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洪武) 연간에 강희맹(姜希孟) 공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조회하러 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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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10권 / 기(記)
전당추색루기〔錢塘秋色樓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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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明)나라 홍무(洪武) 연간에 강희맹(姜希孟) 공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조회하러 갔다가 전당(錢塘)의 연꽃 씨를 얻어서 안산(安山) 집에 돌아와 못에 심었다. 흰 꽃과 붉은 꽃송이 피어나자 그 향기가 보통과 달랐다. 강공이 죽자 연못은 외손 권(權)씨 집안에 귀속되었는데, 연꽃의 성쇠로 권씨의 흥망을 점친다고 전한다. 현재 시랑을 지내고 있는 권포운(權圃雲)은 공의 후예이다.
정종(正宗) 때 임금께서 안산에 행차하여 못가에서 연꽃을 감상하였는데, 안산을 연성(蓮城)이라 명명하고 시제를 내어 선비들에게 과거 시험을 보였다. 이로부터 전당의 연꽃이 나라 안에 소문이 났다.
기축년(1889) 포운이 남포(藍浦)의 농가를 샀다. 집 앞에 작은 못이 있어 안산의 연꽃 씨를 가져다 심고, 그 누각의 이름을 ‘전당추색(錢塘秋色)’이라 하였으니 옛일을 잊지 않은 것이다.
아! 그 땅은 성제(聖帝)께서 어루만져 다스린 곳이었고 그 꽃은 바로 성왕(聖王)께서 행차해 감상했던 것이다. 또 현공(賢公)의 손을 거쳐 심은 것을 명문가에서 대대로 보호하여, 오백 년 오랜 세월을 지났으니 어찌 심상한 보통 풀에 비할 수 있으랴. 그리고 왕조가 번갈아 바뀌고 세상 역시 변했는데, 이 꽃은 미약한 식물로서 만리 밖을 떠돌아다니면서 지금까지 종자를 남겨 세상에서 감상하는 바가 되었으니 어찌 제대로 된 사람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겠는가?
홍광(弘光)의 유사(遺事)를 보니, 남쪽 도읍이 전복된 뒤 옛날 번화하던 지역은 아득하게 멀리까지 잡초가 우거졌고 한바탕 헤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조정 신하들이 눈물을 가리며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서자호(西子湖 전당호(錢塘湖))를 다시 물을 수 없구나. 호수를 오히려 물을 수 없는데 하물며 호수에 있는 연꽃이겠는가?”
그러하니 이 꽃의 성쇠는 실로 천하의 큰 운수와 관련되어 있어, 권씨 일문을 점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컨대 꽃이 노력해서 자신을 아끼고 권씨와 함께 나란히 융성해 수천 년 봄 영원히 무성하고 향기를 널리 뿌린다면, 어찌 꽃만의 행운이랴. 바로 권씨의 행운이 아니고 온 세상의 행운일 것이다.
[주-D001] 홍무(洪武) :
중국 명나라 태조 때의 연호(1368~1398)이다.
[주-D002] 강희맹(姜希孟) :
1424~1483.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 운송거사(雲松居士), 국오(菊塢), 만송강(萬松岡)이다. 1447년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예조 판서, 형조 판서에 이르렀다.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하자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고 남이(南怡)의 옥사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진산군(晉山君)에 책봉되었다.
[주-D003] 명나라에 조회하러 갔다가 :
1463년 강희맹(姜希孟)이 진헌부사(進獻副使)가 되어 남경에 갔다 온 일을 가리킨다.
[주-D004] 전당(錢塘) :
중국 절강성(浙江省)을 북동으로 흘러 항주만(杭州灣)으로 흐르는 강이다.
[주-D005] 홍광(弘光) :
주유숭(朱由崧, 1607~1646)의 연호(1644~1645), 혹은 주유숭을 가리킨다. 명나라 멸망 후 존속했던 남쪽 지방의 정권인 남명의 제1대 황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