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노 석막의 숙신국 남쪽이고 , 태막과 잇닿은 읍루 땅이로다

2022. 12. 30. 12:47백두산

·        [註 434]

대막(大幕) : 대막(大漠)과 같음. 대막(大漠)은 흥안령(興安嶺)의 서쪽에서부터 시작하여 흑룡강성(黑龍江省)·찰합이성(察哈爾省)·외몽고(外蒙古)·신강성(新疆省)의 변경에 걸친 사막(沙漠)을 말함.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대장군 위청(衛靑)·곽거병(霍去病)을 보내어 기련산(祀連山)을 공격하고 대막(大幕)을 끊어 선우(單于)를 끝까지 추격한 일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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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시문집 12 / ()

부령도호부사(富寧都護府使) 부임하는 이종영(李鍾英) 전송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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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네 가지 두려워할 것이 있으니, 아래로는 백성을 두려워하고 위로는 대간(臺諫)을 두려워하고 더 위로는 조정을 두려워하고 더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목민관이 두려워하는 것은 항상 대간과 조정뿐이고, 백성과 하늘은 때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간과 조정은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하다. 먼 경우에는 천 리나 되고, 더욱 먼 경우에는 수천 리나 되니, 이목(耳目)으로 살피는 것이 혹 두루 상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백성과 하늘은 바로 앞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임하고 몸으로 거느리고 호흡(呼吸)을 함께 하고 있으니, 그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가장 밀접한 것은 이 백성과 하늘인 것이다. 무릇 도를 아는 이라면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부령부(富寧府)는 마천령(摩天嶺) 북쪽에 있으니 나라의 변방이다. 남쪽으로 포정사(布政司 조선 시대 감사가 집무하던 관청)가 천 리나 떨어져 있고 더 남쪽으로 서울이 2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사이에 겹겹이 싸인 산과 감돌아 흐르는 시내가 있어 지세가 막혀 험하다. 그래서 염찰사(廉察使)의 염탐은 소루함이 많고, 헌사(憲司)의 규핵(糾覈) 또한 너무 멀어서 미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이 부(府)를 다스리는 수령은 방자하고 마구 탐욕을 부려 법을 따르지 않고 오직 삼(蔘)ㆍ초피(貂皮)ㆍ수달피[獺皮]ㆍ청서피(靑鼠皮)ㆍ발내포(盋內布 사발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고운 베) 등만 토색하고 착취해다가, 처자(妻子)나 돌보고 권귀(權貴)에게 아첨한다.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백성은 모두 하늘에 죄 없음을 호소하건만, 오직 수령은 어두워서 네 가지 두려워할 것[四畏]을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백성은 더욱 쇠잔해지고 부(府)는 더욱 피폐해지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나의 벗 약암(約菴)의 아들 이군 종영(李君鍾英)이 부령도호부사(富寧都護府使)가 되어 부임하는데, 내가 시골에 있어서 친히 전송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직 백성을 두려워하고[畏民] 하늘을 두려워하는[畏天] 설로 그대를 위해 설명하려 하니 들어주겠는가.

부세(賦稅)가 고르지 않으면 백성은 원망하고, 부세가 아무리 고르더라도 그 힘이 미치지 못하면 백성은 원망하며, 창고를 열어 진휼(賑恤)하고 창고에 곡식을 받아들일 적에 그 이익을 도둑질하면 백성은 곧 원망하고, 기거(起居)가 태만하고 술과 음악과 여색에 빠지면 백성은 원망하며, 은택을 베풀지 않고 형벌을 함부로 행하면 백성은 곧 원망하고, 뇌물을 받고 송사(訟事)를 부정하게 처결하면 백성은 원망하며, 무릇 삼(蔘)ㆍ돈피ㆍ수달피[獺皮]ㆍ청서피(靑鼠皮)ㆍ발내포(盋內布)를 때로 기회를 타서 훔치면 백성은 원망한다. 대체로 백성이 원망하는 것은 하늘도 원망하며, 하늘이 원망하는 경우에는 원대한 복이 내리지도 않고 벼슬도 현달하지 못하게 되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호부사(都護府使)는 힘쓸지어다.

의(義)로써 겉을 바르게 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도 두려워하고, 경(敬)으로써 마음 곧게 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나는 또한 두려워한다. 네 가지 두려움이 구비된 뒤에야 목민관의 일이 완수되는 것이니, 내가 또 무슨 말을 하겠는가.

