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어원 과 지나의 의미

2022. 9. 19. 09:38고대사

동문선 64 / () 

신라 가야산 해인사 결계장기(新羅迦耶山海印寺結界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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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崔致遠)

 

듣기로, 대일산(大一山) 석씨(釋氏)는 귀중한 말을 인용하여 불교도에게 경계하기를, “대지가 생성하고, 유지하는 것과 같이 경계하여라.” 하였으니, 대개 마음과 업을 발하라는 뜻이다. 대경(大經)에 이르기를, “이 세상에 있을 때나 이 세상을 떠나서나 모든 선근(善根)을 지은 자들 모두 가장 좋은 것인 시라(尸羅)의 땅에 의지하라.” 하였다. 그런즉 땅의 이름이 서로 들어맞아야 하늘의 말씀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라의 명칭을 시라라 한 것은 실로 바라제(波羅提)가 법을 일으킨 곳이어서이며, 산을 가야(迦耶)라 한 것은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곳과 같아서이다. 하물며 경내는 이실(二室)보다 훌륭하며 산봉우리는 오대산보다 높이 솟았다. 엄연히 이곳은 높은 지역으로 기이하며 맑고 시원하면서도 수려한 곳이다. 문에 해인(海印)이라고 써 붙였으니, 구름은 정의를 보호하는 용처럼 뭉게뭉게 일어나고, 깊은 산신령을 기대었으니, 바람은 계율을 지키는 범처럼 무섭도다. 좋은 경지에서 불법을 일으키었으나 자리 잡은 것은 겨우 1백년에 불과하였다. 다만 절터가 워낙 험하기 때문에 창건한 것이 규모가 작았다. 다시 짓자는 여론에 따라 나라에서 확장할 것을 허락하였다. 드디어 건녕(乾寧) 4년 가을, 90일 동안 참선한 끝에 땅을 넓히고 사찰 건축하기를 기다렸다. 땅의 신이 마음으로 정성을 드리며 하늘의 신도 눈으로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물며 산중에 있는 좋은 경지가 정말 해외(海外)의 복 받는 도장이 될 것임에랴. 그러나 부처님의 사원을 세우기는 쉬우나 도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만일 마음에는 있으나 거두어들이지 않는다면 날개가 없이 날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몸이란 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산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으며, 계(戒)를 지키는 것은 달빛이 바다에 비치는 것과는 달라서 이지러지면 반드시 둥글어지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물며 지금 불법은 장차 쇠퇴하려 하며 마귀의 군대는 다투어 일어난다. 볼수록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염려되는 것은 연기가 짙다가 불이 타오르는 것이다. 도가(道家)의 교훈에 이르기를, “편안하여야 유지하기가 쉽다.” 하였고 유가(儒家)의 글에 이르기를, “조심하지 않는 것을 사나운 것이라 이른다.” 하였다. 제약(制約)하는 것이 오직 사람이 행할 도리이니, 노력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지역의 4면을 구획하여 모두 책정하기를 다음과 같이한다. 진실로 이른바 3층의 집을 짓고 4층의 누(樓)를 올리는 것이다. 좋을시고, 이야말로 산이 높아서 쳐다보기가 쉬운 곳이니, 바라건대 엎어진 물을 거두기 어려운 사정은 없으리로다. 곧 이 지역은 금강석처럼 단단하며 우뚝히 솟은 옥 같은 사찰이로다. 위엄이 세속을 억누르니 ()씨의 티끌이 곧 끊어질 것이요, 덕이 요물(妖物)을 이겨내니, 장각(張角)의 안개가 침노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음을 깨끗이 한 것을 재(齋)라 하며, 걱정을 방지하는 것을 계(戒)라 한다. 유교에서도 이렇게 말하는데, 불교에선들 어찌 쓸데없이 넘기리요. 잡귀가 방해함을 피하려 하면 노력하여 신(神)의 보호를 구하라. 때는 당(唐)의 건녕(乾寧) 5년 정월이다.

[-D001] 이실(二室) : 

중국 숭산(崇山)에 있는 태실(太室)과 소실(少室) 두 산을 가리킨다.

