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2. 18:44ㆍ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沔水
면수
내 이름. 섬서성(陝西省)에서 발원하여 양자강에 흘러드는 강.
청사고(淸史稿) > 조선열전(朝鮮列傳) > 조선(朝鮮) > 朝鮮은 크게 두려워 北洋大臣에게 군사 원조를 청하는
○ 朝鮮은 크게 두려워 北洋大臣에게 군사 원조를 청하는 急電을 쳤다.註 599 이에 李鴻章은 直隷提督 葉志超註 600와 太原鎭總兵 聶士成註 601에게 率蘆楡의 防兵을 이끌고 朝鮮을 원조하도록 상주하여 牙山縣 屯山에 주둔시켰는데,註 602 그곳은 朝鮮의 王京에서 西南쪽 150里 떨어진 곳으로서 仁川澳의 좌측 겨드랑이에 해당하는 沔江의 입구이다. 澳 : 후미 욱 (물가의 굽진 곳, 바다나 강이 활등처럼 굽어 배를 대기 알맞은 곳)
택당선생집 제3권 / 시(詩) 전운(前韻)을 써서 종제(宗弟)인 중목(仲木) 침(梣) 에게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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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택과 홍양 구석 각자 처박힌 몸 / 滄澤洪陽各一隅
백발에 건몰하면 비부 될까 부끄럽네 / 白頭乾沒愧非夫
장생의 구중단은 쓸데없는 소리요 / 莊生謾說溝中斷
어부는 택반고를 괜히 슬퍼하였도다 / 漁父空憐澤畔枯
지금 세상 호사자(好事者)가 어찌 다시 있으리요 / 好事至今寧復有
그대 덕에 새로운 시 한 편 지어 보네그려 / 新詩賴汝未能無
겨울 바람에 날마다 일어나는 고향 생각 / 冬飈日日吹歸思
한수 따라 서남쪽 면천(沔川) 못으로 내려가네 / 漢水西南下沔湖
동주집 시집 제10권 / 시(詩)○아성록3(牙城錄三) 청선옹의 양어를 놀리는 노래 이지정 〔嘲聽蟬翁養魚行 李志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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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청선옹 / 嗟哉聽蟬翁
생선 좋아해도 매번 먹지는 못하지 / 嗜魚不恒得
면호의 어촌에 기숙했는데 / 寄宿沔湖漁
어부들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지 / 漁人初莫識
소반에 삶은 생선 담아내니 / 中盤進烹鮮
기름진 향기 코를 찌르는데 / 香膩聞鼻息
늙은 선비 성깔만 깐깐하여 / 儒老習氣酸
고결하리라 스스로 경계했기에 / 潔脩內自飭
하찮은 것에도 명분과 의리 따지느라 / 一芥顧名義
굶주림 견디며 음식 물리치니 / 忍饑仍却食
하인이 의아해하며 / 僕御旁錯訝
장자의 마음 알지 못하네 / 長者意難測
집에 돌아와 생선에 구미 당겨 / 歸舍口津腥
차려 놓은 음식 옆에서 세 번 탄식했네 / 三歎飣餖側
서둘러 도주에게 배우고자 / 急欲學陶朱
논에 구덩이 파고서 / 爲穿秔稻域
붕어 기르려 천여 마리나 / 養鯽滿千頭
굼실굼실 어장에 풀어 놓았네 / 濈濈縱澤國
이에 공이 며느리와 아들에게 자랑하여 / 乃公詑婦子
살진 고기를 금방 잡으리라 하였지 / 獲雋當在卽
가을 깊어 서리 맑을 제 / 秋高霜露淸
〈구역〉을 시험하리라 여겼는데 / 謂可試九罭
갑자기 장맛비 쏟아져 / 淫霖忽沈潦
제방 북쪽 터져 버렸네 / 缺坼隄障北
여러 물줄기가 골짝으로 쏟아지니 / 群流瀉幽壑
고기들이 물살 타고 떠내려갔네 / 鱗介乘水力
큰 물살이 흰 지느러미의 물고기 휩쓸어 / 洪波擁素鬐
깊은 바다로 달려갔네 / 下赴滄溟黑
제잠은 잔보다도 작은데 / 蹄涔小於杯
벗어나고서 다시 생각하랴 / 旣別肯相憶
모든 일은 어긋나기 쉬운 법 / 萬事喜乖張
분수대로 나물이라도 달게 여기시게 / 常分甘葱菔
그대가 처마에 걸린 그물 보노라면 / 君看掛簷網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주살 쏜 듯하리 / 有類飛鴻弋
망망한 구름 파도 사이에 / 浩溔雲濤間
종일 물고기 그립겠지 / 終朝羨魚色
[주-D001] 청선옹(聽蟬翁) :
이지정(李志定, 1588~1650)으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정오(靜吾), 호는 청선이다.
[주-D002] 면호(沔湖) :
충청남도 당진시(唐津市) 면천면의 저수지나 호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하지 않다.
