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古의 寶山, 朝鮮 先民의 남긴 遺物

2022. 9. 14. 00:43백두산

잡지명발행일기사제목필자기사형태
동광 제36호  
1932년 08월 01일  
地下에 秘藏된 金銀寶貨, 千古秘密 蒙古의 寶山, 朝鮮 先民의 남긴 遺物, 그 秘鍵은 누구의 손으로 열릴까  
新京에서 流浪生  
문예기타  
地下에 秘藏된 金銀寶貨, 千古秘密 蒙古의 寶山, 朝鮮 先民의 남긴 遺物, 그 秘鍵은 누구의 손으로 열릴까
新京에서 流浪生
세계적 불경기의 모진 바람이 온 천하를 휩쓸고 잇는 이때 그닥 멀지도 않은 蒙古 어떤 오지에는 金銀寶珠가 매장되어 잇어 一小山을 이루어잇다 하면 묻는 이들은 반드시 어리석은 자의 헛소리로 돌니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헛소리도 풍설도 아니요, 사실임에야 어찌하랴. 金銀寶珠가 쌓이어 한 조그마한 山形을 이루엇으며 이곳을 가르켜 蒙古人들은 「이보아산」(寶山의 意)이라 한다. 즉 寶山이라는 뜻이다.
洮南에서 2백리
이것이 사실이라면 무엇보다 그 소재지를 알고 싶을 것이니 여기에 이 寶山, 다시 말하면 천고의 秘藏이 든 이 寶山의 노정 안내를 무료로 日久月深에 그립고 그리운 2천만 동포에게 공개코저 한다. 그러면 그 蒙古 奧地라고 하면 이는 필시 인적이 들어가 보지 못한 그야말로 險路일 것이나 하는 생각이 잇을 것이나 사실은 이와 정반대로 그러케 먼 곳도 아니요, 險路가 되여 인적 不到處가 아니고 겨우 蒙古人의 촌락도 15리 조금 남짓하게 떠러저 잇는 곳이다. 북만주 洮南 즉 蒙古 입구인 洮南으로부터 西으로 2百 中里(朝鮮 里數와 별반 차이가 없음) 稍遠의 지점에 突泉縣이란 호수 3백 호쯤 되는 小도회지가 잇다.(지도에도 잇다)<72> 여기에서 서남으로 中里 40리 되는 곳에 圖汁葉圖王府라는 蒙古 王府가 잇고 예서부터는 완전히 純 蒙古 지대인데 이 王府로 부터는 북으로 勒河라는 河水를 끼고 逆하여 올라가기 약 40中里를 올라가면 「데레오도」라고 칭하는 蒙古 부락이 잇고 그 부락에서-5中里의 거리에 蒙古땅에서는 얻어 보기 드문 오아시쓰를 연상케 하는 수목 울창한 小山이 잇으니 이것이 즉 寶山인 것이다.
高麗族의 유적
그런데 이 寶山의 전설로써 于今에 傳하는 바에 의하면 이 지방은 북으로 산을 끼고 남으로 열리어 小河가 흐르고 잇어 實로 沃野千里이나 이 땅이 金遼시대에 벌서 高麗族의 손으로 개척되어 당시에는 극히 융성한 바 잇엇다 한다. 지금에도 高麗 城跡이 3개소 鼎足의 형으로 존재하엿든 터전이 남어잇다. 듣는 말에는 元朝가 일어나매 高麗族은 맛츰내 戰敗되어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이 되어 그곳에 잇든 3城主는 자기들의 소유물인 金銀財寶가 그대로 敵手에 들어갈 것을 참을 수 없어 세 城主는 서로 의논하고 비밀히 각각 자기들의 보화를 한데 뭉치어 이 小山에다가 깊이 매장하여 버렷다.