[-D002] ()씨의 티끌 : 

유씨는 유량(庾亮)을 가리킨다. 유량은 권세가 대단하여 왕의 권력보다도 셀 정도였다. 어느 날 바람이 불자 왕이 부채로 먼지를 날리며 말하기를, “유량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히는구나.”라고 하였으니, 이는 그의 권세가 위협적인 것을 꺼려서 한 말이다. 이 이후로 유진(庾塵)이라 하면 권세가 대단함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D003] 장각(張角) : 

후한(後漢) 때 거록(鉅鹿) 사람으로 황건적의 우두머리이다

 

속동문선 20 / 비명(碑銘) 

대명 조선국 대원각사 비명 병서 (大明朝鮮國大圓覺寺碑銘 幷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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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온(金守溫)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전하께서 즉위하신지 10년인 갑신년에 공이 이뤄져서 정치는 안정되고, 예는 질서를 갖추고 악(樂)은 화평하여 국가가 한가하고 백성과 만물이 성하고 평안하니, 주상은 드디어 지도(至道)에 정신이 엉기고, 현교(玄敎)에 묵묵히 염원하여 억조의 창생과 더불어 함께 덕의 본을 세우고, 같이 수역(壽域)에 오르기를 생각하여, 여래(如來)가 일대에 설법한 삼장(三藏) 12부(部) 중에 오직 대원각(大圓覺)이 진돈교(眞頓敎)의 진전(眞詮)이므로, 정치하는 여가에 친히 구결(口訣)을 정하여 한(漢)ㆍ언(諺)을 다 붙여서 장차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대승(大乘)의 도를 들을 수 있게 하였다.

이 해 여름 4월 경술일에 효령군(孝寧君) 보(補)가 회암(檜菴)의 동편 언덕에 석종(石鍾)을 세워 석가의 사리(舍利)를 안치(安置)하고, 눌러 법회(法會)를 열어 원각경(圓覺經)을 강의하는데, 이날 저녁에 여래가 공중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신승(神僧)이 단상(壇上)을 횡행하며, 서기(瑞氣)가 넘쳐흘러 광채가 어리어 비치고, 감천(甘泉)이 널리 젖어 사리의 분신(分身)이 8백여 개가 되었다. 5월 갑인일에 보는 영적(靈跡)을 갖추고 사리를 받들어 아뢰니, 전하는 왕비와 더불어 함원전(含元殿)에서 예불(禮佛)을 드렸는데, 사리는 또 4백여 개를 분신하였다. 그래서 조정의 백관이 전(箋)을 올려 하례를 하니, 이에 중외(中外)에 대사령을 내리고 의정부(議政府)에 전지(傳旨)하기를, “현겁(賢劫)의 천불(千佛) 석가(釋迦)가 넷째 번을 차지하여 도는 시방(十方)을 덮고 지혜는 이계(二界)를 휩쓸며, 법을 설명하고 생(生)을 초도(超度)하나니, 그 도에 관한 책자가 지나(支那)에 유입된 것이 8만 4천여 부인데, 원각경 하나가 구경(究竟)의 과(果)를 일으킨 본이 된다. 그러기에 나는 명구(名句)를 번역하고 그 의(義)를 발휘하여 장차 유포(流布)하려던 차에, 마침 백부 효령군이 법회(法會)를 개설하여 제불(諸佛) 여래(如來)가 신변(神變)을 나타냄이 이 경지에 이르렀으니, 오탁(五濁) 상계(像季)에 흔히 볼 수 없는 일인즉, 마땅히 흥복(興福)의 구찰(舊刹)을 중건하여 원각이라 이름하고, 최상의 법문(法文)에 의를 붙이게 하는 것이 어떠하냐.” 하시니, 여러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고 손 모아 절을 하며, “감히 왕의 아름다우신 명령을 공경히 받들지 아니하오리까.” 하였다.

절은 도성 안 경행방(慶幸坊)에 있는데 주위는 2천여 보(步)였다. 처음 태조 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이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자 절은 조계종(曹溪宗)의 본사가 되었더니, 종(宗)이 이미 혁파되자 절도 역시 곧 폐하여 공청(公廳)이 된 지가 거의 40년이었다. 이듬해 6월 을묘일에 전하가 친히 그곳에 거둥하여 두루 바라보니, 백악(白嶽)이 북쪽을 지키고, 목맥(木覔)이 남쪽을 끼었으며 그 위치는 양지가 되고, 그 땅은 매우 조촐하여 대찰을 세우기에 알맞기에, 곧 신 보(補) 등에게 명하여 제조(提調)를 삼아 그 역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그래서 먼저 집을 동북의 모퉁이에 가설하고 비로소 불상을 만드는데, 문득 황색 구름이 일어 옥상을 덮고, 공화(空花)가 흩날려 떨어져서 오색이 모두 갖춘 것을 보게 되었다. 보 등은 급히 장계를 아뢰니, 전하는 근정전(勤政殿)에 납시어 여러 신하의 하례를 받고 특사를 내렸으며 백관에게 관작 한 계급씩을 올려주었다.

