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 오류

100년 동안이나 예의(禮義)를 지켜온 나라이며 당당한 천승(千乘)의 군대를 거느린 임금으로서 자신을 낮추어 오랑캐와 맹약을 맺고서

믿음을갖자 2023. 1. 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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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복집 5 / 소차(疏箚)

올린 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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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아룁니다. 임금이 이미 치욕을 당하였고 종사가 장차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민생은 곤궁해져서 병사들을 징발할 수가 없으며, 재력은 고갈되어 군량을 축적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조석 간에 오랑캐가 쳐들어올 것인데도 그들을 막아 낼 방책이 없습니다. 그러니 설령 대소 신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온 힘을 다하면서 급급하고 황황하게 하기를 마치 불 속에서 타는 자를 구해 내고 물 속에 빠진 자를 구해 내듯이 하더라도 오히려 패망을 구해 낼 수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현재의 기상은 느긋하고 느슨하기만 하여 그럭저럭 범범히 지내면서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단 말입니까. 심지어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정세를 살피는 적들로 하여금 곧바로 망할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위급한 줄을 모른다는 기롱을 하게 하고 말았으니, 아, 통탄스럽습니다.

생각건대 이는 하늘이 장차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우리의 혼백을 빼앗아 간 것인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현철한 사람치고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없게 한단 말입니까. 신들은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천장을 쳐다보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길게 탄식을 토하곤 하는데, 그간 심사숙고해 본 결과 왜 그런지 그 까닭을 알아냈습니다. 이제 그 까닭에 대해 숨김없이 다 말하여 함부로 말한 데 대한 주벌을 받을지언정, 차마 입 다문 채 묵묵히 있으면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아니하여 나라의 존망(存亡)이 한순간에 달려 있는 오늘날에 우리 전하를 저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신들이 듣건대, 천하의 모든 일은 어느 하나도 임금의 마음에 근본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성현들의 분명한 가르침이며, 사리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입니다. 신들이 삼가 전하께서 덕을 닦고 정사를 시행하는 것을 살펴보건대, 해가 가면 갈수록 그만큼 게을러지고 있어서, 성경(聖敬)이 항상 날로 향상되지 못하고, 지기(志氣)가 점차 안일한 데로 흘러갑니다. 이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비록 크나큰 난리를 막 겪어 온갖 신고(辛苦)를 다 맛보았으면서도 오히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두렵고 위태롭게 여기기를 은(殷)나라 탕(湯) 임금처럼 하지 못하고, 뒷날의 환란에 대해 삼가는 마음을 가지기를 주(周)나라 성왕(成王)처럼 하지 못하고, 마음을 잡아 깊이 생각하기를 위(衛)나라 문공(文公)처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행을 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이에 대부분 고식적이고 상투적인 것을 따라서, 고생을 겪고 고통을 참으면서 마음을 분발하여 새로이 혁신시키고자 하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천하의 큰 근본이 되는 전하의 마음이 이와 같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였으니, 신하들이 게을리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잘못되어 날이 갈수록 망하는 길로 치닫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신들이 저번에 논한 “눈앞의 자그마한 안일에 젖어 뒷날의 근심을 잊지 말며, 형식적인 작은 예절을 따르느라 원대한 생각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라고 한 것은, 대개 이미 그 단서를 발하고서도 감히 자세하게 다 말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한두 가지에 대해 조목별로 진달하여 전하께서 돌이켜 생각해 보시게 하고자 합니다.

대간(臺諫)은 임금의 이목(耳目)이고 조정의 기강(紀綱)입니다. 대간이 직무를 제대로 거행하면 기강이 서서 나라가 편안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기강이 무너져서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밝은 임금들은 항상 대간을 중하게 의지하면서 너그러이 받아들여, 말한 바가 비록 지나치더라도 일찍이 기를 꺾거나 모욕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강직한 기운이 혹 손상되어 기강이 진작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입니다. 잘 다스려진 세상에서도 오히려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위란(危亂)의 지경에 빠진 오늘날이겠습니까.