이것을 묻을 때 다시금 捲土重來의 勢로 이곳을 찾아 앞날에 전승을 기하야 다시금 이 財寶를 찾는데 소재를 판명케 하기 위하여 천연석에다 암호문자로 써 둔 것이 잇다. 이 文字가 불가사의의 자체(X, 滿, 蒙) 세 가지의 자체로 써 잇는데 기이하게는 刻書가 안이라 암석 우에 그대로 쓴 것인데 그 후 수 백년의 풍우에도 변화됨이 없이 오늘까지 나려 왓는데 지금도 원만큼만 주의하면 능히 읽어볼 수 잇다 한다. 조금씩 剝落된 處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알어 낼 수 잇으리라 한다. 蒙古人들에게 들어보면 이때 高麗 사람들의 모든 기술은 正히 神을 놀래게 하는 바 잇어 이 高麗人들의 쓴 것이라 그 자획이 石心에까지 침투되어 乃至 幾千年이 되어도 소멸됨이 없으리라고 한다. 그 後 元朝가 더욱더욱 왕성하게 됨에 따라 高麗族은 최후로 敗退를 하게 되어 마츰내 지금토록 옛 주인은 한번 가고 돌아오지 않어 그대로 남어 잇게 된 것이다.
恐怖의 存在
그러면 멧 百年이나 이 寶山을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침을 생키엇으며 희생된 이는 얼마나 되나? 더욱이 그리 멀지도, 險路도 아닌 곳에 잇는 이 보물이 어째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잇느냐? 여기에는 자미스러운 로만쓰가 한 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이 寶山에서 一草一木이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반듯이 무지 무시한 災禍가 나린다 하여 사막을 옆에 끼고 아직도 원시적 목축 생활로 지나는 이곳의 그들에게는 이 희귀하게도 수목이 울창한 寶山은 한없는 공포의 존재로 그들에게 군림되어 잇엇다. 당시 高麗人들의 보화와 또 그 무엇을 한데 뭉치여 묻어 두엇다는 이 寶山의 옆을 통과하게 되는 莫不得已한 때에는 마치 신전에나 들어가는 듯한 조바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이곳을 지나고 하엿다 한다. 그런데 여기에 오래지 않은 얼마 전에 이 寶山에 대한 가장 새로운 實話가 잇음을 말하고 그치려 한다.
어떤 날 夕陽녁에 이 蒙古 부락에서도 가장 세력이 잇다는 어떤 한 분이 말을 타고 이 寶山 근처를 지나는 때이다. 바로 이 寶山 옆에 이르럿을 때 탄 말이 오좀을 싸고 잇기 때문에 馬上에 앉은 이 蒙古人도 그대로 馬上에 앉은 채 우연히 발 아레를 나려다 보매 놀라지 않코는 앉견딜 수 없으리만큼 馬蹄(銀塊)가 여기저기 쌓여 잇지를 안느냐. 이것을 본 蒙古人은 즉시로 馬上에서 뛰어나려 떨리는 손으로 줍기 시작하엿다. 그러나 얼마 동안의 흥분과 함께 馬蹄를 줍든 그는 비로소 금단을 범하엿음을 알게 되자<73> 無限한 공포에 쪼들리엇다.
千古의 수수꺾기
그러나 그는 멧 百年 전 허잘 것 없는 늙은이들의 낡은 傳說에 불과한 것이다. 이 馬蹄를 어찌 그대로 두고 돌아가랴 하며 가장 대담하게도 다시금 이 馬蹄를 말게 실고 집으로 돌아가 집안 식구들에게도 절대로 알리지 않고 혼자만이 몰래 집 근처에 묻어 두고 집사람들의 얻째 길을 돌아왓느냐고 의심하여 물음에 대답도 없이 흥분된 숨길을 고요히 自己 방에서 진정시키려는, 正히 이때이다. 돌연히 복통이 나기 시작하드니 웬일이냐? 창자를 끈어내는 듯 하는 그 고통은 실로 수상한 통증이 아니엇섯다.