9월 갑자일에 절의 정전(正殿) 위에서 서기가 솟아올라 창공을 능질러 함원전(含元殿)에 연속하므로, 여러 신하는 또 전(箋)을 올려 하례를 드리니, 전하는 대사(大赦)를 내렸다. 이에 역군들이 모여들었는데, 위에서는, “너무 서둘지 말라.” 해도 부지런히 일하고 사중(四衆)은 서로 시주하여 오직 뒤질까 저허하였다. 그래서 10월 을묘일에 이르러 낙성을 고하니, 칸으로 치면 모두 3백여 칸이다. 불당(佛堂)이 한가운데 우뚝하여 대광명전(大光明殿)이란 액호(額號)를 내리고, 왼쪽은 선당(禪堂)이 되고 바른 쪽은 운집(雲集)이라 하고, 문은 적광문(寂光門)이라 하고, 다음 바깥문은 반야문(般若門)이라 하고, 다음 바깥문은 해탈문(解脫門)이라 하고, 종각(鍾閣)은 법뢰각(法雷閣)이라 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청은 향적료(香寂寮)라 하였다. 그리고 동편에는 못을 파서 연을 심고, 서편에는 동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정전 뒤에다 장경(藏徑)을 장치하여 해장전(海藏殿)이라 하였다. 또 13층의 탑[窣覩婆]를 세워 분신사리(分身舍利) 및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안치(安置)하고 보니, 전당(殿堂)ㆍ요사(寮舍)ㆍ창고(倉庫)ㆍ주방[廚湢]이 각각 위치와 순서를 얻어 규모가 굉장하고 금벽(金碧)이 휘황하며, 장려(壯麗)한 제작의 아름다움은 그 짝이 적으며, 심지어 건퇴(犍椎 종경(鍾磬))의 도구와 항시 사용하는 모든 기구까지도 다 풍부하게 갖추어졌다.

다음 해 4월 8일에, 명하여 여러 절에 있는 운석(韻釋)들을 불러 크게 법회(法會)를 배설하고, 새로 번역한 원각경을 전독(轉讀)하면서 낙성을 하게 함과 동시에, 전하는 친히 도량에 나아가 시종(侍從)ㆍ신료(臣僚) 및 외지에서 빙문(聘問) 온 자로 하여금 모두 들어와 예를 드리게 하였다. 이 때에 오색구름이 떠돌고 천화(天花)가 비에 어울리며, 흰 용(龍)이 공중에서 굼틀거리고, 두 학이 구름 사이에 오락가락하며, 아름다운 상서가 밀려드니, 만인이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특히 사승(寺僧)에게 쌀과 필육을 내려 주었다.

