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령부 황제총(皇帝冢) 오국성〔五國城〕

2022. 9. 7. 20:51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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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당필기 제2권

오국성〔五國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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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통지(淸一統志)》 〈영고탑 고적(寧古塔古蹟)〉의 기록이다.

“오국두성(五國頭城)은 성의 동북쪽에 있다. 《거란국지(契丹國志)》에 ‘여진은 동북쪽으로 오국과 이웃해 있고 오국은 동쪽으로 큰 바다와 접해 있다. 이곳에서 좋은 매가 나는데 해동에서 나는 매를 해동청(海東靑)이라고 부른다. 요나라 사람들이 이 매를 매우 좋아해서 해마다 여진에 요구하였는데, 여진은 오국성까지 가서 전쟁을 하고서야 얻어 오므로 그 괴로움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였다.

《대금국지(大金國志)》에는 ‘천회 8년(1130) 송나라의 황제가 한주(韓州)에서 오국성으로 갔다. 성은 금나라 도읍에서 동북쪽으로 1000리 되는 곳에 있다.’ 하였다.

《명일통지(明一統志)》에는 ‘이곳부터 동쪽으로는 나누어져서 오국이 되었으므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옛 기록에 송나라 휘종이 여기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하였다.

《호종록(扈從錄)》에는 ‘영고탑에서 동쪽으로 600리 가면 강돌리갈상(姜突哩噶尙)이라는 곳이 있는데 송화강과 흑룡강이 이곳에서 합류한다. 큰 토성이 있는데 혹 오국성이라고 한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청일통지》가 인용한 책 가운데 《거란국지》의 설이 옳다. 후세 사람들은 금나라가 도읍한 곳이 상경 회령부(上京會寧府)인 줄만 알고 마침내 오국성을 그 동북쪽 1000리 혹은 600리 거리에 있는 송화강과 흑룡강의 합류 지점 등으로 짐작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란이 매를 요구해 왔을 때 금나라 경조 오고내와 목종 영가는 바야흐로 갈라전(曷懶甸)에 있으면서 오국의 포섭(蒲聶), 몰연(沒撚) 등의 부족과 힘들게 싸워 매를 잡아오는 길을 열었다.

갈라전이란 《고려사》 〈지리지〉와 〈윤관열전(尹瓘列傳)〉 및 《금세통(金世統)》을 참고하여 보건대 우리나라 함흥, 단천, 길주 등의 지역이 틀림없으니, 오국성이 갈라전의 동북쪽에 있어야 옳지 상경의 동북쪽에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조선의 회령부는 바로 함흥, 단천, 길주 등지의 동북쪽에 있다. 그리고 회령부의 보을하진(甫乙下鎭) 서쪽에 큰 무덤이 있는데 예로부터 황제총(皇帝冢)이라고 칭하고, 겹겹이 둘러싼 작은 무덤들을 시신총(侍臣冢)이라고 칭하였다. 지금까지도 밭을 경작하는 이가 가끔 숭녕(崇寧) 시대 동전을 발견하기도 하니 이곳이 어쩌면 휘종을 장사 지낸 곳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회령부가 바로 예전의 오국성이다.

금나라 천회 8(1130) 7월에 혼덕공과 중혼후를 골리개로(鶻里改路) 옮겼고 금나라 희종 즉위년(1135) 4월 병인에 혼덕공 조길(趙佶 휘종)이 죽었는데, 골리개는 바로 호리개(胡里改)이다. 금나라 지역이던 호리개로에 우리 조선이 국초에 만호를 두었으니, 아마도 본디 오국 지역인데 금나라가 초기에 노(路)를 설치하고 호리개라 불렀을 것이다. 송나라 휘종이 옮겨지고 졸하고 장사 지내진 곳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그렇다면 조선의 회령부가 또 바로 호리개로이다.

 

[-D001] 영고탑(寧古塔) :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현성(寧安縣城)의 청나라 때 지명이다.

[-D002] 송나라의 황제 :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부자를 말한다. 1126년 정강(靖康)의 변으로 금나라에 붙잡혀서 오국성에 구금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D003] 경조 …… 영가 :

경조 오고내(景祖烏古迺)는 완안 오고내(完顏烏古迺, 1021~1074), 목종 영가(穆宗盈歌)는 완안 영가(完顏盈歌, 1053~1074)로 금나라 건국 전 여진을 통치했던 인물들이며 사후에 황제로 추존되었다. 각각 금 태조의 조부, 숙부이다.

[-D004] 금나라 …… 옮겼고 :

본서에는 천회 8년으로 되어 있으나 《동사강목》, 《고려사절요》 등에는 천회 6년(1128)으로 되어 있다. 혼덕공(昏德公)은 사로잡힌 송나라 휘종을 강봉한 작위이고, 중혼후(重昏侯)는 흠종을 강봉한 작위이다.

[-D005] 호리개로(胡里改路) :

《해동역사》 〈지리고10〉 고려 조에 따르면 호리개로는 영고탑 동쪽 지역으로 남쪽 경계가 회령에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