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을 가고 있었습니다. 대정군 가파도

2022. 9. 1. 17:19제주도

사료 고종시대사9 > 1878년(고종 15년) 10월 21일 > 제주 목사 백낙연, 대정군 가파도에 표류해 온 유럽인을 구호하고 정황을 탐문한 내용을 보고함

기사제목 제주 목사 백낙연, 대정군 가파도에 표류해 온 유럽인을 구호하고 정황을 탐문한 내용을 보고함
연월일 고종 15년(1878년, 淸 德宗 光緖 4年, 日本 明治 11年) 10월 21일

제주 목사(濟州牧使) 백낙연(白樂淵)이 가파도(加波島)에 표류해 온 사람들에게 문정(問情)한 내용을 치계(馳啓)하였다.

장계(狀啓)에 이르기를,

“이번 달 5일에 도착한 대정 군수(大靜郡守) 강진원(姜鎭元)의 치보(馳報)에 이르기를,

‘가파도(加波島) 이임(里任)의 고목(告目)에 이르기를,

「포구 근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아이들이 창황히 달려와서 알리기를,

「어떤 사람 한명이 낚시하던 모래톱[釣灘] 위에 누워있는데, 용모와 복장이 보기에 몹시 해괴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급히 가서 살펴보았더니, 검은 옷에 대머리인 사람 하나가 앞으로 고꾸라져 있었는데, 배가 난파되어 떠내려 와서 걸린 외국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업고 마을에 있는 빈 집으로 가서 한 편으로는 옷을 말리고 한 편으로는 죽을 먹여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형지(形止)를 급히 아룁니다.」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6일에 도착한 해당 군수의 치보에 이르기를,

‘당일 진시(辰時)에 바다 건너 20리를 달려가 외국인이 머무르고 있는 곳에 당도하였습니다. 그의 용모를 살펴보니, 터럭은 마치 양털 같고, 눈동자는 짙푸른 색이었으며, 콧대는 뾰족하고 길었습니다. 위에는 흰 모직으로 된 저고리[赤古里]를 입고 있었으며, 아래는 검은 모직으로 된 바지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옷으로 보면 마치 홍모인(紅毛人:서양인) 같은데, 껍질이 벗겨지고 맨발인데다 상처가 많았습니다. 부축하면 간신히 일어나긴 하지만, 억지로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죽을 먹이고 통사(通事)를 시켜 표류하다가 바닷가에 닿은 사실만이라도 물어보게 하였더니, 말로든 글로든 알아듣는 것이 없어 자세히 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관할하고 있는 각 포구에서도 배가 난파된 흔적은 없었고, 언어와 문자로 문정할 수가 없으니 형세상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입니다만, 그 나라 사람이 정의(旌義) 토산포(兔山浦)의 배가 난파된 곳에 먼저 와서 머물고 있고, 청나라 사람 이쌍근(李雙根)은 거칠게나마 말을 통역할 줄 아니, 같은 나라에서 같이 표류한 사람들과 문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고 또 함께 배에 태워서 보내게 된다면 매우 온당하고 편리할 듯합니다. 그래서 표류해와 쓰러져 있던 외국인을 착실히 치료해서 그가 조금 기운을 차리기를 기다려 군인과 마필을 붙여주고 토산포로 데려가게 하여, 청나라 사람 이쌍근, 홍모인 격뢰부(格雷富)등과 함께 자세히 문정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10일에 도착한 해당 군수의 치보에 이르기를,

‘외국인이 비로소 살아나 평상시같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진(津)의 고깃배를 타고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11일에 도착한 정의 군수(旌義郡守)의 치보에 이르기를,

