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至元) 4년 백제(百濟)가 양호(梁浩)를 파견하여 와서 조회하다.
탐라국은 자치국가로 제주와 별도로 존재했습니다. 일제는 이것을 숨기려고 동국여지지 원본에 보듯이 가필을 했습니다.
조선초까지 탐라란 국가는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위키백과 1267년
연호[편집]
기년[편집]
사건[편집]
음력 1월 봄 백제의 양호(粱浩)를 원에 사신으로 보내, 비단을 하사받았다(至元 四年 春正月 (중략) 乙巳,百濟遣其臣梁浩來朝,賜以錦繡有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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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당 폐제(廢帝) 청태(淸泰) 3년(936) 정월 을미에 후백제가 사신을 보내왔다. <오대사>
살펴보건대, 《원사》에, “세조 지원(至元) 4년(1267) 정월 을사에 백제(百濟)가 신하 양호(梁浩)를 파견하여 와서 조회하였다. 금수(錦繡)를 차등이 있게 하사하였다.” 하였다. 원나라 때에는 백제라는 칭호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와서 조공하였다고 하였으니, 자세히 알 수 없는바, 우선은 다시 상고하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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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五上 / 全羅道
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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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全羅道南海中。周四百餘里,東西二百里,南北一百二十里。距海南館頭梁海路七百里。
旱田
水田
建置沿革
……………
長坪。在州西六里。高麗元宗時,文幸奴作亂,陳兵于長坪。副使崔托、
星主梁浩等討平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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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15대 손 고후(高厚)ㆍ고청(高淸) 형제 세 사람이 배를 만들어 타고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에 닿았으니, 이때는 신라의 융성한 시대였다. 이때에 객성(客星)이 남방에 보였는데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다른 나라 사람이 와서 조회할 징조이다.’ 하였다. 고후의 무리가 이르자 왕이 가상히 여기어 고후에게 성주(星主)란 칭호를 주었으니 객성이 동하였기 때문이었다. 왕은 고청을 자기의 가랑이 아래로 나가게 하고 사랑하기를 자기 자식같이 하여 왕자(王子)라고 일컫고 그 막내를 도내(都內)라고 일컬었다. 고을 이름은 탐라(耽羅)라 하였으니, 처음 올 적에 탐진에 닿아서 신라에 조회하였기 때문이다. 각각 보개(寶蓋)와 옷을 주어 보냈다. 이때로부터 자손이 번성하여 신라를 공경히 섬기니, 드디어 고(高)를 성주로 삼고 양(良)을 왕자로 삼고 부(夫)를 도상(都上)으로 삼았다. 뒤에 양(良)을 고쳐 양(梁)으로 하였다.” 하였다. 그 뒤에 백제에 복종하여 섬겼는데, 동성왕(東城王) 21년에 탐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친히 정벌하려고 무진주(武珍州)에 이르자 그 성주가 듣고 사자를 보내어 죄를 용서하기를 비니, 이에 그만두었다. 백제가 멸망함에 미쳐 신라 문무왕(文武王) 원년에 탐라국주(耽羅國主)의 좌평(佐平) 도동음률(徒冬音律)이 와서 항복하였다. 고려 태조(太祖) 20년에 태자 말로(末老)를 보내어 조회하니, 성주 왕자의 작위를 주었다. 