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7. 14:01ㆍ고대사
동광 제7호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잡지명 | 동광 제7호 |
발행일 | |
기사제목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
필자 | 權悳奎 |
기사형태 | 논설 |
朝鮮에서 胚胎한 支那의 文化, 朝鮮古代史硏究一端
權悳奎
조선사람은 점잔흔 사람이다. 그러함으로 君子라는 이름이 잇다. 착한 사람이다. 그러함으로 善人이란 일컬음이 잇다. 착하되 얼마나 착하던고 하니 늘 恭遜히 굴허안저 서로 닥들이는 일이 업스며 늘 기리어 일컷는 일은 잇스되 서로 휘뿌리어 欠談하는 일은 업섯다. 늘 조심하며 늘 빙글에 웃어서 얼른 보기에 어리석게 보이엇다. 이만콤 착하고 점잔흔 사람인 까닭에 물러가 직히는 일은 잇스되 나아가 빼앗는 일은 업섯다. 그러함으로 나라에 利가 되리만한 큰 사건이 잇스되 제 마음에 털끗만치 부끄럼이 잇서도 거짓말한 법이 업섯다. 이것이 조션 사람의 心性이다.
이러한 조선사람이매 남(支那人)들이 너이는 오랑캐니라 하고 이름을 지어도 속으론 어떠햇던지 거트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엿고 너이들이 우리에게 한번도 지지안흔 일이 업다. 꼬박꼬박 졋느니라 하여도 따로안자 코ㅅ방귀 뀌는 말이 잇나 하엿다. 그리다가 겻고 트는 바람에 한 번 념겨박이고 『滅朝鮮 置四郡』이란 文字도 쓰이고 『合韓國 稱朝鮮』이란 句節도 박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記事 이상의 엄청난 恥辱도 當한 것이요 歷史以外의 긔막히는 기록도 소유한 것이다. 이러한 조선사람이며 그야말로 生後 거짓말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업슬뿐 아니라 남의 거짓까지 밋게 되엇다. 조션사람은 글ㅅ자나 하는 것이 돌이어 탈이어서 漢書籍 끄트머리를 한울가티 밋고 日學者 주둥이를 어미가티 딸아서 거짓말할 줄 모르던 저의 祖上의 遺訓이 돌이어 거짓이 되고 엇그제까지 지키던 美風善俗을 훌부심하여 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야 目前에 보는 것이다. 조션놈의 내 말이기로서니 엇지 못할 거짓말이라고 하랴.
江華에 居巢里가 잇스니 이것을 范增의 시골이라 하고 海州에 孤竹郡 古趾가 잇스니 이것을 夷齊의 나라라 하며 洪州의 田橫島를 가리처 橫이 일쯕이 여긔에 멈을럿다 하고 泰安의 賈誼島를 가리처 誼가 압서 이에 귀양살이 하엿다 한다. 이것은 다 무식한 사람의 일업시 지어낸 말이어니와 薛仁貴에게 淵蓋蘇文이가 小人을 개 바쳣다는 말이 정말이 되겟느냐. 蘇定方이가 金庾信 아페 굴어업디어 발발 떨던 것이 거짓말이 되겟느냐. 神功皇后의 征韓하엿다는 野說을 미드며 儒禮尼師今의 白馬塚 事實을 부인해야 可하랴. 어찌하여 조션이 自來로 남에게 부속되지 안흔 적이 업다는 것은 캐는 양반들이 支那史가 말끔 異民族이 들어가 漢民族을 統治한 역사인 것은 문제삼지 안는고. 이것이 오직 조선 사람의 하는 것이요 조션 사람의 붓끗이요 말머리다.
日本은 別問題로 하고 東洋에 잇서 支那는 果然 큰 나라요 역사잇는 나라다. 그러나 그 역사 첫머리를 펼 적에 과연 남부끄럽지 안흘만한 始祖가 잇느냐 하면 참으로 어더낼 수가 업다. 그러나 조선 역사는 어떠하냐 첨으로부터 天降을<91> 밋는 고상한 이상을 가진 족속으로 天, 神, 人 삼위일체인 檀君을 밧들엇다. 그리하여 역대의 建國帝王이 내가 檀君이로라 하지 안흐면 檀君의 아들이로라고라도 하엿다. 檀君을 아무리 부인하여 말살하려하는 패라도 夫餘의 존재는 인정치 안흘 수 업슬 것이요. 扶餘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면 解慕漱, 解夫婁, 高朱蒙이 모도 檀君 혹 檀君子라 한 文句를 塗削하지 못할찌니 이런 문제는 문제될 까닭도 업는 것이다.