성문(城門)은 열어 놓고서 언로(言路)는 막았던 것이 전송(前宋)이 망하게 된 이유입니다. 지금 적이 여전히 경내에 있어 계엄이 풀리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 판국인데도 한마디 말이 성상의 뜻에 거슬리면 곧바로 준엄한 비답을 내리면서 무함(誣陷)이라고 배척하거나 무고(誣告)에 비유하셨으며, 혹 유사(有司)가 처치하여 출사(出仕)시키기를 청하면 바로 체직시키거나 개차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문도 열어 놓지 않고 언로마저 막은 것입니다. 신들은 나라의 일이 끝내는 어느 지경에 이를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일전에는 비망기(備忘記)를 내리고 이어 엄히 다스리라고 하교하기까지 하셨으니, 대간의 기를 꺾은 것이 너무 심합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그에게 무슨 죄가 있으며, 전하께서는 무슨 법으로 다스릴 것입니까? 삼가 전하께서는 여기에서 실언(失言)을 면치 못하신 듯합니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군자가 집 안에 있으면서 말을 내는 것이 착하면 천리 밖에서도 호응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이겠는가. 그리고 집 안에 있으면서 말을 내는 것이 착하지 못하면 천리 밖에서도 떠나가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이겠는가.” 하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무슨 연고로 이런 말씀을 하여 미리 강직한 신하의 입을 막아 버려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잃으셨단 말입니까. 신들은 삼가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외적을 물리치려고 하면 내정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고, 군사를 다스리려고 하면 양곡을 비축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오늘날의 일 가운데 이것들보다 더 중대한 것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군향(軍餉)에 보탬이 되는 것이 있으면 그 나머지는 모두 따져 볼 겨를이 없습니다. 신들이 내수사(內需司)의 수입을 호조에 돌리기를 청한 것은 실로 부득이한 계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조종조(祖宗朝)의 옛 규례이므로 경솔히 의논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고식적인 것을 편안히 여기고 옛 규례만을 지키고자 하는 견해로, 이미 쇠망한 것을 흥성시키고 어지러운 것을 바로잡는 방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어염(魚鹽) 등에 대해서 세금을 거두고 갈대밭에 둔전(屯田)을 설치하는 따위의 일들은 본래 따르기가 어려운 청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양사의 논집(論執)에 대해서 종시토록 망설이기만 하고 계십니다. 지난번에 내리신 전교에서 비록 아주 찬찬하고 자상하게 말씀하시기는 하였지만, 끝내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열복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말한 세 가지 불가한 점이라는 것은 단지 사은(私恩)이란 두 글자에 구애되신 것일 뿐입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군사가 없고 양식이 없어 나라가 보존될 수 없을 경우인데, 여러 궁가(宮家)들만 부귀를 누린다면 그들이 저축해 놓은 바는 큰 도적들을 위해서 저축해 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들은 삼가 생각건대, 전하와 같이 밝으신 분께서 이런 점을 생각지 못하셨을 리 없는데 이렇게까지 머뭇거리고 계신 것은, 오랑캐에 대한 기미책(羈縻策)을 조금은 믿을 수가 있어서 요행히 적들이 쳐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여겨서 그렇게 하신 듯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어찌 천려일실(千慮一失)이 되지 않겠습니까. 왕회(王恢) ()나라 사람 가운데 오랑캐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인데도 그가 말하기를, “흉노(匈奴) 화친하는 것은 길어 봐야 유지되는 불과하며, 곧바로 약속을 어길 것이다.” 하였으며, 그 밖에 진(晉)나라와 송(宋)나라의 전철(前轍)은 더욱더 분명하여 경계로 삼을 만합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나라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큰 계책을 저지시키고 변경의 방비책에 대한 일반적인 규례를 무너뜨리는 것은 모두 강화(講和)하자는 설이다.” 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사람들의 마음은 믿는 구석이 있으면 스스로를 가다듬는 데 소홀해짐을 이른 것이니, 어찌 크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송나라 태조(太祖)가 내탕고(內帑庫)의 돈을 풀어 군향(軍餉)으로 삼으면서 말하기를, “이 돈을 오랑캐놈들의 머리와 바꾸겠다.”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거란(契丹)이 오늘날처럼 심하게 창궐하지 않았으며, 국사의 위급함은 또 전혀 오늘날처럼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기꺼이 사장(私藏)을 풀어서 군용(軍用)으로 돌렸는바, 이는 후세에서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시행하고 조처한 것은 여기에 부끄러운 점이 있는바, 신들은 삼가 전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이르기를, “나라에서 큰 현(縣)이나 읍(邑)을 잃었을 경우에는 공경(公卿)과 대부(大夫)와 사(士)가 모두 상례(喪禮) 때 쓰는 관인 염관(厭冠)을 쓰고서 태묘(太廟)에서 3일 동안 곡하며, 임금은 성찬(盛饌)을 들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 해석하는 자가 이르기를, “조종조에서 물려준 기업(基業)을 훼손시킨 것을 상심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지금 이로(二路)는 탕패되고 백성은 어육(魚肉)이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한 현이 망하고 한 읍이 망한 데 비할 뿐이겠습니까. 염관을 쓰고서 곡하는 예는 거행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향사(享祀)를 올리는 번잡한 의식은 임시로 줄였다가 적이 평정되고 난 뒤에 일상적인 예로 회복하더라도, 선조를 받드는 애절한 정성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고, 상제(上帝)의 곁에서 오르내리시는 조종의 영령들도 반드시 이처럼 하는 것을 편하게 여길 것이며, 풍성하게 향사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 듣건대 장악원(掌樂院)에서 추향(秋享)에 사용할 목적으로 외방에 공문을 보내어 악공(樂工)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 원근의 사람들이 보고 듣는다면 필시 해괴하게 여기고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조정이 화친을 믿고 오랑캐를 잊은 채 태평 시대로 알고서는 예악과 문물을 모두 옛 전장(典章)대로 쓴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어떻게 집집마다 한 사람씩 보내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우쳐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이에 유망(流亡)하거나 절호(絶戶)되어서 침탈이 족징(族徵), 인징(隣徵)에 미치는 폐해가 발생할 경우, 무지한 백성들이 수심 속에 원망하면서 무슨 말인들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예식에 쓸 물품을 갖추는 것에 대해서는, 신들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근심스러워 마음에 편치 못한 바가 있습니다.