동주집 시집 제9권 / 시(詩)○아성록2(牙城錄二)
〈침해당 8수〉를 차운하다〔次韻枕海堂八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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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은 바위 감돌아 나 있고 / 細徑縈巖構
평대에서 돌난간 굽어보네 / 平臺俯石欄
하늘 가까워 학 타고 날아갈 만하고 / 近天邀鶴馭
물가에 있어 낚시질할 만하네 / 臨水把漁欄
갈매기와 백로는 봄날 일찍 울어대고 / 鷗鷺春聲早
처마와 기둥에 밤풍경 무르익네 / 簷楹夜色闌
한가로이 앉아서 눈과 귀 즐거우니 / 端居娛耳目
굳이 유람 다닐 필요 없어라 / 不用恣遊盤
2
세상에 이바지하려니 항상 본성에 어긋나고 / 供世常違性
농사나 지으려 해도 매번 굶주림에 시달리니 / 耕田每苦飢
어찌 별장 만들어 / 何如規別業
멋지게 그윽한 기약 맺음과 같으랴 / 爛熳結幽期
땅은 파도에 끄떡없는 바위 솟아 있고 / 地湧凌波石
하늘은 해가 목욕하는 연못에 열려 있네 / 天開浴日池
운무 경치 눈으로 보기에도 벅찬데 / 雲煙疲應接
어찌 쉽게 시로 말하랴 / 那得易言詩
3
성곽은 호수 서편에 있고 / 城郭西湖上
정자는 북두성 사이에 있네 / 亭臺北斗間
부상에서 일찍이 떨어져 나온 바위이며 / 扶桑曾斷石
옛적 신선들 놀던 방장산인가 / 方丈舊神山
지역은 삼청의 승경에 이어졌고 / 境接三淸勝
몸은 한 기운 사이에서 노니네 / 身游一氣閒
뭇 신선들 여기서 자주 노는데 / 群仙紛冉冉
머문 부절 언제나 돌아갈까 / 駐節幾時還
4
맑게 갠 호수 손에 잡힐 듯하고 / 晴湖疑攬結
시원한 누각은 올라 즐기기 좋아라 / 快閣嗜躋攀
햇살이 구름 밖으로 나오고 / 日出雲霏外
별들이 밤이슬 사이로 늘어섰네 / 星羅沆瀣間
아침저녁으로 멍하니 바라보는데 / 朝昏頻悵望
어부와 나무꾼 저마다 돌아오네 / 漁採各知還
매가 사라진 하늘 낮은 곳에 / 鶻沒天低處
아련히 먼 물가의 산이 보이누나 / 蒼然極浦山
5
비록 넓은 채마밭 없어도 / 雖無廣場圃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산다네 / 亦足具簞瓢
못난 돌이 등나무의 시렁 떠받치고 / 醜石扶藤架
높은 처마가 버들가지에 닿았네 / 危簷接柳條
교인의 베틀은 물가 난간에 가깝고 / 鮫機隣水檻
고깃배는 바람과 조수 타고 달리네 / 漁艇駕風潮
더욱이 초대해준 곳이라 / 更是招邀處
시골길 먼 줄도 모르노라 / 村蹊未覺遙
6
누각 길에서 문득 바라보니 / 閣道便臨眺
대숲이 말끔하게 다듬어졌네 / 林篁巧翦裁
바람은 황작 따라 일어나고 / 風從黃雀起
물결은 흰 갈매기 보내오네 / 波送白鷗來
들 언덕은 하늘 끝까지 펼쳐지고 / 野岸隨天闊
봄 배는 달 밝기를 기다리는구나 / 春帆候月開
뗏목 탈 곳 알지 못하니 / 乘槎迷處所
어느 길이 등래 가는 길인가 / 何路問登萊
7
드넓은 들판 호수까지 이어지고 / 鉅野臨湖盡
외로운 산은 바다에 접해 떠 있네 / 孤山際海浮
빙 두른 포구 저 끝까지 아득하고 / 微茫環極浦
긴 강물을 다 받아들이네 / 呑納混長流
보배로운 기운 진주조개에 담기고 / 寶氣涵珠蚌
신비한 광채 철우에 잠겼네 / 神光鎖鐵牛
이미 교인의 집에 의지했는데 / 已依鮫作室
다시 신기루에 접하였네 / 更接蜃爲樓
8
숲 자락에 산 의지한 누각 / 林表依山閣
울 옆으로 항해하는 배 지나네 / 籬傍駕海船
올라서 바라볼 두 눈 있어 / 登臨雙眼在
수려한 경치 한 지역에 소문났네 / 奇勝一方傳
해는 맑은 강 위에 걸렸고 / 日麗淸江上
봄은 백발 앞에 무르익네 / 春深白髮前
풍진 속에 떠도는 몸이지만 / 風塵正漂泊
절경 속에 도리어 황홀하네 / 絶境轉茫然
[주-D001] 침해당(枕海堂) 8수 :
침해당은 아산 영인산(靈人山) 주변에 있는 성시망(成時望)의 당(堂)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알기 어려우며 《동주집(東州集)》 문집(文集) 권3에 〈침해당기(枕海堂記)〉가 있어서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조경(趙絅)의 《용주유고(龍洲遺稿)》 권1에 〈차침해당제현운 8수(次枕海堂諸賢韻八首)〉 등에서 이민구의 시와 동일한 운자를 사용하고 있으나 원시(原詩)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다..
[주-D003] 지역은 …… 이어졌고 :
침해당 주변의 풍광이 신선세계처럼 아름답다는 말이다. 삼청(三淸)은 도교(道敎)의 이른바 삼동교주(三洞敎主)가 거처하는 최고의 선경(仙境)인 삼청경(三淸境)의 준말로,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을 말한다.
동주집 시집 제9권 / 시(詩)○아성록2(牙城錄二)
동악의 침해당 운자에 맞춰 짓다〔次東嶽枕海堂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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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화려한 집 푸른 물가에 있으니 / 新構華堂碧水濆
온 가족이 도기 익힌 허 진군이네 / 全家道氣許眞君
영주에 약초 캐러 간 배 이르겠고 / 瀛洲採藥舟應到
은하 찾아가는 뗏목 길을 잃겠네 / 河漢乘槎路不分
봄날 개어 봉우리가 천 점으로 보이고 / 春霽螺岑千點見
밝은 달빛 아래 어부의 피리소리 들려온다 / 月明漁笛數聲聞
예로부터 대은은 성시에 사는 법 / 從來大隱居城市
산림에서 짐승들과 어울림과는 같지 않네 / 未似山林鳥獸群
봄 물결 넘실대는 큰 호숫가 / 春波漭沆太湖濆
바람 부는 비탈길 타고 넘어 그대 방문했네 / 風磴躋攀一訪君
백석촌에는 안개가 짙게 덮이려 하고 / 白石村煙濃欲合
신평의 숲 빛깔 엷게 처음 드러나네 / 新坪樹色淡初分
고깃배에 달린 돛 아침마다 보고 / 漁舟掛席朝朝見
어부 집 지팡이 소리 밤마다 들었지 / 蜑戶鳴楖夜夜聞
지척의 떠들썩한 세상 어제 같은데 / 咫尺塵囂猶昨日
초연하게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난 듯 / 超然已似出人群
[주-D001] 동악(東嶽)의 …… 짓다 :
침해당(枕海堂)은 아산 영인산(靈人山) 주변에 있는 성시망(成時望)의 당(堂)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알기 어려우며 《동주집(東州集)》 문집(文集) 권3에 〈침해당기(枕海堂記)〉가 있어서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조경(趙絅)의 《용주유고(龍洲遺稿)》 권1에 〈차침해당제현운 8수(次枕海堂諸賢韻八首)〉 등에서 이민구의 시와 동일한 운자를 사용하고 있으나 원시(原詩)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다. 이민구가 사용한 운자는 이안눌(李安訥)의 《동악집(東嶽集)》 권22 〈권여장과 함께 백석강에 있는 이 주부의 초가 정자에 짓다[同權汝章題白石江李主簿茅亭]〉의 운자와 같다.
