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동안이나 예의(禮義)를 지켜온 나라이며 당당한 천승(千乘)의 군대를 거느린 임금으로서 자신을 낮추어

2023. 3. 12. 23:27역사적 사실 오류

고전번역서 > 우복집 > 우복집 제5권 > 소차 > 최종정보

우복집 5 / 소차(疏箚)

 올린 차자

 

《예기》에 이르기를, “예는 때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은 분수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습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이 이런 일을  때입니까? 신들이 듣건대, 성묘(成廟)께서 즉위한 뒤에 덕종(德宗)의 능침(陵寢)을 조금도  수축하거나 넓힌 일이 없이 묘에 부수되는 의물을 모두 세자(世子)의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성인(聖人)이 어버이에 대해 효성을 다하는 도리가 애당초 말단적인 형식을 따르는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사직을 안정시켜서 국조(國祚)가 영원토록 이어져   있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효성이라는 것을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우선 내정을 닦고 외적을 물리치는 계책을 세우는  전심전력을 기울이시다가,  년이 흐른 뒤에 외적이 물러가고 백성이 안정되며 시절은 화평하고 농사는 풍년이  때를 기다려서 천장하는 예를 의논하소서. 그럴 경우 유명(幽明) 간에 모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쪽 지방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듣고서는 모두들 말하기를, “우리 전하께서는 수치를 씻고자 하는 마음이 급하여 비록 지극한 정이 있더라도 모두 정지하였다.” 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감발시키고 의로운 기운을 고무시키는  보탬이 됨이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무릇 이상에서 말한  가지 일들은 비록 국가가 존재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데에 관계되지는 않으나, 사기(士氣)를 답답하게 하고 여정(輿情)을 의혹시키기에는 충분한 것들입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서 사방 사람들이 맥이 빠져 장차 수습할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 인심의 향배는 관계되는 바가 작지 않은 것입니다.  전하께서 안일함에 젖어 고식적인 생각을 함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불어나 끝내 자강(自强)할  없게 된다면, 비록 이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역시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신들이 어찌 이런 내용을 성상께 자세하게 아뢰지 않을  있겠습니까.

아, 지난 일을 어찌 차마 말하겠습니까. 100 동안이나 예의(禮義)를 지켜온 나라이며 당당한 천승(千乘)의 군대를 거느린 임금으로서 자신을 낮추어 오랑캐와 맹약을 맺고서 바로  오랑캐들을 종시토록 편안히 지내게 한다면, 이것은 이미 씻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더구나 산골짜기같이  그들의 욕심은 채워 주기가 어렵고 변경의 흔단이 쉽게 발생하여 편안하게 지낼 리가 전혀 없는 데이겠습니까.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부끄러움이 있고  다음에야 능히 분발할 줄을 알고, 분발할 줄을 알고  다음에야 능히 자강(自强)할  있으며, 자강하고  다음에는 능히 정령(政令)을 시행하여  나라를 보전할  있다.”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회계(會稽)의 수치를 잊지 마시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분발을 해이하게 하지 말아, 각고(刻苦)하는 마음을 세우고 오래도록 정성을 견지하소서. 그럴 경우 설욕할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것입니다.

오늘날의 계책과 노력으로는 결단코 나라를 회복시킬 가망이 없습니다. 바라는 바는 오직 하늘이 순조롭게 도와주는 것뿐이니, 어찌 몹시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늘은 특별히 친애하는 바가 없고 오직  있는 자만을 도와줄 뿐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덕정(德政)을 힘쓰면서 천심(天心)을 누림에 있어서 털끝만큼이라도 태만히 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하나의 호령을 내고  가지 일을 시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이렇게 하면 하늘의 마음에 부합될  있겠는가?’ 하소서. 그리하여 천심과 합치되면 시행하고 어긋나면 그치소서. 일마다 이와 같이 하고 날마다 이와 같이  나간다면, 높고도 높이 있으면서 날마다 내려다보고 있는  하늘이 어찌 아득한 가운데 묵묵히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주역》 대유괘(大有卦) 상구(上九)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도와서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 공자가 주석을 내어 이르기를, “하늘이 돕는 것은 순응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돕는 것은 성신(誠信)하기 때문이니, 성신을 이행하고 순함을 생각하며  어진 이를 숭상한다.  때문에 하늘에서 도와서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전하께 바라는 바는 오직 이것뿐입니다.

또한 신들은 이에 대해서  걱정스러운 바가 있습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신료들이 진언한 것에 대해서 매번 너그럽게 받아들이면서 장려하는 말로 답하시기는 합니다. 그러나 시행하고 조처하는 것을 살펴보면 끝내는 흔쾌히 받아들여 널리 시행하는 실제가 없습니다. 신료들이 전하께 진언하는 것은 본디 그것을 시행하여 공적을 이루게 하여 티끌만큼이나마 성덕(聖德)을 돕고자 해서인 것입니다. 어찌  글자  구절의 아름다운 말로 표창하는 영광을 바라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성인께서 “기뻐하기만 하고 실마리는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것과, 자주자(子朱子)가 “유순한 도를 써서 싸우지 않아 천하의 충의로운 군사들을 굴하게 하였다.”  것은 몹시 걱정해야  만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비록 좋은 계책과 좋은 말을 날마다 전하께 진달한다 하더라도 일을 하는  있어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올린 말이   없는 것이면 구차스럽게 아름다운 말로 표창하지 말고, 참으로  말이  만한 말이면 반드시 일을 행하는 데에 드러내소서. 이것이 바로 대순(大舜)이 행한 천근(淺近)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고 중도(中道)를 쓰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임금의 도에 있어서 몹시 다행이고 나라의 일에 있어서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D003] 흥경원(興慶園) 천장(遷葬)하는  : 

인조의 생부인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의 묘를 인조의 생모인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의 묘에 합장하는 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