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원제(元帝)가 피신하던 곳으로 명 태조(明太祖)가 그들의 지속(支屬)을 여기로 보내었으니, 이것은 그때에 끼친 풍속인가?

2023. 5. 16. 01:46이성계의 명조선

성호사설 제10권 / 인사문(人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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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오량(閭家五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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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건대 “연도(燕都)의 집들은 모두 오량(五梁)인데, 네 벽 밑에는 온돌을 놓고 간혹 간막이를 하기도 한다. 살림 도구는 항하(炕下)에 두는데, 겨울이면 불을 때고 사람들은 모두 아랫목으로 내려와서 손을 녹인다. 그러나 그 온돌이 매우 춥다.” 한다.

이 제도가 옛날에도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했고, 내가 이민환(李民寏)의 《책중기(柵中記)》를 상고하니 “청 나라 풍속이 원래 이와 같은데, 그 집은 모두 여와(女瓦)로 덮고 기둥은 땅에 박으며 앞면은 꼭 남향으로 하며 네 벽은 벽돌로 쌓는다. 동쪽ㆍ서쪽ㆍ남쪽에는 모두 큰 문을 내고 벽 밑에는 모두 긴 구들을 꾸미는데, 간막이가 없이 주복(主僕)과 남녀가 그 속에서 섞여 산다. 군졸(軍卒)의 집은 대개 짚으로 이고 그 위에 흙을 덮었는데 그 제도는 모두 똑같다.” 하였으니, 이는 필시 그들이 중국을 점령한 뒤에 풍속을 일변하여 그렇게 한 것인 듯하다.

또 듣자니 “연경(燕京) 풍속은 기와 대신으로 석회(石灰)를 쓰는 이가 많고 처마끝에 물받이를 만들어서 지붕의 물이 모두 한 곳으로 내리게 한다.”고 하니, 과연 그러한지 모르겠다. 또 “제주(濟州) 사람들은 집을 모두 오량(五梁)으로 짓는데, 온돌은 없고 판목으로 청사(廳舍)를 만들어 짚을 깔고 겨울을 지낸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일찍이 원제(元帝)가 피신하던 곳으로 명 태조(明太祖)가 그들의 지속(支屬)을 여기로 보내었으니, 이것은 그때에 끼친 풍속인가?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8

閭家五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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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燕都閭里之家皆五梁四壁下皆有炕或用屏障遮隔炕下置什器之屬冬月則熾炭人皆下炕炙手炕甚寒凜云此制扵古無聞余考李民寏柵中記淸國本俗盖如此其舍覆以女瓦柱皆揷地而必南向四壁甓築東西南面皆大闢𤗉戶壁下皆設長炕絶無遮隔主僕男女混處其中軍卒之家盖草覆圡而其制同此必入㨿中圡一變其俗也又聞燕俗多以石灰代瓦簷端有橫溝水皆同注云其果然否又聞濟州人屋皆五梁而無煖堗架板為廳事草藉而禦冬意者元帝為避身之所而明太祖送其支屬扵此此其遺俗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