‘해당 군의 이교(吏校)들이 그를 데리고 도착하였기에, 머무르고 있는 외국인 이쌍근·격뢰부 등을 함께 불러들여, 술과 음식을 먹이면서 자리를 마주하고 자세히 묻고자 하였는데, 오랑캐들의 말소리가 어지러이 뒤섞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홍모인과 말을 붙이기 위해 청인에게 말을 전해야 하는데 또 통사를 시켜서 대신 말하게 하니, 두세 차례 반복한 끝에야 간신히 갈피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답하기를, 그는 홍모국 법란서(法蘭西: 프랑스) 사람이며, 14명이 같이 한 배를 타고 오매(烏梅)를 실은 채 8월 17일 일본국 나가사키(長崎)에서 출발하여 대청국 광동성(廣東省)으로 가던 길에, 23일 갑자기 큰 풍랑을 만나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뒤집어졌습니다. 9명은 풍랑에 빠져 죽었으며, 나머지 5명은 종선(從船)에 기어올라 여러 날 물 위를 표류하다가, 종선(從船)도 가라앉게 되면서 4명은 물에 떨어졌습니다. 자기 혼자만 부서진 뱃조각에 붙어서 떴다 가라앉았다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하늘이 아직 밝아오기 전에 비몽사몽간에 한 곳에 떠밀려서 닿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엎어져 있는데 아련히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에 눈을 떠 보니, 누군지 모를 사람이 자신을 업고 강변을 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구호를 받은 덕분에 간신히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방도를 묻자, 홍모인 3명이 서로 너무나 좋아하여 마치 잠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있던 사람이나 새로 온 사람이나 모두 함께 배를 타고 돌아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문정한 내용은 따로 기록하여 함께 치보합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대정 가파도에 표류해 걸려있던 홍모국인에 대한 문정.

문. “그대는 어느 나라, 어느 지방 사람인가?”

답. “홍모국 소속의 법란서 사람입니다.”

문. “홍모국 사람이라면, 만리 바다를 건너 왔으니 필시 타고 온 배와 함께 타고온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대는 어쩌다가 혼자 표류하다가 이곳에 걸려있게 되었는가?”

답. “우리 일행 14명은 배에 오매를 싣고 올해 8월 17일 일본국 장기도에서 출발하여 대청국 광동성으로 가던 길에, 23일 갑자기 사나운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지게 되었습니다. 13명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고, 저 혼자만 표류하다가 이 곳 해안에 닿은 것입니다.”

문. “배는 어디에서 뒤집어져 침몰되었으며, 사람들은 그 때 한꺼번에 빠져 죽은 것인가?”

답. “큰 배가 침몰될 때 9명이 먼저 바다 가운데서 빠졌고, 나머지 5명은 작은 배에 기어올라 여러 날을 표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배가 뒤집어져 4명은 물에 떨어져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저는 뱃조각을 붙잡아서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문. “배 안의 사망자 13명은 모두 같은 나라 사람이었나?”

답. “모두 법란서 사람이었습니다.”

문. “그대의 성명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인가?”

답. “본래 성은 없었고, 이름은 조책부(趙策富)이며, 나이는 20세입니다.”

문. “선주(船主)의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이름이 무엇인가?”

답, “선주의 이름은 동직립(同直立)이었고, 나머지는 모릅니다.”

문. “부서진 배에 싣고 있던 오매는 얼마나 되었으며, 누가 산 물건이었는가?”

답. “오매는 1만 8,000근을 싣고 있었으며, 선주 동직립의 물건이었습니다.”

문. “표류할 때 붙잡고 있던 뱃조각은 어디서 찾은 것인가?”

답. “밤이 깊고 물살이 급하여 황망한 가운데 어딘지도 모르고 떠다녔습니다.”

문. “법란서에서 홍모국까지는 수로·육로로 각각 몇 리나 떨어져 있는가?”

답. “모릅니다.”

문. “배도 잃고 같이 타고 있던 이들도 다 죽었는데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답. “같은 나라 사람이 먼저 표류해 와 있으니, 그와 함께 돌아가길 원합니다.”

문. “원하는 대로 돌려보내 줄 테니, 염려하지 말라.”

답. “매우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출전 ㆍ『일성록』 고종 15년 10월 21

 

사료 고종시대사9 > 1878년(고종 15년) 10월 21일 > 제주 목사 백낙연, 대정군 가파도에 표류해 온 유럽인을 구호하고 정황을 탐문한 내용을 보고함

기사제목연월일

제주 목사 백낙연, 대정군 가파도에 표류해 온 유럽인을 구호하고 정황을 탐문한 내용을 보고함
고종 15년(1878년, 淸 德宗 光緖 4年, 日本 明治 11年) 10월 21일

濟州牧使白樂淵, 以加波島漂人問情馳啓.

