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4. 22:43ㆍ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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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6년 갑인(1434) 4월 2일(기유)
16-04-02[05] 이변ㆍ김하가 요동에서 돌아오니 인견하고 《소학직해언어》가 가치를 인정받은 얘기를 듣다
[DCI]ITKC_JT_D0_A16_04A_02A_00050_2005_010_XML DCI복사 URL복사
첨지사역원사(僉知司譯院事) 이변(李邊)ㆍ이조 정랑(吏曹正郞) 김하(金何)가 요동(遼東)으로부터 돌아오니, 사정전(思政殿)에서 인견(引見)하였다. 처음에 이변과 김하가 요동에 갔을 때에 유림(儒林)에 나아가서 권인(權印) 천호 허복(許福) 및 오망(隖望)ㆍ유진(劉進)을 만나 보니, 그들이 《소학직해언어(小學直解言語)》를 질문하기를 바라므로, 곧 꺼내어 보이니, 허복 등이 읽어 보고 칭찬하였다. 유진(劉進)은 말하기를,
“문장은 천하의 공기(公器)이라, 수레의 궤도가 같고 글월의 글자가 같아서, 천하의 만국이 모두가 한 집안이나 다름이 없으니, 이 글은 요동(遼東)에서만 편벽되게 쓸 것이 아니옵니다.”
하고, 인하여 외편(外篇)을 가지고 강(講)하기를,
“내가 이제 먼저 〈소학의〉 외편을 강(講)하는 것은, 두 분이 모두 조정의 관리이므로, 마땅히 한(漢)ㆍ당(唐) 이후의 가언(嘉言)과 선행으로써 가제(家齊)ㆍ국치(國治)의 우선을 삼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이 해설(解說)을 보니 설재상(偰宰相)은 등한(等閑)한 사람이 아니옵니다. 《노재대학(老齋大學)》과 《성재효경(成齋孝經)》에 비교해 볼 때, 이 말[語]이 더욱 좋습니다.”
하였으며, 오망(隖望)은 말하기를,
“중국과 조선은 삼강(三綱)ㆍ오상(五常)을 존중함이 모두 일반이나, 단지 어음(語音)만이 서로 통하지 못할 뿐인데, 만일 이 글을 가지고 자제(子弟)를 교훈하게 되면 곧 중국의 어음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변과 김하가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매, 오망이 시를 지어주었는데, 그가 이변(李邊)에게 준 시의 서문(序文)에 이르기를,
“조선 국왕이 그의 신하 이씨를 파견하여 천자의 조정에 들어가 조근(朝覲)하게 하였는데, 노차(路次)가 양평군(襄平郡)을 지나게 되매, 군상(郡庠)에 와서 나를 찾았도다. 그의 사람됨이 진실[恂恂]하고 유아하며, 학문에 부지런하고 묻기를 좋아하였도다. 남에게 의심되는 것을 질의하여 잘 깨닫고 이해하되, 요령을 잡아서 가슴에 품어 두어 온공하게 조심조심 받들어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아니하니, 참으로 가사(佳士)이요, 뒷날 성취함이 있을 것을 헤아릴 만하도다. 나를 이별하고 가게 하매 시를 지어 주노라.”
하고, 그 시에 이르기를,
“황제의 덕이 하늘과 같아 먼 곳 사람을 이르게 하니, 조선의 손[客]이 있어 대궐[楓宸]에 조근(朝覲)왔네. 겸양(謙讓)함은 군자됨에 부족함이 없고, 전대(專對)함은 참으로 사신이 될 만하구나. 서쪽에 해 저무니 수레바퀴 자국에 비 마르고, 동풍(東風)이 개이니 말굽에 티끌이 일도다. 돌아갈 때에 그대를 향해 이르는 말은, 여러 나라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입공(入貢)함이 잦은 것일세.”
하고, 그가 김하(金何)에게 주는 시의 서문에 이르기를,
“현토(玄菟)와 낙랑(樂浪)은 주(周) 나라 기자(箕子)의 봉국(封國)이라, 그의 끼친 풍토[遺風]와 남은 습속[餘俗]이 뒷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어, 모두가 예의를 알고 염치를 숭상하게 되매, 혹은 시를 잘하고 혹은 글월을 잘하여, 예모(禮貌)와 의관(衣冠)이 무인(武人)이나 속리(俗吏)에 비할 바가 아님은 이번에 온 사신들을 보아도 알 만하다. 사신들이 북경에 가서 조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명함을 내 놓고 나를 찾아 우리 유가(儒家)의 학문으로써 물었으나, 내 늙고 또한 병든 데다가 그전에 배운 학문도 거칠어졌으니, 어찌 사신들을 위하여 일러줄 것이 있으리오. 돌아가서 스스로 구하면 남는 스승[餘師]이 있으리라. 그 학문을 즐겨함의 두터움을 아름답게 여겨, 이별하는 마당에 임(臨)하여 당률(唐律) 한 수(首)를 지어서 권면하노라.”
