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4. 19:06ㆍ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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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당집 제2권 / 서(書)
이백실 동영 께 답함 무오년(1738, 영조14) 〔答李伯實 東英○戊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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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중춘(仲春)에 제주로부터 곧바로 고향 가는 인편이 있었으나 형께는 편지를 보내지 못하였으니, 잊어서가 아니고 형편상 편지를 적을 겨를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러나 형께서 만약 들었다면 반드시 나를 허물할 것입니다.
방금 집의 노복이 도착하여 형의 편지를 받아보니, 형의 민첩하고 치밀함은 진실로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또한 나와는 형편이 같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2월 28일에 가서(家書)를 받아 보건대, 편지 가운데에 형에 관한 일이 없었으니, 형에게 다른 급박한 걱정이 없음을 미루어 상상할 수 있지만, 그리워하고 염려하는 마음은 깊습니다.
이곳의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가친(家親)의 각질(脚疾)은 지금 아물어서 뜰을 거닐 때에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래와 기침이 끓고 막히며 허리와 등이 결리고 아프며 팔다리가 저리고 아픈 증세들이 종종 극심하니, 이는 여태 쌓여 온 여독과 풍토의 장기(瘴氣)가 합쳐져서 번갈아 발작하는 듯합니다.
겨울 사이에 병을 잘 고치는 제주의 편비(褊裨)에게 약방문을 물어 탕제 수십 첩을 복용하시게 하려 했으나 약국에 산조인(山棗仁)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복용하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력고(竹瀝膏)는 겨우 세 되를 얻어 복용하시고 있으나 이 섬에는 역죽(瀝竹)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 생강도 없으니, 참으로 괴롭고 기막힐 노릇입니다.
양식 쌀로는 약간 마련해 둔 것은 단지 좁쌀일 뿐이고, 쌀로 말하면 사들일 길이 없습니다. 다만 제주도로 들어올 때에 담아온 몇 가마니와 제주 목사가 세 차례에 걸쳐 보내 준 몇 섬으로 가친이 드실 양식을 삼고, 저와 노복들은 좁쌀을 먹습니다. 그러나 섬의 보리가 메뚜기의 피해를 입어 장차 큰 흉년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하니, 장래에 계책을 강구해 보더라도 손 쓸 데가 없을 듯합니다.
겨울 동안과 초봄에는 멧돼지ㆍ사슴ㆍ노루ㆍ꿩 고기가 낭자할 정도로 많았으나 농번기가 된 뒤로는 전혀 얻을 수 없습니다. 바닷물고기 또한 퍽 희귀하고, 비록 얻더라도 맛이 크게 좋지 않습니다. 채소도 육지와 다르기 때문에 비록 간혹 쓸 만한 것을 얻어 저와 노복이 조미하여 올리더라도 짜거나 싱거워서 입맛에 맞지 않으니, 이와 같아서야 어찌 병중의 조섭하는 방도를 다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겨울 석 달 동안은 하루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지 않은 적이 없어 방안이 낮에도 칠흑처럼 어두웠고, 집을 에워싼 것이 모두 대숲이라 바람이 불면 대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사람을 오싹 두렵게 합니다. 문밖 5리 거리가 곧 큰 바다이고 언덕으로 막힌 것이 없으니, 대개 정의(㫌義)는 바로 제주 섬의 남쪽 끝이고, 옥구(玉溝)라는 곳은 또 정의(㫌義)의 남쪽입니다. 이 때문에 장기(瘴氣) 어린 안개가 특별히 심하여 봄이 된 이래로 아침저녁 사이에 방안의 옷과 이불이 습기가 가득합니다. 5월에는 지척도 분간할 수 없다고 하니, 장차 어떻게 견딜지 모르겠습니다.