운양집 제3권 / 시(詩)○면양행음집(沔陽行吟集) 1 정해년(1887, 고종24) 6월에서 무자년(1888, 고종25) 6월까지 이다.
청산으로 돌아가는 육생을 전송하다〔送陸生歸靑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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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보내고 닫아 걸은 사립문 / 送客柴門掩
나그네 창은 다시 적막해졌구나 / 旅窓轉寂寥
시가 차가우니 매화는 야위려 하고 / 詩寒梅欲瘦
근심이 쌓이고 쌓여 술로도 풀기 어려워라 / 愁積酒難消
넘실넘실 흘러가는 면수 / 沔水湯湯去
하나 하나 멀어지는 청산 / 靑山歷歷遙
집에 돌아가면 세모일 터 / 歸家當歲暮
눈보라 속에 앞 다리를 건너가겠네 / 風雪渡前橋
용주유고 제1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침해당의 여러 현인의 시에 차운하다8수 〔次枕海堂諸賢韻 八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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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침해정을 좋아하노니 / 愛君亭枕海
지난해 이 난간에 한 번 올랐지 / 去歲一憑欄
삼신산 가는 길을 곧장 가리키고 / 直指三山路
백 척 장대를 나란히 보았지 / 平看百尺竿
고래 잡아 끌 듯이 마음 장쾌하고 / 掣鯨心與壯
학을 타는 듯이 흥이 무르익네 / 跨鶴興輸闌
둥근 달 구경하기 가장 좋으니 / 最是迎完月
겹겹 파도에 옥쟁반 솟아올랐지 / 層波湧玉盤
수레 탄 고고한 학은 괴로워하고 / 乘軒雲鶴苦
묶여 있는 날랜 매는 굶주린다네 / 受紲俊鷹飢
세속의 구속을 누가 능히 벗어나리 / 俗累誰能脫
나와 함께 한가로운 유람 기약하세 / 游閑我與期
높은 대에 올라 섬들을 바라보니 / 高臺臨島嶼
지극한 즐거움이 드넓은 물에 있다네 / 至樂在陂池
술 익으면 손님 맞기 좋으니 / 酒熟邀賓好
성대하게 시가 벽에 가득하네 / 淋漓滿壁詩
운무는 자리 곁에서 일어나고 / 雲煙生座右
물새는 창 사이로 스쳐 지나가네 / 鷗鷺掠窓間
오래된 이끼는 섬돌을 휘감고 / 苔古縈嵒砌
넘실거리는 파도는 산에 걸린 달 토하네 / 波翻吐月山
올라 바라봄에 만 리까지 트였으니 / 登臨萬里豁
한 평생 시를 읊을 수 있으리라 / 嘯詠百年間
지팡이에 짚신 신고 아이에게 물어보며 / 杖屨兒童問
머물다 보니 돌아가는 것도 잊었다네 / 淹留未覺還
높은 누대가 완만하지 않아 / 層臺勢匪漸
까마득히 올라가기 어렵네 / 縹緲若難攀
허공에서 사람들 말소리 들려오고 / 人語虛無裏
잠자리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다네 / 濤聲枕席間
술잔 드니 삼복더위 시원한데 / 稱觴三伏冷
통발 살피고 잠시 뒤에 돌아오네 / 看笱暫時還
양계가 절경이라 누가 말했나 / 誰說瀼溪勝
그대가 응당 작은 차산이라네 / 君應小次山
해객이 산의 정취까지 겸하여 / 海客兼山趣
생선 삶아 바가지에 술 마시네 / 烹鮮斟木瓢
상춘에 시원한 누각에 오르고 / 上春登快閣
가랑비 속에 여린 가지 감상하네 / 小雨玩柔條
아침엔 운무가 사방에 자욱하고 / 浮氣朝成市
저녁엔 계곡물이 조수와 합하네 / 諸溪夜應潮
이곳이 열자(列子)가 바람 타던 곳인 듯 / 御風疑此地
봉래산이 이곳에서 멀지 않으리 / 蓬島路非遙
가볍게 노니는 갈매기를 굽어보고 / 俯瞰輕鷗戲
가꾸어진 아름다운 나무를 돌아보네 / 回瞻嘉樹栽
술잔 띄어 마시니 산객이 취하는데 / 流觴山客醉
언덕에서 부는 바람 얼굴을 스치네 / 拂面岸風來
긴 물가엔 선박들이 모여 있고 / 舸艦長干合
작은 시장엔 생선들을 늘어놓았네 / 魚蝦小市開
내게 이웃에 살기를 허락한다면 / 卜隣如許我
한 뙤기 쑥대밭을 일구어야지 / 一畝斲蒿萊
양지 바른 높은 언덕에 집 지으니 / 結搆陽岡峻
그 지세가 푸른 물가에 떠있는 듯 / 滄洲面勢浮
밤 평상에선 무더위에 시달리지 않고 / 夜床無暑逼
아침 난간에선 흘러가는 구름을 보네 / 朝檻有雲流
지금 왕교의 학을 기다리노니 / 方待王喬鶴
누가 경략의 소를 논하리오 / 誰論景略牛
주머니는 텅 비고 나는 늙었는데 / 囊空吾已老
어느 곳에다 서루를 지을까나 / 何地起書樓
밝은 달밤 꽃 핀 마을에서 술 마시는데 / 明月花村酒
장삿배엔 희미한 등불이 걸려 있구나 / 疏燈賈客船
명승지는 그대 홀로 차지했는데 / 名區獨爾占
좋은 일은 만 사람이 전했다네 / 好事萬人傳
병풍 안에서 한가로이 잠자고 / 屛障閑眠裏
어룡들은 취한 듯이 춤을 추네 / 魚龍醉舞前
내가 어찌 감히 시구를 남기랴 / 留詩吾豈敢
재주가 다하여 뜻이 아득한데 / 才盡意茫然
[주-D001] 침해당(枕海堂)의 …… 차운하다 :
한국문집총간 94집에 수록된 《동주집(東州集)》 권3 〈침해당기(枕海堂記)〉에 따르면, 침해당은 성시망(成時望)이 충청도 아산(牙山)에 지은 별장이다.
