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4. 08:48ㆍ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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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7년 신사(1461) 7월 25일(계해)
07-07-25[01]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고 목장을 설치하는 일을 의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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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交泰殿)에 나아가 내종친(內宗親) 및 좌찬성(左贊成) 황수신(黃守身)ㆍ호조 참판(戶曹參判) 이극감(李克堪)ㆍ이조 참판(吏曹參判) 성임(成任)ㆍ병조 참판(兵曹參判) 김국광(金國光)ㆍ공조 참판(工曹參判) 한계희(韓繼禧)ㆍ도승지(都承旨) 김종순(金從舜) 등을 인견(引見)하고 목장(牧場)을 설치하는 등의 일을 의논하였다. 임금이 농담으로 이극감에게 이르기를,
“경은 파리를 잡을 힘이 있는가?”
하니, 이극감이 대답하기를,
“신이 진실로 힘은 없으나, 국가의 큰 일을 능히 처치할 수 있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싱긋이 웃고 곧 이극감으로 도진무(都鎭撫)ㆍ사옹 제조(司饔提調)를 삼았다. 이극감은 사람됨이 살이 많고 힘이 없으며 몸이 솟아나고 솔개의 어깨인데, 임금이 일찍이 말하기를,
“이극감이 서연(書筵)이 되어 일찍이 세자(世子)에게 도덕(道德)을 기르지 아니하고, 다만 그 어깨 솟은 것만 전했을 뿐이다.”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제조(提調)를 제수하며 말하기를,
“소반과 밥그릇을 들게 하여, 그 어깨를 펴려고 한다.”
하였다. 명하여 황수신ㆍ이극감 및 병조 판서 김사우(金師禹)를 목장 제조(牧場提調)로 삼았다. 어찰(御札)로 여러 도의 관찰사(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나라의 굳세고 약함이 말[馬]에 있다. 그런 까닭으로 국군(國君)의 부(富)를 물으면 말을 헤아려서 대답하였다. 예전 원(元)나라 세조(世祖)가 강남(江南)을 목장(牧場)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니, 나도 강원도(江原道)와 황해도(黃海道)의 사람이 없는 땅에 사람이 사는 것을 철거하고 아울러 합해서 한 큰 목장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을 말이 사는 곳으로 바꿀 수는 없다. 지금 또 여러 고을로 하여금 각각 한 산에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한 곳을 점령하여 10필 내지 천 필을 기르게 하면, 어찌 일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근심할 것인가? 경은 속히 아무 고을 아무 산을 살펴서 9월 그믐날을 한정하고 아뢰라.”
하였다.
【원전】 7 집 476 면
【분류】 교통-육운(陸運) / 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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