가령 제사에 음악이 없을 수 없다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춘추(春秋)》의 법을 보면, 제사 지낼 때를 당하여 경(卿)이 죽었을 경우에는 음악을 쓰지 않았습니다. 숙궁(叔弓)이 죽자 음악을 쓰지 않고 제사를 마쳤는데, 군자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예(禮)라고 하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상란(喪亂)이 극에 달한 때에는 선조들께서 음악을 듣고서도 즐거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선조들의 이런 마음을 인해서 우선은 음악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에 있어서 흠결이 되지 않습니다. 이른바 예라는 것은 비록 선왕께서 정해 놓은 법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의(義)로써 만들 수 있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 거의 예에 맞을 것입니다.

흥경원(興慶園) 천장(遷葬)하는 에 이르러서는, 이는 효성이 지극한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또 듣건대 의물(儀物)이 이미 다 갖추어져서 크게 재력(財力)이 소모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신들은 우선 천천히 하라고 청하여 성상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전쟁이 겨우 안정되어 백성들이 아직 편히 쉬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신음 소리가 한창 깊어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며 서관(西關) 일로(一路)에는 전사자의 뼈가 성에 가득하고 굶어 죽은 시체가 서로 머리를 베고 넘어져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마다 온통 비통한 것들이어서 바라보노라면 눈자위에 눈물이 맺힙니다. 더구나 백성 보기를 어린아이 보듯이 하는 전하로서는 한밤중에 일어나 생각해 보시매 반드시 마음이 심란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원군(大院君)께서 이곳에 묻혀 계신 지 세월이 이미 많이 흘렀으며, 애당초 조석 간에 물이 스며들거나 흙이 무너질까 불안해할 걱정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때에 백성들을 징발하여 신원(新園)으로 천장하기 위해 모시는 것은 그만둘 수 없는 시급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천장하는 일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변경에서 다시금 소란이 일어난다면, 그 낭패스럽고 황급함이 장차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 역시 깊이 생각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예기》에 이르기를, “예는 때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은 분수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습니다. 신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이 이런 일을 할 때입니까? 신들이 듣건대, 성묘(成廟)께서 즉위한 뒤에 덕종(德宗)의 능침(陵寢)을 조금도 더 수축하거나 넓힌 일이 없이 묘에 부수되는 의물을 모두 세자(世子)의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성인(聖人)이 어버이에 대해 효성을 다하는 도리가 애당초 말단적인 형식을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 사직을 안정시켜서 국조(國祚)가 영원토록 이어져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으로 큰 효성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우선 내정을 닦고 외적을 물리치는 계책을 세우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이시다가, 몇 년이 흐른 뒤에 외적이 물러가고 백성이 안정되며 시절은 화평하고 농사는 풍년이 들 때를 기다려서 천장하는 예를 의논하소서. 그럴 경우 유명(幽明) 간에 모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쪽 지방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듣고서는 모두들 말하기를, “우리 전하께서는 수치를 씻고자 하는 마음이 급하여 비록 지극한 정이 있더라도 모두 정지하였다.” 한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감발시키고 의로운 기운을 고무시키는 데 보탬이 됨이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무릇 이상에서 말한 몇 가지 일들은 비록 국가가 존재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데에 관계되지는 않으나, 사기(士氣)를 답답하게 하고 여정(輿情)을 의혹시키기에는 충분한 것들입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서 사방 사람들이 맥이 빠져 장차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 인심의 향배는 관계되는 바가 작지 않은 것입니다. 또 전하께서 안일함에 젖어 고식적인 생각을 함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불어나 끝내 자강(自强)할 수 없게 된다면, 비록 이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역시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신들이 어찌 이런 내용을 성상께 자세하게 아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 지난 일을 어찌 차마 말하겠습니까. 100년 동안이나 예의(禮義)를 지켜온 나라이며 당당한 천승(千乘)의 군대를 거느린 임금으로서 자신을 낮추어 오랑캐와 맹약을 맺고서 바로 이 오랑캐들을 종시토록 편안히 지내게 한다면, 이것은 이미 씻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더구나 산골짜기같이 큰 그들의 욕심은 채워 주기가 어렵고 변경의 흔단이 쉽게 발생하여 편안하게 지낼 리가 전혀 없는 데이겠습니까.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부끄러움이 있고 난 다음에야 능히 분발할 줄을 알고, 분발할 줄을 알고 난 다음에야 능히 자강(自强)할 수 있으며, 자강하고 난 다음에는 능히 정령(政令)을 시행하여 그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회계(會稽)의 수치를 잊지 마시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분발을 해이하게 하지 말아, 각고(刻苦)하는 마음을 세우고 오래도록 정성을 견지하소서. 그럴 경우 설욕할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계책과 노력으로는 결단코 나라를 회복시킬 가망이 없습니다. 바라는 바는 오직 하늘이 순조롭게 도와주는 것뿐이니, 어찌 몹시도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늘은 특별히 친애하는 바가 없고 오직 덕 있는 자만을 도와줄 뿐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덕정(德政)을 힘쓰면서 천심(天心)을 누림에 있어서 털끝만큼이라도 태만히 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하나의 호령을 내고 한 가지 일을 시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먼저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이렇게 하면 하늘의 마음에 부합될 수 있겠는가?’ 하소서. 그리하여 천심과 합치되면 시행하고 어긋나면 그치소서. 일마다 이와 같이 하고 날마다 이와 같이 해 나간다면, 높고도 높이 있으면서 날마다 내려다보고 있는 저 하늘이 어찌 아득한 가운데 묵묵히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주역》 대유괘(大有卦) 상구(上九)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도와서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하였는데, 이에 대해 공자가 주석을 내어 이르기를, “하늘이 돕는 것은 순응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돕는 것은 성신(誠信)하기 때문이니, 성신을 이행하고 순함을 생각하며 또 어진 이를 숭상한다. 이 때문에 하늘에서 도와서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들이 전하께 바라는 바는 오직 이것뿐입니다.