부령은 본디 북옥저(北沃沮)의 땅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에는 현도군(玄菟郡)에 속하였고, 고구려 태무신왕(太武神王)이 이를 취하여 자기 땅으로 삼았으며, 발해(渤海) 때에는 동경(東京) 용원부(龍原府)에 속하였다. 금(金) 나라 때에는 문수(門水) 이남을 옮겨 모두 내지(內地)로 삼았는데, 부령은 야라로(耶懶路)에 속하였다. 고려 강종(康宗) 때에 석적환(石適歡)이 갈라전(曷懶甸) 지금의 함흥(咸興). 과 알새(斡塞)를 순행(巡行)하고, 삼잔수(三潺水) 지금의 삼수(三水). 에 부(府)를 설립하였으니, 이 일을 증험할 수 있다. 이때 고려 윤관(尹瓘)이 여진(女眞)을 몰아내고 그 땅을 점령하였다가 곧 되돌려 주었다. 원(元) 나라 때에는 합란로(合蘭路)에 속하였으며, 우리 조선 초기에는 태조께서 영토를 개척하여 공주(孔州)ㆍ경성(鏡城) 등 7군을 두었는데, 부령은 경성군에 속하여 석막(石幕)의 땅으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태종이 소다로(蘇多老) 땅에 경원부(慶源府)를 두었는데 그 뒤에 한흥부(韓興富)가 전사하고 곽승우(郭承祐)가 패전하였는데도 조정에서는 그래도 차마 그 땅을 버리지 못하여 부거참(富居站)에 책문(柵門)을 설치하였으니, 아마 간목하(幹木河)를 경계로 삼으려는 것이었으리라.

영릉(英陵 세종의 능, 즉 세종을 가리킴) 때에는 김종서(金宗瑞)가 간목하 연변을 개척하여 비로소 석막의 옛 땅에 영북진(寧北鎭)을 두었다가, 말년에 와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여 부령이라 부르고 육진(六鎭)의 하나로 삼았다. 목릉(穆陵 선조의 능, 즉 선조를 가리킴) 때에는 야인(野人) 마토(摩吐)가 귀화(歸化)하자 비로소 무산부(茂山府)를 두어 간목하 연변 육진의 하나로 삼았다. 부령은 하찮은 변읍(邊邑)으로 불리었지만, 그곳을 잘 다스린 사람은 승진시켜 방어사(防禦使)로 삼았으니, 이는 전조(銓曹)의 격례(格例)이다.

도호부사는 그 부에 이르러 지도(地圖)와 지지(地志)를 고증하고 열람해 보아야 한다. 만일 엉성하고 잘못된 것이 있거든 이와 같이 바로잡는 것도 목민관이 힘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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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언 별집 1 / ()

판서 홍군징(洪君徵)에게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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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나라 임금 복서를 좋아하여 / 秦王好卜筮
서적 불태울 때 역서에는 미치지 않았다 / 焚書不及易
지금 선비들의 재화는 / 至今儒林禍
뉘라서 검괘를 풀랴 / 誰夫解卦畫
판서 홍군징이 / 太宰洪君徵
야위어 외딴 곳에 있도다 / 憔悴在絶域
슬프다 재앙의 근본은 / 咄咄禍之本
상소하여 적통을 간쟁함이라 / 上疏爭宗嫡
뭇사람 분노 쌓인 지 오래니 / 衆怒積已久
일조일석의 일 아니로다 / 非一朝一夕
정성스레 가인이 경계했건만 / 拳拳家人戒
기어이 북녘 끝에 귀양 갔도다 / 竟至窮北謫
석노 석막의 숙신국 남쪽이고 / 石砮石幕
태막과 잇닿은 읍루 땅이로다 / 挹婁連太漠
곤궁하나 형통함 잃지 않고서 / 困不失所亨
물리침 당한 것 태연히 잊게 한다 / 夷然忘擯斥
노인이 늦게야 역리를 배웠나니 / 老人晩學易
모두 삼백 육십 이라 / 三百六十策
천도란 본디 무상하여 / 天道本無常
가고 오며 열리고 닫힘이 있도다 / 往來有闔闢
이 이치 무너뜨릴 수 없으니 / 此理不可毀
고요히 천하의 은밀한 이치 연구할지라 / 默究天下賾
덕은 곤궁한 데서 변별되는 것이니 / 困者德之辨
군자 이것으로 역량을 시험한다 / 君子以驗力
목숨을 바친들 무엇을 원망하랴 / 致命亦何怨
즐거움은 궁색함에 있는 것이다 / 所樂在窮塞

경신 십이월[涂月] 십사일 저녁 고암(古庵) 농류(聾纍)는 쓴다.

[-D001] 삼백 육십 (三百六十策) : 

노양(老陽)의 책수(策數)는 36이고, 노음(老陰)의 책수는 24인데 노양의 책수로 건괘(乾卦) 육효(六爻)을 합계하면 216이 되고, 노음의 책수로 곤괘(坤卦) 육효(六爻)를 합계하면 144가 되니, 건ㆍ곤 두 괘의 책수를 모두 합하면 360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