 남들에게 시대를 논하지 못하다가, 하루아침에 이러한 기이한 논의를 얻으니 헌원씨, 소호씨, 고요, 백익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었다. 그렇다고 은연중에 귀족집안이라고 으스대던 곽숭도(郭崇韜)의 마음을 가진다면 특히 가소로울 것이다. 그러나 영지(靈芝)와 예천(醴泉)은 반드시 그 근원이 있다. 명백하여 증거로 삼을 수 있는 내력을 버리고 터무니없고 황탄한 설만 믿으니 이는 이전 역사서의 잘못이다. 지금 〈곡비론〉으로 인해 우연히 언급하게 되어 설을 갖춘다.

[-D020] 금궤설 :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를 가리킨다. 65년 탈해왕이 금성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가 보게 하니 금으로 된 상자 안에 사내아이가 있었다. 데려다가 길렀는데, 후에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금 상자 안에서 나왔으므로 김씨 성을 주었고, 시림은 닭 울음소리가 들렸으므로 계림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D021] 김제학(金濟學) :

생애는 미상이다. 《대한제국직원록》의 1908년 명단에 공립공주보통학교 부훈도로 재직하였던 기록이 보인다.

[-D022] 제비 알을 삼키거나 :

옛날 고신씨(高莘氏)의 비인 간적(簡狄)이 제비 알을 삼키고 잉태하여 설()을 낳았는데, 설은 은()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史記 卷3 殷本紀》

[-D023]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

옛날 제곡(帝嚳)의 원비인 강원(姜原)이 들에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마음이 동하였는데 잉태하여 후직(后稷)을 낳았다고 한다. 후직은 주()나라의 시조이다. 《史記 卷3 殷本紀》

[-D024] 무지개가 …… 꾸거나 :

소호씨(少昊氏)의 어머니 여절(女節)이 큰 별이 무지개처럼 흘러내리는 꿈을 꾸고 소호씨를 낳았다고 한다. 《宋 27 符瑞志上》

[-D025] 번개가 …… 보고 :

부보(附寶)가 번개가 크게 치며 북두성을 감싸는 것을 보고 임신하여 24개월 뒤 황제(黃帝)를 낳았다고 한다. 《史記 卷1 五帝本紀》

[-D026] 흰 …… 일 :

탈해왕 때 시림(始林)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서 확인해 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걸려 있고 그 밑에 흰 닭이 울고 있었다. 금궤를 열어 보니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가 김씨의 조상이 되는 김알지(金閼智)라고 한다. 《三國史記 卷1 新羅本紀》

[-D027] 김수로(金首露)의 금합(金盒) :

금관가야 아홉 부족의 추장들이 김해 구지봉에 모여 있을 때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합이 내려왔다. 열어 보니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고 모두 부화하여 사람이 되었는데, 가락국 시조 김수로가 첫 번째로 나온 아이였다고 한다. 《三國遺事 卷2 駕洛國記》

[-D028] 금천씨(金天氏) :

소호(少昊)의 성씨이다. 고대 동이 집단의 수령이었다고 한다. 《風俗通義》

[-D029] 신라 …… 글 :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를 가리킨다.

[-D030] 순 …… 일어났네 :

고요는 순 임금 때 충신이고, 백익은 우 임금의 치수를 도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D031] 곽숭도(郭崇韜)의 마음 :

곽숭도는 오대의 남당(南唐) 때 사람으로, 주변 사람이 아부하기 위해 성이 같은 것을 기화로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郭子儀)의 후손이라고 부추겼는데, 이를 사실로 여기고 촉땅을 정벌하러 가는 길에 곽자의 묘에 들러 곡을 하여 비웃음을 산 일이 있다. 《新五代史 卷24 唐臣傳》

[-D032] 심세편(審勢篇) :

《가우집(嘉祐集)》 권1에 실려 있다.

[-D033] 권서(權書) :

《가우집(嘉祐集)》 권2, 3에 실려 있다.

[-D034] 형론(衡論) :

《가우집(嘉祐集)》 권4, 5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