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京都) 이서에는 송도(松都) 뒤의 서강(西江)이 있고,

2023. 5. 17. 15:21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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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설 제2권 / 천지문(天地門)

서도관액(西道關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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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參判) 이민환(李民寏)은 순무어사(巡撫御史)가 되어 서관(西關)을 두루 돌아다녔고, 또한 책중(柵中)에 갇히기도 하여, 변방의 정세를 잘 알았다. 그가 관방(關防)에 대해 논한 것을 보면, “창성(昌城)으로부터 시경(時梗)을 지나 운산(雲山)에 다다르고, 삭주(朔州)로부터 대삭주(大朔州)를 지나 구성(龜成)에 다다르며, 의주(義州)로부터 용천(龍川)을 지나 철산(鐵山)에 다다르는 이 세 길은 가장 중요한 곳이다. 전조(前朝)에도 글안(契丹)ㆍ몽고(蒙古)ㆍ홍건적[紅巾]이 다 이 구성ㆍ삭주ㆍ의주ㆍ철산의 길을 따라 쳐들어오지 않았던가? 더욱이 구성은 세 길의 중간에 있어, 형세가 매우 좋으므로 전조에도 박서(朴犀)가 지키던 땅이다. 시경과 용천 사이에도 또한 마땅히 지형과 지세[形勢]를 가늠하여 골라 수축하는 것이 옳겠다. 자모성(慈母城)은 비록 천험(天險)의 곳이라 하나 요충(要衝)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 설은 이와 같으나 내 몸소 다녀보지 못해서 어떠한지 자세히 모르겠다.

그 밖의 강계(江界)ㆍ이산(理山) 등의 길도 우리나라를 정토(征討)할 때 그 길로 쳐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으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정묘년ㆍ병자년 난리[赤兎赤鼠之役]가 다 의주의 길을 따라왔으니, 이것은 반드시 그 형세가 그러함이 있을 것이다.

대개 백두산의 큰 줄기가 바다를 끼고 남쪽으로 달리는 사이, 철령(鐵嶺)은 북관(北關)의 좁고 험한 곳이 되었고 조령(鳥嶺)은 동남쪽의 높고 험한 곳이 되었는데, 철령 이북으로부터는 산세가 다 서쪽으로 달려 그 맥락을 찾으려면 반드시 물을 의거하여야만 그 줄기를 알 수가 있다.

경도(京都) 이서에는 송도(松都) 뒤의 서강(西江)이 있고, 또 그 서쪽에 저탄(豬灘)이 있으며, 또한 그 서쪽에 대동강이 있고, 또한 그 서쪽에 청천강(淸川江)이 있으며, 또한 그 서쪽에 압록강이 있는데 이것은 대강 따진 것이다.

두 줄기 물 사이에는 반드시 한 줄기의 산이 있는데, 이른바, 청석령(靑石嶺)이라는 한 줄기는 서강과 저탄 사이에 있어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가 되어 있고, 정방성(正方城)의 한 줄기는 저탄과 대동강 사이에 있어 황해도와 평안도의 경계가 되고 있다. 이 두 줄기는 실로 험조해서 지킬 만한 지점이다. 대동강과 청천강 사이에는 산맥이 낮고 평평하나 평안도 안의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는 산세가 험준해서 곳곳이 지킬 만하니, 이른바, 청북제군(淸北諸郡)이 이곳이다.

강계는 북쪽으로 폐사군(廢四郡)과 접해 있고 북도(北道)와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이로부터 압록강 변을 따라 위원(渭源)ㆍ이산ㆍ벽동(碧潼)ㆍ창성(昌城)ㆍ삭주로부터 의주에 다다르기까지는 모두 왼쪽의 강(江)과 오른쪽의 영(嶺)이 내지(內地)를 보호하고 있으니, 대개 사람이 없음을 걱정할 일이요, 관액(關阨)이 없음을 걱정할 것은 아니다.

[-D001] 서도관액(西道關阨) : 

서도 관문의 험준함. 서도란 요즘의 황해도와 평안 남북도 지방의 총칭. 서관(西關)ㆍ서로(西路)ㆍ서토(西土)라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類選》 卷1下 天地篇下 地理門.

[-D002] 정묘년ㆍ병자년 난리[赤兎赤鼠之役] : 

오행설(五行說)에 의하여 적(赤)은 병(丙)과 정(丁)이 되고, 토(兎)는 묘(卯), 서(鼠)는 자(子)를 가리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