율무는 장기(瘴氣)를 이길 수 있는 물건이지만 이 지역에 생산되는 곳이 없고, 의서(醫書)에는 술을 장기 치료의 제일가는 처방으로 여기지만 청주(淸酒)는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또한 유해무익하다고 하기 때문에 애초에 술을 빚지 않았습니다. 단지 제주 목사와 대정(大靜) 고을 원이 때때로 선물해 주는 추로(秋露) 술로써 조금 안개 습기를 막는 거리로 삼습니다. 주인과 이웃 사람들 또한 혹 서로 도와주지만 이 모두 계속되기 어려운 일이니, 걱정스럽고 걱정스럽습니다.
물맛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으니, 예로부터 이 마을 물을 마시고 병이 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당초에 금오랑(金吾郞)에게 청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대개 이 점이 다른 곳보다 조금 낫고 또 조만간 두역(痘疫)이 육지에서 퍼져 오면 관청이 있는 고을은 의레 대부분 먼저 전염되고 외딴 마을에는 오히려 조금 더디게 전염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을이든 시골이든 간에 이미 가시울타리 속에 갇혀 있으면 거처를 옮겨서 두역을 피할 길은 없으니, 장차 이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섬 가운데에는 아직 두역이 발생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으니, 신명이 만약 처지를 애달프게 생각하여 이 환란을 면할 수 있다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육지 사람들이 혹 ‘정의현(旌義縣)의 풍토병은 제주의 대정현(大靜縣)보다 낫다.’라고 말하지만, 이곳에 와서 상세히 물어보니, 세 고을 중에 풍토병과 장기(瘴氣)가 심한 곳으로는 정의현만한 곳이 없으나 유독 이 마을은 풍토병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풍속과 의복에 놀라는 것은 진실로 말할 것이 못 되지만, 이른바 사대부라는 사람들이 모두 궁마(弓馬)를 일삼고 있고, 혹 과거 시험장에서 이름을 날린 한두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사는 곳이 조금 떨어져서 아직까지 보러 오지 않습니다. 또 서책이 매우 적어 빌려 볼 곳이 없으니, 이 점이 울적하고 답답한 일입니다. 부득이 고을 목사에게 빌리기를 청하여 몇 권의 책자를 얻어 소일하는 자료로 삼을 뿐입니다.
이곳에는 지극히 귀한 물건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흰 쌀이 제일 귀한 물품이니,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논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씨 뺀 솜 등의 물품도 섬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종이값 또한 듣던 것과 다르니, 대개 섬의 종이가 비록 빛깔이 거칠고 품질이 나쁘기는 하지만 또한 완전히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호두ㆍ잣ㆍ대추ㆍ밤 또한 없고, 곶감도 귀합니다.
매우 흔한 물건을 말씀드리자면, 과일로는 귤과 유자이고, 약재로는 진피(陳皮)ㆍ청피(靑皮)ㆍ후박(厚朴)이지만, 멀리서 온 나그네가 구하려면 흔한 것 또한 귀하게 됩니다. 우황은 평소 이 섬에 많이 나오는 물건이라고 일컬어지나, 이익을 추구하는 아전과 백성들이 번번이 깊이 감추고 단단히 숨겼다가 가만히 육지에 팔기 때문에 지금 적은 양을 사려고 해도 어떻게 할 방도가 없습니다.
인삼은 원래 섬의 물품이 아니니, 대저 약재 중에 후박ㆍ진피ㆍ청피ㆍ반하(半夏)ㆍ치자(梔子) 등의 5종 이외에는 모두 무역하여 들어온 것입니다. 녹용ㆍ상기생(桑寄生) 같은 종류는 진실로 토산물이기는 하지만, 이곳에는 거의 없고 겨우 조금 있을 뿐입니다. 화살대와 같은 소죽(小竹)은 민가의 곳곳에 묶어 놓은 듯이 빽빽하게 나 있으니, 대개 나무 종류는 가장 지천으로 많기 때문에 땔나무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소나무가 또한 귀할 뿐입니다.