동명집 제4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185수
수재 성시망의 강가 정자를 읊다 8수 〔成秀才時望江亭 八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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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가운데 이사해서 사는 분 있어 / 客有遷居者
당진 땅의 공진에다 터를 잡았네 / 唐津住貢津
살아갈 집 대들보도 올리기 전에 / 未能開棟宇
솔과 대를 일찌감치 심어 놓았네 / 先已種松筠
주위 풍경 오늘날을 기다렸거니 / 物色逢今日
강산 모습 몇몇이나 둘러봤으랴 / 江山閱幾人
수천 호나 되는 여염집들 가운데 / 閭閻數千戶
이 지역만 풍진세상 벗어나 있네 / 此地出風塵
백길 되는 푸른 절벽 솟아 있거니 / 百丈蒼崖起
아득 높아 부여잡고 오를 수 없네 / 嵯峨不可攀
그 절벽의 위에 정자 한 채 있어서 / 有亭居此上
내게 인간 세상 벗어나게 하누나 / 令我出人間
오는 밤비 강 위에 뜬 배에 내리고 / 夜雨江帆落
봄 하늘엔 바닷새가 돌아오누나 / 春天海鳥還
유유하게 높은 흥취 동하거니와 / 悠然動高興
삼신산을 향하여서 가 보고 싶네 / 便欲到三山
화초 몹시 좋아하는 기벽이 있어 / 花卉眞成癖
원림에다 온갖 화초 직접 심누나 / 園林盡手栽
매화 응당 역사 따라 도착할 거고 / 梅應隨驛至
귤 역시도 강을 건너 올 것이리라 / 橘亦渡江來
만리 길도 멀다 하지 아니할 거고 / 萬里無多路
천금 재물 안 아끼고 모두 쓰리라 / 千金不愛財
평생토록 못 가져와 한스러운 건 / 平生恨難致
봉래산에 있다 하는 그 풀이라네 / 有草在蓬萊
객들 모인 정자 사방 툭 트였으며 / 會客華亭敞
강가 임한 돌 절벽은 아득히 높네 / 臨江絶岸高
뛰는 말은 길을 가며 앞을 다투고 / 馬驕爭道路
우는 자라 바람 물결 일으키누나 / 鼉吼起風濤
석양 속에 그물 걷는 걸 바라보고 / 落日看魚網
좋은 밤에 술이 어디 있나를 묻네 / 良宵問酒槽
산호값이 흙덩이의 값과 같거니 / 珊瑚價同土
다시금 또 계륜 집의 호사를 아네 / 更覺季倫豪
머리 풀어 흩트린 채 걸터앉아서 / 散髮仍箕踞
미친 듯이 노래하며 술을 마시네 / 狂歌更酒瓢
대나무는 새로 죽순 뽑아내었고 / 竹抽新出笋
버들가지 긴 가지가 일렁이누나 / 柳拂最長條
푸른 바다 위엔 온통 봄빛이 떴고 / 碧海浮春色
푸른 강엔 밤 조수가 낮아지누나 / 滄江落夜潮
이는 풍진 온 천지에 가득하거니 / 風塵滿天地
어부들과 어울리며 소요할 거리 / 漁父爾逍遙
절벽 따라 강가의 길 트이어 있고 / 轉石開江路
둑 쌓아서 약초 심은 밭 보호했네 / 防隤護藥欄
멀리에서 오는 배는 일백 길이고 / 遠來船百丈
새로 심은 대나무는 일천 그루네 / 新種竹千竿
봄의 풍광 찾던 객이 날이 저물자 / 有客尋春暮
술병 들고 밤 깊도록 술을 마시네 / 携壺到夜闌
아침 되어 술 취했던 자리를 보니 / 朝看酩酊處
꽃잎 져서 술상 위에 흩어져 있네 / 花底散杯盤
호서 지방 어염 나는 군이거니와 / 湖右魚鹽郡
강가에는 조세 싣는 배가 오가네 / 江邊貢稅船
하늘에서 좋은 형세 만들어 주매 / 惟天形勝設
이 지방은 부유한 곳이라 전하네 / 此地富饒傳
용이 서린 형세 속에 성곽이 있고 / 城郭龍盤裏
신기루의 앞쪽에는 누대가 있네 / 樓臺蜃氣前
저녁 되자 물색 변함 놀랍긴 하나 / 晩來驚物色
몸 쇠하여 시편 이제 짓지 않누나 / 衰謝負詩篇
비 온 뒤에 구름 잔뜩 끼어 있으며 / 雨盡雲猶塞
봄이 와서 기운 위로 뜨려고 하네 / 春還氣欲浮
성은 북쪽 향하여서 산 따라 있고 / 城隨山北向
강은 서쪽 향해 흘러 바다에 드네 / 江入海西流
하늘과 땅 통할 수가 있는 길 있고 / 有路通天地
두우성에 올라가 볼 뗏목은 없네 / 無槎上斗牛
조종하고 싶은 뜻이 만겹 깊기에 / 朝宗萬重意
높은 누각 기대 길게 휘파람 부네 / 長嘯倚高樓
[주-D001] 성시망(成時望) :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자는 상보(尙甫)이며, 충청도 아산(牙山)의 영인산(靈人山) 근처 공진창(貢津倉)의 서쪽 지역에 침해당(枕海堂)이라는 정자를 지어 놓고 지냈다. 이민구(李敏求)의 《동주집(東州集)》 권3에 〈침해당기(枕海堂記)〉가 있다.