대체 조션민족은 상고로부터 썩 文化하엿다. 武의 방면으로 보더라도 支那族이 아직 黃河沿岸에 엉겨붓기 전에 조션 민족은 벌서 鳥列河(遼水) 이쪽으로부터 西으로 渤海 西北岸을 거처 다시 黃河, 泰山 以南으로 大江 以北 支那 內地로 몰려들엇다. 이때는 定히 斷自唐堯라 하는 堯의 시대엿다. 조션 사람은 太古로부터 동양 사람으로 天下의 大本이라하는 농업을 힘썻다. 그리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條目에도 主穀이 첫째이엇다. 곡식을 主張함으로 농작에 大關되는 天候를 엿보지 안흘 수 업섯다. 그리하여 天文에 대단히 능하엿다. 그럼으로 堯라는 님검도 天文을 夷人에게 물은 痕跡이 잇다. 조선 사람은 과연 그 이전 알기 쉽게 그때부터 미리 天候를 보아 年歲의 豊險을 료량하도록 天文學에 長하엿다. 그 뿐 아니라 政治의 어려움을 夷人에게 뭇게 되엇다. 그야말로 舜이란 사람은 東夷 곳 조선사람으로 堯의 請에 塵하여 그 政事를 껴들게 되엇다. 舜이란 사람도 天下를 두려는 상각이 귀를 씻으리만큼 淸白하지는 못하엿다. 마침내 堯를 廢하고 그 자리를 앗게 되엇다. 堯가 舜에게 가첫다는 이야기가 이러한 소식을 傳함이다. 舜이 東夷 곳 조선사람인 것은 先儒들의 말이 一致한 바이어니와 舜이란 그 稱號조차 과연 朝鮮的이다. 조선에는 自來 무궁화가 만핫다. 그리하여 槿域이라고까지 일컷는다. 꼿을 보고 누가 조타아니하더냐. 이 무궁화가 支那사람의 눈에까지 곱게 보엿다. 그리하여 누구를 사랑하여 그 얼굴을 아름답다 일컬을데에 반듯이 무궁화에 比하엿다. 詩에 『顔如舜華』라 한 것이 이것이다. 舜의 根木字義는 무궁화다. 그러한데 舜은 누구로부터 그 讚美를 어덧슬가. 혹 그 가정으로부터 어덧슬가. 혹 백성에게로부턊� 어덧슬가. 申景濬은 이에 대하여 그 아버지에게로부터 어든 것이다 하엿다. 그 大意는 瞽叟가 아무리 頑惡하기로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안핫스랴. 그 후첩에게 빠저서 구박한 때가 잇슬 뿐이다. 舜이 어렷슬 때에 그 사랑이 기펏슬찌니 사랑이 기프면 아름답게 녀기기를 꼿처럼 하엿슬 것이다. 그러하매 舜이란 그 이름은 남에게서 어든 것이 아니라 瞽叟의 준 바라 하엿다. 그도 그럴는지 모르거니와 나는 이러케도 생각이 된다. 舜은 槿域의 사람으로 그 사람이 아름다운 법까지 무궁화꼿 갓다한 것이라 한다.
조선 사람은 과연 上古에 잇서 일쯕이 文化하엿다. 支那사람이 아직 투구가 무엇인지 갑옷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에 조션사람은 벌서 甲胃를 맨들엇다. 果下馬를 타고 大弓을 둘러메고 단겨 騎射에 長함으로 일컬음을 밧는 사람, 조션사람이 제일 먼저 甲胃를 발명하엿다. 涿鹿의 野에서 黃帝軒轅씨에게 靑天霹靂을 나리던 蚩尤의 사실이 이것이다. 孤竹과 靑邱가 한가지 조선의 일부로 蚩尤는 靑邱의 覇王이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지처 들어갈 때에 말굽에 이는 티끌이 과연 천지를 가리엇다. 이때<92> 漢人의 웃으운 활 굼뜬 팔매질로야 甲胃 騎馬한 靑邱의 士卒이 꼼작이나 할 것이냐. 그러함으로 支那사람들은 蚩尤를 가리처 銅頭 鐵身이라 또는 입으로 능히 안개를 핀다고 까지 하게 되엇다. 黃帝가 指南車를 맨들어 蚩尤를 破하엿다는 것은 漢族 自家의 蔽欠으로 쓴 말답지 안흔 말이다.