이 지역에서 특별히 매우 귀한 물품으로는 양반이 사용하는 삿갓ㆍ도포와 상놈이 사용하는 햇빛 가리는 삿갓이니, 이른바 양반이라는 자들은 모두 털 삿갓을 사용하고 토끼나 개 가죽을 입으며, 상놈은 머리에 토끼 가죽 감투를 쓰고 외출할 때에 털벙거지를 쓰기 때문입니다. 복색에는 상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제가 일찍이 여러 차례 앉은 채로 양반에게 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 매우 흔한 것이 있으니, 소ㆍ말ㆍ까마귀입니다. 말의 가격이 비록 높기는 하지만 산과 들판 사이에 소와 말 아닌 것이 없고, 까마귀 떼가 많아 하늘을 가릴 정도입니다. 종일 지붕머리와 울타리 밖에서 울어 대고, 언제나 부엌 안에 들어와서 음식을 훔쳐 가서 사람을 더욱 시름겹게 만듭니다. 까치는 없으니, 대개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새이고 까마귀는 미운 새입니다. 새에 이르러서도 또한 기쁜 것은 없고 미운 것은 많으니, 토지의 좋고 나쁨을 또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형의 편지 속에 토산물의 귀하고 흔한 것을 상세히 말해 달라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애오라지 이렇게 장난삼아 적어 올리는 것이니, 혹 한바탕 웃음거리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겨울과 봄의 조지(朝紙)는 제주 목사가 번번이 보여 주지만 상소와 차자(箚子)는 볼 방도가 없었더니, 형께서 적어 보여 준 한 통의 상소문을 통하여 저들의 의론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 목사가 보살펴 주는 방도는 비록 평소의 친구에게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탁한 것도 아닌데 이와 같이 하는 것은 그 본마음이 시의(時議)를 크게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정(大靜)의 사또도 평소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여러 차례 방문하였고 여러 차례 음식을 보내왔습니다. 집주인과 이웃의 한두 사람 또한 딱한 사정을 도와주는 의리가 있고, 상놈의 풍속 또한 크게 각박하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예로부터 권세 있는 귀양 온 재상에게는 상하로 힘을 얻을 일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귀양 온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두 관청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러나 부친의 뜻이 일체 이를 물리쳐 거절하셨으니, 저들이 필시 낙담할 것입니다.
본현의 새 고을 원은 평소에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굳이 문후할 뜻이 없고, 우리로서도 또 서로 간여할 일이 없으니, 그의 방문 여부가 무슨 손익이 되겠습니까. 제주 목사는 만일 절박한 일이 있으면 꺼리지 말고 와서 요청하라고 하였으나 한두 번 사례한 이외에는 결코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밤낮 걱정으로 애태우던 끝에 가서(家書)를 받게 되어 이 마음에 조금 위로되지만, 조모께서 거처를 옮겨서 기거하신다는 소식은 걱정과 염려를 한층 더하게 합니다. 어머님께서 병을 참고 집안일을 돌보시어 온갖 걱정이 다 모여들건만, 광천(光天) 형과 같은 분들이 또 모두 분병(奔逬)하여 아침저녁으로 위로해드리는 길이 또한 전날과 같지 못할 것이니, 더욱 제 마음을 서글프게 만듭니다. 나머지 얘기는 한 장의 편지지로 다할 바가 아니라서 우선 여기서 줄입니다.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
[주-D001] 이백실(李伯實) :
김낙해행의 매부인 이동영(李東英)이다. 백실은 그의 자(字)이다.
[주-D002] 죽력고(竹瀝膏) :
죽력(竹瀝)을 섞어서 빚은 술이다. 죽력은 대나무를 불에 구워서 받아낸 진액으로, 담(痰)을 녹이고 열을 내리는 약으로 쓰인다.
[주-D003] 조지(朝紙) :
승정원에서 처리한 일을 아침마다 적어서 반포하는 일. 또는 그것을 적은 종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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