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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7년 갑오(1594) 8월 12일(정사)
27-08-12[01] 중국에 대신을 파견하여 시세가 급박함을 알리게 하고 유 총병의 철병 문제를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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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에 상이 대신과 비변사 유사 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청(奏請)은 막중한 일인데 다만 벼슬이 낮은 관원만 보내는 것은 온당치 않으니 대신을 가함(假銜)하여 파송하는 것이 마땅하다. 옛날 조(趙)나라가 위급할 때 평원군(平原君)이 직접 가서 구원을 청했으니 지금도 대신을 보냄이 어떠한가?”
하니, 유성룡이 【의정부 영의정.】 아뢰기를,
“성교가 참으로 마땅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변란이 생긴 후로 여러 번 진청(陳請)이 있었는데, 대신이 가지 않았으니 유달리 미안하게 여겨진다. 이제 어찌 나이 젊은 사신을 범연하게 보낼 수 있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대신이 가면 중국에서도 반드시 사세가 급박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고, 심수경이 【영중추부사.】 아뢰기를,
“대신이 만약 가게 되면 빨리 가기는 어려울 것 같으나, 사세가 이미 급박하니 대신을 보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차라리 며칠이 지연디더라도 꼭 대신을 보내라.”
하고, 또 이르기를,
“손 시랑(孫侍郞)에게도 마땅히 자문(咨文)을 해야 한다.”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이제 장 파총(張把總)의 품첩(稟帖)을 보니, 제주(濟州)에서 절강(浙江)까지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했습니다. 남송(南宋) 때 양유성(楊惟省)이 예성강(禮成江)에서 배를 띄워 6일 만에 제주도에 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제주도에서 절강이 4일 길이라고 합니다. 장 파총이 산동 장관(山東將官)에게 이첩(移帖)하기를 ‘지금 수로(水路)의 형세를 보니 만약 크고 작은 병선 5척만 얻으면 왜적의 양도(糧道)를 끊을 수 있고, 대마도도 격파할 수 있다.’ 하였으니, 만약 수로로 직접 서생포(西生浦)같은 곳을 치면 적이 웅거할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매우 좋은 말이다. 손 시랑에게도 이러한 뜻을 알려야 한다.”
하자, 성룡이 아뢰기를,
“주문(奏文) 중에도 이러한 뜻을 진달하고 아울러 손 시랑에게도 알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백제(百濟) 때에 유인궤(劉仁軌)도 주사(舟師)로 와서 공격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정방(蘇定方)도 수로로 왔었다. 만약 수군이 나온다면 군량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군량도 배로 운반할 수 있습니다.”
하고, 김명원(金命元)이 아뢰기를,
“수로의 험난 여부는 미리 알 수가 없으므로 수로로 양식을 운반하게 되면 반드시 많이 가지고 올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원 세조(元世祖) 때 범문호(范文虎)가 일본을 치는데 우리 나라에게 식량을 요구했었으니 지금도 만약 수로로 오면 반드시 우리에게 식량을 요구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가 임진년 이후로 움추리기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정운(鄭澐)이 죽은 후로 수군의 사기가 꺾였으므로 한산도나 대아량(大牙梁) 등의 지역을 지나가는 교활한 적병에게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감히 가벼이 나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도감(都監)에서 훈련하는 일을 특별히 단속해서 기필코 성취하게 하라. 입직(入直)하는 포수(砲手)를 내가 직접 사열하겠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10년을 가르치고 10년 만에 성취한다.’ 하였으니,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는 왜적 치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군사의 단련은 쇠를 단련함과 같아서 정하고 또 정하게 하여 백 번을 단련한 후에야 사지(死地)에서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사생(死生)이 결정되는 자리에서 어찌 진력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총병이 오래 머물 것 같던가?”
하니, 명원이 아뢰기를,
“군사 기밀은 비밀로 하지 않을 수 없어서인지 오래 머물 것인가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총병이 진퇴를 어찌 자기 마음대로 하겠는가. 조숭선(趙崇善)의 말이 비록 정해진 의논은 아니더라도, 중국 장수에게 이미 이런 의논이 있었으니 만약 중국 조정에서 들어오라는 명령만 없으면 압록강 동쪽에 있을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만약 철수를 허락했다면 조숭선이 어찌 군대의 증파를 말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서울로 후퇴한 것을 사람들이 의심하지만 장수가 밖에서는 임금의 명령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저들은 왜적이 그들의 돌아갈 길을 끊을까 두려워서 물러온 것일 터이니 어찌 압록강을 건널 수 있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지난번에 총병을 보니 옛날 훌륭한 장수와는 같지 않았습니다. 1년 넘게 둔치고 지키면서 직접 훈련을 시켰으면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할텐테 한갓 3도에 소요만 끼쳤으니 이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의 장수에게 어찌 남을 위해 그와 같이 도모해 주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국의 장수 중에는 이 사람이 가장 훌륭할 것이다.”
하니, 덕열(德悅)이 아뢰기를,
“행군할 때는 호령이 매우 분명합니다. 행군시 넘쳐흐르는 냇물을 만나면 직접 옷을 벗고 들어가서 얕고 깊음을 안 뒤에 군사들을 건넨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외모는 중간 사람에 지나지 않으나 용력은 뛰어나다고 한다.”
하니, 명원이 아뢰기를,
“화살을 갑옷에 던지면 갑옷 미늘이 뚫려 살깃까지 다 들어간다 하니 그 용력이 이와 같습니다.”
하였다. 대신 이하가 모두 물러가고, 김상준(金尙寯)이 나아와 아뢰기를,
“지난날 해주에 있을 적에, 신포서(申包胥)의 진정(秦庭)의 통곡을 본받고자 청했는데, 원천군(原川君)이 고급(告急)하러 갈 때 소신이 마침 근친(覲親)하기 위해 밖에 있어서 미처 수행을 청하지 못하였으니, 일이 속인 것처럼 되어 항상 송구하였습니다. 이번 대신의 행차에 말 채찍이라도 잡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뜻이 매우 아름다우니 외정(外庭)에 물어서 하겠다. 외정의 의논이 보내고자 하면 마땅히 서장관으로 차임해서 보낼 것이다. 승지가 의논해서 하라.”
하였다.
【원전】 22 집 325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군사-전쟁(戰爭) / 외교-명(明) /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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