사람이 동물중에서 제일 자랑거리라 하는 글ㅅ자도 조선 사람이 제일 먼저 맨들엇다. 伏犧氏가 조선 사람이라는 말 가튼 것은 미들 수 업는 것이어니와 支那의 蒼頡이라는 사람은 黃帝때 사람이다. 새의 발자취를 본떠서 漢字를 맨들엇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긔에도 조선과 關係가 잇다. 抱朴子에 『黃帝가 靑邱에 와서 風山에서 紫府先生에게 三皇內文을 어더갓다』 하엿다. 三皇內文은 萬神의 이름을 적은 神敎에 當한 冊子이다. 靑邱는 물론 朝鮮을 가리침이요 風山이라함은 風夷의 山이란 말일찌니 風夷는 곳 扶餘의 異稱이나 대개 東方의 黃人 곳 조션을 가리친 것이다. 黃帝가 그 臣下로 하여금 文字를 맨들릴새 반듯이 어대에던지 參考함이 잇슬 터인데 자기보다 文化가 먼저 열린 朝鮮에 와서 問質할 것이 依例이라 그 설명을 보아 三皇內文이 분명히 神敎의 冊이요 그 어든 대가 분명히 조선인즉 그때에 조선의 文字가 잇슨 것이 사실이라. 그러하면 蒼頡이 造字에 三皇內文을 참고 혹 依倣한 것이다. 黃帝의 時代는 원악 不可信의 時代로 處理되는 것이매 이 시대에 잇는 蒼頡의 造字까지 부인한대면 그것은 별문제어니와 만일 그것을 시인한대면 가튼 시대에 잇는 조선사실 또는 그 적힌대가 抱朴子라 하여 구대 내버릴 것은 업슬까한다. 그는 그러하거니와 여긔에 딸아 생각되는 한가지는 漢字의 原始가 象形인데 조선의 이때에 쓰던 문자가 어떠한 것일까이다. 國家가 애초에 형성되지 안핫다 하면 모르거니와 형성되엇다 하면 반듯이 記事하는 文字는 잇서야 할 것이니 잇스면 그때에 잇서 지금 가장 진보되엇다는 音標文字가 생겻슬 수는 업는 것이요. 상형이나 또는 그 비슷한 무엇이 잇섯슬 터인데 地境이 連接하고 世記가 伯仲하는 朝支의 間에 반듯이 서로 비슷한 文字 또는 가튼 문자를 썻슬 것이라 漢字가 이제 支那 고유의 것으로 傳하는 것은 사실이나 나는 이것을 지나인 獨創의 것으로 생각하고 십지 아니하며 朝鮮도 이때 上古에 잇는 상형문자를 쓰되 支那의 그것과 가튼 것을 썻스며 그것이 原始는조선인의 창안으로 그 利를 共享하다가 後世에 支那人의 所有로 歸한 것이리라 한다. 이 論은 내 생각한 바 -잇고 이보다 더 참고한 바- 잇스나 아직 이만한 假想으로 두고 확실한 議論은 다른 때를 기다리려한다.
