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山에서 釜山까지면 2천리 처노코 이에 哩數로 환산하고 그 외 私鐵의 幾何哩數를 대략 꾸미어 대답하여도 조홀 것이다.

2022. 12. 14. 17:11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이동휘는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한인사회당 확대대회를 개최해, 여운형(呂運亨) 박헌영(朴憲永), 그리고 이르쿠츠크공산당파인 김만겸 등을 참여시켜 한인사회당을 고려공산당으로 개칭했다.

이동휘 1921년 6~7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3차 코민테른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를 떠났다. 그러나 백위군 때문에 길이 막혀 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박진순과 홍도, 통역관 김 아파나시를 대동하고 그해 11월 28일 저녁 크렘린에서 레닌과 1시간 동안 회담했다. 극동에서의 코민테른의 활동 상황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출처] 💥 현대사 연구 - 레닌이 임시정부에 준 자금의 행방 2/2

 

 함경-[咸鏡線]

함경남도 원산에서 함경북도 상삼봉에 이르는 동북 지방 간선 철도. 1928에 개통되었다. 길이는 666.9km

 

 

삼천리 제3권 제11호   >   西伯利亞의 回想, 雜誌 「이러타」 所論에 對하야

잡지명 삼천리 제3권 제11호  
발행일 1931년 11월 01일  
기사제목 西伯利亞의 回想, 雜誌 「이러타」 所論에 對하야  
필자 滄海居士  
기사형태 문예기타  

西伯利亞의 回想, 雜誌 「이러타」 所論에 對하야
滄海居士

「개장국」은 이곳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업시 모다 조와한다. 원래 여기는 러시아의 「숩포국」이 잇스나 조선안과 가치 대구탕이니 국밥이니 하는 肉汁국밥이 업다. 그런 까닭에 西伯利亞에 사는 조선사람들은 여름이 되면 누구나업시 개장국을 조와한다.

나는 1925년 6월, 몃 투풀(留)의 돈을 주고 로서아 사람 집에서 개 한 마리를 사왓다. 술도 사오고 약념도 잘 하야 맛나게 개장국을 맨드러 노은 후 李東輝(략-원문)과 몃 사람의 동지를 請待한 일이 잇다.

그때에 해삼 위에 잇는 동지들 사이에는 조선운동에 대하야 민족운동이냐 사회운동이냐 하는 문제가 새삼스럽게 떠들고 잇섯다. 그때에 이러한 의논을 지어준 동기는 잘 알 수 업스나 그때 北滿에 잇는 사이비의 사회운동자와 또 北京을 중심한 몃몃 동지의 운동방침에 대하야 沿海洲의 엇던 긔관의 책임자 R씨는 열렬히 사회운동부터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든 때 임으로 다소 취흥이 도도한 그 좌석에(략-원문) 李는 모스꾸바에서 레-닌과 회견하든 장면을 회상되는 듯 유명한 카이젤 수염을 쓰다듬어 가면서 이야기가 나왓다.

「그때 말이요. 모스꾸바 때 말이요. 레-닌(하략-원문)」

(략-원문)은 이러케 그때의 답변내용을 말하여 지금까지도 자기 소견이 올햇다고 주장하엿다.

이밧게도 그 내용에 대하야 여러 가지 이약이가 잇섯다. 그런데 「이러타」 라는 잡지 제2호에 실닌 「레-닌과 우리 先驅 李東輝군」이란 이약이는 넘우도 허망하다.

레-닌은 이 세상의 가진 사정과 가진 고생을 다한 인생의 경험가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인이다. 러시아인은 외교에 능하다. 사람을 대할 때마다 그 能堪한 수단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따르지 못하는 特才가 잇다.

그러한 그가 냉정하고 이론만 따질 줄 아는 통계학자 모양으로 李를 보고.

「동무여 조선 현재 철도 마일 수가 얼마 임니까? 또 해안선이 몃 마일이나 됨니까.―이것도 모른다면 조선 최근 어느 해이든지 그 일 년간 산물의 생산고가 얼마나 됨니까?」

이러한 문답을 계속할 일이 만무하다.