사료 고종시대사 18 > 1894년(고종 31년) 7월 16일 > 의금부, 조병식을 충청도 면천군의 배소로 압송하겠다고 아룀
기사제목연월일
의금부, 조병식을 충청도 면천군의 배소로 압송하겠다고 아룀 |
고종 31년(1894년, 淸 德宗 光緖 20年, 日本 明治 27年) 7월 16일 |
또 의금부의 말로 아뢰기를,
“전전 충청 감사 조병식(趙秉式)에 대하여 호연(湖沿)에 귀양 보내는 형전을 시행하도록 명을 내리셨습니다. 조병식을 충청도 면천군(沔川郡)에 귀양 보내되, 전교 내의 내용으로 죄목을 갖춘 다음 규례대로 본부의 도사를 보내어 배소로 압송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사료 고종시대사2 > 1866년(고종 3년) 6월 21일 > 로즈, 조선 원정의 승인과 인력 및 물자 지원을 요청함(Roze→Chasseloup-Laubat)
기사제목 | 로즈, 조선 원정의 승인과 인력 및 물자 지원을 요청함(Roze→Chasseloup-Laubat) |
연월일 | 고종 3년(1866년, 淸 穆宗 同治 5年, 日本 慶應 2年) 6월 21일 |
발신 | Roze |
수신 | Chasseloup-Laubat |
1866년 7월 28일, 홍콩, 게리에르 함상에서
장관님께
근래에 저는 지부에서 리델 신부로부터 얻었던 조선에 대한 정보들을 장관님께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이 정보들은 막연하고, 어쩔 수 없이 미비합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생존 조건에 따라 관헌의 추격을 피하고자 조심해야만 했으며 불가피하게 대개 밤에만 이동하고 거의 언제나 숨어 지냈으니 그들이 원해도 정보를 얻지 못했으며 게다가 이 나라는 스스로 신비에 싸여 있으려는 상태입니다.
그에 따라 제가 장관님께 전해드린 정보들은 상세하지 못한 자료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틀림없이 조선의 현 정세, 군사 편제, 민간 체계, 그리고 통상 자원에 대해 의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현재 우리는 선교사들에 힘입은 것 이외의 다른 정보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포함 한두 척으로 해안을 정찰하면 우리는 근해역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연안의 지형, 강의 운항에 대해 알게 될 것입니다. 조선의 수도인 서울은 이 강을 따라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리델 신부에게 이런 정찰 탐사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저에게 조선 정부를 겁줄만한 병력이 즉시 수반되는 날까지 그것을 삼가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는 조선의 해안가에 겨우 한두 척의 배가 출현하게 되면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키고, 새로운 학살의 구실이 될 뿐이라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정을 하게 되면 이 정찰은 언제든 즉시 수행해야 하고 그 주된 목적은 우리 선박들의 항로를 밝히고 강을 거슬러 오를 수 없는 대형 함선들이 어디에 정박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 그곳을 표시하며, 서울의 강에서 포함들이 수월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정확한 수심을 측량하는 것입니다.
지부에서 저는 리델 신부를 데리고 온 조선 선원들을 서둘러 저의 집으로 오게 했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영리해 보이며, 그들은 작은 만을 둘러싸고 있는 암초들을 가로질러 자신들이 게리에르 함선을 안내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에게 확실히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만(아산만)은 우리가 갖고 있는 지도에 제롬 공(Prince Jérôme) 만註 003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여기서 조선의 수도 옆에 흐르는 강으로 이어집니다. 장관님께서는 이곳 해역에 대한 정보가 전적으로 미비하다는 것과 또한 여기서 저희는 그에 대한 신뢰할 만한 어떠한 지도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파리의 지도 보관소에는 조선의 해안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을 것 같으니 그럴 경우 그 자료들을 저에게 보내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사료 고종시대사3 > 1868년(고종 5년) 윤4월 16일 > 동진 첨사, 오페르트 일당 중에 매국노가 있었다는 견해를 밝힘
기사제목 | 동진 첨사, 오페르트 일당 중에 매국노가 있었다는 견해를 밝힘 |
연월일 | 고종 5년(1868년, 淸 穆宗 同治 7年, 日本 明治 1年) 윤4월 16일 |
16일 계해(癸亥), 맑음
순찰사에게 상서(上書)하기를, “이번에 내려올 때 뱃사람에게 물어 말하기를, ‘너는 어디 사람인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남양(南陽) 땅에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양과 구만포(九萬浦) 사이에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데 지난번 서양 오랑캐의 일을 혹시 알고 있는가.’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구만포는 아산(牙山)의 상포(上浦)입니다. 그 배가 수원(水原) 만호포(晚湖浦)에 정박한 지 수삼 일이 지난 후 짙은 안개를 타고 우리 배를 빌려 구만포로 들어와서 육로를 따라 30리를 가서 가야(伽倻)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비록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오고 가는 사람에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종선(從船)이 아니라 우리 배를 몰래 타고 요망(瞭望)하는 군사의 눈을 어둡게 해 감시를 소홀하게 한 계략은 더욱 극히 흉악한 속임수이며, 또한 우리 배를 빌려준 매국노로 앞잡이 노릇을 한 자가 있었음은 정녕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출전 · 『東津禦侮輯要』 「東津禦侮日記」 戊辰 윤4월 16일
사료 고종시대사3 > 1868년(고종 5년) 5월 24일 > 주상해 미국 총영사 시워드,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관련하여 젠킨스가 이야기한 것을 보고함
기사제목 | 주상해 미국 총영사 시워드,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관련하여 젠킨스가 이야기한 것을 보고함 |
연월일 | 고종 5년(1868년, 淸 穆宗 同治 7年, 日本 明治 1年) 5월 24일 |
시워드(G .F. Seward) 씨가 윌리엄스(Williams) 씨에게
미국 총영사관
상해, 1868년 7월 13일
귀하
저는 죽은 군주 혹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의 사체에 대한 도굴 그리고 이윤을 위해 유골들을 획득하려는 목적으로 조선에 원정을 착수했던 젠킨스(F.H.B. Jenkins)의 영사재판에 대한 최고 법원과 가제트(Gazette) 영사의 보고서를 동봉합니다.
이 원정대는 지난 4월에 상해(上海)를 출발하였습니다. 이 원정대에는 페롱(Farout)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사제, 오페르트(Oppert)라는 이름의 함부르크의 시민, 그리고 위에 이름을 언급한 우리의 국민, 이 3명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차이나(the China)라는 이름의 북독일 연방의 깃발을 단 684톤의 증기선이 이 원정을 위해 용선되었으며, 60톤의 증기부속선 한 척 역시 준비되었습니다. 선박의 정원이 넘어가는 약 8명의 유럽인, 20명의 마닐라인, 그리고 100 명의 중국인 선원들이 고용되어 승선하였습니다. 나가사키(長崎)에서 이 모든 사람들을 충분히 무장시킬 수 있는 머스켓 총들을 실었습니다. 조선의 해안에 도착한 후 두 척은 작은 보트를 나포하였으며 몇 시간 안에 이들을 예인한 부속선은 강 상류로 약 40 마일 지점까지 동력을 올려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무장한 사람들의 무리가 상륙하였으며 육지를 횡단하여 묘지로 나아갔습니다. 주변 언덕들이 조선인들에 의해 덮였으나, 그들은 그들이 온 목적대로 유골을 도굴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덤들은 하나의 돌 혹은 석관을 묻었는데, 흙을 파 들어가 이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파낼 수 없음을 발견하고 큰 증기선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되돌아 갈 때 단순히 그들의 무기를 보여 줌으로써 아니면 하늘로 총을 쏨으로써 극복하지 못할 반대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배는 즉시 해안의 다른 지점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원주민 관리들과 연락을 시작하여 3일 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삼일 째 되는 날 증기선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상륙하였으며, 비록 명백히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사격을 받은 것 이외에는 이곳에서의 진실을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두 사람이 살해당했으며 한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차이나호는 즉시 상해로 출발하여 2주간의 항해 만에 도착했습니다.