딸아 의논하려하는 바는 支那文化의 소유자가 支那人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체 조선과 支那가 地理-상접하여 人文이 混融되기 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업거니와 上古에 잇서 支那가 조선보다 文明이 뒤진 것은 사실인대다가 이민족과 전쟁과 박해가 때로 이어서 舜, 禹, 周公의 開敎한 공로도 날로 덜리는 한 쪽에 건국 이후 일쯕 한 번 파괴를 입지 아니한 扶餘 곳 조선의 文化는 꼿이 날로 한송이 씩 피어 열매가 날마다 한 개씩 여므는데 조선 학자의 行旅가 그 쪽으로 늘고 조션민족의 遷移가 刻刻으로 勢를 加하여 仙敎의 敎訓이 河北에 더 피고 太一의 學風이 淮岱에 퍼지며 小連, 大連의 德行이 孔子의 思慕하는 目標가 되고 淮夷, 徐夷의 尙神하는 풍속이 屈原의 嘆咏하는 문장으로 化하엿다. 더구나 孔子는 夷人<93> 文化의 移植地인 泰山 麓地에 生하여 그들의 문화에 만히 接觸浸染하엿슴으로 그들의 생활, 俗尙, 思想을 비교연구하여 민족개조의 박휘를 돌릴새 修身, 齊家의 쪽으로 하엿다. 綱常을 거스르고 殺戮을 例로 하는 (그때 형편) 자기의 족속을 구해낼 도리를 오직 이것으로써 한 것이다. 그리하여 윤리의 방면으로는 三綱, 五倫을 主하여 修身으로부터 始하고 經濟의 방면으로는 齊家로부터 治國, 平天下에 말을 그첫다. 이와가티 종교의 五戒를 본떠서 자기의 倫理觀을 세고 그 중의 臨戰勿退의 武의 思想을 平天下로 柔化한 것 갓다. 또 한편으로 老子 가튼 이는 東으로부터 들이오는 조선 仙敎의 淸高한 道理를 엿보아 精思細究한 결과 無爲 無化의 거룩한 생각을 뽑아 냇는지도 모른다. 아무러커나 上古에 仙道의 思想이 조선으로부터 支那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매 아주 터문이 업는 것이라고는 생각 안키를 바란다. 孔子슝� 道學이 집대성이라는 것 가티 支那의 思想, 文化가 동방 제민족의 思想, 文化를 摠集大成한 것도 사실이 아니냐. 먼저 扶餘가 거꿀어지고 이어 句麗가 어퍼진 후에 우리의 傳家寶籙이 無知한 外人의 손에 녹아저 업서지고 뒤를 이어 高興 李文眞이 나지 아니하매 우리의 思想이고 文化고를 다시 엿볼 길이 맛혓다 만일 우리의 그것이 완전히 남앗다 하면 지금의 支那것이라고 하는 支那의 그것이 얼마나 빗이 덜리엇슬는지도 모른다. 保晩齋의 이른바 『조션이 中華보다 낫고도 못한 것은 文籍이 업는 까닭이요. 中華가 조선만 못하고도 나은 것은 文籍이 잇슴으로 낫다』 한 것이 과연 올흔 말이라 한다.
지금에 조션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純直한 사람의 일러오는 傳說을 가버이 너길 수 업고 또한 조션의 기록보다는 그 시대를 노코 設想을 아니할 수가 업다. 지금의 우리가 參考한다는 조션의 기록이 우리의 손으로 된 것이 하나가 잇는가 모도 우리를 더퍼 누르려하는 賊의 쓴 바가 아닌가. 賊이 가르되 『네가 오랑캐라』 햇서도 그대로 벗긴 것이요. 賊이 가르되 『네가 우리의 종이니라』햇서도 그대로 적어 온 것이 아니냐. 三國史記나 東國通鑑이 賊인 支那사람의 붓끗으로 된 그것을 다만 년대를 차자 정성스럽게 들이낀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이들의 冊中의 按說이라는 것은 賊의 이야기를 무슨 戒訓처럼 녀기는 지나에 대하여 奴隷思想을 가진 조선 사람의 賊의 설명을 탄복하여 마지안는 按說이 아닌가 내 말하되 『조선은 아직 歷史가 업는 나라이라』 한다. 歷史는 따로히 잇다. 그러나 歷史冊은 업다. 다만 歷史의 자료가 잇슬 뿐이다. 이제 말한 바와 가티 이 역사의 자료가 모도 賊의 적어논 바이다. 어떤 때는 남의 적은 역사가 한 편 짝을 가리고 적은 그 민족의 그 역사보다 정확한 구절도 업는 바는 아니나 제 민족이 적은 그것이 업고 남이 적은 그것만이 잇는 그 역사를 가지고야 어찌 정확 여부를 말하랴. 그러나 外人이 적은 우리 역사자료에나마 페지 페지 꼿다운 사실이 들어나는 것을 보면 그 반면에 어떠한 훌륭한 사실이 잠재햇던 것을 짐작하겟다. 조선 역사에는 原事實을 차자 적을 사이도 업섯스매 거짓말할 나위는 根本부터 업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역사가가 나기를 바라며 또한 그것을 밋는 생각으로 이 되지 안흔 말을 抄하는 것이다.
五戒
事君以忠, 事親以孝, 交友以信, 臨戰無退, 殺生有擇<94>
<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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