또 그 이듬 해 4월 8일에, 탑이 완성됨으로써 법회를 베풀고 전하께서 친히 거둥하시니, 또 천화와 서기와 사리의 기적이 있고, 또 하얀 기운[白氣]이 치솟아 올라 여러 가닥으로 나뉘어, 가로 공중에 뻗혀 빙 돌아 바퀴가 되어 중중첩첩하여 다함이 없고 햇볕이 노랗게 되니, 승니(僧尼)와, 도속(道俗)이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을 이마에 얹고 절을 드리는 자가 억만으로 계산되며, 환궁(還宮)하게 되어서는 학생(學生)ㆍ기로(耆老)ㆍ교방(敎坊)들이 모두 노래를 올리며, 도성 안의 남녀들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메우고 서로 뛰고 춤추니 환호 소리는 우뢰와 같았다. 전하는 특사령을 내리고 백관에게 벼슬 한 계급씩을 올려 주니, 백관들이 입을 모아 청하기를, “신(臣)들이 엎드려 보옵건대 큰 가람(伽藍 절의 이칭)을 짓고, 큰 법당(法幢 법기(法旗))을 세우고, 큰 법회를 열어서 신기한 상서가 한 가지만이 아니었으니, 실로 전고에 듣기 드문 일이옵니다. 오직 부처의 도화(道化)가 불가사의 일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전하의 지극하신 덕이 도에 엉겨서 묵묵히 최상승(最上乘)에 계합한 까닭이오니, 돌에 새겨 영원한 세상에 보이도록 하여 지이다.” 하니, 이에 신 수온(守溫)을 불러, “글을 지으라.” 하시므로, 수온은 명령을 받들고 황송하여 감히 사양을 못하였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주상전하는 하늘이 내신 성지(聖智)로 역대의 제왕을 앞지르시니, 지난 날 잠저(潛邸)에 계실 적에 기선(幾先)을 미리 짐작하여 화란을 평정하고 뚜렷이 큰 명령을 받았사오며, 즉위하신 이래로 정신을 가다듬고 다스리기를 꾀하여 미처 식사할 겨를도 없었사오며, 덕을 닦고 선을 행하며 교화를 도탑게 하고 풍속을 바르게 하니, 비 올 때에 비 오고, 볕 날 때에 볕이 나서 백성들은 화평하고 풍년 들어 지극한 정치에 올랐으며, 위엄이 해외에까지 떨치어 궁벽하고, 먼 나라도 사다리로 산을 넘고 배로 바다를 건너서 연락이 끊임없으니, 성한 덕과 훌륭한 공과 다스려 짐을 이룬 그 아름다움은, 삼황(三皇)오제(五帝) 이래로 다시 더할 이 없사오며, 또한 만 백성이 어둠 속을 헤매어 윤회(輪回)의 모든 테두리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으므로, 이에 요의경(了義經)에 의거하여 친히 연역(演譯)을 알기 쉽도록 하여 중외에 반포하고, 도성 안에다 또 대찰(大刹)을 세워 억만 백성으로 하여금, 부처의 자화(慈化)에 접근하여 사곡한 것을 버리고 바른 데로 돌아와서 모두 선속(善俗)이 되고, 함께 여래살바약해[如來薩婆若海]에 들어가게 하시니, 신민과 백공(百工)이 즐거워하지 않는 자가 없어, 몰려와 일터로 나아가며 북소리가 그치지 않아 수개월이 안 되어 완성을 보았다.

아, 임금님의 슬기로운 정책이 부처의 부탁에 부응하고, 아래로 만 사람의 소망에 합하여 온갖 신명이 순히 협조하고, 천지가 영감(靈感)을 나타내서 경영한 이래로 아름다운 상서가 어울려 모이고 큰 복이 성하게 떨치니, 거룩한 우리 각황(覺皇)의 보제(普濟) 신통(神通)의 조화와 우리 성상(聖上)의 지성(至誠)ㆍ감통의 묘리는, 어찌 신의 관견(管見)으로 이름을 지어 말할 바이랴. 그러나 신이 시종(侍從)의 자리에 충임이 되어 이러한 성사를 보게 되었으니, 감히 포장(鋪張)하고 찬양하여 이 큰 쇠북으로 하여금 무궁한 장래에 메아리치게 아니하랴. 삼가 절하고 이마를 조아리며 명(銘)을 올린다.

 

아름다우신 우리 임금이여
하늘이 주신 용지(勇智)로세
기선(幾先)에 밝아 난리를 평정하여
막힌 운수 열어주고 빠진 사람 건졌구려
하늘이 허여하고 사람이 따르니, 큰 운명이 여기 붙었도다
드디어 대동(大東)에 군림하사
정신을 가다듬고 다스리길 꾀하여
조술(祖述)이라 헌장(憲章)이라
삼황오제(三皇五帝) 짝이 되었네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게을리 한 적이 없네
착한 정사 착한 교화,
열 해를 재유(在宥)로 다스리니
풍속이 순후하여
태평성대 이루었도다
어리석은 중생(衆生)이여
형체 성정 똑 같건만
희미한 길에 떨어져서
벗어날 바를 모르나니
오직 이 원각(圓覺)만이
모든 법의 근본이라
모든 법의 근본이라
번역하고 토를 달아서
장(章)을 나누고 구절을 분석하니
순순한 그 가르침이
금구(金口)와 비등하도다
종(鍾) 세우고 법회(法會) 베푸니
종실(宗室)의 우두머리시라
바른 법을 크게 선양하여
사자후(獅子吼)와 같이 하니
영검[靈應]이 연달아 나타나
우리 임금께 바치도다