원정을 떠나기 전에 젠킨스 씨는 저에게 한 명의 프랑스인 사제와 오페르트 씨와 함께 개항에 대한 협상을 위해 조선을 방문할 것임을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1866년에 일어난 프랑스 선교사들과 제너럴 셔먼호의 선원들에 대한 처리에 대해 설명할 목적으로 유럽과 미국에 대사 한 명을 보낼 것을 고려하고 있는 조선 정부의 초청을 받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가 귀환한 후에 그는 전대 왕의 유골을 도굴하여 가지고 있음으로써 막대한 돈을 지불하게 하려 했다는 원정의 진짜 목적을 저에게 말했습니다. 당시 그는 나가사키에서 항해를 시작한 후까지 원정의 목적에 대해 전혀 몰랐으며 이를 알았을 때는 배를 떠나기에 너무 늦었다며 결백을 선언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진술에 대해 전혀 만족하지 못했으며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착수했습니다. 저의 취조의 결과는 젠키스 씨를 유죄로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에 대한 소송 절차를 개시했으며 위에 언급한 가제트의 보고서에서 보았듯이 무죄로 결론 났습니다.
통보한 것과 같이 원정과 기타 등등을 착수한 죄로 그를 기소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영사관할구 밖으로 재판 관할권을 이전할 것을 승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만, 만약 제가 이를 승인해야 한다면 수집한 증거로는 결과가 아마도 같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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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시워드(GEORGE F. SEWARD)
미국 대리공사
존경하는 윌리엄스
고전번역서 > 운양집 > 운양집 제7권 > 부 > 최종정보
운양집 제7권 / 부(賦) 모두 7편이나 5편만 수록하였다.
등고부 병서 〔登高賦 竝序〕 면양(沔陽)에 있을 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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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의 가파른 봉우리에 올라 / 登蒙山之嵂屼兮
면주의 고성을 따라 도네 / 循沔州之古城
돌투성이 비탈길 기어올라 / 攀磴道之犖确兮
뜬구름 밟고 별을 어루만지네 / 躡浮雲而捫星
민보 옛터를 살펴보니 / 覽民堡之舊墟兮
흙 언덕 빙 둘러진 게 개미집 같네 / 環土阜而蟻封
어찌 옛날엔 그렇게 어지럽고 혼란했던가 / 何昔日之搶攘兮
궁벽한 모퉁이 이곳도 칼끝에 화를 입었네 / 僻隅猶此罹鋒
동남쪽 너른 들판 굽어보니 / 頫東南之大野兮
누런 벼 무성하여 가을걷이 하네 / 黃雲翳而西成
이곳은 바닷가 하늘의 곳간이라 / 玆海堧之天府兮
참으로 서울에 큰 도움 된다네 / 寔弘濟於中京
아미산 높은 꼭대기에 올라 / 陟峨嵋之高巓兮
신선이 노닌 자취 찾아가니 / 訪遊仙之遺躅
날개가 돋아 멀리 날아갈 듯 / 若羽化而遐擧兮
바람이 시원하게 겨드랑이에 스미네 / 風泠泠而襲掖
빼어난 기운이 수려함을 모아 / 精英鬱其特秀兮
참으로 크고도 높구나 / 多佛崔而竝隆
음과 양으로 나눠 밤과 낮 이루니 / 割陰陽爲昏曉兮
아스라이 바라보며 가슴을 씻어내네 / 繄裂眦而盪胸
뭇 산들이 내달려 솟아올랐어도 / 衆峛崺之奔騰兮
너와 더불어 자웅을 다투지 못하네 / 莫與汝乎爭雄
끝도 없이 펼쳐진 사방을 바라보매 / 曠無垠而四顧兮
호기가 하늘에 닿았네 / 接灝氣於太空
아득한 오나라 창문의 한 필 비단 / 杳吳門之匹練兮
우산의 지는 해가 슬프구나 / 悲牛山之落景
끝없이 날아가는 저 기러기 떼 / 征鴻之去無極兮
물가 모래톱 탁 트이고 하늘은 머네 / 洲渚闊而天逈
저 넘실거리는 물을 바라보니 / 瞻彼水之滔滔兮
또한 바다로 가느라 쉬지 않네 / 亦赴海而不休
서글퍼라 매인 박 같은 내 신세 / 哀吾生之瓠繫兮
넓고 끝없는 파도 위의 갈매기 부럽구나 / 羡浩蕩之波鷗
구름 사이로 관악산 바라보며 / 望冠岳於雲間兮
경루의 임금님 그리네 / 懷佳人於瓊樓
머나먼 성궐은 들쑥날쑥하고 / 緬城闕之參差兮
뭇 용들이 한 줄로 이어섰네 / 緯群龍之所經
길이 넓어 치우침이 없으니 / 道蕩蕩而無偏兮
팔방에서 궁궐로 모여드네 / 徠八荒於庭衢
기와 용과 같은 이들 가득하니 / 升夔龍之濟濟兮
무엇하러 민생을 보살펴 달라 기도할까 / 孰求庇乎民生
먼 생각 육지로 달리는데 / 騁遐想於川陸
시절 경물은 장차 변하려 하고 / 攬時物之將變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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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4] 몽산(蒙山) :
면천군에 있는 산이다. 몽산석성(蒙山石城)이 있다.
[주-D006] 아미산(峨嵋山) :
충남 당진군 면천면 죽동리에 있는 산이다.