만일 이러한 문답이 잇다 가정하고 생각하여 보더라도 한 번 무러 대답 못하고 또 두<16> 번 무러 대답 못한 사람에게 대하야 再3次 무럿다는 말과 또

「동무여 그러케 조선 실정을 모르고 엇더케 조선일을 하시렴니까?」

실례가 되도록 이러케 「레-닌」이가 책망과 가튼 문답을 하엿슬 일이 만무하다.

그때 (중략-원문) 事端의 진상도 모르고 그저 남의 결점만 드러내는 것은 결코 사회에 대한 교훈도 아니며 그 태도가 아닐 것이다.

더욱 (략-원문)은 군인이다. 그가 조선 잇슬 때 군사학이 아모리 유치하엿더라도 군인이 가지는 군사학이 잇고 또 병법이 잇서서 임기응변의 術이 잇다. 그뿐 아니라 (략-원문)은 우리 운동에서 늙은 사람이다. 통계학상으로 조선사정을 모른다 하여도 (략-원문)은 신문을 보고 잡지를 보고 또 조선에서 각금 건너가는 청년들의 말을 만히 듯고 잇다.

반도가 삼천리인 것은 그는 잘 안다. 그때에는 咸鏡線 철도가 미완성이엇스나 元山에서 釜山까지면 2천리 처노코 이에 哩數로 환산하고 그 외 私鐵의 幾何哩數를 대략 꾸미어 대답하여도 조홀 것이다. 해안선도 물론 그 비례로 한다면 가히 짐작할 만한 답이 나올 것이다. 혹 그가 私鐵에 대한 사정을 모른다 하여도 집필자 止揚군이 생각하는 것보다 (략-원문)은 더 잘 알고 잇슬는지 모른다.

天安에서 타면 忠淸道를 어데까지 가고 大邱에서 나리면 慶州 어느곳까지 간다는 말을 (략-원문)은 우리보다 그때 더 잘 알고 잇섯다.

무책임을 極한 「이러타」 제 2호의 집필인 止揚군. 군아 우리는 존경 할 줄을 알자. 그러고 우리의 힘으로 사람을 만드러 노차. 이것이 인물업는 이 땅에서 군과 우리의 일이라 할 것이다.

(중략-원문) 물론 (략-원문)은 조직적 인물이 아니다. 그리고 경청할 만한 이론가도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에게서나 보지 못할 誠이 잇다. (중략-원문) 그 벽력 가튼 음성 그 膽望하기 어려운 眼光 그는 열의 人이요 誠의 人이다.(략-원문)

이 회견 때에 (략-원문)은 「아파나시 金」이라는 조선 청년을 통역으로 더리고 갓다. 「아파나시 金」은 방금 서백리아 하바로스코 市에 잇는 엇던 긔관의 비서다. 그는 명석한 두뇌에 主義에 대한 이론이 정연하다. 조선사람 뿐 아니고 러시아 사람들까지 그의 의견을 만히 쫏는다. 내가 러시아에 잇슬 때 이 청년의 연설도 만히 드럿고 또한 개인 친우관계도 잇섯다.

그는 몹시 이론을 조와한다. 그러고 세상 이약기도 곳잘 한다. (략-원문)과의 회견 내용은 이 청년이 알 터이나 그는 신의를 직혀 이에 대한 말은 一言半句도 吐說함을 일즉 듯지 못하엿다.(此間 5頁 략-원문)

다만 뒷날 해삼 위에 잇는 「아왕갈드」 주필 李白初씨가 (략-원문)을 맛나 그 회견의 印象記를 무럿다. 그 기사가 신문에 낫섯다. 거기에는 이러한 말이 잇섯다.

「레-닌 이마는 커-다란 박통을 업퍼 노흔 것과 가치 하고도 단단하며 또 그 눈초리는 날카로운 광채가 잇서 사람의 肺臟을 뚤코 보는 것 갓드라고 하엿고.

그의 사무실은 간단한 테-불 一脚에 의자가 몃 개 노이고 책자가 얼마간 구석 한모통이에 싸이엿슬 뿐이라고 하엿다. 그러고 그 회견담에는 一節一口의 아모란 말도 업섯다.(이하 중략-원문)

止揚生의 무책임한 말에는 저간의 사정을 아는 우리로는 분개하기를 마지 안는다.(사진은 이동휘)<17>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