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6. 19:04ㆍ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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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4년 정유(1897) 9월 16일(임인, 양력 10월 11일) 비
34-09-16[16] 원구단에 친히 제사 지내기 위하여 거둥할 때 비서원 경 김영목 등이 입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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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시(子時).
대가(大駕)가 왕세자와 원구단(圜丘壇)에 나아가 친히 제사 지내기 위하여 거둥하였다. 이때 입시한 비서원 경 김영목, 비서원 승 김홍륙(金鴻陸)ㆍ강우형ㆍ정세원ㆍ홍우상, 비서원 낭 조기하ㆍ이우만ㆍ신헌균ㆍ김춘수, 규장각 직학사 김승규(金昇圭), 대제 민경식, 홍문관 시독 이범석ㆍ이범찬(李範贊)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때가 되자, 장례가 외판을 무릎 꿇고 주청하니, 상이 면복(冕服)을 입고 여(轝)를 타고 치중문(致中門)을 나갔다. 태의원 경 조병호(趙秉鎬)와 소경 정세원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아침 일찍 수고로이 거둥하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이어 돈례문(敦禮門) 밖으로 나갔다. 좌장례가 여에서 내려 교(轎)를 타기를 무릎 꿇고 주청하니, 상이 여에서 내려 교를 탔다. 김영목이 규(圭)를 올리니, 상이 규를 잡았다. 조령을 내리기를,
“비서원 경 김영목은 사직과 종묘로 달려가서 봉심하고 오라.”
하였다. 이어 인화문(仁化門)을 나가 출발하여 원구단의 대문 밖에 이르렀다. 좌장례가 교에서 내려 여를 타기를 무릎 꿇고 주청하니, 상이 교에서 내려 여를 탔다. 좌장례와 우장례가 앞에서 인도하였다. 동문(東門)을 거쳐 대차(大次)에 들어간 뒤에 문안하였다.
조금 있다가 좌장례가 외판을 무릎 꿇고 주청하니, 상이 면복을 입고 나왔다. 장례원 경이 규를 잡기를 무릎 꿇고 주청하니, 김영목이 규를 올리고 상이 규를 잡았다. 왕태자가 뒤따라 나왔다. 장례원 경의 인도로 상이 원구단에 이르러 공손히 단(壇)의 위차(位次)를 살펴보았다. 이어 제기(祭器)를 살피기 위하여 제기위(祭器位)에 나아갔다. 집사자(執事者)가 멱(冪)을 들어 내려놓고 깨끗하다고 고하였다. 제기를 다 살핀 뒤에 장례원 경의 인도로 상이 희생을 살피기 위하여 성생위(省牲位)에 나아가 남쪽을 향해 서고, 왕태자가 뒤따라 성생위에 나아가 남쪽을 향해 섰다. 장생령(掌牲令)이 하속들을 거느리고 희생을 끌고 앞으로 나왔다. 희생을 다 살핀 뒤에 장생령이 희생을 끌고서 신주(神廚)에 나아가 전사관(典祀官)에게 주었다. 장례원 경의 인도로 상이 정확(鼎鑊)을 살피고 깨끗이 닦였는지 보기 위하여 신주에 나아갔다. 봉상사 제조가 정확의 뚜껑을 들고서 깨끗하다고 고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시원임 의정, 궁내부 대신, 장례원 경은 입시하라.”
하였다. 의정 심순택(沈舜澤), 특진관 조병세(趙秉世), 궁내부 대신 민영규(閔泳奎), 장례원 경 김영수(金永壽)가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오늘은 가을 날씨가 더욱 맑은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침수와 수라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심순택이 아뢰기를,
“태자궁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평순하다.”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경들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사를 모두 새롭게 시작하는 지금에 모든 예(禮)가 새로워졌으니 원구단에 처음으로 제사를 지내는 지금부터 의당 국호(國號)를 정하여 써야 한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우리나라는 기자(箕子)가 옛날에 봉해진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하고, 조병세는 아뢰기를,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모두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새로 정해야 마땅합니다. 앞으로 만억년토록 영원할 나라의 터전이 진실로 지금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통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니,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하는 것은 불가한 것이 아니다. 또한 종종 각 나라의 문자(文字)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고 하였다. 이는 아마도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을 기다린 것이니, 천하에 공표하지 않더라도 천하가 모두 대한(大韓)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는 것이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삼대(三代) 이래로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기자가 옛날에 봉해졌을 때의 칭호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지당하시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
하고, 조병세는 아뢰기를,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韓)이라고 부른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에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부합하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세토록 태평 시대를 열 조짐입니다. 신은 흠앙하며 칭송해 마지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의 제문과 반조문(頒詔文)에 모두 ‘대한(大韓)’으로 쓰도록 하라.”
