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6. 16:43ㆍ대륙조선 일반
사료 고종시대사2 > 1866년(고종 3년) 7월 18일 > 평안 병사 이용상, 이양선에 대해 문정한 내용을 보고함
기사제목 | 평안 병사 이용상, 이양선에 대해 문정한 내용을 보고함 |
연월일 | 고종 3년(1866년, 淸 穆宗 同治 5年, 日本 慶應 2年) 7월 18일 |
평안 병마절도사 이용상이 이양선 문정에 대한 장계를 올렸다.
장계에 이르기를,
“이양선 1척이 평양(平壤) 경내의 초리(草里)·방이리(防二里)의 장사포구(場沙浦口)에 와서 정박한 정황에 대해서는 어제 이미 장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방금 접수한 평양 서윤(平壤庶尹) 신태정(申泰鼎)이 이번 달 13일 오시(午時)에 올린 보고에,
‘중군 서윤(中軍庶尹)이 영군관(營軍官) 방익용(方益鏞)과 함께 떠나 11일 술시(戌時) 경에 저들의 배가 정박한 곳에 이르렀더니, 이미 본부 신장포구(新場浦口)로 정박한 곳을 옮긴 다음이었습니다. 때가 야심한지라 12일 진시(辰時)에 중영리(中營吏) 김낙수(金樂洙) 등을 시켜 먼저 문정(問情)하려는 이유를 전하도록 하였더니, 저들이 ‘여기로 와서 만나자.’라고 답하였으므로 배를 타고 가서 저들의 배 옆에 대었습니다. 저들은 혹 총과 창을 들고 줄지어 서서 배에 오르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떤 연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글로 써서 물었더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우리나라 말을 조금 할 줄 알아 스스로 말하기를, ‘성(姓)은 최(崔)이고 이름은 난헌(蘭軒)이며, 영길리(英吉利 : 영국) 사람이다. 이 분은 조능봉(趙凌奉)으로, 북경 사람이다. 조방용(趙邦用)은 성경(盛京) 목계현(穆溪縣) 사람이다. 이팔행(李八行)은 선주(船主)로, 단국(但國 : 덴마크) 사람이다.’라고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우리는 서양 나라 사람이다. 행상을 위해 이번 7월 초에 산동(山東)에서 출발하여 황해도의 여러 섬들을 거쳐 황주(黃州) 지역으로 방향을 틀고 며칠을 머물렀다. 평양 구경도 하고 성성대인(省城大人)도 만나보고자 하는데, 방금 이 곳에 도착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물어보기를, ‘당신들은 무슨 사유로 성성대인을 만나려고 하는가?’라고 하였더니, ‘다름이 아니라 우리 배에 실린 회금(回錦)·양포(洋布)·사문포(斜文布)·사문융(斜文絨)·파리기(玻璃器)·천리경(千里鏡)·자명종(自鳴鍾)·팔음합(八音盒) 등의 물건들을 귀하의 지역에서 생산하는 대미(大米)·사금(沙金)·홍삼(紅蔘)·종이(紙屬)·호표피물(虎豹皮物)과 바꾸려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손으로 목을 그으며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7인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 배가 비록 병선(兵船) 같지만 지금 평양으로 가면서 그 곳과는 아무런 원한이 없다. 지금 배에 손님이 있어 평양에 가서 통상하고 교역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물음에 ‘당신네 나라 사람이 형벌을 받았는지 여부는 천리 밖의 변경 수령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교역 문제는 황조(皇朝)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이라 번방(藩邦)에서 마음대로 허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더니, 최난헌(崔蘭軒)이 ‘왕도(王都)의 성중(城中)에 백탑(白塔)이 하나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답하기를,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과연 백탑이 있다.’라고 하였더니, ‘귀국에서는 무슨 이유로 천주교인들을 쫓아내는 것인가? 지금 우리 야소성교(耶蘇聖敎 : 예수교)는 천도(天道)를 체현하고 인심(人心)을 바로잡아 사속(邪俗)을 교화하고 있으니, 인의(仁義)와 충효(忠孝)가 모두 갖춰져 있다. 전부 천하의 백성들에게 따르라고 할 만한 좋은 것이니, 천주교와는 다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답하기를, ‘두 종교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이므로 백성들이 감히 멋대로 익히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더니, 또 말하기를, ‘법국(法國 : 프랑스)의 큰 배가 이미 왕경(王京)으로 갔으니, 우리 배와는 달리 매우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 약탈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배는 물건을 바꾸어 파는 교역을 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답하기를, ‘당신네 나라의 큰 배가 왕경으로 갔다고 하는 것이 진실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들이 아무리 물건을 교환하러 왔다고 하더라도 교역하는 것을 감히 함부로 허락할 수는 없다. 언제 돌아갈 것인가?’하였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몇 차례 꼽아 보고는 가까운 시일 내에 마땅히 떠나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또 묻기를, ‘당신들 4인 외에 배 안에 함께 온 자들이 몇이나 되며, 서양사람 이외에 또 다른 나라 사람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답하기를 ‘우리 일행은 20명인데, 서양 사람이 5명, 청나라 사람이 13명, 오귀자(烏鬼子 : 黑人)가 2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수작하는 사이에 홀연 ‘우리 배에는 황주(黃州)에서 얻은 식량과 반찬밖에 없어 겨우 며칠을 버틸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쌀·쇠고기·닭·계란·땔감이 필요하니, 우리 두 사람은 꼭 당신들의 배에 함께 타고 가야 한다. 도움을 준다면 마땅히 양포(洋布) 등의 물건으로 사례하겠다.’라고 써서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답하기를, ‘품목은 마땅히 원하는 대로 구해 주겠지만, 함께 배를 타고 뭍에 오르는 것은 일이 곤란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멀리 있는 이들을 부드럽게 대하는 의리로 못 본 척할 수도 없는지라 쌀 1섬·쇠고기 50근·닭(鷄) 25 마리·계란 50개·땔나무 20묶음을 넣어 주었더니 희색이 만면하여 수없이 고맙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서윤(庶尹)이 이번 달 13일에 올린 보고가 접수되었는데, ‘12일 유시(酉時)에 저들 6명이 작은 파란색 배를 타고 수심을 측량하러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저물녘에 돌아왔습니다. 13일 인시(寅時)에는 배를 출발시켜 본부 만경대(萬景臺) 아래 두로도(豆老島) 앞까지 와서 그대로 멈추어 정박하였는데, 저들의 말을 들어 보니 재화를 바꾸기를 원한다느니, 성 아래에서 어쩌니 하는 내용이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들 일행의 동태를 계속해서 탐지하고 보고하라는 뜻으로 문구를 만들어 제칙(題飭)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장계를 올립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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