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사면(四面)이 적(敵)의 침입을 받을 땅이니, 그 예비하는 대책은 실로 언관(言官)이 먼저 아뢰어야 마땅합니다.

2023. 5. 1. 17:44사방600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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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1 신미(1451) 6 9(병자)

01-06-09[02] 사헌 집의 신숙주 궐내에 있는 공장을 파할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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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 집의(司憲執義) 신숙주(申叔舟)가 아뢰기를,

“궐내(闕內)에 공장(工匠)이 너무 많으니, 청컨대 파(罷)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군기(軍器)를 수련(修鍊)하는 것은 나라의 큰 일이니, 그만둘 수 없다.”

하였다. 신숙주가 응대하기를,

“이는 비록 큰 일이나, 유사(有司)에게 맡김이 마땅한데, 어찌 반드시 궐내에서 하겠습니까? 지금 성식(聲息)이 들리는 것도 문정(門庭)의 적(賊)은 아니며, 탈탈(脫脫)이 바야흐로 중국과 군사를 연합하여 있으므로, 아직 한 군사도 강상(江上)에 이른 적이 없으니, 이를 알 만합니다. 더구나, 수성(守成)하는 시대이니, 마땅히 백성을 안정(安靜)시키는 것을 앞세워야 합니다. 백성이 안정하지 못하면 비록 갑병(甲兵)이 있더라도 쓸데없습니다. 신이 듣건대, 지나번 북방의 성식(聲息)으로 말미암아 평안도ㆍ황해도 두 도에서 군사를 징집하였으나, 그 원액(元額)의 군졸 중에서 도망해 숨거나 죽은 자가 반이 넘어서, 명색만이 남아 있고 실속은 없다 합니다. 군졸의 허술함이 이러한데도 먼저 병기[甲兵]를 수치(修治)하는 것이 어찌 옳겠습니까? 마땅히 백성을 안정시키기에 힘써서 군액(軍額)이 날로 늘게 한 다음에 병기를 수선(修繕)하여 점차로 정제(整齊)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마도 대체(大體)에 맞아서 본말(本末)이 함께 잘 행해질 것입니다. 또 임금이 숭상하는 바는 천만 인이 사모하므로, 한 가지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요사이 성상께서 관사(觀射)를 친열(親閱)하여 숭상하는 것이 무사(武事)에 있으므로, 조사(朝士)가 바람 따라 쏠리듯하여, 혹 한 관사(官司)가 통틀어 핑계를 내세우고 일을 하지 않고서 오로지 무용(武勇)을 숭상하여, 말류(末流)의 폐단을 구제할 수 없게 될까 합니다. 지금 군기(軍器)를 보수하는 일도 주관하는 관사에 책성(責成)하여야 마땅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성식(聲息)도 점차로 오는 것인가? 너희들의 오활(迂闊)한 고론(高論)의 뜻에 있어서는 그렇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사기(事機)에 미치어 맞추려면 마땅히 이렇게 하여야 한다.”

하였다. 신숙주가 응대하기를,

“신이 아뢴 바는 비록 오활한 듯하나, 예로부터 밝은 임금은 오활한 말이라 하여 듣지 않지는 않았는데, 유사(有司)에 맡기지 않는 것은 유사가 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니다.”

하였다. 신숙주가,

“그러면, 체모(體貌)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니다. 준비가 있으면 우환이 없으며, 또 빨리 하고자 한 것이다.”

하였다. 신숙주가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사면(四面)이 적(敵)의 침입을 받을 땅이니, 그 예비하는 대책은 실로 언관(言官)이 먼저 아뢰어야 마땅합니다. 신 등이 오늘 아뢰는 것 또한 그만두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군기감(軍器監) 자체에 관원(官員)이 있으므로, 제조(提調)가 참으로 엄히 검거(檢擧)한다면 일을 이루지 못하지는 않을 터인데, 하필 대궐(大闕) 안에 두고서, 성상께서 유사(有司)를 대신하여 잗단 일을 염려하십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러면, 나라를 위하여서 한 가지 일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가?”

하였다.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대체를 잃지 않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지금 한때의 작은 이로움만을 보고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어찌 크게 이로운 것이 아닌 줄 아느냐?”

하였다. 대답하기를,

“비록 크게 이로움이 있을지라도, 의리에 견주면, 역시 가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였으나,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고 나서, 임금이 좌우(左右)에게 말하기를,

“무비(武備)는 닦지 않을 수 없는데, 이제 유사의 뜻을 살펴 보면, 전혀 닦지 않기를 바란다.”

하니, 이계전(李季甸)이 대답하기를,

“유사도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궐내에서 닦는 것을 옳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송(宋)나라의 무비가 한(漢)나라ㆍ당(唐)나라에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매양 이적(夷狄)의 우환이 있었으니, 국가의 무비는 진실로 닦지 않을 수 없고, 또한 오로지 숭상할 수도 없다. 문(文)을 숭상하되 무비를 닦지 아니하면 경계할 만한 송(宋)나라의 예(例)가 있고, 문덕(文德)을 닦지 아니하면 또 진(秦)나라ㆍ수(隋)나라의 예(例)가 있다. 내가 근일 자주 관사(觀射)를 하니, 글 읽는 사람들도 따라서 사모하여 학문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많은데, 이는 비록 주지(主志)가 없는 선비이겠으나, 또한 무(武)를 숭상하는 징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군병(軍兵)을 훈련하고 한편으로 학문을 흥작(興作)하는 것이 또한 옳은 일이니, 후일에 친히 성균관(成均館)에 나가서 학생들을 권려(勸勵)하겠다.”

하니, 정이한(鄭而漢)이 아뢰기를,

“참으로 상교(上敎)와 같습니다. 무비를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언관(言官)이 흔히 궐내에서 군기를 보수하는 것을 그르다고 하는데, 아마도 환관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빨리 이루려면 이들에게 시켜야 하며, 유사에게 맡기면 쉽게 성취하지 못한다. 하물며, 이는 큰 일이 아니니, 비록 환관을 시켜서 감독하게 하더라도 무엇이 해로울 것인가? 또, 궐내에 두는 것이 낵가 기기(奇技)를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원전】 6 집 398 면

【분류】 군사-군기(軍器) / 공업-장인(匠人) / 정론(政論)

[-D001] 강상(江上) : 

압록강을 지칭함.

[-D002] 책성(責成) : 

성적을 독책(督責)함.

[-D003] 오활(迂闊) : 

사정에 어두움.

[-D004] 관사(觀射) : 

임금이 활 쏘는 것을 구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