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사는 한국식 돛단배를 이용하여 제물포까지 항해한 후, 그곳에서 서울로 향합니다.

2023. 1. 13. 01:20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사젠'은 미터법 시행이전에 길이의 단위로 1사젠은 2.134미터

 

해외사료총서 16권 러시아국립해군성문서Ⅱ(1894~1899)   >   69. РГАВМФ, ф.417, оп.1, д.1536, лл.39∼42.

보고 №14

복사 №239

한국의 군도: 관매도(Nimrod Island), 워싱톤항만(Washington Harbour), 진도군도, 마산포(Mesani-po)만과 진해(Anguk)만

포함 ‘보브르’호의 함장 해군중령 알렉산드롭스키(Александровский) 1895년 9월 25일자 보고서에서 발췌

7월 31일 오전 10시 30분경 수위계를 사용하여 남쪽 섬의 북쪽 만에 도착했습니다. 만으로 진입하면서 수심측정기를 투척하자 수심 20사젠을 가리켰습니다. 이 이외에도 소용돌이를 동반한 상당히 빠른 해류로 인해 함정을 해안 방면으로 강하게 미는 힘이 발생하여, 기관 두 개를 다른 방향으로 최대 속력을 주고 방향타를 지그재그로 작동함으로써 힘들게 원하는 항로를 잡았습니다. 상기와 같은 조건에서는 정박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만을 벗어나려고 기관을 최고 추력으로 가동시켰습니다. 상기의 만 북쪽은 산으로 가려 있었으며, 해안을 따라 한국의 촌락들이 보였습니다. 만에서 빠져나오면서 관매도(Nimrod Island)에 있는 초도포(Murray Sound)로 향했습니다. 신이이도(Craig Harriet group)을 남쪽으로부터 회항하면서, 이 섬들과 리라섬(Lyra Island) 사이의 협곡으로 진입했습니다. 저녁 6시에 관매도에 형성된 만의 북서 방면에 정박했습니다. 수심은 6사젠 이었으며, 해저면은 진흙으로 된 하상토였습니다. 만은 모든 방면의 풍향에 노출되어 있으며, 외해로부터 만을 향해 높은 파도가 밀고 들어와 정박에 불편했습니다.

8월 1일 한국군도 중 남쪽 수역 즉, 진도 방면을 조사하기 위해 출항했습니다. 오전 6시 45분 버지니(Virginie) 섬과 동일한 경도에 접근할 즈음, 강우를 동반한 강력한 돌풍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순식간에 군도 전체가 안개에 가리었으며, 그 즉시 정 동쪽 방면으로 회항하여 항해를 지속했습니다. 돌풍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5마일을 항해하다가 안개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다시 선회하여 정 서쪽 방면으로 향했습니다. 곧 강우가 멈추고 군도가 시야에 들어와서 최대 항해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운항했습니다. 버지니섬 북쪽 끝을 향하여 수로지도에 나온 방향을 따라 항해했습니다. 11시 15분 ‘Green channel’에 진입하여 중간 속도로 감속한 후 섬 사이를 항해했습니다. 섬들 사이에 형성된 진출입로 중 일부는 상당히 협소했습니다. 수로지도에는 이곳에서는 가능한 한 수심측정기를 자주 투척하면서 중간 속도로 항해하라는 충고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섬들의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하얀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각 섬의 정상에는 그곳에서 수로조사 작업을 실행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흰색과 붉은색으로 된 기가 게양된 깃대와 표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2시 15분 목적지인 워싱톤 항만에 도착하여, 진도만의 북서쪽에 있는 입구로부터 1마일 떨어진 진도 연안 밑에 정박했습니다. 수심은 7.5사젠 이었으며 해저면은 진흙으로 된 하상토였습니다.

워싱톤 항만은 진도의 북서쪽 부분으로서 모든 방향이 섬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이 섬들이 워싱톤 항만이라고 불리는 군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정박장은 상당한 규모이며, 바람과 파도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에 강력한 북풍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 안전한 정박장을 선박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정박장의 평균 수심은 8-7사젠 입니다. 최대 수심은 일부 장소에서 25사젠에 달합니다. 해안선으로부터 10사젠 거리까지의 연안 수심이 매우 깊어서 6-8사젠에 달합니다. 진도에서 정박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8사젠 깊이입니다. 정박장에서 수심이 가장 얕은 곳은 5-6사젠 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본인의 견해로는 24-25피트 흘수를 지닌 대형 장갑순양함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전함에게는 본 정박장이 매우 유용하고 매우 편리합니다. 보다 정확한 측량을 실시하면 수심이 5사젠 보다 더 얕은 곳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이미 관측과 측정을 수행했으며, 일본 선박들이 본섬을 기항하고 있고, 일본과 통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제물포나 남서쪽의 다른 여러 항구에서 출항하는 일본 기선의 노선이 섬들 사이에 위치한 본 정박장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본인들은 벌써 이 지역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1845년 ‘Flying Fish’호를 비롯하여 영국인들은 이곳의 지형과 ‘Notch’ 군도 사이에 형성된 진출입로를 이미 조사했으며, 이곳은 대형선박들이 편리하게 정박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진도