하니, 김영수가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하교대로 통지하여 거행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도로 대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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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34년 정유(1897) 9월 18일(갑진, 양력 10월 13일) 맑음
34-09-18[12] 황제에 올랐으므로 고사를 상고하여 대사령을 행한다는 봉천승운 황제의 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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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천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가 조령을 내리기를,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할되어 각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는 서로 자웅(雌雄)을 겨루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이외에 영토를 더욱 확장하여,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물로 받게 되었다. 사천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해져서 우리 자손들에게 만세토록 무궁할 반석 같은 터전을 전해 주었다. 오직 짐이 부덕하여 어려운 때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보아 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와 백성들, 군사와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며 수십 차례나 글을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여러 차례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금년 9월 17일 백악(白嶽)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光武) 1년으로 삼으며,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왕후(王后)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王太子) - 예휘(睿諱) - 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서 큰 의식을 비로소 거행하였다. 이에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노라.
첫째, 조정에서 높은 벼슬과 후한 녹봉으로 신하들을 대우하는 것은 원래 그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나라의 안위(安危)는 전적으로 관리들이 탐욕스러운가 청렴한가에 달려 있다. 관리들이 만약 간사하고 탐욕스러우면 뇌물이 횡행하여 용렬하고 간악한 자들이 요행으로 등용되고 공로가 없는 자들이 마구 상을 받으며 이서(吏胥)들이 문서와 장부에 농간을 부려 백성들이 피해를 보게 되니, 정사가 문란해지는 것이 실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금년 10월 12일 이후부터 서울에 있는 크고 작은 아문(衙門)과 지방에 있는 관찰사(觀察使), 부윤(府尹), 군수(郡守), 진위대 장관(鎭衛隊將官)들과 이서(吏胥), 조역(皁役)에 해당하는 자들로서 단지 뇌물만 탐내어 법을 어기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자들은 규례를 살펴 죄를 다스리되 대사령 이전의 것은 제외한다.
둘째, 조관(朝官)으로서 나이 80세 이상과 사서인(士庶人)으로서 나이 90세 이상인 자들에게 각각 한 자급씩 가자하라.
셋째, 지방에 나가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은 수고가 많은 만큼 그들의 집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부(該部)에서 넉넉히 대주어 돌봐 주라.
넷째, 재주를 갖고서도 벼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선비로서 현 시국에 쓸 만한 사람과 무예와 지략이 출중하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의 해당 관찰사가 사실대로 추천하고 해부에서 다시 조사한 다음 불러다가 적절히 뽑아 쓰라.
다섯째, 은혜로운 조서(詔書)에 ‘황무지는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장마와 가뭄의 피해를 입은 곳은 세금을 면제해 주고, 백성에게 부과된 일정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내용이 있으니, 다시는 세금을 연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간혹 이미 다 납부하였는데도 지방관(地方官)이 별개의 항목으로 지출해서 쓰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착복함으로써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은 모두 완전히 면제하라.
여섯째, 각처의 주인 없는 묵은 땅은 해당 지방관이 분명하게 살펴보고서 보고하면 관찰사가 다시 살펴보고 판단한 다음, 과연 허위날조한 것이 없을 경우엔 곧바로 문서를 주어 돈과 곡식을 면제하여 주며, 그 땅은 백성들을 불러다가 개간하도록 하라.
일곱째, 문관(文官), 음관(蔭官), 무관(武官)으로서 조관(朝官) 7품 이하에게는 각각 한 품계를 올려 주라.
여덟째,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하므로 역대로 모두 죄수를 세 번 심리하고 아뢰는 조목이 있었다. 죄보다 가볍게 잘못 판결한 형관(刑官)의 죄는 죄보다 무겁게 잘못 판결한 경우보다 가볍다. 대체로 형벌을 다루는 관리들은 제 의견만을 고집하지 말고 뇌물을 받거나 청탁을 따르지도 말며 범죄의 실정을 캐내는 데 힘쓰라.
아홉째, 모반(謀叛), 강도, 살인, 간통, 재물 갈취, 절도 등 여섯 가지 범죄를 제외하고는 각각 한 등급을 감하라.
열째, 각도(各道)의 백성들 가운데 외롭고 가난하며 병든 사람으로서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해당 지방관이 더 신경을 써서 돌봐 주어 살 곳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열한째, 큰 산과 큰 강의 묘우(廟宇) 가운데 무너진 곳은 해당 지방관이 비용을 계산해서 해부에 보고하고 제때에 수리하여 공경하는 도리를 밝히라.
열두째, 각도의 도로와 교량 가운데 파손된 것이 있으면 담당 지방관이 잘 조사하여 수리함으로써 나그네들이 다니는 데 편리하게 하라.
열셋째, 조서 안의 각 조목들에 대하여 해당 지방의 각 관아는 요점을 갖추어서 진심으로 받들어 행함으로써 되도록 은택이 백성들에게 미치도록 힘써서 백성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짐의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라. 만약 낡은 틀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한갓 겉치레로 책임이나 때우고 있는데도 해당 관찰사가 제대로 살피지 않고 되는대로 보고한 것은 담당 내부(內部)에서 일체 규찰하여 엄히 처리하라.
아, 애당초 임금이 된 것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황제의 칭호를 선포한 것은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부합한 것이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며 교화를 시행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천하에 선포하여 모두 듣고 알게 하라.”
하였다. 홍문관 태학사 김영수(金永壽)가 지어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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