하고, 그 시에 이르기를,
“사신이 명을 받들어 동이(東夷)부터 이르매, 추수 같은 정신이요, 옥설(玉雪)같은 자태(姿態)로다. 만리를 달려와 주나라 예악을 보고, 구중 궁궐에서 시원히 한나라 관리의 모습을 보았네. 여관[旅邸]에 말을 세우고 정을 기쁘게 하는 곳은, 술을 싣고 글방[黌宮]에 찾아 가 글을 묻는 때일세. 평양성 머리로 돌아가는 길, 압록강(鴨綠江) 한가운데 맑게 개인 물너울[晴漪]을 건너리.”
라고 하였다. 또 유진(劉進)이 주는 시의 서문에는 이르기를,
“조선국의 이(李)ㆍ김(金) 두 사신이 요양(遼陽)의 공관(公館)에 머물새, 그날로 본국의 《직해한문(直解漢文)》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이르기를, ‘선생은 유자(儒者)의 학교를 맡아 가르치시니 선지선각(先知先覺)이시라, 그 나아오는 자를 허락하시어 다행히 물리치지 마시고 밝게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고 하므로, 나는 그가 귀(貴)하되 예를 좋아하고, 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서 자기를 바로잡고자 함을 기뻐하였노라. 민첩하고 학문을 좋아하지 아니하는 자라면 어찌 그러할 수 있으리오. 더욱이 조선은 옛적 주나라 무왕이 기자(箕子)를 봉(封)한 땅이라, 중국의 동쪽에 자리하여 대대로 충성과 정절이 두터웠고, 왕가에 입공(入貢)하기를 기뻐하였으며, 의관(衣冠)과 서적(書籍)이 실로 중국의 제도와 같으니, 이는 예의의 나라이다. 두 분의 품성(稟性)이 단정하고 씩씩하며, 겸손하고 온화하여 선비를 공경하니, 인하고도 의롭도다. 항상 중국에서 놀고 여러 번 천자의 조정을 조근(朝覲)하였으며, 충심이 지극히 두터웠고 사절(使節)이 더욱 아름다웠다. 한가로운 틈을 타서는 또 경서(經書)를 잡고 어려운 곳을 물어 천성의 본연을 밝히니, 사문(斯文)에 빛이 있어 과연 아름답고 부럽도다. 이에 드디어 속어[俚語]로 시를 읽어 주노니, 이는 기억하여 잊지 말게 하고자 함이로다.”
하고, 그 시에 이르기를,
“사해 만방이 일통(一統)으로 돌아왔으나, 조선은 자고(自古)로 황가를 중히 여겼네. 인이 있고 의가 있어 충심이 두터운데, 게으름이 없고 거칠음도 없으니 사절이 아름답도다. 해마다 조회 들어와 상국에 놀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어 중국에 조근(朝覲)하네. 그대가 지금 바른 길에 나아와 천성을 밝히니, 도덕(道德)을 서로 전함이 참으로 자랑할 만하도다.”
하였다. 요동인(遼東人)들이 《소학직해(小學直解)》를 보고 탄미(嘆美)하여 다른 서적(書籍)과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망(隖望)은 전에 장사왕(長沙王)의 교관이었고, 유진은 벼슬이 지부(知府)에 이르렀다가, 모두 요동에 유배(流配)되었는데, 여러 대인들이 이 두 사람은 아는 것이 많다고 하여 유림훈도(儒林訓導)를 삼았다.
【원전】 3 집 553 면
【분류】 외교-명(明) / 어문학(語文學) / 출판-서책(書冊)
[주-D001] 권인(權印) :
임시 서리(臨時署理).
[주-D002] 설재상(偰宰相) :
설순(偰循).
[주-D003] 등한(等閑) :
범연(泛然).
[주-D004] 군상(郡庠) :
향교(鄕校).
[주-D005] 가사(佳士) :
훌륭한 선비.
[주-D006] 전대(專對) :
사신으로 외국에 나아가 그 나라 임금 앞에 나아가서 홀로 응대하는 것.
[주-D007] 《직해한문(直解漢文)》 :
서명(書名).
[주-D008] 지부(知府) :
부(府)의 장관.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이해철 (역)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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