본섬은 그 부속 도서들과 함께 하나의 완전한 행정구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이산(Ли-и шан) 군수의 관할 하에 있습니다. 군수는 섬 북서부에 있는 협소하고 길게 형성된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진도시에 거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섬에는 산이 많고 산맥들이 사방으로 얽혀있습니다. 산에는 초목이 매우 적습니다. 산의 남쪽 중턱에는 키 작은 나무들로 형성된 숲이 약간 있으며 마을과 경작지가 있습니다. 섬의 북서부에 위치한 만 이외에도, 남동 지역에 금찬도(Кым-чан-до)라는 이름의 만이 하나 더 존재합니다. 본 명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마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진도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파악하게 된 사실은, 하구가 상당히 넓지만 상류로 올라갈수록 협소하고 긴, 작은 지류들이 여러 방향으로 나뉘다가, 결국은 섬과 동일한 명칭을 보유한 진도라는 중심 도시로 연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완전한 만조 때와 완전한 간조 때 모두 이 지류를 통해 운행했습니다. 만조와 간조시 해안선의 형태가 천차만별로 변합니다. 간조 시에는 폭이 20사젠에 불과한 상당히 좁은 지류가 형성되지만, 그 지류의 가운데를 따라 항해하면 진도읍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간소 시 해류는 지류를 향해 급경사를 형성하는 산 중턱에서 최소한 반마일이나 뒤로 물러납니다. 산의 중턱으로부터 지류 사이에 형성된 공간은 축축하고 질척거리며, 전혀 통행이 불가능한 갯벌로 뒤덮여 있지만, 한국인들은 해삼이나 여러 종류의 조개들을 채취하기 위하여 갯벌을 파헤칩니다. 지류에도 다수의 식용 어류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만조 시에는 드러나 있던 지류의 모든 부분들이 완전히 바닷물에 잠깁니다. 여울에서의 수심은 2.5피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증기보트는 전혀 통행할 수 없습니다. 가장 하구에 있는 지류의 수심은 눈에 띄게 깊어지며(15피트에 달함), 수원지로 향할수록 수심이 얕아집니다(2.5-3피트까지 줄어듦). 는 진도읍에서 늦은 시간에 귀항하면서 미리 표시해둔 항로표식과 주요 지점들을 따라 운항하면서 속도를 조절해야만 했습니다. 온통 물에 덮인 전방의 넓은 수역은 간조 시에도 좁은 지류를 형성하지만, 중형선박은 그 지류 안에서 선회하기 어렵습니다. 간조 시에 드러나는 엄청난 크기의 질척한 여울로 인해 간조시에는 해안에 접안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진도의 둘레는 약 70베르스타이며, 폭은 약 30베르스타 입니다. 섬의 길이는 폭보다 조금 더 넓습니다. 섬들은 산악 지형이며 그 산맥에는 중심축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북풍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계곡과 산악의 남측 경사면에서만 마을과 경작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진도에는 북풍이 심한 것이 명백합니다. 섬의 주민은 한국인이며 극히 소수의 일본인도 있습니다. 주민 수는 10,000명에 달하며, 주업은 농업과 어업입니다. 섬 주변에는 어류가 매우 풍부한데, 진도와 부산 간의 통신과 교역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수출에 종사합니다. 한국인들은 자기 소유의 농지를 경작하고 있지만, 결코 주도면밀한 농경이라고는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토양이 비옥해서 수확이 좋을 뿐입니다. 조, 수수, 보리, 옥수수, 쌀, 배추와 고구마를 파종합니다. 한국인들의 가금류 중 대표적인 것은 황소입니다. 한국에는 말이 매우 귀해서 황소가 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돼지, 닭 등이 있는데, 이상의 것이 한국인들의 빈약한 살림살이 전부입니다. 워싱톤 해협(Washington Strait)의 연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어류 수출 역시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진도읍에서 우리는 황소 및 약간의 암탉과 영계를 구입했습니다. 우리의 함선을 방문한 군수는 흔쾌히 상기의 정보들을 저에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군수는 상기의 사실들 이외에도 황소 10마리와 약간의 가금류 그리고 채소를 즉시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산에서 만을 향해 흐르는 개천의 수는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담수를 공급받는 것이 상당히 힘듭니다. 진도산으로부터 15베르스타 떨어진 곳에 양질의 대형 우물이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나 도로가 전혀 부설되어 있지 않은 결과, 담수 공급이 상당히 곤란합니다. 일본인들은 관측과 측정을 실행하고 주민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 진도를 상당히 자주 방문하고 있습니다. 진도에 있는 만의 북서쪽과 금찬도 만에 세 척의 일본 선박이 상당히 오랜 기간 정박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화의 진행이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우리의 바텐더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함 또는 단순한 교통선 등의 왕래 사실과 관련된 정보를 한국인들로부터 입수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진도에는 일본인들의 창고가 전혀 없었으며, 전신선도 없었습니다. 우편연락은 부산으로부터 왕래하는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으나 시기가 매우 불규칙적입니다. 군수는 자신의 보고서와 서류들을 급사를 통해 발송하고 있으며, 급사는 한국식 돛단배를 이용하여 제물포까지 항해한 후, 그곳에서 서울로 향합니다. 제가 군수에게 만의 개괄도면을 보여주자, 그는 다음 방문에서 진도 및 진도에 속한 섬들이 나온 지도를 가져와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진도의 기후는 혹독하지 않을 것이며, 동절기에는 연안에만 결빙되고, 만의 중간과 워싱톤 항구는 얇고 작은 형태로 결빙되어 떠다니는 얼음조각들로 가득하지만, 함선에는 위험 요소가 되지 않습니다. 군수는 대규모의 관리와 군사들을 대동하는 과대한 행렬을 이끌고 저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상당히 수수하게 보여주었으며, 주변의 모든 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고, 실로 만족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사소한 선물을 몇 개 증정하자, 그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서 다음날 가금류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진도에 정박하고 있는 동안 선임항법사의 지휘 하에 장교들이 만에 대한 조사를 실행했습니다. 비록 양지는 32도, 음지는 25도에 달할 정도로 기온이 무덥기는 했지만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날씨는 순조로웠습니다. 작업을 완료한 후, 명령에 따라 진도의 남쪽 측면을 따라 부산으로 출항했습니다. 금찬도라는 명칭을 지닌 만의 남동쪽을 통과할 무렵 섬들 사이에서 강한 소용돌이와 조우함에 따라 운항 속도가 2.5노트까지 떨어졌으며, 이 좁은 해협을 벗어나기 전까지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이후 거문도가 북쪽 방면으로 오게 항로를 잡았습니다. 8월 12일 밤 거문도 항과 동일한 경도 상에서 거센 파도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북동풍과 조우했습니다. 바람은 계속해서 강해졌으며 선수에 대형 파도가 치고 들어왔습니다. 이에 거문도 항에 입항하여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거문도에 입항하면서 정박장에 정박 중인 여러 척의 일본 증기선을 목격했습니다. 항구에 진입하여 북동 연안에 정박했습니다. 수심은 5,5사젠 이었으며, 해저면은 진흙 하상토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 증기선들은 군수물자 수송선용 기를 게양하고 있었으며, 그 사이에 일본 군기를 게양한 준설선 한 대가 있었습니다. 준설선은 바닥이 접히는 바지선을 예인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내항했습니다. 증기선들의 명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해위를 출항하여 이에도시마(Iedo-Sima)행 선박 ‘Bankoku maru’호, 이에도시마행 선박 ‘Iasonoura maru’호, 뤼순항에서 이에도시마행 선박 ‘Ise-maru’호입니다. 오후 1시 정박장에 일본 증기선 ‘Itoni maru’호가 도착했습니다. 본 증기선의 갑판에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커다란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뤼순항을 출항하여 이에도시마로 항해하는 중이었습니다. 모든 선박들은 암초 절벽을 따라 항해하다가 강풍을 피하기 위해 거문도에 입항했습니다. 본 증기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일본함대 출신입니다.