우리 임금 아름답다 하시고
들으라, 나의 경사(卿士)들아
여래(如來)의 신화(神化)란
정말로 불가사의다
이런 승사를 만났으니
기쁨을 어디에 비하리
옛날 절이 터만 남아
서울이라 중앙에 있으니
중수키로 계획하여
현풍(玄風)을 드날리게 하리
규모ㆍ계획ㆍ위치ㆍ순서는
모두 친히 마련하셨네
이에 신(臣) 보(補)를 명하여
공사를 감동(監董)케 하니
백성이 자식처럼 와서
하루가 못가서 이뤄졌네
전각(殿閣)이랑 요무(寮廡)랑
함체(檻砌)랑 방롱(房櫳)이랑
꿩이 나는 듯 새가 솟는 듯
치밀하고 견고하도다
탑을 뜰에 세우니
다보(多寶)가 나타난 듯
영탁(鈴鐸)이 공(空)을 말하니
중생이 듣고 깨우치네
성한 모임 두 번 열자
임금 행차 또 오셨네
기이한 모든 상서
겹치고 또 겹치니
아, 귀 있고 눈 있는 자는
누구나 즐겁지 않으리
이 나라 사민(四民 사농공상(士農工商))들과
저 다른 나라까지도
만 입이 똑 같은 소리로
함께 외치고 함께 뛰네

우리 임금 신성하시와
오백 년의 기약에 응하여 
무공(武功)과 문치(文治)가
천년 이래 처음일래
우리 임금 총명하시와
현교(玄敎)를 통달하시어
사지(四智)의 교화에다
십선(十善)의 효험으로
우리 대중을 깨우치시어
꿈속에서 깨난 듯하구려
우리 임금 인자하시와
이내 방편을 베풀어
탑과 묘(廟)를 세우시고
백성에게 알려 주시니
정과(正果)는 이뤄지고
사인(邪因)은 떠나갔네
선각(先覺)이 후각(後覺)을 깨우쳐
원각에 오르게 하시니
법시(法施)는 다함이 없고
택리(澤利)는 박흡(博洽)하도다
무엇으로 미덕을 밝히랴
이 빗돌을 의탁하노라

[-D001] 현겁(賢劫) : 

불경(佛經)에, “과거의 주겁(住劫)은 장엄겁(莊嚴劫)이라 하고, 미래의 주겁(住劫)은 성숙겁(星宿劫)이라 하고, 현재의 주겁은 현겁(賢劫)이라 하는데, 현재의 주겁으로 20이 가감(加減)하는 가운데 천불(千佛)이 출세하였다. 그러므로 찬미(讚美)하며 현겁이라 한다.” 하였다.

[-D002] 오탁(五濁) 상계(像季) : 

오탁은, 세계에 다섯 종류의 탁하고 악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로 중생탁(衆生濁)인데, 중생이 악업을 많이 지어서 인과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둘째는 견탁(見濁)인데 중생이 사견(邪見)이 분둔하여 선도(善道)를 닦지 않는다는 것이요, 셋째로 번뇌탁(煩惱濁)인데, 중생이 애욕(愛慾)이 많아서 심신을 어지럽게 한다는 것이요, 넷째는 명탁(命濁)인데, 중생의 악업이 증가하여 수명이 단축한다는 것이요, 다섯째는 겁탁(劫濁)인데, 때가 감겁(減劫)을 당해서 사람의 수명이 날로 줄어들고 흉년과 질병아리 등속이 서로 계속해 일어난다는 것임. 상계(像季)는 상교(像敎)가 능이(陵夷)한 말세를 말한 것이다.

[-D003] 사중(四衆) : 

불가(佛家)의 용어로 사부중(四部衆)이라는 말임. 《약사경(藥師經)》에,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夷]로 불교교단을 구성하는 4종류의 사람을 말한다.

[-D004] 재유(在宥) : 

《장자》에 있는 편명(篇名)인데, 그 요지는 간섭하는 것을 경계하고 방임하는 것을 주장하여 물(物)을 자유에 맡기면 일체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임.

[-D005] 금구(金口) : 

부처의 입을 말한 것임. 부처의 몸이 황금색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 입을 들어 금구(金口)라 칭하고, 또 부처의 입과 혀가 금강석과 같이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금구라 이른다 하였음. 지관보행전행결(止觀輔行傳行決)에, “여러 여래가 황금색 몸으로 구업(口業)을 기록한 바이다 [金口者 如來黃 金色身 口業所記].” 하였다.

[-D006] 오백 …… 응하여 : 

오백 년이 되면 반드시 왕자(王者)가 일어난다는 말을 인용한 것임. 《맹자》에, “요순(堯舜)으로부터 탕(湯)에 이르기까지 오백여 년이요. 탕에서 문왕(文王)에게 이르기까지 오백여 년이라.”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