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1883년 10월 조중응이 서북변계(西北邊界) 조사위원으로 임명되어 러시아, 만주, 외몽고 등지를 답사한 일을 가리킨다

믿음을갖자 2023. 1. 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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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10 / ()

《낭전자작사실》 서문〔琅田子爵事實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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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당(白堂) 현군(玄君)이  낭전중응 자작(趙琅田重應子爵)의 《전후사실(前後事實)》을 편찬하고 내게 서문을 구하였다. 나는 평소 낭전의 존옹(尊翁) 석관공(石觀公) 및 그의 숙부 위거() 충정공(忠定公)과 사이좋게 지냈기 때문에 낭전을 제법 잘 알고 있어, “낭전의 일생은 세 가지 큰 절목이 있으니, 하나는 웅장한 뜻, 하나는 기이한 공훈, 하나는 청렴결백이다. 나머지는 논할 틈이 없다.”라고 단정한 적이 있다. 낭전은 혁혁한 집안에서 태어나, 젊어서 집안의 가르침을 받았고 세상에 이름이 났으니, 시류에 따라 평탄히 나아갔다면 충분히 과거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약관(弱冠)의 나이부터 과거 공부를 하지 않고, 동시대의 지사(志士)인 고우(古愚) 김옥균(金玉均), 구당(榘堂) 유길준(兪吉濬), 일재(一齋) 어윤중(魚允中) 공들과 백성을 개화하고 나라를 일으킬 방법을 강구하였다. 고우는 동쪽 일본으로 건너가고, 구당은 서쪽 구주(九州)를 유람하고, 일재는 명을 받아 본국의 서북 2로를 경영하고 다스렸다. 그러나 낭전은 재산을 기울여 자본에 힘을 써서 관북(關北) 통해 러시아 영토 만주ㆍ몽골의 여러 지역에 깊숙이 들어갔다. 그곳의 정략과 풍속을 살필 때 고우가 실패하고 일본으로 피신했다는 얘기를 듣고 탄식하며 계획한 일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사후 처리를 위해 급히 돌아왔으나 시국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다. 그래서 탄식하여 말했다.

동양의 근심은 서북쪽에 달려 있다. 그리고 발전시키려는 원대한 계책 역시 여기에 달려 있다.”

마침내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고 《구시략(救時略)》을 붙여 책 한 권을 만들고 이것으로 궁궐에 건의해 경고하였다. 당시 정권은 외척에게 있는 데다 소인배가 가득 차 있어 기강이 날로 문란해지고 정책은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식견이 있는 이들은 모두 그의 명철한 견해와 지극한 논리에 감복하였다. 이것이 그의 뜻이 웅장하다고 한 까닭이다.

마침 소인 한 명이 임금의 명을 맡아 은밀하게 어느 나라에 보호를 요청하여 닥칠 재앙을 예측할 수 없었다. 낭전은 크게 놀라, 이는 국가 흥망의 위기이니 합당한 지위에 있지 않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숙부를 힘껏 도와 위험을 피하지 않고 상소를 올려 음모를 드러내고 또 세상에 분명하게 설명하여, 그 일은 마침내 잠잠해졌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리어 미움을 받아 숙부는 관서(關西)로 유배 가고 조카는 호남(湖南)으로 유배를 갔다. 칠 년이 지나 낭전이 비로소 사면 받아 돌아왔으나, 나라의 명운이 여기에 힘입어 보전한 것이 수십 년이다. 이것이 그의 공훈의 기이하다고 한 까닭이다.

갑오년이 되자 도원(道園) 김홍집(金弘集)과 나, 일재, 구당 공이 내각에 들어가서 일체의 나쁜 정치를 개혁하였다. 낭전은 이때 섭국장(交涉局長) 임무를 띠고 종전 외교 가운데 잘못된 것을 고쳐서 외국과의 우호를 도탑게 했다. 아울러 내각의 요직에 참여하여 힘써서 권세 있는 간신을 물리쳤고 국사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도원은 화를 당했고 낭전 역시 나라를 떠났다. 앞서 도원에게 중요한 공사가 있어서 정부 요원으로서 수천 금을 들여 낭전에게 일을 처리하도록 부탁했다. 얼마 안 있어 난이 일어나 낭전이 일본으로 피하려 할 때 사저에서 탁지부 사계국장(司計局長) 유정수(柳正秀)를 은밀히 불러 그 돈을 돌려주며 말했다.

“도원이 이미 돌아가셨고 나도 동쪽으로 도망가니, 이 돈은 쓸 데가 없습니다. 이 일은 오직 우리 두 사람만이 알고 있습니다만 한 일이 없는데도 헛되이 쓰는 것이 저는 부끄럽습니다. 비록 이역에서 헐벗고 굶주릴 지라도 국고에 반드시 돌려주어야 겠습니다.”

유정수가 나중에 매번 다른 사람에게 감탄하며 말하곤 했다.

“이미 한꺼번에 나눠 받은 재화이니 써도 거리낄 것이 없는데 더욱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환난을 당한 때이겠는가? 이익을 보고도 의를 잊지 않는 것을 나는 낭전 한 사람에게서 보았다.”

이것이 평소 청렴결백한 그의 평소 지조이다.

