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白 그를 우리 조상의 한 사람으도 알고 있는 이도 없지 않으리라.

2023. 3. 24. 21:28고대사

삼천리 제12권 제6호   >   盛唐 時代의 三文豪

잡지명 삼천리 제12권 제6호  
발행일 1940년 06월 01일  
기사제목 盛唐 時代의 三文豪  
기사형태 문예기타  

 

李太白의 生涯와 文章

李秉岐

문장으로는 李白을 의례히 일컫었다. 우리가 들잡이 할 때에도 「문장은 李太白」이라 하고 그와 같은 문장이 되기를 빌었다. 과연 그 이름은 모르는 이가 없으리라. 그를 우리 조상의 한 사람으도 알고 있는 이도 없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는 中國 사람이오 盛唐의 최대 시인이었다.<105>

李白은 字는 太白이오 號는 靑蓮. 唐 高祖의 7世祖이든 興聖 황제는 본시 隴西人으도 그의 9世祖가 되고 그 뒤 先代에서 죄를 짓고 西域으도 옮겼다가 李白의 아버지가 西域서 도망하여 蜀의 昌明縣 靑蓮鄕에 와 살다가 李白을 낳았다. 때는 唐의 武則天 長安 원년(701).

그 어머니가 꿈에 長庚星(太白星)을 보고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그렇게 지었으며 昌明縣南 匡山에서 공부를 하여 10세에 詩書를 통하였고 커서는 岷山에 숨어 州擧에도 稱道가 있었으나 응하지 않고 益州長史 蘇頲이가 李白을 보고 「자네는 천재 영특하니 좀 더 공부하면 司馬相如에게 비하겠다」하였으나 縱橫術를 좋아하며 擊劍이나 하고 任俠하여 재물을 가벼히, 施惠를 중히 하였으며 그 아버지가 任城尉가 되매 山東으도 따라와 孔巢父, 韓準, 裵政, 張叔明, 陶沔 등으도 더부러 徂徠山에 숨어 詩酒도 일 삼고 竹溪六逸이라 하였다.

그러나 나이 40이 넘어 南으도 會稽에 가서 吳筠과 친한 바 筠이 被召하여 가매 李白도 長安을 가서 賀知章을 보았다. 知章이 그의 지은 글을 보고 謫仙人이라 하고 玄宗에게 말하여 玄宗이 金鑾殿에서 불러 보고 當世事를 의논도 하며 頌 1편도 지어 들이매 玄宗이 賜食을 하며 친히 調羹도 하고 칙령으도 翰林을 시켰다.

어느 봄, 興慶池 동편 沈香亭에는 각색 모란꽃이 만발하였다. 玄宗은 楊貴妃와 함께 그 정자에 앉아 梨園의 일등 樂手와 명창 李龜年과를 시켜 연주케 할 때 그 악장을 李白에게 지이려고 불러 들였다. 李白은 마침 酒徒와 함께 酒肄에 취하여 누었다가 들어와 붓을 잡어 淸平調詞 등 10여장을 경각에 일우었다. 玄宗은 더욱 사랑하고 자조 宴飮을 베푸렀다. 한번은 취하매 高力士를 시켜 신을 벗기게 하였다. 力士는 그걸 含嫌하고 淸平調詞의 어느 句를 따서 貴妃에게 먹어댓다. 그 뒤 玄宗은 李白을 더 쓰려 하였으나 貴妃가 방해하였다. 李白도 용납이 못 될 줄을 알고 더욱 驁放하였고 賀知 李適之, 汝陽王*, 崔宗之, 蘇晋, 張旭, 焦遂 등으도 酒 中 八仙이 되었고 還山하기를 懇求하매 玄宗이 황금을 돌아 보냈다.

李白은 더욱 道家나 좋아하고 사방 山川으도 돌아다니며 놀다 崔宗之와 함께 배를 타고 釆石江서 金陵으도 갈 때에는 宮錦袍를 입고 앉아 旁若無人하기도 하였다.

56세 되자 安祿山이가 叛하매 盧山으도 피난을 가서 永王璘에게 핍박되어 그 僚佐가 되었다가 璘이 謀亂함을 보고 도망하여 彭澤으도 돌아왔다. 그러나 璘이 패한 뒤, 사형을 당할 터인데 郭子儀가 자기 베슬을 내놓고 속죄하겠다 하여 (郭子儀가 일즉 범법하였을 때 李白이가<106> 救免한 일이 있다) 夜郞이란 곳으도 귀양이 되었다가 드디어 放還되었다. 그 뒤부터는 더욱 산수나 찾고 詩酒도 나날을 보내다가 62세 되던 해 宣城에서 취하여 죽으매 唐 肅宗 寶應 원년(762) 일생 좋아하던 謝家 靑山 東麓에 葬하였다. 그리고 50여 년을 지나 宣歙 觀察使 范傳正이가 그 무덤을 찾아 祭하고 그 후예를 찾으니 다만 손녀돌뿐인데 常民의 처가 되었다. 다시 士族에게 개가를 시켜 주겠다 하여도 그는 마다하고 선조의 뜻이 청산에 있으니 東麓은 본의가 아니라 하고 울며 원하므도 改葬을 하고 두 비석을 세웠다.

盛唐은 中國 문학의 최고봉 최절정이었든 시대인 바, 李白은 杜甫와 아울러 가장 그 대표이었다. 杜甫 보다는 나이 10세 위가 되며 그 사이도 막역하였다. 다시없는 知己이었고. 그러나 그 개성과 작품은 전연 다르다. 李白은 호방하고 낙천적이고 杜甫는 침울하고 인도적이다. 杜甫는 辛苦吟咏하였고 李白은 一氣呵成하였으며 사실적이라 하면 李白은 낭만적이겠다.

李白은 淹博한 식견과 다방면의 조예가 있으며 그 作風은 비장, 飄逸, 穎放, 침통, 香艶, 閑適 등의 많은 경지를 가지고 넘치는 흥취와 영감으도 때도 붓을 들으면 사람을 놀리는 佳妙한 詩篇을

이번 三千里社의 부탁을 받아 李白 시를 83편을 골라 번역해 보았다. 워낙 남의 문학 작품은 내 말도 옮기기란 쉽지 않은데 漢詩처럼, 그 중에도 李白 시처럼 어려운 것을 촉박한 시일을 두고 하자니 흐뭇하게는 될 수 없다. 워낙 그 성향, 색채 같은 건 도저히 옮길 수 없으매 겨우 그 의사나 잃지 않으려 한 것이다. 의사도 어느 건 막연하여 꼬집어 말하기 어려우나 그래도 하노라 하였으며 이걸 보시는 분도 짐작하실 줄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