숙종(肅宗) 10년에 탁라(乇羅)를 고쳐 탐라군(耽羅郡)으로 만들었고, 의종(毅宗) 때에 강등하여 현령관(縣令官)으로 삼았다. 원종(元宗) 11년에 반적(叛賊) 김통정(金通精)이 삼별초(三別抄)를 거느리고 그 땅에 들어가 웅거하였는데, 4년이 지나 왕이 김방경(金方慶)을 명하여 쳐서 평정하였다. 충렬왕(忠烈王) 3년에 원(元) 나라에서 말을 기르는 목장으로 만들었는데, 20년에 왕이 원 나라에 조회하고 탐라를 돌려주기를 청하니, 원 나라 승상 완택(完澤) 등이 아뢰어 황제의 뜻을 받들어 다시 우리에게 예속시켰다. 이듬해에 제주(濟州)로 고치고 비로소 판비서성사(判祕書省事) 최서(崔瑞)를 목사(牧使)로 삼았다. 26년에 원 나라 황태후(皇太后)가 또 그 땅에 말을 방목하다가 31년에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충숙왕(忠肅王) 5년에 좀도둑 사용(士用)과 엄복(嚴卜)이 군사를 일으켜 난을 꾸미니, 그 지방 사람 문공제(文公濟)가 군사를 일으켜 모두 베고 원 나라에 보고하여 다시 관리를 두었다. 공민왕(恭愍王) 11년에 원 나라에 예속시키기를 청하니, 원 나라에서 부추(副樞) 문아단불화(文阿但不花)를 탐라만호(耽羅萬戶)로 삼았다. 아단불화가 본국의 천한 노예 김장로(金長老)와 함께 주(州)에 이르러 만호 박도손(朴都孫)을 매질하고 바다에 던져 죽였다. 16년에 원 나라가 이 주(州)를 다시 우리나라에 예속시켰다. 이때에 원 나라 목자(牧子)들이 사나워서 여러 번 국가에서 보낸 목사와 만호를 죽이고 배반하였다. 김유(金庾)가 토벌하게 되니 목자들이 원 나라에 호소하여 만호부(萬戶府)를 두기를 청하였다. 왕이 아뢰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관리를 임명하고 목자들이 기른 말을 가려 바치기를 전례와 같이 하기를 청하니, 황제가 그대로 좇았다. 18년에 원 나라 목자 하치[哈赤]가 제 마음대로 날뛰어 관리를 살해하니, 6년 뒤에 왕이 도통사 최영(崔瑩)을 보내어 하치를 쳐서 멸하고 다시 관리를 두었는데, 본조에서 그대로 하였다. 태종(太宗) 2년에 성주(星主) 고봉례(高鳳禮)와 왕자(王子) 문충세(文忠世)의 무리가 성주 왕자의 호가 참람하다 하여 고치기를 청하니, 성주를 좌도지관(左都知管)으로 삼고 왕자를 우도지관(右都知管)으로 삼았다. 세조(世祖) 12년에 안무사를 고쳐 병마수군절제사를 삼았다가, 뒤에 목사로 고치고 진(鎭)을 두었다.
진관(鎭管) 현(縣)이 2 정의(旌義)ㆍ대정(大靜).
【관원】 목사ㆍ판관ㆍ교수 각 1인.
【군명】 탐라(耽羅)ㆍ탁라(乇羅)ㆍ탐모라(耽毛羅)ㆍ동영주(東瀛州).
【성씨】 본주 고(高), 양(良) 양(良)은 뒤에 양(梁)으로 고쳤다. 부(夫), 문(文) 처음에 보성군(寶城郡) 복성현(福城縣) 사람이 와서 고씨(高氏)의 사위가 되었는데 그 자손이 고씨를 이어서 왕자(王子)가 된 자가 있다. 정(鄭)ㆍ김(金)ㆍ이(李)ㆍ문(文)ㆍ안(安)ㆍ현(玄)ㆍ함(咸)ㆍ양(楊) 모두 속현(屬縣) 성씨이다. 김(金)ㆍ이(李)ㆍ박(朴)ㆍ임(林)ㆍ유(兪)ㆍ주(周)ㆍ조(趙)ㆍ송(宋)ㆍ정(鄭)ㆍ홍(洪)ㆍ서(徐)ㆍ최(崔)ㆍ오(吳)ㆍ차(車)ㆍ지(池)ㆍ한(韓)ㆍ마(馬) 모두 내성(來姓)이다. 조(趙)ㆍ이(李)ㆍ석(石)ㆍ초(肖)ㆍ강(姜)ㆍ정(鄭)ㆍ장(張)ㆍ송(宋)ㆍ주(周)ㆍ진(秦) 원(元). 양(梁)ㆍ안(安)ㆍ강(姜)ㆍ대(對) 운남(雲南). ○ 명(明) 나라 초년에 운남(雲南)을 평정하고 양왕(梁王)의 가속을 옮겨 제주에 안치하였다.
【풍속】 백성의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며 예절이 있다. 백성의 풍속이 어리석고 검소하며, 또 초가가 많고 빈천한 백성들은 부엌과 온돌이 없고 땅바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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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長坪) 주 서쪽 6리에 있다. 고려 원종 때에 문행노(文幸奴)가 난을 일으켜 군사를 장평(長坪)에 주둔시켰는데, 부사 최탁(崔托)과 성주(星主) 양호(梁浩)의 무리가 쳐서 평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