이곳에서 신선한 식량을 적재한 후 오후 2시에 출항했습니다. 정박장을 벗어나서 가덕서도(Douglas Inlet)에 진입했습니다. 운항 내내 안개와 강우를 동반한 북동풍이 강력하게 불었습니다. 마산포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가 있는 만으로 진입하면서 잔잔한 물결의 바다를 만날 수 있었으며, 날씨도 맑아졌습니다. 마산포 만은 모든 방향의 바람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었으며, 수심도 깊고, 부동항일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날 한국의 기를 게양한 소규모의 증기선이 내항했는데, 부산과 다른 항구들 간의 연락을 담당하는 연락선이었습니다. 마산포에서 작은 배를 타고 한국의 관헌들이 방문하여, 우리에게 어디서 왔는지, 장기간 정박할 예정인가 등을 질문했습니다. 식량과 관련하여 우리가 질문을 던지자, 이곳에서는 황소와 채소 등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8월 15일 오전 6시 30분 마산포를 출항하여 진해만으로 향했습니다. 진해만은 매우 작았으며, 보호될 수 있는 상태이고註 077 마산포 만으로 가는 상당히 좁은 항로가 있습니다. 진해만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식량은 상당히 빈약하여 신선한 식품이 거의 없었습니다. 2시간 정도를 정박한 후 닻을 올리고 외해로 출항하여 가덕서도(Douglas Inlet) 사이를 통과하여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부산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입니다.

확인:검찰관 해군특무상사 _____________

 

註 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