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재인(才人)과 백정(白丁)은 그 선조가 오랑캐의 종족(種族)입니다.

2023. 11. 9. 04:44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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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 제31권 / 순일편(旬一編)

행향(行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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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성(外省)의 문무 관원은 삭망(朔望)마다 으레 문묘(文廟)와 무묘(武廟)를 향해 향을 피운다. 상고하건대 ‘향을 피운다[行香]’는 명칭은 육조(六朝) 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망궐례(望闕禮)가 이것이다. 중국은 각 기일(忌日)마다 이를 행하는데, 우리나라는 다만 성탄일(聖誕日)에만 행한다. 명을 받든 사신 또한 그렇다.

ⓒ 한국고전번역원 | 안정 (역)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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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18년 경진(1640) 윤 1월 27일(기유)

18-윤01-27[03] 청나라에 대적할 일에 관한 직강 조한영의 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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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 조한영(曺漢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원손이 이미 길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국경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잘 대처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오직 전하께서 스스로 마음을 결단하여 큰 계책을 속히 결정하시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신임하는 신하 가운데 지략이 있는 자를 평안 감사에게 보내 그로 하여금 편의에 따라 선처하게 하면 될 것이니, 그 사이의 계책은 일일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병가(兵家)의 책략은 기밀(奇密)을 귀하게 여기므로 군대에 관한 사항은 밖에 나가 있는 장수에게 전담하여 절제하도록 위임하는 것이니, 임기 응변하여 전화 위복함은 오직 임무를 받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뜻으로 주사(舟師)를 지휘하는 대장에게 은밀히 유시하기만 하면 그 사이에서 편의에 따라 자연 처치하게 될 것이니, 여기서 멀리 제어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금 천하에 오랑캐를 섬기는 신하가 되어 예측 못한 화를 면하였던 적이 없었으니, 변송(汴宋) 때 유예(劉豫)의 일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의 힘이 완전히 고갈되고 국가의 형세가 이미 기울어 온 종족이 모두 북쪽으로 끌려가도 반드시 망하게 되느니 일찌감치 후회해도 소용없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도모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세자가 이제 막 도착하고 원손이 아직 출발하지 않은 이 때에, 팔도에 애통해 하는 조서를 내리고 5천 주사(舟師)의 역을 파한 뒤 군신(君臣) 상하가 먼저 강화에 들어가고 연해의 백성들을 모두 섬으로 옮기며 산골 백성들은 전부 산성으로 대피시켜 각도의 방백으로 하여금 요해처를 굳게 지키게 하는 동시에 별도로 대장을 선발하여 남한 산성과 강도에 주둔케 하면서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게 하고 삼남 지방과 영동과 영북 지방을 제압하여 성세(聲勢)를 삼는 한편 여러 장수들을 파견하여 각기 형편대로 점거하고 대처하게 하소서. 그러면 적이 다시 오더라도 우리가 어찌 저들만 못하겠습니까. 쳐들어 오는 군사가 적으면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이고, 크게 군사를 일으키자면 아마도 명나라가 배후를 도모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저들이 필시 진퇴 유곡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이 수치와 두려움에 떨며 항우가 태공(太公)과 여후(呂后)를 돌려 보낸 것처럼 강화를 요청할 것이니, 빈궁과 대군도 돌아올 수 있고 치욕도 설욕할 수 있으며 큰 원수도 갚게 되어 나라를 중흥한 업적이 선왕보다도 빛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소를 들였으나 답하지 않았다.

【원전】 35 집 80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외교-야(野) / 왕실-종친(宗親)

[주-D001] 변송(汴宋) …… 것입니다 : 아군의 장수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는 말. 유예는 송(宋)나라 휘종(徽宗) 건염(建炎) 2년(1128)에 제남부(濟南府)를 다스리고 있던 자로 금(金)나라가 침입하자 제남부를 가지고 금에 항복하였는데, 금나라에서는 예를 황제로 임명하였다. 이에 대명(大名)에 도읍하여 국호를 대제(大濟)라 하고 다시 변(汴)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예가 송과의 전투에서 대패하자 금나라는 예를 다시 황제의 지위에서 폐하였다. 《송사(宋史)》 권475, 《금사(金史)》 권77 유예전(劉豫傳).[주-D002] 항우가 …… 것처럼 : 태공은 한 고조(漢高祖)의 부친이고 여후는 황후임. 초(楚)나라 항우(項羽)가 그들을 생포하여 군중에 인질로 두었다가 팽월(彭越)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 강화를 하고 천하를 양분할 때 돌려 보낸 일을 말함. 《사기(史記)》 권8 고조 본기(高祖本紀).

ⓒ 한국고전번역원 | 신용남 (역) | 1990

 

 조선왕조실록 > 효종실록 > 효종 2년 신묘 > 2월 21일 > 최종정보

효종 2년 신묘(1651) 2월 21일(무진)

02-02-21[02] 주강에 나가니 지경연 이기조가 청의 신하들과 사귀어 둘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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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 우공을 강독하였다. 강독이 끝나자 지경연(知經筵) 이기조(李基祚)가 아뢰기를,

“신은 이제 막 북경에서 돌아왔으므로 감히 듣고 본 사실을 진달할까 합니다. 청주(淸主)의 나이는 이제 14세인데 전상(殿上)에 앉아 제장(諸將)을 거만하게 지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청장(淸將) 중에는 파흘내(巴訖乃)만 현재 우리 나라를 돌보아 주는 빛이 있을 뿐 명조(明朝) 사람으로 청국에 벼슬한 홍승주(洪承疇)ㆍ풍전(馮烇)ㆍ유수환(劉守渙) 등은 모두 우리 나라를 해치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승주는 대릉하(大陵河) 패전의 책임을 오로지 우리쪽에 돌리고 풍전은 수차 글을 올려 조선에게 청국과 마찬가지로 머리를 깎게 할 것을 청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금백(金帛)을 출연하여 이들과 사귀어 두어야만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왕(漢王)에게 4만 근의 황금이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 진평(陳平)이 능히 그것을 사용하였다. 비록 금백이 있더라도 누가 능히 그것을 사용하겠는가.”