나그네로 떠돌던 때에도 사람들은 모두 곤궁에 근심하고 의기소침해 있었으나 낭전은 홀로 법제, 정치, 농업 등의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훗날 뜻을 펴고 도를 행할 준비를 하였다. 나중에 귀국하자 공의(公議) 따라 추천되어 법부 대신이 되었고 나중에는 농상 대신(農商大臣)으로 이직되었다. 몇 년간 직무에 몸과 마음을 다하여 그의 정책을 펼치고자 했으나 결국은 쓰이지 못했다. 젊을 때부터 개연히 백성과 국가를 자기의 소임으로 여겼고 높은 지위에 올라서는 더욱 분발하여 평탄한지 험한지, 큰지 작은지 가리지 않고 힘이 미치는 한 모두 떠맡고 곧장 전진하였다. 경술년(1910, 융희4) 이후 관직을 그만두고 한가롭게 있었으나 여전히 우리 백성에 대한 마음을 잊을 수 없어, 민생에 이익이 되는 일을 요직에 있는 사람에게 많이 진술하였다. 그리고 또 계발의 방도와 개진(開進)할 일로 인민을 지도하고 사우(士友)를 깨우치는데, 정성스럽고 정성스러워 끝까지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전후로 성심을 쏟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었으나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자가 많다. 이것은 낭전이 실제로 한 일이지만 예전에 내가 말한 ‘나머지는 논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군이 편찬한 것에 잘 갖추어져 있어 나는 군더더기를 쓰지 않고 그 큰 것만을 드러내 이로써 서문을 구한 것에 응한다.

 [-D008] 관북(關北) …… 들어갔다 : 

1883년 10월 조중응이 서북변계(西北邊界) 조사위원으로 임명되어 러시아, 만주, 외몽고 등지를 답사한 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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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속집 1 / (보유(補遺)를 붙이다.

동아연초회사 사장 히로에 다쿠지로에게 드리다〔贈東亞煙草會社長廣江澤次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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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향초 맛이 좋고 단데 / 朝鮮香味珍甘
토질에 맞고 품종 좋으며 값도 싸구나 / 土宜種良價亦廉
근래 외국 상선으로 권련을 수입하니 / 邇來外舶輸卷烟
세상사람 새것을 좋아해 거금을 쓰는구나 / 世人好新耗鉅金
히로에는 상업계의 인사로서 / 廣江自是商界彥
크게 수완 발휘해 다투어 분발하네 / 大試手腕爭鬪奮
연초회사가 동양에서 떨치니 / 烟草會社擅東洋
백번 꺾여도 일편단심 굽히지 않으리 / 百折不回心一片

히로에(廣江)가 편찬한 책자의 제목이 ‘적심일편(赤心一片)’이다.

물자 넉넉하고 제작은 정밀하니 잘도 팔려나가 / 物豊製精易賣消
북으론 만주 몽고 서쪽으로 계주 요동에 이르네 / 北至滿蒙西薊遼
외국의 이름난 상품을 몰아냈으니 / 外國名產被驅逐
번쩍이는 금패로 상을 주어 기리네 / 金牌焜燿授賞褒
아비는 부지런히 자르고 아들은 붉게 칠하듯 / 若考勤㓸子肯雘
십년 노고하여 커다란 성과를 보았구나 / 十載勞苦見偉績
원래 뜻이 있으면 일을 끝내 이루나니 / 有志由來事竟成
비바람 치는 저녁 감탄하며 시를 짓노라 / 感歎題詩風雨夕

[-D001] 동아연초회사(東亞煙草會社) : 

담배 제조업체인 히로에 상회(廣江商會)가 1916년에 반관반민(半官半民)의 동아연초회사로 합병되었다.

[-D002] 히로에 다쿠지로(廣江澤次郞) : 

1885~? 어릴 때 가토(加藤)가의 양자가 된 후 다시 히로에(廣江)가로 재입양되었는데, 히로에 가문은 대대로 담배업을 했다. 그는 도쿄 게이오 의숙(慶應義塾) 재학 중 양부(養父)의 간청으로 1906년 9월 조선으로 와서 양아버지가 경영하는 히로에 연초상회에서 담배제조업을 관리했다. 1908년 부친이 병으로 쓰러졌고, 사업이 위기에 처했으나 1914년에 강적이었던 영미연초(英美煙草) 트러스트를 몰아내고 그 공로로 데라우치(寺內) 총독으로부터 명예금패를 받았다. 1916년 4월 동아연초주식회사와 합병, 이후 주로 만주, 조선, 중국을 활동무대로 삼아 동분서주했다. 저서로 《적심일편(赤心一片)》 《미국식(米國式) 정의인도(正義人道)와 중화민국》 《한국시대의 러시아활약사(韓國時代の露西亞活躍史)》가 있다.

[-D003] 조선 …… 쓰는구나 : 

이 무렵 서양 담배가 많이 수입되어 팔렸으므로 국산 담배 애용을 권장하는 광고를 냈다. 1913년 11월 20일 《매일신보》에 실린 히로에 상회(廣江商會) 광고는 국산 담배의 애용을 강조하여 “경제가(經濟家)는 피워 보시오, 민업(民業) 연초를. 우국가(憂國家)는 피워 보시오, 광강(廣江) 연초를”이라는 국산품 호소형 광고를 냈다.

[-D004] 뜻이 …… 이루나니 : 

《후한서(後漢書)》 권19 〈경엄열전(耿弇列傳)〉에 보인다. 후한(後漢) 때 대장군 경엄이 축아(祝阿)를 공격하여 성공을 거두자, 광무제(光武帝)가 경엄에게 말하기를 “장군이 앞서 남양에서 이 대책을 세우자, 허술하여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가 항상 여겼었는데, 뜻이 있는 사람은 일을 끝내 성취하는구나.〔將軍前在南陽建此大策 常以爲落落難合 有志者事竟成也〕”라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