여기에 비로소 이 사람은 자기의 所行이 응당 죽엄이 오리라는 바를 뉘우침과 아울러 깨닫게 되자 집안 사람들이 대경실색하여 약을 가저옴도 뿌리치고 나의 병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 알 것이라는 말을 방중에 남기고 앞은 배를 움켜쥔 채 문을 걷어차고 어두운 곳을 간신히 헤매여 조금 전에 묻엇든 장소를 찾어 일일히 다시 끄집어 가지고 시간을 다토아 原地에 갓다 나려 놓고 이 千古의 수숙꺽이가 잠재하여 잇는 이 寶山의 음산한 수풀을 향하여 叩頭百拜 사죄를 하며 後事까지를 맹서하엿다. 이러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복통은 어느새 거즌말처럼 낫아버렷다. 이야말로 명확하게 나의 죄를 사함이라고 기뻐 집에 돌아가 비로서 사건 전말을 집안 사람에게 말하게 되엇다. 이 말이 여기저기 산재한 蒙古部로 퍼지기 시작하여 이 寶山의 수호는 힘 안드리고 스스로 더 한층 完全을 기하게 되엇다 한다.
無限의 寶物
지금이라도 이 천고의 비건인 暗號文意를 해득할 수만 잇다면 이 무한에 가까운 보물은 그의 소유가 될 것이다. 蒙古人들이나 그 다른 종족이 이 신성불가침의 神秘境을 더럽치면 몰라도 우리들로서 이곳에 찾어들면 하라버지의 혼령들이 기뻐 어떤 계시가 잇을는 지도 모를 것이다. 千古의 秘藏된 이 寶座의 神鍵은 장차 어느 분의 손으로 열리어질 것인가.
(筆者 曰) 고국을 떠나 滿洲 거츤 뜰에 유랑하야 어언간 이십 星霜이 가까워 온다. 이 짤지 안흔 歲流와 아울러 흔적을 이 땅에 印치고 잇는 사이에 맛츰내 滿洲도 어지간히 시끄럽게 되고 근간엔 天下人의 긴장된 視聽이 이곳에 폭주되고 잇는 모양이다. 제2 빨칸의 지칭을 밧게 되는 滿洲가 어떠니 세계인에게 비상한 충동을 주엇느니 이는 다 유랑인의 말할 바가 되지도 못하려니와 떠드러댈 맘도 생각도 업다. 그러타고 짤지 안흔 歲流에 흘러버린 과거의 애닯은 눈물의 흔적을 차지함도 이제 와서는 부질업는 일이다.
그러나 限만흔 流浪의 길에서도 때로는 감격의 밤을 밝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엇고 남모를 감격의 흘린 눈물도 한두 번이 아니엇으니 혹시 기픈 패자속(森林)에서 길을 일코 하로 해가 맛도록 해매다가 의외에 人家를 차저들매 옛 우리 선조들의 쏘다 남긴 古釜에 지은 밥을 먹고 삼대(森幹)에 불 부처 밝힌 방안에서 滿洲族 늙은이와 마주 안저 우리 선조들의 歷史談을 들을 때라든지, 잡초가 언킨 밋헤서 아직도 완연한 굴곡으로 남어 잇는 녯 高麗 성지에서 석양을 안고서 거닐 때라든지, 깁은 산 속 적막을 삐치고 울려 나오는 OO소리를 들을 때에 그리하엿고 땅속 깊 뭇히엇다 들어 나는 선조 각종 유물이 도처에 발견되어 나옴을 볼 때 더욱 그러하엿다.
멧 百年이 지난 지금 이 땅에는 百餘萬이란 朝鮮族이 언어도단의 박해와 수난 중에서도 이 땅에 발을 부치게 되여 잇다. 그들의 땅 파는 호미(鋤)와 보섭(黎) 밋헤는 녜전 그들의 유물이 소리를 치며 나온 것이다. 이것이 南北滿洲에만이 아니라 멀리는 沿海洲 서북으로, 興安嶺 밋과 蒙古에까지 널은 版圖 안에서 발견됨을 보아 우리 조상들의 활동한 무대를 짐작할 수 잇다. 여기에 씨워 잇는 『蒙古에 전하는 千古의 謎』라는 것도 우리들 선조의 남긴 바 가운데 한가지다.<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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