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신수길(秀吉)을 순화왕(順化王)으로 봉하고

2022. 10. 26. 16:22제주도

 

 엉뚱한 상상 주호국은 일본이고, 풍신수길을 순화왕으로 봉작한 것도 그 지역을 대표 봉작한 것이 아닐까요?

 

고전번역서 > 해동역사 > 해동역사 제16권 > 세기 > 최종정보

○ 탐라는 임읍(林邑)의 남쪽 변경 바다에 있는 작은 나라이다. 《책부원귀》 ○ 《한창려집(韓昌黎集)》에는, “해외의 여러 나라 가운데 탐부라(耽浮羅)ㆍ유구(流求) 등의 나라는 동남쪽 천지(天池)에 있다.” 하였다.

 백제에서 남쪽 바다로 3개월을 가면 탐모라(耽牟羅)라는 나라가 있는데, 남쪽에서 북쪽까지의 거리가 1천여 리이고,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수백 리이며, 토산물로는 노루와 사슴이 있다. 백제의 부용국(附庸國)이다. 《수서》  《수서》에는 또, “양제(煬帝) 대업(大業) 4년(608)에 문림랑(文林郞) 배세청(裴世淸)을 파견하여 왜국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는데, 백제국을 건너 죽도(竹島)에 이르러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탐라국이  바다 가운데 있었다.” 하였다.

○ 탐라는 고려의 여국(與國)이다. 세조(世祖)가 이미 고려를 신하로 복속시키고는 탐라가 남송(南宋)ㆍ일본(日本)과 통하는 요충지라고 여겨 주의를 기울였다. 《원사》  삼가 살펴보건대, 원나라 때에는 탐라가 이미 고려에 병합되었으므로, 《원사》에 실려 있는 탐라에 대한 사실은 모두 고려기(高麗紀)에 편찬되어 있다.

마한의 서쪽 바다의 섬 위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키가 작고 머리를 깎았으며, 가죽 옷을 입는데 상의(上衣)만 있고 하의(下衣)는 없다.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배를 타고 왕래하면서 물화(物貨)를 한(韓)의 국중(國中)에 사고 판다. 《후한서》  살펴보건대, 주호국은 탐라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끝에다가 기록해 둔다.


남제서(南齊書) 58()8 열전(列傳) ()39

임읍국(林邑國).

南夷林邑國在交州南海行三千里.  北連九德秦時故林邑縣也

남쪽 오랑캐 임읍국은 교주 남쪽에 있으며, 바다로3000천리를 가야한다.북쪽으로 구덕이 있고, 진나라 당시 옛 임읍현이다.

 

고전번역서 > 대동야승 > 재조번방지 > 재조번방지 3 > 최종정보

성지를 받들은 바, ‘모두 시행하라.’ 하였다.

봉의(封議)는 이미 결정된 일로써 예부에 내려오니, 예부의 복의는 다음과 같다.

일본에는 원래 왕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관백에 대하여는 혹은 두 글자를 따로 의론하여 정할 수도 있고 혹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섬의 이름으로써 봉할 수도 있으며 행장 이하는 요량해서 지휘의 직함을 내리고 상을 주되 차등을 주시옵소서. 삼가 명령이 내리시기를 기다려서 시행하겠사옵니다.

천자는 마침내 일본에 대하여 왕의 호칭을 인준함과 동시에 금인(金印)을 주고 행장에게는 도독첨사를 제수하여 병정(兵政)을 총독하게 하였다. 그리고 임회후(臨淮侯) 이언공(李言恭)의 아들 도독 첨사 이종성(李宗誠)을 책봉정사로 삼았다.

언공의 자는 유인(惟寅)이요, 호(號)는 수암(秀巖)이니, 개국공신 이문충(李文忠)의 후손으로 시명(詩名)이 있어 왕세정(王世貞)과 더불어 서로 수창한 바 있으며 종성 역시 시에 능하였으나 부귀한 집안에 성장하여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므로 사람들이 많이 걱정하였다.

또 오군영 우부장 좌군도독부 서도독첨사 양방형(楊邦亨)을 책봉부사로 삼았다. 방형의 호는 공우(恭宇)요, 산서(山西) 사람인데, 무과 진사 출신으로 자못 담력과 기개가 있었다.

종성 등이 이미 명령을 받고 떠났는데, 요진도어사 이화룡(李化龍)이 말하기를,

“적의 정상이 의심스러울 만한 점이 여섯 가지가 있고 염려스러운 점이 다섯 가지가 있는데, 왜놈이 글자를 알지 못하는지라 중간에서 양편이 서로 비방하고 속이는 일이 있을까 걱정되오니, 청컨대 예부의 의(議)에 따라 수길(秀吉)을 순화왕(順化王)으로 봉하고 심유경을 보낼 것을 중지하고 다시 수군을 모집하여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시옵소서. 듣건대 청정(淸正)이 본시 관백에게 불복하고 또 행장과도 서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니, 저 옛날에 노중련(魯仲連)이 연(燕) 나라 장수를 타이르던 꾀를 써서 이간을 붙이는 것이 상책일까 하옵니다.”