하였다.

【원전】 35 집 470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외교-야(野)

[주-D001] 한왕(漢王)에게 …… 사용하였다 : 한왕 유방(劉邦)이 형양성(滎陽城)에서 초(楚)의 항우(項羽)에게 포위되었을 때, 진평이 “대왕께서 능히 황금 수만 근을 출연하여 반간(反間)을 놓아 초의 군신을 이간시켜 서로 의심하게 한다면 항왕(項王)은 남을 꺼리고 참소를 잘 믿으므로 반드시 서로 죽일 것이니 한(漢)이 그 기회를 틈타 공격하면 초를 격파할 것은 분명합니다.” 한 말에 따라 한왕이 그에게 황금 4만 근을 주니, 그것으로 초의 군사에게 반간을 놓아 항우의 근신인 아보(亞父)와 종리매(鍾離昧)를 항우로부터 떠나가게 하고 마침내 형양성에서 탈출하였다.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조선왕조실록 > 성종실록 > 성종 22년 신해 > 4월 23일 > 최종정보

성종 22년 신해(1491) 4월 23일(무진)

22-04-23[04] 재인과 백정의 군정 보충을 청한 행 첨지중추부사 김영유의 상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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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 김영유(金永濡)가 상언(上言)하기를,

“지난번에 북쪽 오랑캐가 변방을 침범하여 변장(邊將)을 죽이고 경비하던 군졸을 사로잡아 덕화[聲敎]가 미치지 않는 국경 밖으로 도망갔으니, 마땅히 죄를 신문하는 군대를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당당(堂堂)하고 융성한 조정에서 군사가 많지 않은 것도 아니며 날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오히려 빠뜨려진 인재나 숨겨진 인재가 있을까 염려하시어 제색 군사(諸色軍士) 및 사대부(士大夫)의 첩(妾)의 자식도 직접 임석하시어 재주를 시험하셨으니, 그 군사 선택을 위한 지혜에 빠뜨려진 계책(計策)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여러 가지 생각 중에 취할 만한 것이 간혹 있을 것이라고 여겨 신총(宸聰)을 함부로 욕되게 합니다. 우리 나라의 재인(才人)과 백정(白丁)은 그 선조가 오랑캐의 종족(種族)입니다. 그래서 비단 말을 잘 타거나 활을 잘 쏠 뿐만 아니라 천성이 모두 사납고 용맹스러워 걸어다니면서 짐승을 잡는 데 익숙하여 〈그것을〉 예사로 여기며, 험한 곳을 넘나드는 것을 마치 평지를 다니는 것처럼 하여 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괴롭게 여기지 않으며, 바쁘게 다녀도 고달프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을 내보내어 선봉(先鋒)으로 삼는다면 한 사람이 1백 명을 당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늘 군사를 징발하면서도 내버려 두고 논하지 않으시니, 신은 저윽이 결점이 있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삼가 원하건대, 조관(朝官)을 나누어 파견하셔서 모두 자세하게 추쇄(推刷)하여 재주를 따라 등급을 나누고 성명(姓名)을 장부에 기록하여 군정(軍丁)으로 보충하도록 허락하소서. 다만 이 무리들은 병적(兵籍)에 붙여 있지 않아 본래 보정(保丁)이 없으니, 무기와 의복과 양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절목(節目)을 대신(大臣)으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고 계품(啓稟)하여 시행하도록 하신다면 군사를 징발하는 데 있어서 틀림없이 조그마한 보탬이 아닐 것입니다. 신이 선왕(先王)을 섬겨 대대로 국가의 은혜를 받았는데 견마지치(犬馬之齒)가 이미 늙었습니다. 이번 북정(北征)에 모책(謀策)은 부족하지만 저(箸)를 빌려 감히 구구(區區)한 마음을 간(諫)합니다.”

하였는데, 그대로 따랐다.

【원전】 12 집 16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군사-군정(軍政) / 군사-군역(軍役)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외교-야(野) / 신분-신량역천(身良役賤)

[주-D001] 신총(宸聰) : 임금의 총명.[주-D002] 견마지치(犬馬之齒) : 자기 나이의 겸칭.[주-D003] 저(箸)를 빌려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항우(項羽)와 천하를 다툴 때 영양(滎陽)에서 항우에게 포위를 당하였다. 고조가 대단히 우려하여 역이기(酈食其)에게 초(楚)나라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책을 묻자, 역이기가 6국(六國)의 후를 세우면 된다고 건의하였다. 이 계획에 대하여 고조가 장량(張良)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때 마침 고조가 식사를 하는 도중이었으므로, 장량이 “청컨대 앞의 저[前箸]를 빌려서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앞의 저란 고조가 식사하고 있는 젓가락을 빌어서 계책을 그려서 설명하였다는 의미라고도 하고, 또 앞 세대의 탕왕(湯王)ㆍ무왕(武王)의 저명(著明)한 일로써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겠다는 의미라고도 함. 장량은 이어서 여덟 가지이 불가(不可)함을 내세워 역이기의 계획에 반대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