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7월 11일 제물포에서 출항 7월 16일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습니다.

믿음을갖자 2023. 1. 12. 22:04

해외사료총서 16권 러시아국립해군성문서Ⅱ(1894~1899)   >   34. РГАВМФ, ф.417, оп.1, д.1340, лл.563/575∼578

수신:해군참모본부 소속 해군학술부

1896년 12월 10일

№1613

태평양 분함대 사령관의 탐사보고서

1896년 7월 21일

№1359

대공 해군대장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Алексе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각하

조선에 도착.

1896년 6월 29일 제물포에 선박 ‘만주르’가 도착했고, 7월 3일 제물포에 ‘오트바즈니’가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두 선박은 각각 무장을 한 30명의 상륙 부대를 파견했습니다. 수비를 위한 상륙 부대는 대리공사 베베르의 동의하에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가 파견한 상륙 부대로 교체되었습니다.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는 7월 11일 상륙 부대의 교체를 완료하고 제물포에서 출항했습니다. 제물포를 떠난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는 좋은 날씨 덕분에 순항을 할 수 있었고, 7월 16일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습니다.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는 제물포에서 대략 70일 정도 정박했습니다. 제물포에서 정박하는 동안에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는 포함 사격 등 적절한 훈련을 수행했으며, 서울의 강이 지나가는 제물포부터 마포까지 측량을 실행했습니다. 제물포 및 조선의 다른 항구에 정박했던 함장들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최근 2달 동안 조선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단지 부산 인근의 남부 지방인 경주에서 일본인 어부가 살해되었습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설치된 전신선이 상당 기간 불통되었지만 최근 일본수비대의 보호 하에 전신선이 복구되었습니다. 청일전쟁 이후에 조선에 진주한 일본 수비대는 지난 5월에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군대로 교체되었습니다. 또한 부산과 제물포 구간의 일본 교통로는 여전히 유효하며, 일본의 모든 화물이 원활하게 수송되고 있습니다.

조선의 국왕이 언제 자신의 궁궐로 환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에 주둔한 러시아 상륙 부대가 계속 러시아공사관을 수비해야 하며 적어도 이번 겨울까지는 계속 주둔할 예정입니다. 상륙 부대의 주둔과 관련하여 저는 상륙 부대를 위한 편리한 장소를 건설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작년 겨울 상륙 부대는 최대 135명까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번 보고서에서도 상륙 부대의 거주지 개선을 위해서 서울에 적절한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저는 겨울을 대비한 임시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만약 상륙 부대가 150명을 초과한다면, 러시아공사관 주변의 조선 가옥을 이용하여 이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거주지를 마련해야할 것입니다.

‘아드미랄 코르닐로프’호의 대위 흐멜레프는 서울에 있는 러시아공사관 상륙 부대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대위 흐멜레프는 조선 시위대의 장교와 사병을 교육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수비대 규정을 조선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조선 국왕의 명령에 따라 시위대에서는 러시아 군사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선 국왕은 대리공사 베베르를 통해서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의 사령관에서 다음과 같이 요청하였습니다. 즉 조선에 있는 유일한 병기고를 기술적으로 점검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량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이 병기고는 이전에 일본인에게서 지원받았습니다.

대리공사 베베르는 6월 30일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의 사령관에게 6개월 동안 병기고를 담당하기 위해서 기계 기술자인 레미노프(Реминов)를 조선정부에 고용해 줄 것을 청원했습니다. 저는 지난 7월 5일 해양대신 사무대리인 각하에게 병기고 고용 문제에 관한 전보를 타전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명령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저는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출항하기 이전에 ‘오트바즈니’로 기계 기술자를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 주재 러시아공사의 지원을 받고 있는 조선 국왕을 만족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박 ‘그레먀쉬’호는 즈푸로부터 5월 7일 출발하여 현재 발해만註 061(Печилийский Залив)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레먀쉬’호는 페테르부르크로부터 서울주재 러시아 대리공사에게 보내는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 조선에 정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조선에서 심각한 사건이 발생해서 또다시 전신선이 끊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레먀쉬’호는 5월 18일 뉴황(Нью-чванг)에 정박하여 2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6월 1일에는 뤼순항에 잠시 정박하였고, 3일에는 타멘방(Таменван)에 정박했습니다. ‘그레먀쉬’호의 함장 보고에 따르면, 첫 번째 항구에서는 중국인들이 ‘그레먀쉬’호의 선거(船渠)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수비대 책임자인 장군 순(Сун)이 소환되었기 때문에 현재 뤼순항에 주둔하고 있는 수비대원 수가 대략 15,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부대의 강화 문제는 발해만 태수에게 위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