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4. 07:28ㆍ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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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3년 정사(1737) 6월 23일(경진) 맑거나 흐리거나 함
13-06-23[20] 희정당에서 소대를 행하는 자리에 참찬관 송수형 등이 입시하여 《속자치통감강목》을 진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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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巳時)에 상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갔다. 소대(召對)를 행하러 신하들이 입시한 자리이다. 참찬관 송수형(宋秀衡), 검토관 윤광의(尹光毅), 가주서 이영복(李永福), 편수관 권신(權賮), 기사관 이종적(李宗迪)이 입시하였다.
신하들이 차례로 나아와 엎드렸다. 윤광의가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 15책을 읽었는데, ‘십육년춘정월행적전례(十六年春正月行籍田禮)’부터 ‘인유위병부시랑(引裕爲兵部侍郞)’까지였다. 상이 송수형에게 명하여 읽게 하였는데, ‘추칠월관제군세(秋七月寬諸郡稅)’부터 ‘승전불배(升殿不拜)’까지였다. 상이 이영복에게 명하여 읽게 하였는데, ‘이십일년춘정월(二十一年春正月)’부터 ‘금시치교초고(金始置交鈔庫)’까지였다. 상이 권신에게 명하여 읽게 하였는데, ‘금이동소(金以銅少)’부터 ‘심해참지정사(沈該參知政事)’까지였다. 윤광의가 일어났다가 엎드려 아뢰기를,
“이 아래는 모두 진회(秦檜)가 정권(政權)을 장악하여 나라를 그르친 시기로, 볼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렇게 금(金)나라 완안량(完顔亮)이 황음(荒淫)에 빠진 때를 만난 것은 실로 중원(中原)이 회복할 기회였는데, 고종(高宗)은 바야흐로 강남(江南)에 푹 빠져 있었다. 고종이 금나라 완안량에 비해 비록 조금 나은 듯하지만 그가 강남에 푹 빠져 있었으니, 또한 금나라 완안량이 황음에 빠진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윤광의가 아뢰기를,
“악 무목(岳武穆)의 전(傳)은 본 적이 없었는데 근래 홍문관에 있는 《송사(宋史)》를 열람하다가 악무목의 본전(本傳)을 찾았으니, 충정(忠貞)과 의열(義烈)이 천년토록 민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회에게 미움을 받아 끝내 참화를 입었으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분노와 한탄으로 마음이 답답하게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무목이 살해된 이후 송(宋)나라에도 훌륭한 장수가 없게 되어 금나라를 도모할 기회가 있어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심정을 누를 수 있겠는가.”
하였다. 윤광의가 아뢰기를,
“장준(張浚), 조정(趙鼎), 악비(岳飛), 한세충(韓世忠) 같은 자들을 명장(名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의지하여 오래 갔으면 복수와 설욕을 기약할 수 있었는데 역적 진회에게서 잘못되어 마침내 이에 이르렀으니, 통탄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진회는 완전히 금나라 사람이다. 그의 계략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로 몰래 금나라를 이롭게 하려 하였다.”
하자, 윤광의가 아뢰기를,
“진회는 틀림없이 금나라의 첩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금(金)나라 군주인 완안량은 임금을 시해한 역적인데 송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그의 즉위를 축하하였으니, 더욱 해괴하고 통탄스럽다. 그러나 자신의 아비와 형의 원수를 잊은 채 복수와 설욕의 의리를 알지 못한 자이니, 이웃 나라의 시역(弑逆)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것 또한 괴이해 할 것이 못 된다.”
하였다. 윤광의가 아뢰기를,
“악무목의 충정과 의열은 한(漢)나라의 수정후(壽亭侯 관우(關羽)의 봉호(封號))와 같습니다. 그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이 천년이 지나도록 비추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기상을 생각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달랠 수 없는 한을 품게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진회를 찔러 죽이려다 죽이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고종보다 나은 것인가? 이자는 협객과 같은 부류인가?”
하자, 윤광의가 아뢰기를,
“이 사람이 분통함을 못 이겨 이런 일을 하였는데, 고종의 세상에서는 살해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진회가 대단히 간악하기는 하지만 이미 재상의 지위에 있었으니, 일개 졸개가 칼로 찌르고서 또한 어찌 죽음을 면하겠는가. 그 당시 진회가 그 사람의 손에 죽었다면 오히려 시원했겠는가.”
하니, 윤광의가 아뢰기를,
“고종이 어리석어 진회가 간악한 줄을 몰랐습니다. 그 죄를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주벌하는 것은, 비록 일개 졸개의 손에 죽었더라도 어찌 시원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당시에 만약 과연 찔러 죽였다면 집 안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았겠는가.”
하였다. 윤광의가 아뢰기를,
“조정(趙鼎)이 굶어 죽은 것은 지나친 듯합니다. 군신간에 마음을 돌리기를 바라는 것이 참으로 마땅한데, 어찌 죽음을 가볍게 여겨 자신이 타고난 수명을 편안히 누리지 못했단 말입니까. 조정이 쇠락해 가던 나라를 일으킨 어진 재상이지만, 이런 일들은 어찌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송수형이 아뢰기를,
“옛말에 굴원(屈原)의 허물은 충성이 지나친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충분(忠憤)이 격하게 일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성현(聖賢)의 도로 본다면 허물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윤광의가 아뢰기를,
“이 당시의 명장으로 한세충보다 나은 자가 없었으니, 무목에 버금갈 만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세충은 실로 용감하고 충의로운 사람이다. 그가 호숫가에서 나귀를 탄 데에서 그의 훌륭한 기상을 상상할 수 있다.”
하였다. 윤광의가 아뢰기를,
“어제 주강(晝講)에서 ‘비(腓 장딴지)’ 자를 상고해 보라는 하교가 있어 나가서 상고해 보았더니 ‘비는 경노(脛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정강이 뒤쪽에 살이 달린 곳인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오늘 국청의 좌기를 연다고 하는가?”
하니, 송수형이 아뢰기를,
“대신의 병이 아직 조금도 회복되지 않아 오늘 열기 어려울 듯하다고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병에 걸린 봉조하 이광좌(李光佐)에게도 어의를 보내려 하였는데 보내지 못하였다. 봉조하 이광좌가 지내고 있는 곳과 좌상의 집에 어의를 보내 병을 살피게 하라.”
하였다. - 탑교를 내었다. -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 나갔다.
[주-D001] 악 무목(岳武穆) :
송나라 명장인 악비를 말하며, 무목은 시호이다. 그가 태어날 때 큰 새가 울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宋史 岳飛列傳》
[주-D002] 주강(晝講) :
원문은 ‘朝講’이다. 《승정원일기》 이달 22일 주강 기사에 근거하여 ‘朝’를 ‘晝’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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