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도염방사(山南道廉訪使)로 전근되어 바다를 건너 북으로 가다가 길이 막혀 철산(鐵山)으로 되돌아오는데 많은 왜선(倭船)을 만나 배에 탔던 사람들과 함께 힘써 싸워 물리쳤다.

2023. 6. 18. 16:08이성계의 명조선

[《원사(元史) 145 〈월로불화전(月魯不花傳)]

장사성(張士誠)이 절서(浙西)를 점거하고 왕호(王號)를 참람하게 사용하자, 숙정염방사(肅政廉訪使) 월로불화(月魯不花)가 그와는 함께 거처할 수 없다고 여기고 조카 동수(同壽)에게 말하기를, “우리 집안은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았는데 한스럽게도 역적을 찔러 죽여 나라에 보답할 수가 없거늘, 하물며 어찌 역적과 함께 거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동수에게 배를 마련하게 하고 처자를 태우고서 몸을 나무 궤짝 속에 숨기고 짚으로 덮어 탈주하여 경원(慶元)에 이르렀다. 장사성의 부하가 이를 살펴 알고는 철기(鐵騎) 1백여를 보내어 추격하였으나, 조아강(曹娥江)에 이르러 못 따라잡고 돌아왔다.

얼마 뒤에 산남도염방사(山南道廉訪使)로 전근되어 바다를 건너 북으로 가다가 길이 막혀 철산(鐵山)으로 되돌아오는데 많은 왜선(倭船)을 만나 배에 탔던 사람들과 함께 힘써 싸워 물리쳤다. 왜적들이 속여서 투항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월로불화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도적들이 배에 올라와 월로불화를 잡아서 엎드려 절하게 하였으나, 월로불화가 꾸짖기를, “내가 조정의 중신(重臣)으로서 어찌 도적에게 절을 하겠느냐?”라고 하니, 드디어 살해되었다.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