고전번역서 > 운양집 > 운양집 제10권 > 기 > 최종정보
운양집 제10권 / 기(記)
등양산기〔登兩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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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의두암(依斗巖)에 앉아 구름 낀 하늘로 솟은 몽산(蒙山)과 아미산(峨嵋山)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옷을 걸치고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인년(1890) 칠팔월이 바뀔 무렵 시원한 바람이 날마다 불자, 마침내 손님들과 등산 준비를 의논하였다. 8월 3일 시중(時中), 원회(元會), 왕천우(王千又), 절의 승려 정기(正基), 동자 장운(壯雲)과 함께 떠났다. 먼저 머슴에게 명해 술 마실 채비를 해 가지고 몽산 꼭대기에 가서 살피도록 하였다. 목현(木峴)에 이르자 인세경(印世卿)ㆍ이군선(李君先)이 와서 모였다.
이때 벼가 바로 익어서 목현과 정기(淨基) 사이에 누런 구름 같은 벼가 골짜기 가득하였고 메뚜기가 어지럽게 날뛰어 사람의 품과 소매로 뛰어들었다. 길옆에 거리가 수백 궁(弓)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높은 언덕이 있었는데, 그 둘레에 나무 울타리가 쳐 있는 곳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는 옛날 민보(民堡 민간에서 쌓은 보루)입니다.”라고 하였다.
멀리 몽산 발치를 바라보니 허옇게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앞에 가서 보니 바로 최성여(崔誠汝)였다. 여기에서부터는 산등성이를 따라 올랐는데,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깨진 자갈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이것이 옛 성터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아래가 바로 옛 면양(沔陽) 읍치이다. 산세가 높고 커서 사방이 하늘로 솟아있었다. 그 위에 축성하였으니 당시 용력의 성대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은 크고 백성은 적어 비록 험할지라도 지킬 수가 없다.
담쟁이넝쿨을 부여잡고 등나무 덩굴에 붙어 걸음을 이어 갔다. 정오를 지나 정상에 올랐다. 성황사(城隍祠)가 있었는데, 읍인이 바야흐로 굿할 떡, 과일을 가지고 와 빌고 있었다. 사당 옆에 높이가 어깨까지 닿는 바위 하나가 있어, 드디어 자리를 펴고 그 위에 앉았다. 아래위로 사방을 둘러보니 탁 트여 끝이 없었다. 바닷물이 대진(大津)으로 들어가 동서남북을 통해 띠처럼 감돌아 예산(禮山)의 구만포(九萬浦)에 이르고, 면천과 당진(唐津)이 그 가운데 감싸여 있으니 실로 섬 같은 읍이다. 대진으로부터 서쪽은 큰 바다가 펼쳐져 경기(京畿)와 해서(海西)로 수로가 통한다. 구만포 이남은 육지가 호서와 호남으로 이어진다. 수만 개 산들의 푸른 주름 사이로 구름과 아지랑이가 들락날락했다. 수백 리 이내의 토박이는 모두 그 산들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가을볕이 매우 뜨겁고 산꼭대기에는 샘물도 없었다. 가는 도중 배고프기도 하고 더위를 먹기도 하였다. 그래서 하인이 지닌 호리병의 술을 따라 마시고, 또 꾸러미를 풀어 기장떡을 나누어 먹었다. 정기 역시 누룽지를 가져와 함께 요기를 하였다.
이군선의 집이 산 왼편에 있었는데 가까웠으므로 먼저 간다고 고하였다. 나는 손님들과 산 오른편을 통해 내려갔다. 북쪽으로 아미산에 오르니, 몽산에 비해 더 높고도 가팔랐다. 왕천우는 나이가 칠십여 세였는데 힘이 다해 헐떡거렸다. 나 역시 다리에 기력이 없어 자주 쉬었다. 오직 정기만이 펄쩍펄쩍 뛰어올라가 앞에서 말했다.
“이 산 오르기도 두려우면 금강산(金剛山) 유람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산 정상 왼편에 유선암(遊仙巖)이라는 바위가 있었다. 바위 면에 결이 갈라져 종횡으로 여러 줄이 나있었다. 사람들이 신선의 바둑판이라고 하였다. 잠시 그 위에서 쉬었다가 십여 보 가니 최정상에 이르렀다. 여기에 도착하자 구름이 더욱 걷혀 북쪽으로 멀리 관악산과 삼각산의 산들이 아득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 남쪽으로 온 지 4년 만에 비로소 한양(漢陽)의 산 경치를 보게 되었구나.
산은 높고 우뚝했다. 날짐승 따위가 없고 황금(黃芩 꿀풀과의 다년초)과 자초(紫草 지치과의 다년초)가 많이 나고, 간혹 산삼을 캐는 자도 있다고 한다. 산 아래 촌락은 모두 널찍널찍하고 환하고 깨끗했다. 농토는 비옥하였고 뽕나무와 과실수가 덮여 있었다. 산의 남쪽에는 송평(松坪), 다불(多佛), 금학(金鶴) 등의 마을이 있어 여러 성씨들이 섞여 산다. 산 북쪽에는 죽동(竹洞), 백치(柏峙)의 마을이 있는데, 인씨와 이씨의 세거(世居)하는 곳이다.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대를 이어 선조의 묘를 지키는데, 왕왕 수십 대를 전하여 분묘을 잃지 않는다. 땅이 이미 구석진 데다 사면이 나루로 막혀있으므로 흉포한 병화(兵火)의 걱정이 없는 듯하다. 어지러울 때 슬며시 지방 도적떼가 일어나면 보(堡)를 쌓아 방어한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뿔뿔이 흩어질 근심이 없으니, 진실로 복 받은 땅이다. 용사(龍蛇)의 난리(임진왜란)를 당해 송구봉(宋龜峯), 이택당(李澤堂) 두 공이 여기에서 병화를 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윽고 산의 날이 어슴푸레해져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드디어 산 오른편을 따라 내려왔다. 지세가 병의 물을 위에서 쏟아 붓는 것 같이 산꼭대기와 산기슭이 서로 접해 있어 비록 편안히 걸으려 해도 할 수 없었다. 이 산은 사면이 모두 피지 않은 부용꽃을 깎아 만든 것처럼 가팔랐다. 맑고 빼어나며 문아하고 수려한 기운이 사람으로 하여금 바라보면 기뻐할만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당진과 면양 두 읍의 인가에서 이 산을 바라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한다.