 

 고전번역서 > 청장관전서 > 청장관전서 제35권 > 청비록 4 > 최종정보

청장관전서 35 / 청비록 4(淸脾錄四)

지봉(芝峯) 시가 나라에까지 전파되다

 지봉(芝峯) 사신에게 지어 시를 선록(選錄) 보면 다음과 같다.

만리나 먼 장려향에서 와서 / 萬里來從瘴癘鄕
중역에 의해 군왕을 배알하네 / 遠憑重譯謁君王
한 나라 때 동주표가 세워진 곳이고 / 提封漢代新銅柱
주 나라 때 공헌하던 월상국일세 / 貢獻周家舊越裳
산이 이상한 모양으로 솟았으니 상골이 많고 / 山出異形饒象骨
땅에 영기 피어오르니 용향이 생산되네 / 地蒸靈氣産龍香
이제 중국의 신성한 황제를 만나 / 卽今中國逢神聖
좀처럼 얻기 어려운 태평성대 누린다네 / 千載風恬海不揚
듣건대 그대의 집 구진에 있다 하니 / 聞君家在九眞居
물길 산길 일만여 리이구려 / 水驛山程萬里餘
의관과 제도 다르다 말하지 마소 / 休道衣冠殊制度
문자를 가져 시서를 함께 하지 않는가 / 却將文字共詩書
백치 받친 뒤부터 오랑캐 지방과 통했었는데 / 來國獻雉通蠻徼
지금 포모 바치러 상여 타고 조회왔네 / 貢爲包茅覲象輿
염주를 돌아다보면 돌아갈 길 먼데 / 回首炎州歸路遠
누가 다시 지남거를 만들어주려나 / 有誰重作指南車

[-D004] 월상국(越裳國) : 

주(周) 나라 때 안남(安南)의 남쪽에 있던 나라 이름. 《後漢書》 南蠻傳에 “교지(交趾) 남쪽에 월상국이 있는데,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한 지 6년 만에 천하가 태평해지자 중역(重譯)하여 와서 백치(白雉)를 바쳤다.” 하였다. 백치는 곧 흰꿩으로 상서로운 새[祥鳥]라 한다.

[-D005] 구진(九眞) : 

한(漢) 나라가 지금의 안남(安南) 하내(河內) 이남과 순화(順化) 이북에 설치하였던 군명(郡名).

 

 > 고전번역서 > 무명자집 > 무명자집 시고 제2책 >  > 최종정보

무명자집 시고 2 / ()

어려운 ()으로 빗에 대해 읊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젊었을 때의 습성을 참지 못하여 대충 지어2수 〔人有以韻詠梳者 余聞之 尙不禁少時習氣 聊成二首〕 혁서씨(赫胥氏)가 처음 빗을 만들었다.

[DCI]ITKC_BT_0576A_0020_010_0610_2015_002_XML DCI복사 URL복사

지혜 깊은 혁서씨가 빗을 처음 만든 것은 / 刱制赫胥妙智淵
황제(黃帝)가 수레와 배 만들기 전이었네 / 先於黃帝作車船
뾰족뾰족 빗살은 고슴도치 털과 같고 / 尖叢狀似磔毛蝟
단단한 대나무는 종이 연의 살과 같고 / 老竹材同造紙鳶
등에는 알록달록 교룡을 그려 넣고 / 背畫蛟龍紅綠爛
머리에는 칠과 아교로 뼈와 뿔을 붙여 장식했네 / 頭粧骨角漆膠煎
누구나 가려운 머리 긁고 헝클어진 머리칼 정돈할 수 있으니 / 爬痒理亂均黔首

이로움이 무궁하여 월나라 연나라에까지 퍼졌네 / 利澤無窮曁越燕 

이〔蝨〕가 끓는 머리털은 못과  같지만 / 蝨處髮中似藪淵
이〔蝨〕를 쓸어내려고 수레와 배를 쓸 순 없네 / 殲鏖難可用車船
깎고 새기는 노고는 상아(象牙) 다룰 때와 같고 / 刻削心勞治白象
이〔蝨〕를 잡아내는 공(功)은 주연(朱鳶)을 무찌른 공보다 크네 / 抉爬功邁破朱鳶
머리를 빗기만 하면 비듬이 말끔히 사라지니 / 掠鬢已看垢穢盡
뜨거운 물에 머리 감지 않아도 정신이 맑아지네 / 淸神不待沐湯煎
허나 이걸 연경(燕京)에서 팔려고는 말지니 / 還同適越資章甫
()나라에 장보관(章甫冠) 가져감과 같으리라 / 持此無須向薊燕

 

[-D006] 주연(朱鳶) : 

지금 베트남의 순화(順化) 이북 지역, 곧 옛 안남(安南)에 위치한 현(縣)의 이름으로, 시대에 따라 교지군(交趾郡)이나 무평군(武平郡)에 소속되기도 하였다. 이곳은 옛날 중국의 남쪽 변방으로, 정벌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털에서 이〔蝨〕를 잡아내는 빗의 공효를 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