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는 땅넓이가 거의 4, 5백 리이고, 사는 백성은 8, 9천 호이며, 기르는 말도 수만 필이다

믿음을갖자 2023. 7. 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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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문집 제2권 / 기(記)

제주(濟州)의 관덕정(觀德亭)을 중신한 것에 대한 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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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주(座主) 남원(南原)  판상(梁判相)이 거정에게 말씀하기를,

“우리 집 아이 양찬(梁瓚) 제주에 목사로 있으면서 관덕정을 중수하였네. 선생이 기문을 지어 빛내 주기 바라네.”

하였다.

내가 생각건대, 제주는 본시 옛날의 모라국(毛羅國)이니, 곧 우리나라 구한(九韓) 중의 하나이다. 신라 때에 비로소 조공(朝貢)하고 탐라(耽羅)라 일컬어졌다. 고려 초에 땅을 바치고 항복해 오니 나라를 혁파하여 현(縣)으로 만들었다. 고려 말에  황후(奇皇后)가 그곳에다 임시로 목장을 설치하였고, 명나라 때에 다시 우리 조선에 예속되었다.

대개 제주는 바다 안에 있는데, 땅의 넓이가 거의 4, 5백 리이고, 사는 백성은 8, 9천 호이며, 기르는 말도 수만 필이다. 그 물산이 넉넉하여 다른 군보다 두 배나 된다. 또 일본과 서로 이웃하여 적의 침략에 대비할 방책을 세우는 일이 참으로 번잡하다. 그래서 조정에서 목사를 뽑을 때마다 적임자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 양후(梁侯)가 먼저 그 선발에 들어, 깊은 바다를 마치 평탄한 길을 가듯이 건너가며 조금도 집을 걱정하거나 연연해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양후는 훌륭한 인재로다. 관청에 도착해서는 부지런히 성상의 덕을 펴고 백성의 고충을 보살피는 일로 급선무를 삼으니, 다스린 지 3년 만에 사람들이 대화합을 이루었다.

이에 그 지방 호족 고윤(高潤) 등 수십 인이 청하기를,

“관덕정은 실로 제주 고을 사람들이 활쏘기를 익히는 곳입니다.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지고 부서져 활쏘기를 익힐 곳이 없으니, 우리 고을의 큰 흠입니다.”

하니, 양후가 말하기를,

“그렇다.”

하고, 통판 하공 주(河公澍)와 상의해 목재를 모으고 공인을 모아,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완성하였다. 이에 활쏘기를 익힐 장소가 있게 되어 무비가 더욱 엄해졌으니, 양공(梁公)은 일의 우선순위를 잘 아는 자라 하겠다.

하물며 이 정자를 지은 것은 놀며 관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래 열무(閱武)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부터 제주 고을 사람들이 날마다 여기에서 활쏘기를 익힐 것인데, 그냥 과녁을 쏘는 것뿐만이 아니라 말을 타고 달리며 쏘는 것도 익힐 것이고, 말을 타고 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전투의 진법(陣法)도 익힐 것이다. 그리하여 왜적의 침범이 있을 때에는  고을의 군대를 출동시켜 상산(常山) 형세를 만들고, 바다와 육지에서 보병과 기병이 각각 출병하여 힘을 다해 싸워서 다투어 적의 목을 베어, 이로써 부모와 처자를 구원하고 이로써 한 고을을 보전하고 이로써 나라의 간성(干城)이 되어 역사에 공명을 기록하게 될 것이니, 어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랴.

단지 무비(武備)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이곳 제주 사람으로서 문장과 사업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자는 평장사(平章事) 고조기(高兆基)로부터 아래로 고득종(高得宗) 선생, 좌윤(左尹) 고태필(高台弼) 4형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입신하여 청현직을 지내 이름을 떨쳤다. 기타 세 고을의 젊은이들도 제주에 있을 때에는 공물을 바치는 일에 근실하였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숙위(宿衛)를 조심스럽게 잘하였으니, 그 풍속의 순후함이 육지의 여러 고을에 견줄 만하였다.

양후는 명문가의 후예로서 무사(武事)에 익숙하였고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우리 여러 군주들께 인정을 받아서 잇달아 지방관에 제수되었다. 삼척(三陟)과 웅주(熊州)에 있을 때에 남긴 명성과 공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모두 자자하게 칭송한다. 이제 멀리 떨어진 제주 지역에서 이름을 날려 그 세운 바가 이처럼 우뚝하니, 어찌 아름답게 여기지 않을 수 있으랴. 양후의 자는 여옥(如玉)이고, 남원군의 셋째 아들이다.

경자년(1480, 성종11) 가을.

[-D001] 판상(梁判相) : 

판서를 지낸 양성지(梁誠之)를 말한다.

[-D002] 양찬(梁瓚) …… 있으면서 : 

《성종실록》에 의하면, 양찬은 1478년(성종9) 8월에 통정대부 행 제주 목사에 제수되었다.

[-D003] 모라국(毛羅國) : 

《세종실록》, 《동사강목(東史綱目)》, 《해동역사(海東繹史)》 등의 기록에 의하면, 제주도는 탁라(乇羅), 탐모라(耽牟羅), 담모라(耼牟羅) 등으로 불렸다.

[-D004] 구한(九韓) : 

《동사강목》 부록 권상 〈고이(考異) 구이(九夷)〉에 《삼국유사》를 인용하여, “구한은 일본(日本), 중화(中華), 오월(吳越), 탁라(乇羅), 응유(鷹遊), 말갈(靺鞨), 단국(丹國), 여진(女眞), 예맥(濊貊)이다.” 하였다.

[-D005] 황후(奇皇后) : 

원나라 순제(順帝)의 비(妃)이다. 고려 기자오(奇子敖)의 딸이다.

[-D006] 고을 : 

대본에는 ‘삼도(三道)’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 〈전라도 제주목(濟州牧)〉에는 ‘삼읍(三邑)’으로 되어 있다.

[-D007] 상산(常山) 형세 : 

양쪽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상호 보조하는 형세를 갖춤을 말한다. 《손자병법》, 《태평어람》 등에 나온다. 상산에 솔연(率然)이라는 뱀이 있는데, 머리를 치면 꼬리가 와서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와서 덤비며,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와서 덤빈다고 한다. 또는 솔연은 머리가 둘이 달린 뱀인데 한쪽을 치면 다른 한쪽이 와서 덤비며, 중간을 치면 두 머리가 함께 덤빈다고도 한다. 용병을 잘하는 것을 비유할 때에 쓰는 말이다.

[-D008] 고조기(高兆基) : 

?~1157. 초명(初名)은 당유(唐愈)이다. 경서와 역사에 달통하였고 오언시를 잘하였다고 한다. 벼슬이 중서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

[-D009] 고득종(高得宗) : 

제주 사람으로서 조선 초기에 승문원 교리, 예조 정랑, 예조 참의, 한성 부윤 등을 지냈다.

[-D010] 좌윤(左尹) 고태필(高台弼) : 

고득종(高得宗)의 아들이다. 과거에 올라 조선 초기에 헌납, 청주 목사, 이조 참판, 전라도 관찰사, 황해도 관찰사, 개성 유수(開城留守) 등을 지냈다. 좌윤을 지냈다는 것은 미상이다.