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풍홍의 무덤 : 풍홍(馮弘, ?~438)은 십육국 시기 북연의 군주이다.

믿음을갖자 2022. 10. 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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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당필기 2

풍홍의 무덤〔馮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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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연(成龍淵 성대중)은 운산 군수(雲山郡守)를 지냈다. 그가 해 준 말이다.

“고을에 큰 무덤이 있는데 황제총(皇帝冢)이라고 하네. 돌을 쌓아 만든 것인데, 한쪽 모퉁이가 무너져 내렸기에 들여다보니 움푹하게 속이 텅 비었더군. 사람들은 황제란 곧 위만(衛滿)이라 하는데, 어떤 이는 풍홍(馮弘)이라고도 하네.”

살펴보건대 위만은 황제를 칭한 적이 없다. 풍홍은 고구려에 맞아들여져 평곽(平郭)에서 살다가 얼마 후 북풍(北豐)으로 옮겨졌다. 장수왕이 장군 손수(孫漱)와 고구(高仇) 등을 보내 북풍에 있는 풍홍을 죽였다. 시호는 소성(昭成)이다. 운산이 바로 고구려의 북풍이다.

[-D001] 풍홍의 무덤 : 

풍홍(馮弘, ?~438)은 십육국 시기 북연의 군주이다. 북연의 문성제 풍발(馮跋)의 아우로, 형이 죽자 그 조카를 죽이고 찬탈해서 6년간 재위하였다. 437년 북위의 침략으로 쫓겨나 고구려로 도망했다가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 풍홍의 무덤은 위만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성대중의 《청성잡기》 권4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