또한 신들은 이에 대해서 또 걱정스러운 바가 있습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신료들이 진언한 것에 대해서 매번 너그럽게 받아들이면서 장려하는 말로 답하시기는 합니다. 그러나 시행하고 조처하는 것을 살펴보면 끝내는 흔쾌히 받아들여 널리 시행하는 실제가 없습니다. 신료들이 전하께 진언하는 것은 본디 그것을 시행하여 공적을 이루게 하여 티끌만큼이나마 성덕(聖德)을 돕고자 해서인 것입니다. 어찌 한 글자 한 구절의 아름다운 말로 표창하는 영광을 바라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성인께서 “기뻐하기만 하고 실마리는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한 것과, 자주자(子朱子)가 “유순한 도를 써서 싸우지 않아 천하의 충의로운 군사들을 굴하게 하였다.” 한 것은 몹시 걱정해야 할 만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비록 좋은 계책과 좋은 말을 날마다 전하께 진달한다 하더라도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올린 말이 쓸 수 없는 것이면 구차스럽게 아름다운 말로 표창하지 말고, 참으로 그 말이 쓸 만한 말이면 반드시 일을 행하는 데에 드러내소서. 이것이 바로 대순(大舜)이 행한 천근(淺近)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고 중도(中道)를 쓰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임금의 도에 있어서 몹시 다행이고 나라의 일에 있어서 몹시 다행이겠습니다.

[-D001] 현철한 …… 말입니까 : 

《시경》 〈억(抑)〉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시대가 어지러워 현철해야 할 사람이 위의(威儀)를 잃고 서민들처럼 어리석어졌음을 말한 것으로, 주 여왕(周厲王)을 풍자한 내용이다. 여기서는 위정자들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탄식한 것이다.

[-D002] 왕회(王恢) …… 하였으며 : 

왕회는 한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으로 연(燕) 출신이며, 자주 변리(邊吏)를 맡아서 흉노들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무제 때 흉노가 화친을 맺자고 청해 오자, 당시에 대행(大行)으로 있던 왕회가 “한나라와 흉노가 화친을 맺었던 경우에 대부분 몇 년도 지나지 않아서 약속을 어기고 쳐들어왔는바, 화친을 맺지 말고 쳐부수는 것이 더 좋다.” 하면서, 당시에 화약(和約)을 주도하던 한안국(韓安國)과 대립하였다. 《漢書 卷52 韓安國傳》

[-D003] 흥경원(興慶園) 천장(遷葬)하는  : 

인조의 생부인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의 묘를 인조의 생모인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의 묘에 합장하는 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