내가 연경(燕京)에 사신 갔을 적에 도중에 창려현(昌黎縣)을 지났다. 멀리 붓끝 같은 산 하나가 바라보였는데, 토박이가 문필봉(文筆峰)이라 하였다. 그 빼어난 기운이 모여 바로 퇴지(退之 한유)의 문장을 낸 것이다. 지금 이 산의 형세를 관찰하니 전날 보던 것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예전에 퇴지처럼 이름난 사람이나 통달한 선비가 이 고장에서 배출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아마도 후세에 나오려는 것인가. 땅의 신령과 인걸이 때때로 상응해서 생겨나니 우연히 이 산을 설치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영탑사(靈塔寺)에 부쳐 사는 이가 기(記)를 쓰다.
[주-D001] 송구봉(宋龜峯) :
송익필(宋翼弼, 1534~1599)로,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이다. 선조 때 학자로 성리학과 예학에 능하였다. 저서에 《구봉집(龜峰集)》이 있다. 《구봉집》에 따르면, 송익필이 왜란을 피한 곳은 희천(煕川)의 명문산(明文山)이다.
[주-D002] 이택당(李澤堂) :
이식(李植, 1584~1647)으로,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이다. 한학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이조 판서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척화파(斥和派)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운양집 제10권 / 기(記)
의두암기〔依斗巖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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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산(象王山) 산기슭이 굽이굽이 이어져 동북쪽으로 달리다가 다시 꺾여 남쪽으로 이어져 불쑥 솟아오른 봉우리를 연화봉(蓮花峰)이라 한다. 봉우리 왼쪽을 따라 수십 보 안 되는 곳에 있는 삼층 석벽은 층마다 몇 사람씩 앉을 수 있을 정도인데, 제1층은 진의강(振衣岡), 제2층은 적취대(積翠臺), 제3층은 의두암(依斗巖)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의두암에서 북쪽으로 몇 리 쯤 떨어진 곳에 아미산(峩眉山)ㆍ다불산(多佛山) 두 산이 있다. 사람들이 이 두 산 사이에 구름이 없으면 한양의 산들이 바라다 보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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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를 짓고 남쪽 지방으로 유배되어 영탑사(靈塔寺)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갑갑하고 울적할 때마다 이 바위에 와서 멍하게 앉아 북쪽을 바라보며 항상 임금 그리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의두암 좌우에는 우뚝하게 대치하고 있는 바위가 있어, 에워싸서 보호하는 것 같다. 왼쪽은 구선암(癯仙巖), 오른쪽은 두타암(頭陀巖)이라 이름을 지었으니, 비슷한 모양에 따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동쪽으로 몽산(蒙山)이 바라다 보이고 아래에 면양(沔陽 면천)의 옛 성이 있고 그 아래에 새 읍치(邑治)가 있어서 군루(郡樓)의 고각(鼓角)과 절의 종소리와 서로 어우러진다. 앞에는 너른 평야가 있어 농요(農謠)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바닷가 뭇 산은 깨끗하고 고운데, 마치 병풍과 궤안을 죽 늘어놓은 것처럼 수백 리 이어져, 안개와 구름이 사라지고 파도가 잔잔하면 아득하여 끝 간 데를 알 수 없다.
세종실록 149권, 지리지 충청도 홍주목 면천군
지리지 / 충청도 / 홍주목 / 면천군
◎ 면천군(沔川郡)
본래 백제의 유군(杻郡)인데, 신라에서 혜성군(槥城郡)으로 고쳤고, 고려 현종(顯宗) 9년에 운주(運州) 임내로 삼았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렬왕(忠烈王) 16년 경인에 고을 사람 복규(卜奎)가 글안(契丹)을 막아 공이 있었으므로, 지면주사(知沔州事)로 승격하고, 별호를 마산(馬山), 또는 종해(宗海)라 하였다. 본조 태종(太宗)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면천군으로 고쳤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홍주에 이르기 17리, 서쪽으로 당진(唐津)에 이르기 10리, 남쪽으로 덕산(德山)에 이르기 9리, 북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39리이다.
호수가 4백 5호요, 인구가 3천 1백 55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11명이요, 진군(鎭軍)이 28명이요, 선군이 1백 95명이다.
토성(土姓)이 7이니, 복(卜)·한(韓)·박(朴)·현(玄)·정(井)·임(任)·유(兪)요, 망성(亡姓)이 1이니, 서(徐)요, 내성(來姓)이 1이니, 구(具)요, 【능성(綾城)에서 왔다. 】 망래성(亡來姓)이 1이니, 왕(王)이요, 속역성(續驛姓)이 3이니, 한(韓)·박(朴)·김(金)이요, 촌성(村姓)이 1이니, 유(兪)이다.
땅이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간전(墾田)이 4천 53결이요, 【논이 9분의 4가 넘는다. 】 토의(土宜)는 오곡과 조·팥·메밀·뽕나무·배나무이다. 토공은 지초·종이·자리·칠·잡깃[雜羽]·족제비털·여우가죽·삵괭이가죽·뱅어·쌀새우[白蝦]요, 약재(藥材)는 연밥[蓮子]이다. 염소(鹽所)가 1이다. 【가마[盆]가 36개다. 】
몽산 석성(蒙山石城) 【군의 북쪽 4리에 있는데, 둘레가 5백 43보이며, 〈지세가〉 험하고, 안에 우물 하나가 있는데, 겨울이나 여름에도 마르지 아니하며, 군창(軍倉)이 있다. 】 역(驛)이 1이니, 순성(順城)이요, 봉화가 1곳이니, 창덕산(倉德山)이 군의 북쪽에 있다. 【동쪽으로 홍주(洪州) 임내의 명해(明海)에, 서쪽으로 당진(唐津) 고산(高山)에 응한다. 】 양제(楊堤) 【군내(郡內)에 있는데, 길이가 1백 40척이며, 논 1백 15결에 물을 댄다. 】
월경처(越境處)는 홍주(洪州) 임내에 신평(新平)이 덕풍(德豐)과 합덕(合德) 지경을 넘어서 본군(本郡)의 동촌(東村) 안에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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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석 채취의 사업을 허가하지 아니한다............운하(運河) (0) | 2023.01.06 |
元山에서 釜山까지면 2천리 처노코 이에 哩數로 환산하고 그 외 私鐵의 幾何哩數를 대략 꾸미어 대답하여도 조홀 것이다. (2) | 2022.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