狀啓以爲, 本月初五日到付大靜郡守姜鎭元馳報內, 加波島里任告目內, 近浦漁童輩, 蒼皇奔告曰, 何許一人, 臥在釣灘之上, 而容貌衣着, 見甚駭怪, 莫知死生云. 故與洞民, 馳往看審, 則黑衣禿髮者一人, 匍匐向前, 似是船破漂掛之彼人. 故因卽擔歸于里中空舍, 一邊燎衣, 一邊饋粥, 使之安接, 而形止馳告. 初六日到付該郡守馳報內, 當日辰時, 越海二十里馳到于彼人所住處, 察其容貌, 則髮如羊毛, 目睛深靑, 準頭尖長. 上着白氈赤古里, 下裹黑氈袴, 衣似是紅毛人, 而皮脫足跣, 且多傷痕, 艱辛扶起, 似有難强之狀. 故饋以溫粥, 使通事第探漂掛事實, 則以言以書, 終莫能曉, 不得問情詳探. 管下各浦, 亦無破船形跡, 言語文字, 不得問情, 勢所必然, 而渠國人 先爲來住於旌義兔山浦船破所, 淸人李雙根粗解譯語, 足可問答同國同漂之人, 又爲同船治送, 似甚穩便. 故漂掛彼人, 着實救療, 待其稍省, 定給軍人馬匹, 領送于兔山浦, 眼同淸人李雙根·紅毛人格雷富等, 詳細問情. 初十日到付該郡守馳報內, 彼人始乃甦醒, 動作如常. 故騎津艇出來. 十一日到付旌義郡守馳報內, 該郡吏校領率來到, 故與留住彼人李雙根·格雷富等, 一體招入, 饋以酒食, 對席盤問之場, 獠音咻雜難解, 先與紅毛人接話次, 與淸人傳語, 又使通事替告, 再三反覆, 僅爲攄得. 答云, 渠以紅毛國法蘭西人, 十四名共乘一船, 裝載烏梅, 八月十七日自日本國長崎島開船, 向往大淸國廣東省之路, 二十三日忽逢大風, 體船覆沒于中洋, 九名爲風濤所埋, 其餘五名攀登從船, 漂轉多日, 從船又爲沈溺, 四名因卽墮水, 我一人貼付船材, 載沈載浮. 天色未明, 非夢似夢間, 浮掛于一處, 顚倒移時, 竊聽多人喧闐之聲, 開睫視之, 則不知何狀人, 擔下. 幸賴救療, 僅爲圖生. 更問還歸之方, 則紅毛三人, 相對歡欣, 如有暫不忍捨之意. 留者來者, 咸願同載還歸. 問情別錄, 竝卽馳報.

○大靜加波島漂掛紅毛國人問情. 問. 爾何國何地方人耶. 答. 紅毛國所屬法蘭西人耳. 問. 旣是紅毛人, 則萬里駕海, 必有所騎船隻與同船之人, 而爾獨因何以漂掛此地耶. 答. 我等十四人, 裝載烏梅于一船, 今年八月十七日, 自日本國長崎島放發, 向往大淸國廣東省之路, 二十三日忽遇惡風, 船隻覆沒. 十三人俱爲渰死, 我獨漂掛于此境耳. 問. 船隻從何覆沒, 而人命同時渰死耶. 答. 大船致敗時, 九名先沒于中洋. 其餘五名, 攀登小艇, 漂轉多日, 又爲見覆, 四名墮水流去. 我則貼付船材, 僅爲圖命耳. 問. 船中死者十三名, 俱是同國人耶. 答. 通通法蘭西人耳. 問. 爾之姓名爲誰, 年歲幾何耶. 答. 本無姓字, 名則趙策富, 年二十歲耳. 問. 船主姓名爲誰, 同船諸人稱云誰某耶. 答. 船主名同直立, 其餘則不知耳. 問. 見破船所載烏梅爲幾許, 而誰人所貿之物耶. 答. 烏梅一萬八千斤, 而船主同直立之物耳. 問. 漂掛時所付船木, 何處見在耶. 答. 夜深水急, 慌忙間不知那邊浮去耳. 問. 自法蘭西至紅毛國, 水陸路各幾許里耶. 答. 不知耳. 問. 旣失船隻, 同行俱沒, 從何還歸耶. 答. 同國人旣已漂到, 則願與同歸耳. 問. 依願治送矣, 勿慮焉. 答. 多謝多謝.

출전 ㆍ『일성록』 고종 15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